말씀풀이

마태복음 6장 24-34 웨슬리의 산상설교 9

心貧者 2017. 4. 26. 13:21


웨슬리의 산상설교 9

마태복음 624-342017/04/19()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오늘 본문은 두 가지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우선으로 여기는 선한 행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인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일까요?

바로 제사와 예배를 통해서입니다.

구약에서는 제사를 통해서 그리고 신약에서는 예배를 통해서입니다.

제사와 예배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기초이자 전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나 웨슬리 목사님이나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사와 예배참 중요한데,

문제는 제사나 예배의 형식을 넘어 마음과 몸의 순종에까지 이르는 참된 예배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렇지만 예수님 시대에도 가장 큰 관심 중에 하나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섬기는 일 중에 최고봉인 예배를 참되게 드릴 수 있을까? 입니다.

 

, 어떤 예배가 참된 예배일까요?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를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배의 전통과 예배의 순수성을 망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상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방인의 피가 섞인 혈통의 문제도 큰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모세가 전하여 준 언약의 예배를 변질 시켰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왜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핵심인 예배를 변질 시켰을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마리아인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주전 722년경입니다.

앗시리아 제국이 사마리아 성을 정복하는 것으로 북이스라엘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자 앗시리아 왕이 다른 족속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고 사마리아 사람들과 강제적으로 결혼을 하게 하였습니다.

혼혈정책이지요.

이러한 강력한 혼혈정책은 사마리아 사람끼리 결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크게 두 가지의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첫째, 형통의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의 씨, 즉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순수혈통이 북 이스라엘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순수 혈통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 돼지로 낫잡아 본 것입니다.

둘째, 예배의 변질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뿐 만 아니라 다른 주인도 섬겼다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이지요.

아주 중요한 말씀이니 찾아보겠습니다.

열왕기하 17:41

이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 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니라

 

그래서 예수님 시대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상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혈통의 문제 뿐 만 아니라 언약의 예배도 변질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예배하지 못하는 개, 돼지로 취급한 것입니다.

, 돼지는 하나님을 예배할 자격이 없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복음서에서 반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예배를 누구와 예수님이 깊이 있게 논쟁하는 줄 아십니까?

바로 예배의 변절 자 곧 사마리아 사람 중에서도 남편이 없는 여인과 논쟁합니다.

아주 대단한 컨셉이지요.

 

요한복음 4장입니다.

남편 다시 말해 주인 없는 사마리아 여자가 묻습니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참된 예배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장소의 문제,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여기에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진정한 예배의 조건 두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 영으로(중심, 심령)

둘째는 진리 곧 참된 행실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참된 예배를 지금 누가 변질시키고 있다고 오늘 본문이 말합니까?

두 주인을 섬기고 있는 바로 세속화된 유대인들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세속화된 유대인들입니다.

 

한 번 묻겠습니다.

세속화된 유대인들 어쩌다 가끔 하나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런 이들이 꽤 많았을까요?

오늘 본문의 뉘앙스는 꽤 그런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속화된 유대인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24절입니다.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것이 지난 시간 살펴보았던 마태복음 619-23절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결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이 부분을 자신의 설교에서 좀 더 집중해서 설명하는데 우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4가지로 조근 조근 설명합니다.

간단하게 그 맥만 집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섬긴다는(예배) 것은 그 분을 참되게 믿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으로 또는 보험들 듯이 막연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게 믿는 것을 말합니다.

전적 신뢰이지요.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자 유일한 안식처로 믿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지요.

 

둘째,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그 분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전부인 독생자 예수를 내어 준 것처럼 우리도 숨김없이 우리의 전부를 내어 주는 사랑을 말합니다.

내어 주는 사랑, 전적 헌신이지요.

 

셋째,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면 서로 닮는 다고 하지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긍휼을 닮고 자비를 닮고 인애를 닮고 인내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이 전에 없던 성품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이지요.

 

마지막 네 번째 하나님을 온전히 섬긴다는 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이 너무 좋아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냥 졸졸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오른쪽으로 가시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가시면 왼쪽으로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하나님의 골수팬이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재물을 섬긴다는 것을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요?

역시 4가지로 설명하는데,

 

첫째 문자 그대로 돈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보다 돈이 우선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배금주의입니다.

둘째, 재물을 섬긴다는 것은 세상을 본 받는 것을 말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세상 풍류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부동산 바람 불면 그 바람에 춤추는 것입니다.

또 주식 바람 불며 그 바람의 춤을 추는 것입니다.

 

셋째, 재물을 섬긴다는 것은 자기 본능과 관능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자기 본능과 관능을 제어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이런 것들을 자기 자녀에게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 부모도 본능과 관능 속에서 병들어가는 자식을 방치하지 않는 것처럼 하늘 아버지께서 자기 자녀인 우리를 방치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어할 힘이 없다.’

핑계 되지 말고 본능과 관능으로부터 돌이킬 수 있는 주님의 훈계, 주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 재물을 섬긴다는 것은 세상 질서, 세상 가치. 세상 문화에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일단은 그 길이 넓고 좋아 보이니까?

그냥 휩쓸려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니오할 때 아니오하고 돌아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이런 생각과 염려를 하게 됩니다.

아니 돈 없이 어떻게 살아?

우리가 독신 수도자도 아니고 너무 비현실적인 것 아니야?

우선 사람이 살려면 먹을 것도 있어야 하고, 마시고 즐길 것도 있어야 하고, 입을 것도 있어야 하고, 최소한 잠잘 거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러니 하나님도 좋지만 솔직히 돈도 무시할 수 없잖아?’

 

어떻습니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보편적인 생각이자 합리적인 의심이지요.

그래서 우리 주님이 오늘 본문에서 두 번째로 말씀하시는 주제가 바로 신앙의 핵심인 믿음입니다.

예배의 핵심이 영과 진리에 있다면 신앙의 핵심은 진정한 믿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주해 없이 본문 그대로 읽겠습니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비다.

 

여기서 핵심은 32절과 30절입니다.

다시 32절입니다.

육신을 입은 인간의 필요.

하나님이 아신다, 모르신다?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비다.

 

첫째,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 하나님이 다 아신다.

그것도 아주 빠짐없이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아실뿐만 그 문제를 반드시 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문제는 믿음이 작은 우리들이지요.

그래서 예배자로 살아가면서도 세상 염려를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리석지요.

하지만 너무 실망하거나 낙심하거나 자책하지 마십시오.

 

오늘 말씀의 결론이자 우리 주님이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두 가지입니다.

첫째, 다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둘째, 하늘로부터 임하는 우리 주님의 위로입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