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창고

꽃우물에 따뜻한 교회가 있네

心貧者 2008. 5. 22. 13:59

제가 쓴 책 ‘때론 자전거를 메고 갈 수도 있다’와 ‘꽃우물에 따뜻한 교회가 있네’의 내용 중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신 화정교회의 문학순권사님이 드디어(?) 돌아가셨습니다.

‘드디어’라는 다소 버릇없어 보이는 단어를 쓴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95년이나 장수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꼭 작년 이맘 때 돌아가신다고 하여 임종예배를 드렸는데, 예배 후에 다시 일어나셔서 1년을 더 사셨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진짜 돌아가신 것이지요.
셋째, “나 죽거들랑 장례 치러 주시고 떠나도 떠나셔야 해요!” 하신 권사님의 요구에 제가 “예, 그러지요!” 하고 대답했던 것이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20년 전 문 권사님이 저에게 말씀하신 것은, “목사님들이 좋은 교회(큰 교회)만 나오면 뒤도 안돌아보고 냉큼 떠나시더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어도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왜 저라고 좀 더 큰 교회(문권사님 표현으로는 ‘좋은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이러저러한 내용을 다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결국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드디어 권사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그 분의 장례를 치러 드렸습니다. 약속을 지키는데 20년이 걸렸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다른 교회에서 오라면 홀가분하게 떠날 조건은 마련된 것입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제가 나이 50이 넘었지 뭡니까? 50세가 넘은 목사는 좀 더 큰 교회로 옮겨가기 힘들다면서요?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감리교회 안에서 지금껏 젊은이 취급만 받으면서 살아왔는데, 문권사님 돌아가시고 정신 차리고 보니 글쎄 제가 벌써 어디서도 초빙해가지 않는다는 50대가 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되돌아보니 저의 30대와 40대 젊음을 화정교회와 함께하였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 아내는 오늘 하루 종일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내의 마음도 심난한 것 같습니다. 약간 아쉬운 마음이 있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그 권사님과의 만남으로 인해 화정교회 이야기를 쓰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 한 목사가 20년 동안 한 교회를 꾸준히 섬겨왔기에 100주년 기념건축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 권사님과 저를 쓰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느덧 우리 화정교회가 꽤 좋은(?) 교회가 되어 있습니다. 따져보니 지방 안에서 경제력이 랭킹3위랍니다. 더구나 올 8월에는 저희 동네 바로 뒷 동네에 5700세대의 아파트에 입주가 시작된다지 뭡니까? 이제는 적어도 문권사님이 말씀하시던 ‘좋은 교회’(큰교회) 가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정신 차리고 기도하며 힘쓰면 화정교회가 곧 그리 될 터이니 말입니다.
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하심은 우리가 한 치도 내다 볼 수 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