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호

근사록서(近思錄序)

心貧者 2008. 3. 13. 21:36

근사록서(近思錄序)


김흥호

이화대학교회 연경반(중강당) 강의, 1995/9/3


근사록(近思錄)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근사록은 주자(朱子)가 편찬했는데, 주자의 나이 46세 때였다. 주자는 1200년에 71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지금으로부터 795년 전이었다. 그러니까 1130년에 태어나서 71살을 살고 1200년에 죽었다. 근사록은 모두 1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주자의 아버지는 주송(朱松)이라는 사람으로 학자요 또 벼슬을 했던 관리였다. 그때 당시의 송(宋)나라는 국가적으로 아주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었다. 만주에 위치한 금(金)이라는 나라가 들고일어나 송나라를 쳐들어 왔는데, 그 당시 송의 황제 휘종이 금의 군대에 그만 포로가 되어 붙잡혀 가고 송나라는 금에 밀려 양자강 남쪽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그래서 양자강 북쪽은 그만 금의 차지가 되어 빼앗기고 말았으며 나라의 절반을 잃은 꼴이 되었다. 그렇게 되니 송나라에서는 죽어도 싸우자는 주전(主戰)파와, 적이 매우 강하여 싸우면 양자강 남쪽마저 다 빼앗길 터이니 어떻게 하든 금을 달래고 공물을 갖다 바쳐 나라는 구하자는 소위 강화파의 두 파로 나누어 송의 국론이 분열되게 되었다. 그런데 주자의 아버지 주송은 끝까지 싸우자는 주전파에 속해 있었으며 강화파에는 진회라는 사람이 대표적 인물(人物)이었다. 결국은 강화파가 우세해서 양자강 남쪽은 송나라로 유지하게 되었다.


주자도 이 아버지의 기질과 영향을 받아 일생을 주전파로서 보내게 된다. 그래서 주자 말년에는 강화파 중 거두인 한탁주라는 사람에 의해 굉장히 박해를 받는 수모도 당하게 된다. 하여튼 주자는 일생을 싸우자는 파에 속해 있어 벼슬도 그리 많이 하지 못했으며, 22살에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조그마한 군(郡)의 사무직으로 출발하여 49살이 되어서야 도지사(道知事)정도의 벼슬에 이르렀으나, 그것도 오래지 못해 그만 두고 다시 65세 때 장주라는 곳에 도지사가 되었다. 그러니까 일생을 통해 2번 정도 벼슬다운 자리에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주자가 한 일중에 괄목한 것은 왕에게 보낸 봉사(封事)라는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그 편지가 얼마나 길었나 하면 한문자로 만자(萬字)가 되는 것으로, 요즈음 200자 원고지 50매의 분량으로, 만언봉사(萬言封事)라고 했는데, 제일 유명한 것이 무신년에 쓴 무신 봉사로, 59세 때 왕에게 보낸 편지였다. 그 내용은 무엇인가 하면, 나라의 현실을 비판하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을 해야 한다는 방법을 열거한 것으로, 편지라고 보기보다는 논문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이 주자의 만언봉사가 유명해져서, 우리나라에서도 이 만언봉사의 형태를 그대로 본 받아 임금에게 만언봉사를 써서 올린 사람이 여러분들도 잘 아는 율곡이다. 율곡은 그 당시 선조대왕에게 봉사를 올렸다. 그런데 율곡이 쓴 만언봉사와 주자가 쓴 만언봉사가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결국 나라의 현실이 아주 비참하게 되어 거의 나라가 망할 지경까지 이르게 됨을 말하고, 이 나라를 구원하는 방법이 6가지가 있음을 제시한 것이 율곡의 만언봉사의 내용인데, 주자가 쓴 것과 대동소이한 내용이다. 율곡의 만언봉사라 하면 명문(名文)으로 이름나 있고 유명한 글인데, 맨 처음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주자이다. 주자는 이러한 만언봉사 외에도, 28살에 한 번, 51살에 한 번, 59살에 한 번, 모두 세번을 쓰게 되는데, 이 세번의 편지가 다 명문(名文)으로 유명하며, 지금까지 그 편지가 전하여 진다. 그 내용은 율곡의 편지와 마찬가지로, 정말 나라를 사랑하는 충정에서 우러나오는 구국의 대법(大法)을 제시한 것으로, 이 편지가 주자의 일생을 말할 때 없이 할 수 없는 유명한 것이 되고 만다.


또 하나 주자의 유명한 일로는 백록동서원(書院)을 세운 것인데, 주자가 49살 때 남강지사를 할 때 정치의 중심을 교육에다 두고 요즈음의 대학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인 백록동 서원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는 대학에서는 무엇을 하여야 한다는 대학 교육의 목적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하게 된다. 이것을 그대로 본 따서 우리나라의 이조에도 서원이 세워지게 되는데, 퇴계의 도산서원, 율곡의 석담서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율곡의 석담서원에는 서원의 대문에 백록동서원에 기록됐던 대학의 목적과 방법을 기록해 놓았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이 율곡이 지은 학교모범이라는 책으로도 나오게 되는데, 이조시대에 설립된 많은 서원의 표본이 된 것이 바로 주자가 49세 때 세운 백록동서원이다. 그래서 이 백록동서원이 주자의 공적 중 유명한 것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주자가 중국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공적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기근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주자가 39세 때와 53세 때에 중국에는 아주 큰 기근이 들게 되는데, 이 기근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대표적인 인물로서 이 주자가 또 꼽히게 된다. 그 당시 주자가 만든 것이 소위 사창법(社倉法)이라는 제도로서, 요즈음으로 말하면 사회보장(社會保障) 제도와 비슷하다. 오래 전부터 미리 기근을 대비하여 큰 창고를 많이 짓고 곡식을 저장해 두었다가, 기근 때 풀어쓰는 것으로 이것을 제도화하여 법(法)으로 만든 사람이 주자이다. 이것이 공자(孔子)나 맹자(孟子)가 말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라는 것으로, 왕도정치의 첫 번째가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특히 기근이 들었을 때 백성들을 어떻게 굶기지 않는가 하는 것이 왕도정치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 사람들에게 왕도정치의 뜻은 기근이 들었을 때에 백성을 살릴 수 있는 정치, 그것이 왕도정치이다. 그래서 12년 기근이 들어도 백성을 살릴 수 있다는 사람이 요임금으로 중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인 인물이고, 6년이 기근이 들었을 때 백성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문왕(文王)이며, 3년이 기근이 되었을 때 살릴 수 있는 사람이 공자라 하여 중국 사람들이 높이 추앙하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근세에 직접 법제화하여 시행한 사람이 주자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제도를 이념적으로 정립한 사람이 공자, 맹자이다. 맹자의 정전법은 직접 기근을 만나서 어떻게 사람을 살려내는가 하는 것을 말하였고, 주자는 사창법을 세워 백성을 구하는 제도를 창안했다는 것이 그의 독특한 공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주자에게 또 하나의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 있다면, 그 당시 서로 대별되는 두개의 학파, 즉 육상산(陸象山)과 주자 학파간의 의견합치를 위해 여러번 만나 토론을 벌린 사실이다. 상산과 주자는 우리나라의 산정호수(山頂湖水)와 같이 산꼭대기에 위치한 중국의 아호(鵝湖)라는 호수가에 있는 절간 (아호사) 에서 만나, 각각 자기를 따르는 많은 제자들과 함께 며칠씩을 유숙하면서 토론을 벌렸다. 그러나 결국은 서로의 의견을 합치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그렇지만 상산과 주자는 상대방을 깊이 존경하고 조금도 적대적인 감정을 갖지 않았다. 다만 학문적으로 견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니까 우리의 이조 때 학자들의 당파싸움처럼 그런 싸움은 없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자는 자신이 세운 백록동서원의 창립기념식에 상산을 초청하여 주제 강연을 부탁했다 [1]. 이때 상산은 그 유명한 ‘소인위인지학(小人爲人之學)이요 대인위기지학(大人爲己之學)’이란 말을 하게 되는데, 그 뜻은 소인(小人)은 항상 남을 위해 공부한다고 하고 대인(大人)은 항상 자신을 위해 공부한다고 한다는 말로, 이 말을 듣고 있던 주자가 감격하여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상산은 자기 형이 죽었을 때, 주자를 불러 장례식의 호상을 맡겼으며, 주자가 그 비문을 써준 적도 있었다. 이렇게 주자와 상산은 학문적으로는 적대적인 입장에 있으면서도 인격적으로는 존경하는 서로간의 정리가 깊었다고 한다.


주자(朱子)는 처음으로 사서(四書)를 만들어 낸 사람이다. 주자 이전에는 사서라는 것이 없었다. 요즈음 말하는 사서(四書) 즉, 대학(大學), 중용(中庸), 맹자(孟子), 논어(論語)는 주자가 편찬한 것이다. 대학과 중용은 예기(禮記)라는 책 속의 한 장(章)에 불과 했는데, 그것을 끄집어내어 대학이 논어만큼 중요하고 중용이 맹자만큼 중요하다고 격찬하였으며, 또한 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다가 세밀한 해석을 붙여 놓았다. 우리가 요즈음 읽는 논어, 맹자에는 주자의 집주(集注), 대학, 중용에는 주자의 장구(章句)가 반드시 따르는데, 이조 5백년뿐만 아니라 지금도 가장 많이 읽히는 주석서로, 주자는 동양의 근세철학을 확립한 학자로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주자는 사서에 대해 가장 권위적인 해석을 남기게 되는데, 물론 주자는 이 사서뿐 아니라 5경에 대해서도 전부 다 해석을 붙여놓았다.


주자는 굉장히 많은 책을 저술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주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표시할 때는 견인각고(堅忍刻苦)의 넉자로 표시할 수 있겠는데, 이것이 주자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견(堅)은 굳은 의지를 갖는 다는 말이고, 인(忍)은 모든 어려움을 참고, 각(刻)은 한 순간 한 순간을, 고(苦)는 괴롭다는 뜻이 아니고 무슨 문제에 대해서든지 깊이 파고들어 간다는 뜻이다. 각고(刻苦)란 말이 하나의 사상을 깊이 파고들어 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굳은 의지를 가지고 하나의 사상을 캐기 위해 깊이 파고들어 간다는 말이다. 정말로 주자는 일생을 견인각고(堅忍刻苦)로 일관했다.


주자의 그러한 생활태도를 그대로 본받은 사람이 이퇴계이다. 이퇴계란 사람도 정말 견인각고(堅忍刻苦)를 한 사람이다. 퇴계는 폐병으로 일생을 고생했는데, 그 약한 몸을 가지고 주자의 저서를 다 공부하고 사서삼경은 물론 그 당시에 있던 책들을 거의 다 섭렵했으며, 특별히 이 주자학(朱子學)에 대해서는 깊이 연구했던 사람으로 정말 굳은 의지를 갖고 각고(刻苦)해 들어간 사람이다. 그 결과 세계적 명저인 ‘주자학절요’ 라는 주자학의 핵심이 이것이라는 뜻의 저서를 남겼다. 이 책은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만 숭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일본 유학계의 대표적인 교과서가 되었으며, 그의 사상이 일본 주자학의 핵심이 되게 된다. 나중에는 ‘주자학절요’ 라는 책이 일본의 명치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교육헌장을 만들 때 밑바탕을 이루는 사상이 된다. 일제시대 때 공부한 사람들은 잘 알다시피, 밤낮 외던 교육칙어 라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일본의 명치유신의 기본사상이 결국은 퇴계의 주자학 사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주자학절요’는 중국에 가서도 많은 호평과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청나라 시대에는 주자학을 공부하는 학자는 반드시 이 주자학절요를 읽을 정도였다. 그래서 동양 3국에서 퇴계의 ‘주자학절요’ 만큼 유명한 책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숭상을 받았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사람 중에서 제일 숭배하는 인물이 두 사람 있다. 하나는 원효이고 또 하나는 퇴계이다. 원효는 무엇으로 일본인들의 숭상을 받게 되는가 하면, 대승기신론의 주석인 ‘대승기신론소’를 썼기 때문이며, 퇴계는 앞서 말한 ‘주자학절요’를 써서 숭상을 받게 되었다.  일본 사람들은 율곡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퇴계는 잘 알려져 있고 대단히 존경하는 인물이다.


아까 말한 대로 주자는 1130년에 태어나, 선생으로 이연평(李延平)이란 사람을 모셨다. 주자가 제일 존경했던 사람이 정명도, 정이천 이었으나, 주자는 직접 이 두 사람의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고, 자기의 스승인 이연평을 통해서 정명도, 정이천의 사상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 두 사람뿐만 아니라 장횡거의 사상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정명도, 정이천의 사상을 이학(理學)이라고 하고 장횡거의 사상을 기학(氣學)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소위 이기(理氣)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퇴계의 사상은 우리가 중학교 교과서에 보면, 이발기발(理發氣發)로 표현했고 율곡의 사상은 기발이승(氣發理乘)으로 표현했는데, 사실은 퇴계와 기대승(고봉)의 논쟁시에 벌써 이발기발(理發氣發)과 기발이승(氣發理乘)이란 말이 다 나왔었다. 그런데 율곡이 기발이승(氣發理乘)을 자기의 신조로 삼아 기발이승(氣發理乘)이 율곡의 사상으로 대표하게 되었고, 퇴계의 사상은 이발기발(理發氣發)이라 알려지게 되었는데, 사실은 퇴계도 기발이승(氣發理乘)에 대해 충분히 알고 세상을 떠났다고 볼 수 있겠다.


주자학에서 이기(理氣)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정자(程子)는 이일원론(理一元論), 장횡거는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횡거, 정명도, 정이천의 선생이 주렴계(周濂溪)라는 분인데, 이 염계 선생의 이름을 본받아 퇴계라는 이름도 나오게 된다. 그래서 주렴계가 주자에게는 사조(師祖)벌이 되고 그 제자가 정명도, 정이천의 형제이며, 장횡거도 이들과 5촌 정도의 친척으로 이들 네 사람의 사상을 정리하여 모아 놓은 것이 근사록(近思錄)의 내용이다. 근(近) 자는 가까울 근자이고 사(思) 자는 생각 사자로 논어에서 나오는 말인데, 왕양명(王陽明)의 전습록(傳習錄)도 논어에서 나오는 말이다. 전습(傳習)이란 말이 전할 전(傳), 익힐 습(習) 자로서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을 잘 복습해서 완전히 이해했는지 언제나 반성한다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 중 증자는 하루에 세번을 반성했다고 하는데, 그 세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선생님의 가르침에 대해 자신이 복습하여 완전히 소화했는지를 반성한 것이다. 그러니까 논어의 맨 처음에 나오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란 말도 같은 말이다. 그것이 소위 전습(傳習)이라는 말이고 전습록이란 말도 거기에서 나오게 된다. 마찬가지로 근사(近思)란 말도 허황되게 엉뚱한 것, 큰 것, 그런 것만 자꾸 생각하지 말고, 우리 현실에 가장 가까운 문제부터 정리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뜻이 근사록의 뜻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까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가까운 문제부터 생각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가장 가까운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자기 자신’이 되고 만다. 나 자신을 파고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다. 아까 말했던 견인각고(堅忍刻苦)란 말도 바로 그 소리이다. 나 자신을 깊이 파들어 가서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 는 말로서, 이 말을 유교식으로 하면 근사(近思)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물론 가장 가까운 일이란 우리의 가정, 우리 사회, 우리 국가의 문제도 다 가까운 일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일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나 자신의 문제’ 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알기 위해서 견인각고(堅忍刻苦)하여 나 자신을 파들어 가는 것이다. 내 속에 하늘이 나한데 주신 비밀, 그것을 소위 천명(天命)이라고 하는데, 하늘이 나에게 주신 비밀을 이 사람들은 성(性)이란 말로 표현했다. 그러니까 이 성(性)의 비밀을 알아야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소위 성리학(性理學)의 성(性) 자가 되는 것이다.


성(性)은 마음 심(心) 옆에 날 생(生)으로 되어있다. 내 마음속에 있는 하늘이 주신 생명(生命), 그것을 알아야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진리’이다. 하늘이 주신 비밀인데, 그 비밀은 하늘이 주신 생명으로, 그것이 성(性)인데, 성(性)이란 정신적인 생명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내 속에 정신적인 생명이 있는데, 그 정신적인 생명이 결국은 무엇인가 하면, ‘진리’라는 말이다. 그것이 ‘진리’ 라는 것이 조금 이해하기 어려우면 이 자연과 우주를 생각해 보자. 자연과 우주에는 무엇이 가득 차 있는가 하면 법(法)이 가득 차 있으며, 그것을 우리는 자연법칙이라고 부른다. 법이 가득 차 있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이치(理致)가 가득 차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물건에는 물건의 이치가 있고 생물에는 생물의 이치가 있다. 생물의 이치가 생리(生理)이다. 마음에는 마음의 이치가 있다 (心理). 모든 것에는 다 이치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치를 파악 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성(性)이다. 요새말로 말하면 이성(理性)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성이란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이(理)는 우주 속에 있는 이치(理致)라고 생각하면 되고, 성(性)은 이성(理性)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래서 성즉리(性卽理)이다. 내 속에 있는 주관이 객관을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을 요즈음 철학에서는 인식(認識)이라고 하는데, 무엇을 인식하는가 하면 진리를 인식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성리학(性理學)이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같다. 사람은 선천적인 이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선천적인 이성을 동양식으로 말하면 천명(天命)이다. 칸트는 이것을 ‘아프리오리(Apriori)’, 즉 선천적인 것으로 설명했는데, 우리가 본래 타고 난 것이라는 말이다. 어디에서 타고났는가? 하늘에서 타고났다. 그래서 성(性) 그러면 바탈 성(性)이라고 말하고, 이 말은 성(性)의 뜻이 남성(男性), 여성(女性)의 성(性)이 아니라, 바탈 성(性)으로 하늘에서 타고 난 것이란 말이다. ‘바탈’ 이란 말을 뒤집어 보면 ‘탈바’ 이다. 하늘에서 배급받은 것이란 말이다. 옛날 우리가 어려웠을 때에 나라에서 배급을 받았는데, 밀가루도 배급받고 우유도 배급받고 그랬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하늘로부터 배급받은 것, 그것이 천명이란 말이다. 다시 말해 하늘에서 배급받아서 내가 갖고 있는 것, 그것이 ‘아프리오리(Apriori)’의 이성인 것이다. 그것을 요새말로 하면 정신(精神)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은 정신이란 말을 쓰지 않고 마음 심(心) 자를 썼다. 마음이 무엇인가 하면 나의 신명(神明)이다. 내 정신이 똑바로 서고 보고하는 것이 정신인데, 그 정신이 바로 나의 신명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 정신 속에는 모든 이치가 꽉 차 있다. 그것이 구중리(具衆理)란 말이다. 그래서 그 이치를 가지고 응만사(應萬事)하는 것이다. 모든 일들을 처리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정신이 그렇게 영특한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의 정신 속에는 모든 이치가 다 갖추어져 있고, 그 이치를 가지고 만사를 다 처리 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 갖추고 있는 이치를 주관적으로 말하면 성(性)이고 객관적으로 말하면 이(理)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주자의 학문을 성리학(性理學) 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性)을 쉽게 말하자면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고, 이 ‘정신’을 가지고 우리가 우주만물 좀 더 알아보고 정리해서 만사를 처리해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성리학의 본 뜻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성리(性理)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정명도, 정이천이 성리(性理)의 이(理)자를 강조하여 이일원론(理一元論)이 여기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반해서 장횡거란 사람은, 그렇다면 자연이란 것은 무엇으로 자연이 되었는가, 다시 말해 자연의 본질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결론짓기를 기(氣)라는 결론을 내렸다. 기(氣)라는 말을 요즈음의 말로는 무엇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쉽게 말하여 에너지(energy)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이 우주에 꽉 차있는 것이 무엇인가? 에너지(energy) 곧 ‘힘‘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빛과 힘이다. 우리가 태양 그러면, 이것은 빛을 나타내고 달은 우리는 빛 가운데 약한 빛으로 생각하지만, 서양에서는 달 그러면 힘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바빌론 사람들이 제일 숭상하는 것은 태양이 아니라 달이다. 왜 그런가 하면, 달을 힘의 근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하면, 달이 뜨면 바다가 끌려오고 달이 지면 바다가 끌려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바다를 끄는 것처럼 강한 것이 어디 있겠는 가라 생각하여, 달 그러면 힘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달이 힘의 상징이 되고 해는 빛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산다는 것이 바로 빛과 힘의 상징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사람이 무엇이겠는가? 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안다는 것이 곧 빛이라는 것이다. 또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힘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주 그래도 빛과 힘이고, 물리학 그래도 빛과 힘이고, 예술 그래도 빛과 힘이고, 철학 그래도 빛과 힘이고 종교 그래도 빛과 힘이고, 다 빛과 힘으로 되어 있지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이 빛과 힘이라는 것에서, 빛을 강조하면 합리론(合理論)이 되고 힘을 강조하면 기론(氣論)이 되는 것이다. 이 기론(氣論)을 요새 철학에서는 경험론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결국 합리론과 경험론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영국 사람들의 철학은 ‘힘’이라는 것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으로, 싸우려면 힘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힘’을 주장하게 되고, 독일, 불란서 계통은 ‘빛’을 더 주장하게 되어 사람에게는 역시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밀고 나가게 되는데,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고 나온 것이 바로 유명한 칸트의 철학이다. 동양에서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고 나온 사람이 주자이다. 주자는 빛과 힘을 합쳐서 둘 다 필요함을 역설하게 되는데, 그것이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다. 정명도, 정이천은 빛을 붙잡았고 장횡거는 힘을 붙잡았다. 물론 빛 하나만 붙잡는 일도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이고, 힘 하나만 붙잡는 일도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이다. 그런데 주자란 사람은 이 둘을 다 붙잡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자는 동양의 칸트라고 불리게 된다.


주자가 왜 근사록을 썼는가 하면, 사서(四書)를 알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사서의 길잡이가 근사록이라는 말이다.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을 알기 위해서 근사록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사서(四書)는 왜 또 있는가? 그것은 오경(五經)을 알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경의 길잡이가 사서요, 사서의 길잡이가 근사록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겠다.


근사록의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나 하면 대학(大學)을 본 받아서 쓰여져 있다. 대학은 바로 대학지도(大學之道)로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의 구성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근사록도 총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서부터 5장까지가 명명덕(明明德)이고, 6장부터 12장까지는 친민(親民)이고, 마지막 13장, 14장은 지어지선(止於至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내용으로 보면 결국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齋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내용을 주자는 자기 선생들 네 분의 말씀을 기준으로, 이 패턴에 맞추어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 근사록(近思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다시 말해서 근사록을 전체적으로 말하면 맨 처음이 명덕(明德), 가운데가 친민(親民), 그리고 마지막이 지어지선(止於至善)의 순서로 되어 있고, 그 내용으로 따지어 보면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齋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내용으로 되어있다.



보충자료


1. 육상산(陸象山) 백록동(白鹿洞) 강의(講義) (출처: 인터넷 검색)


중국의 북송시대 순희 8년에 육구연(陸九淵)이 주희를 방문하였을 때, 주희는 자신이 제자들을 모아 가르치던 백록동 서원으로 그를 초청하여 강석에 오르게 하였다. 이에 육구연은 논어(論語) 가운데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子曰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라는 구절을 강의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중국 유학사에서 유명한 백록동 강의이다. 


白鹿洞 講義


此章 以義理 判君子小人 辭旨 曉白. 然 讀之者 苟不切己觀省 亦恐未能有益也. 某 平日 讀此 不無所感. 竊謂 學者 於此 當辨其志. 人之所喩 由其所習 所習 喩其所志. 志乎義 則 所習者 必在於義, 所習在義 斯喩於義矣. 志乎利 則 所習者 必在於利, 所習在利 斯喩於利矣. 故 學者之志 不可不辨也. 科擧取士 久矣, 名儒鉅公 皆由此出, 今爲士者 固不能免此. 然 場屋之得失 顧其技與 有司好惡如何耳, 非所以 爲君子小人之辨也. 而今世 以此相尙 使汨沒於此 而不能自拔, 則終日從事者 雖曰聖賢之書, 而要其志之所鄕 則 有與聖賢 背而馳者矣. 推而上之 則又有 官資崇卑, 祿廩厚薄 是計 皆能悉心力 於國事民穩 以無負 於任使之者哉. 從事其間 更歷之多 講習之熟 安得不有所喩, 顧恐不在於義耳. 誠能深思是身 不可使之 爲小人之歸. 其於利欲之習 怛焉. 爲之痛心疾首. 專志乎義 而日勉焉 博學審問愼思明辨 而篤行之. 由是而進於場屋, 其文 必皆道 其平日之學 胸中之蘊 而不詭於聖人. 由是而仕, 必皆 供其職 勤其事, 心乎國 心乎民 而不爲身計. 其得不謂之君子乎!


백록동(白鹿洞) 강의 해설


此章 以義理 判君子小人 辭旨 曉白. 然 讀之者 苟不切己觀省 亦恐未能有益也. 某 平日 讀此 不無所感. 竊謂 學者 於此 當辨其志.


-. 판단하다/나누다 판(判), 말 사(辭), 맛있을/뜻 지(旨), 새벽/깨닫다 효(曉), 진실로 구(苟), 끊을 절(切), 볼 관(觀), 살필 성(省), 두려울 공(恐), 아무/아무개 모(某), 읽을 독(讀), 훔칠/명백할 절(竊), 분별할 변(辨)

-. 의리(義理): 사람으로서 행하여야 할 옳은 길

-. 절기(切己): 자기(自己)에게 필요(必要)함 또는, 그 일

-. 평일(平日): 평상시


논어 속에 나오는 이 구절은 공의(公義)와 사리(私利)를 기준으로 삼아서 사람들을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두 부류로 나누고 있는데, 공자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뜻은 구구한 별도의 설명을 요하지 않을 정도로 명명백백한 것이다. 그러나 논어의 이 구절을 읽는 사람이 참으로 절실하게 자신을 살펴 반성하지 않으면, 결국 글자 익히기에 불과할 뿐 학문의 성취에 무슨 도움이 될지 의문스럽다. 내가 평소에 이 글을 읽었을 때 깨우쳐 느낀 바가 없지 않았다.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학문하는 사람이라면 이 구절을 읽고서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반성하여 자신의 지향하는 바를 반드시 분명하게 가려내야만 한다.


人之所喩 由其所習 所習 喩其所志. 志乎義 則 所習者 必在於義, 所習在義 斯喩於義矣. 志乎利 則 所習者 必在於利, 所習在利 斯喩於利矣. 故 學者之志 不可不辨也.


-. 깨달을 유(喩), 말미암을 유(由)

-. 불가불(不可不): (별 도리가 없어) 아니 하여서는 안 되겠으므로 마땅히


어느 사람이 밝게 아는 바는 그가 배워 익힌 것에서 말미암고, 그가 배워 익힌 것은 그가 지향한 바에 말미암는다. 지향하는 바가 의로움에 있으면 배우는 바도 반드시 의로움에 있게 되고, 배우는 바가 의로움에 있으면 이런 사람은 결국 의로움에 밝게 된다. 지향하는 바가 사리사욕에 있다면 그가 배우는 바도 반드시 이익에 있게 되고, 배우는 바가 사적인 이익에 있다면 그런 사람은 결국 이익만 밝히게 된다. 그런 까닭에 학문하는 사람의 지향하는 바는 분명히 가려내지 않을 수가 없다.


科擧取士 久矣, 名儒鉅公 皆由此出, 今爲士者 固不能免此. 然 場屋之得失 顧其技與 有司好惡如何耳, 非所以 爲君子小人之辨也.


-. 취할 취(取), 클 거(鉅), 굳을 고(固), 그럴/그러나 연(然), 마당 장(場), 집 옥(屋), 돌아볼 고(顧), 맡다/벼슬아치 사(司)

-. 과거(科擧): 옛날 문무관(文武官)을 뽑을 때에 보던 시험(試驗)

-. 명유(名儒): 이름난 선비

-. 거공(鉅公): 천자(天子)를 일컫는 말

-. 장옥(場屋): 과장(科場)에서 비를 막거나 햇볕을 피해서 들어앉아 과거(科擧)를 볼 수 있도록 만든 곳

-. 득실(得失): 얻음과 잃음. 성공(成功)과 실패(失敗)


공적 시험제도를 통하여 인재를 선발한 것이 오래되었으며, 이름난 학자와 고위 공직자들이 모두 다 이 시험제도를 통하여 나왔으니, 오늘날 선비된 자들도 이 시험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시험장에서의 당락은 응시자의 답안작성 기술과 그에 대한 시험관의 평가가 어떤지를 고려할 뿐이며, 응시자가 군자(君子)인지 소인(小人)인지를 가리지는 않는다.


而今世 以此相尙 使汨沒於此 而不能自拔, 則終日從事者 雖曰聖賢之書, 而要其志之所鄕 則 有與聖賢 背而馳者矣.


-. 오히려/숭상하다 상(尙), 골몰할 골(汨), 가라앉을 몰(沒), 부릴 사(使), 뺄 발(拔), 등/등지다 배(背), 달릴 치(馳)

-. 골몰(汨沒): 다른 생각을 일절 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만 온 정신(精神)을 쏟음

-. 종일(終日):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사이


그래서 지금 세상사람들은 서로 다투어 시험합격을 숭상하고 시험공부에 골몰(汨沒)케 하면서도 스스로 이런 행태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면, 해가 저물도록 읽고 외우는 것이 비록 위대한 선인들의 명저들이라 할지라도, 그 뜻이 향하여 하는 곳은 위대한 선인들과는 등을 지고 반대로 달려 가는 것이다. (鄕자는 向과 같음).


推而上之 則又有 官資崇卑, 祿厚薄 是計 皆能悉心力 於國事民穩 以無負 於任使之者哉.


-. 옳길/추리하다 추(推), 벼슬 관(官), 재물 자(資), 창고/쌓다 름(廩), 두터울 후(厚), 엷을 박(薄), 셀 계(計), 평온할 온(穩), 질/빚지다 부(負), 맡길 임(任)

-. 후박(厚薄): 두꺼움과 얇음, 많고 넉넉함과 적고 모자람

-. 임사(任使): 책임(責任)을 맡기어 부림


이런 세태를 따라 더욱 추리해 보면 직위의 높낮이와 봉급의 많고 적음을 계산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니, 어떻게 국가적 사업과 백성의 안정에 몸과 마음을 다 쏟으며 맡은 바 사명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 수 있겠는가?


從事其間 更歷之多 講習之熟 安得不有所喩, 顧恐不在於義耳. 誠能深思是身 不可使之 爲小人之歸. 其於利欲之習 怛焉. 爲之痛心疾首.


-. 돌아볼 고(顧), 두려울 공(恐), 슬플 달(怛), 병 질(疾)

-. 종사(從事): 어떤 일에 매달려 일함

-. 통심(痛心): 심한 상심(傷心). 매우 근심함. 상심하고 마음을 괴롭힘. 심통(心統)

-. 질수(疾首): 골치를 앓음 걱정함


그러는 사이에 경력이 많아지고 강습(講習)에 익숙해지면 어찌 깨닫는 바가 없겠는가마는, 그 깨달은 바가 의로움에 있지 않음을 걱정할 뿐이다. 진실로 자신을 깊이 반성해 보아서, 자신의 지향하는 바가 소인배들의 귀착하는 바가 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 사리사욕에 탐닉하는 것을 보면, 슬프구나! 그 사람을 생각하자니 내 가슴이 메어지는 듯 머리가 깨어지는 듯 하구나!


專志乎義 而日勉焉 博學審問愼思明辨 而篤行之.


-. 오로지 전(專), 넓을 박(博), 살필 심(審), 삼가다/참으로 신(愼), 도타울 독(篤)

-. 박학심문(博學審問): 널리 배우고 자세하게 묻는다는 뜻으로, 배우는 사람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태도

-. 독행(篤行): 부지런하고 친절한 행실(行實). 독실한 행실


오로지 의로움에 뜻을 두고서 날마다 의로움을 배우고 실천에 힘쓰되, 널리 배우고 깊이 탐구하며 곰곰히 생각하고 밝게 판단하여 그렇게 터득한 바를 착실하게 실천해야 하느니라.


由是而進於場屋, 其文 必皆道 其平日之學 胸中之蘊 而不詭於聖人. 由是而仕, 必皆 供其職 勤其事, 心乎國 心乎民 而不爲身計. 其得不謂之君子乎!


-. 길/말하다 도(道), 가슴 흉(胸), 쌓을 온(蘊), 속일 궤(詭), 벼슬할 사(仕), 이바지할 공(供)


이런 자세로 공부하여 시험장에 나아가면, 그가 쓰는 답안은 반드시 모두 자신이 평소에 배운 것과 그 결과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였던 것을 말하되 위대한 선인들을 속이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태도로 인격을 연마하여 공직에 나아가면, 모두 반드시 그 직무에 이바지하고 그 사업에 충실하며,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나라의 융성과 백성의 안녕만이 자리 잡아서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사사로이 계산하지 않게 되느니라. 이런 사람을 어찌 성숙한 인격자라고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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