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창고

박동진 장로 판소리 예수전

心貧者 2008. 12. 20. 18:05

 

 

 

* CD 1 :
1.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림 7:45
2. 베들레헴으로 오는 마리아와 요셉 3:04
3. 마리아 성령으로 잉태함 11:04
4. 베들레헴에 당도한 마리아와 요셉 13:29
5. 예수,마구간에서 탄생 4:49
6. 목자들과 세동방박사 아기예수 찾아와 경배함 14:44
7. 에굽으로 피신갔다 나자렛으로 돌아오는 예수 6:49
8.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받는 예수 2:32
9. 예수, 죽음을 예견하심 3:51
10. 예루살렘에서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 5:49 총:74:00

* CD 2 :
1. 최후의 만찬 9:56
2. 예수, 감람산으로 가서 기도하심 11:39
3. 유다, 예수를 배반함 7:02
4. 베드로의 배반 6:55
5. 예수,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음 7:37
6. 예수,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묻히심 16:34
7. 예수 부활하심 10:21 총:70:07

* 소리:박동진. 녹음:1988.7.12. 북:주봉신.

* 기획.제작:서초국악포럼 * 제작:2006.7.8. 판매:예술기획탑(www.gugakcd.com). 사설교정:김수미(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국악성가대 지휘자)

성경으로 판소리를 하게된 것은 예수님이 우리나라에 발을 디딘 때는 백년도 넘는 줄 아는데 거룩하신 역사가 많고 가장 위대하신 희생을 하심으로 우리 고유의 성악풍 판소리로 안부를 수 없던 차에 작고하신 방송극작가로 판소리 사설을 작사하여 본인을 주었으므로 이십여년 전에 그분이 주신 가사로 작곡하여 성서판소리로 명명하여 교회마다, 멀리 구라파 미주는 물론이요 국내교회에 널리 알게 되었고 성경을 다 판소리로 부르려면 몇 해 몇 달 불러도 못하겠기로 다만 마태복음으로 국한하여 예수께서 마리아 몸에 성령으로 잉태하시어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탄생하시는 광경과 헤롯에 피해를 입을까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예에굽으로 잠시 피신 하셨다가 갈릴리로 오시며 요셉 목수 밑에서 자라시며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전도를 하시면서 열두제자 거느리시고 33세 되시던 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시며 만백성들에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3일만에 부활하사 아버지 하나님께로 승천을 하시는 것으로 끝이 된바 성경을 그저 읽는 것보다 듣고보면 더 귀감이 간다는 평을 받고 이번에 녹음을 한 것인데 이 판소리 성경은 성경에 있는 가사를 그대로 판소리로 부르자면 판소리 사설로도 잘 맞지 않는 고로 그 귀하신 줄거리를 빼기도 했고 없는 말을 욕되지 않을 정도로 삽입도 했으므로 성경과 같지 못하다고 책망을 마시옵고 판소리는 전라도 사투리로 본시 짜였으므로 전라도말 반, 표준어 반으로 작사되어 작곡을 하였으니 양지하옵시고 후일이라도 잘못된 점을 저에게 지적하시고 많이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1988년 박 동 진


소리 / 박 동 진(1916-2003)
박동진 선생은 16세되던 1932년부터 김창진 선생에게서 심청가를 사사하고 정정열 선생 문하에서 춘향가, 유성준 선생 문하에서 수궁가를, 조학진 선생 문하에서 적벽가를, 박지홍 선생 문하에서 흥보가를 사사하였다. 1952년부터 10년간 햇님 국립극단에서 편곡 및 무대감독을 역임하였고 1962년 국립국악원 국악사로 피명되였다.

1964년 이래로 수차례에 걸쳐 일본 및 자유중국에 초청을 받아 공연하였으며, 특히 1969년 신작 성서판소리와 1973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 판소리를 자신의 창작으로 발표하였다. 또한 1973년에는 중요무형문화제 제5호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1982년 국민 은관 문화 훈장을 수여하였고 1983년에 국악대상을 수상하였으며 1984년, 1988년에는 미주 순회공연을 갖기도 하였다.

박동진 명창은 2003년 7월 8일, 향년 87세를 일기로 작고하였으며, 국악 발전과 보급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 훈장이 추서되었다.

북 / 주 봉 신 (1934- )
고수 주봉신 씨는 전라북도 출신으로서 1952년 이마남씨 문하에서 수업을 시작하여 이운학 씨, 국창 임방울 씨, 김연수 씨 등의 문하에서 수업을 받았다. 1966년부터는 군산국악원, 강경국악원 등에서 많은 후진들을 양성하였으며, 1978년부터 인간문화재 제5호 박동진 선생의 지정 고수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