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흔적, 스티그마타
출애굽기 33:18-23절 2017/1/20(금)
33: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33: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33: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33: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33: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33: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자 광야에 머물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른 지도자 모세의 형 아론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아론 앞에서 이런 요구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32장 1절의 말씀입니다.
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그 신이 하늘에 있는지 신인지, 땅에 있는 신인지 아니면 바다 속에 있는 신인지지? 그 신의 모양이 사람의 형상인지 동물의 형상인지 물고기의 형상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것은 아무 것도 중요치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는 요구였습니다.
요구라기보다는 명령에 더 가깝지요.
모세의 형 아론, 어떻게 했을까요?
백성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합니다.
그렇게 해서 애굽의 아피스(Apis)신을 본 딴 금송아지 하나를 뚝딱 만듭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을 ‘여호와의 날’로 선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란의 축제를 벌입니다.
출애굽기 32장 5-6절입니다.
32: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32: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형식만 번제이고 화목제였지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노는’ 광란의 축제였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괴심하고 화가 나지요
그래서 9-10절에서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32: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32: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가 10절에 나오는 ‘진멸’인데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화가 단단히 나신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모세 너만은 살려두고 그리고 너를 통해 다시 큰 나라를 세우겠다고 자신의 뜻을 밝혀주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곧 바로 간청합니다.
32: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32: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한 번 만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바로 화를 거두십니다.
32: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아닌 3000명만 심판을 당하여 죽게 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문제가 생깁니다.
33장 1절입니다.
33: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드디어 약속의 땅 곧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앞서 보낸 천사를 이미 통하여 준비가 다 되었으니 그저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기만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명령을 듣고 미적 미적거립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보다 키 크고 힘이 쌘 가나안 족속이 더 두렵고 무서웟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화가 더 나지요.
그래서 모세에게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의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이번에도 내 명령을 어기면 그 동안 미루어두었던 심판을 다시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세가 작정하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회막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단판을 짓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다는 그 은혜의 증거를 나와 그리고 주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딴 생각하지 않도록, 더 이상 핑계되지 않도록 확실한 은혜의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8절입니다.
33: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주의 영광, 곧 하나님 얼굴 좀 뵙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겠지요?
하나님 얼굴을 보는 것 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33: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선문답 같지요.
자신의 영광, 곧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안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사실 가늠이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속마음’입니다.
어떤 속마음입니까?
다시 19절 후반부입니다.
33: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은혜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 싶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은혜를 베푸는 일은 내 마음이니, 그 은혜의 증거를 달라고 자꾸 떼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0절 때문입니다.
33: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주의 영광, 곧 하나님의 얼굴을 본 순간 인간은 예외 없이 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이치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의 얼굴을 모세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모세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이 모세에게 은혜의 증거로 보여 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고 결론인데 무엇입니까?
23절에서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33: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아니라 하나님의 등입니다.
바로 은혜의 흔적이지요.
은혜를 베푸시는 분의 얼굴 곧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그 은혜의 흔적은 우리가 뚜렷하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흔적, 은혜의 스티그마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어떻습니까?
은혜의 흔적, 그 흔적을 가지고 있는지요?
그리고 그 은혜의 스티그마, 은혜의 자국이 우리 몸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지요? 일일이 묻고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폐병이 그 흔적이지요.
성흔, 곧 거룩한 흔적이라는 ‘스티그마타’이지요.
갈라디아서 6장을 보시면 바울이 이런 말로 끝을 맺습니다.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서 시비를 거는 이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이 스스로 ‘사도’라는 직함을 사용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좋다. 사도라는 직함보다 더 큰 증거, 더 확실한 증거를 나는 가지고 있다.
바로 이 몸에 새겨진 예수님의 흔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흔적, 멸시의 흔적, 그리고 내 등에 새겨진 채찍의 흔적 곧 ‘스티그마타’ 그 거룩한 흔적이 내 몸에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스티그마타’ 거룩한 은총의 흔적을 바울처럼 우리 몸에 지니고 싶지 않는지요?
그래서 오늘 밤 우리가 소망 중에 인내하면서 이런 기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지금 당하는 이 아픔이 거룩한 은총의 흔적 ‘스티그마타’가 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지금 당하는 이 고통의 무게가 거룩한 은총의 흔적 ‘스티그마타’가 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지금 당하는 이 수치와 모욕이 거룩한 은총의 흔적 ‘스티그마타’가 되게 해 주세요.‘
멈추지 말고 기도하시고 응답받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송가 28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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