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마태복음 12:33-37 열매로 나무를 안다

心貧者 2016. 11. 8. 10:49


열매로 나무를 안다

마태복음 12:33-372016/11/6(주일오후)

12: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12: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12: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과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평안의 인사를 드렸지만 좀 민망한 마음도 있습니다.

백성들의 삶은 점점 지쳐가고 고단한데 평안의 인사를 한가롭게 나눌 만큼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이 그리 평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참 소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믿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저의 믿음이 요즈음 조금씩 금이 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진리의 말씀이 진리로 그리고 생명의 열매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편 73편입니다.

73: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73: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73: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73: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73: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73: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3: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73: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73:9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73: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73: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73: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어떻습니까?

'순실''진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진실순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좀 지켜보아야겠지만 사실 수사권을 가진 검찰(고발하는 자, 사탄)에게 큰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사건처럼 진실이 묻혀 질 가능성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과 그리고 교회의 책임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이 이 땅에서 선포하셨던 소금이 소금이 되고 빛이 빛이 되며 그리고 진리가 진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책에만 갇힌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이 땅의 백성들에게 증명해 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둠은 절대로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후손들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그리고 생명의 말씀으로 마음 판에 꼭 새겨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와 그리고 우리 교회가 꼭 회복해야할 영성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흔들어 깨우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예언자의 영성, 예언자의 소리입니다.

아모스 811절입니다.

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지금 우리는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 혼돈이 아닙니다.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 공허도 아닙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흑암, 그 어두움 속에서 사람들이 겪는 굶주림이고 목마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을 보시면 오병이어 기적으로 잔득 배부른 사람들 앞에서 우리 주님이 이렇게 예언자의 소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자

그래서 내 자신의 살도 그리고 내 자신의 피도 우리 주님처럼 내 줄 수 있는 자.

그 예언자의 영성을 가진 자만이 이 시대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좀 조심스럽지만 어느 분이 드렸던 감사헌금 봉투에 적힌 기도내용을 소개할까 합니다. 실명은 거론하지 않고 감사헌금 봉투에 적인 기도의 내용만 읽어드리겠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생신에 하나님의 영적 축복이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건강과 가정의 화목을 허락하소서.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좋은 말을 만나게 해주세요.

2014년 아시안 게임에 당선되게 해 주세요.

() 00이의 중학교 졸업을 축하해 주세요.

승마대회에서 금메달 딴 것 감사드리며 건강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믿음 갖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00의 앞날에 축복이 있게 하옵소서.

무사히 체전을 마치고 건강하게 가족의 축복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승자대회 자체 1등이 되게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시합에 좋은 성적내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과 동행해주세요.

삼성동 건물이 팔리게 도와주소서.

 

어느 분들의 기도인지 짐작이 되시지요?

딸을 사랑하는 그리고 가정의 화목과 평안을 바라는 지극히 평범한 어느 어머니의 기도와 별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빛 가운데 드러난 그 분의 실체는 어떻습니까?

암흑 그 자체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래서 만난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12: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단어는 열매입니다.

33절 한 절에서만 무려 세 번이나 등장할 정도로 열매를 아주 강조합니다.

그런데 열매를 소제로 이렇게 예언자적 심판의 말씀을 하신 것은 예수님뿐 만이 아닙니다.

 

원조가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마지막 예언자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누가복음 38절입니다.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거들먹거리지 말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연약한 이들을 향한 그리고 죄인들을 향한 긍휼과 자비이지요.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의 가르침에서 예수님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갑니다.

다시 오늘 본문 33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12: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이런 것입니다.

그 인생이 맺는 열매를 보면, 그 행실을 보면 그 인생의 존재, 그 인생의 가치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이웃에게도 유익이 되는 복된 인생인지 아니면 하나님에게도 인색하고 이웃에게도 무익한 불의한 인생인지를 그 삶의 열매, 곧 그 행실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본문의 배경이 되는 22절 이하의 말씀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귀신이 들려서 눈이 멀고 말을 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 앞에 데려옵니다.

예수님은 그를 고쳐 주셨고, 고침을 받은 사람은 이 전에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말을 하고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을 목격한 사람들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사람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태복음 12장입니다.

12:23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다윗의 자손

이 말 속에는 메시야그리스도의 뜻이 함축되어 있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런 상황 속에서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정결하기로 유명한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딴죽을 겁니다.

12: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귀신의 두목 바알세불의 힘을 빌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의 악한 마음과 생각을 아신 예수님이 이렇게 반격을 합니다.

12: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12: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좀 말이 되게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말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탄의 나라가 온전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힘입은 것이지 사탄의 장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바리새파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 생명의 역사를 똑같이 목격하고도 엉뚱한 결론을 내린 것일까요?

왜 하나님의 일을 귀신의 일이라고 했던 것일까요?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아 기준에 나사렛 사람 예수가 합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죄인이라고 규정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예수를 보면 도저히 메시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눈에 거스른 것입니다.

 

결국 메시아의 사역을 보고도 믿지 않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이 엄중하게 경고를 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 절인 31-32절입니다.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세상에서 짓는 어떤 죄도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영, 곧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역사를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율법으로 단죄한 죄인들은 용서 받을 수는 있어도 그 죄인들을 구원하는 메시아의 일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씀이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죄인에게 인색한, 가난한 이들에게 인색한 바리새파 사람들이 나쁜 나무라는 사실을 예수님이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르시시즘 곧 자아도취와 자기 의와 자기의 위선으로 가득한 바리새파 사람들의 인색함을 예수님이 지금 비꼬고 있는 말씀이 33절입니다.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 중에서 후자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34절입니다.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하나님의 일을 귀신의 일이라고 하는 너희는 나쁜 나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말, 독한 말 나쁜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코 사람을 살리는 말, 참 말, 좋은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쌓아두었다가 악한 것을 내는 것처럼 악한 바리새인은 그 열매도 나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판은 책망을 넘어 하나님의 심판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36-37절입니다.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12: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여기서 주목하셔야 할 단어가 무익한 말입니다.

무익한 말’, 진실하지 못한 말.

진정성 없는 빈 말을 말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진정성이 없는 무익한 말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상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면서도 '무익한 말'을 하는 자가 되었을까?

첫째, 자기 의 곧 자기 확신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나르시시즘, 자아도취에 취해 자기거만과 특권의식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함께하는 공감의 능력도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은 이 올무에 걸린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과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유하는 예수님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 행함의 본은 없고 늘 가르치려했기 때문입니다.

나쁜 나무지요.

나무가 나쁘니 나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1절입니다.

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저는 이 말씀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지난 주일이 499번째 종교개혁주일이었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구요.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라는 이 말씀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오늘 교회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오늘 그리스도인의 형편이 자꾸 바리새파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남의 탓만 해야 합니까?

성도는 목사 탓 하고 목사는 성도 탓만 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아니면 교회의 자기반성으로 대국민 성명서나 구국기도회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좀 더 적극적인 실천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3가지입니다.

솔라 피데Sola fide,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믿음 오직 은혜 그리고 오직 성경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이 그런 것처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자리에 우리 삶의 뿌리를 두는 것입니다.

거기가 어디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 안에 그 은총 안에 그리고 그 말씀 안에 우리의 뿌리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좋은 나무에 접 붙여 있는지 아니면 나쁜 나무에 접 붙여 있는지를 먼저 냉정하게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나무에 접 붙여 있다면 인색함을 떨쳐버리고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내 자신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만일 나쁜 나무에 접 붙여 있다면 다시 돌이켜 우리의 뿌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그리스도 안에서 좋은 나무 좋은 열매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