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고린도전서 6:19-20 몸으로 드리는 예배

心貧者 2016. 10. 8. 11:37


몸으로 드리는 예배

고린도전서 6:19-202016/10/7()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읽을 때마다 제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127절의 말씀입니다.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 말씀의 뜻은 이런 것입니다.

사람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을 빼어 닮은 존재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강아지가 아무리 영특해도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은 창세기 27절에서 생기라고 번역된 루하흐살아 있는 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 명백한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뿌리가 분명한데 마치 근본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기요.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전혀 다른 형상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입니다. ‘루하흐살아 있는 영이 죽은 상태를 말합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고대사회에서 뱀은 지혜의 상징. 예수님도 지혜를 언급할 때 뱀을 등장시킴)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말씀이 5절에 나옵니다.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바로 이 부분을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을 지닌 유일한 존재이면서도 항상 그 사실을 우리가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지 않아도 이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은 영의 존재였습니다.

창세기 127절의 말씀처럼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을 속 닮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반응은 창조이후 한결같습니다.

설마?’ 하는 것이지요.

설마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옆 사람을 한번 보시지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것 같습니까?

부정적인 모습이 더 크게 보이지요.

그래서 사탄의 거짓말을 더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신뢰는 깨어지게 되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 는 죄와 사망을 안고 살아가는 심판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요한일서 49-10절입니다.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의 죄, 이 뿌리 깊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가 나서서 화목제물이 되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에 이르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단절되었던 죄의 상태가 완전하게 해결됩니다.

 

문제는 요한일서 411절입니다.

죄 사함으로 받은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 새로운 책임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에게 주어진 새 명령입니다)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받은 우리가 이 땅에서 반드시 해야 할 도리요 책임이 된 것입니다.

서로사랑

바로 화목(히브리어 샬롬의 상태)이지요.

화목을 연습하고 화목을 이루는 새로운 명령,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불화로 가득한 이 세상의 화목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연습하고 실천하는 실험실로 만들어진 곳이 바로 에클레시아교회공동체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를 한 몸 공동체로 비유한 것은 바울 사도의 탁월함입니다.

한 몸 공동체인 교회, 그 존재의 가치는 서로 전혀 다른 지체들이 어울려 한 몸을 이룬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 어울림의 전제조건은 다름에 있지요.

서로 다름입니다.

모두가 똑같다면 서로사랑이라는 어울림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어른, 부자와 가난한 자, 많이 배운 이와 덜 배운 이, 지위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그리고 다른 문화적 배경과 피부색, 이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를 용납하고 존중하고 아끼고 세워주면서 함께 예배하는 법과 살아가는 법을 배울 때 비로써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교회공동체를 통하여 미리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특히 바울의 편지를 읽을 때 헬라어 알렐론(άλλήλων)’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합니다.

헬라어 알렐론(άλλήλων)’ ’서로라는 뜻이지요.

초대교회의 초석을 놓았다고 할 수 있는 바울의 서신을 읽다 보면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서로’(άλλήλων)단어입니다.

20여 군데가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5군데)

로마서 1210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갈라디아서 513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라디아서 62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에베소서 42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에베소서 432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러면 바울은 왜 이렇게 서로라는 단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서로 서로가 만들어 내는 강력한 힘 때문입니다.

이것에 꼭 맞는 우리 속담이 있지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서로 서로’, 의 자리에 를 세울 때 강력한 힘(에너지, 파워)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강강술레)

1+1=2이라는 산술적 수치가 아니라 그 이상의 힘이 만들어 지는 것이 서로의 힘입니다. 절대로 내어줄 수 없는 의 자리에 를 세울 때 교회공동체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헬라어 알렐론(άλλήλων)’ ‘서로에 집착하는 이유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바울은 말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할 수 있도록 내어 준 몸이지요.

성령의 전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 몸을 우리 맘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방금 읽은 본문에서 우리가 또 주목해야할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산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누군가 내 대신 죄의 값()을 갚아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지요.

자신의 피로 우리를 사신 분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을 가지면 이런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주님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말로 대속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안전장치가 바로 예배 생활이고 헌금 생활이고 봉사 생활입니다.

시간, 네 것이 아니다’.

물질 네 것이 아니다

몸 네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시간 물질 그리고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620절 후반부입니다.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쉽게 말하면 우리 몸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될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두 가지입니다.

우선 첫째, ‘의 자리에 하나님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사랑이지요

그렇게 해서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의 자리에 를 두는 것입니다.

이웃사랑 형제사랑이지요.

그렇게 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의 자리에 하나님을 두고, 그리고 의 자리에 를 두는 것이 우리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실천입니다.

 

우선 하나님을 바로 알고 깊이 아는 일에 열심을 내십시오.

그래서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집, 성령의 전을 넓히시고 길이시고 높이시고 깊이 하십시오.(3:19)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분, 그 분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십시오.

그래서 한 몸 공동체인 참됨 교회를 이루십시오.

저 분은 좀처럼 마음 문을 열지 않아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먼저 인사를 건내십시오.

그리고 식상한 안부라도 묻으십시오.

그리고 끊임없는 관심으로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문도 찾고 두드리면 열리는 법인데 아무리 견고해야 사람의 문입니다.

인사와 안부로 찾아가시고 그리고 관심과 사랑으로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언젠가는 열리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몸으로 드리는 예배, 그 영광의 자리에 우리의 잃어버린 형제가 더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곧 우리가 기도할 텐데 기도할 때 그 얼굴을 마음에 품고 그리고 그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칭찬하겠지요?

참 잘했다.’

이 칭찬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이 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