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호

김흥호의 구약성서강해

心貧者 2007. 6. 30. 19:54
 

1강 성경(聖經), 2006/9/3


 聖經

神之啓示 二千年 四四人

基督 救世

A. 準備舊約 39

  1. 律法: 創世記, 申命記

  2. 史記: 여호수아, 역대기.

  3. 詩歌: 욥기, 哀歌

  4. 預言: 이사야, 말라기

B. 完成新約 27

  1. 出現: 共觀福音, 요한福音

  2. 傳達: 使徒行傳

  3. 理論 實際: 로마서, 유다서.

  4. 總結: 黙示錄


 形相

(1) 道成人身居於我儕之間我儕見其榮誠天父獨生子之榮 [요한복음 1:14]

(2) 耶蘇心喜曰父乎以此道隱於智者顯之於赤子 [누가복음 10:21]

(3) 惟上帝以聖神啓我蓋聖神窮萬理及上帝之奧乃聖神所敎卽以神言傳神道

   [고린도전서 2:10]

(4) 基督象無形之上帝生於萬物先 [골로새서 1:15]

(5) 主之神所在使人自由得觀主榮如鑑照我主之神化我 效主像久而彌光 [고린도후서 3:17]

(6) 旣有大力服萬物歸己必能化我卑陋之身效厥榮顯之體 [빌립보서 3:21]



본문 해석


 형상(形相)

(1) 道成人身 居於我儕之間 我儕見其榮 誠天父獨生子之榮 [요한복음 1:14]

말씀이 사람의 몸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들이 그 영광을 보니 진실로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었다.

(2) 耶蘇心喜曰 父乎以此道隱於智者顯之於赤子 [누가복음 10:21]

예수님께서 마음으로 기뻐하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이 진리를 지혜로운 자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애에게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3) 惟上帝 以聖神 啓我. 蓋聖神 窮萬理及上帝之奧. 乃聖神所敎 卽以神言傳神道 [고린도전서 2:10]

오직 하나님께서 성신으로 내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대개 성신께서 모든 이치와 하나님의 깊은 속뜻을 다하여 성신께서 가르치신 바, 곧 성신의 말씀으로 신령한 진리를 전합니다.

(4) 基督 象無形之上帝 生於萬物先 [골로새서 1:15]

그리스도는 무형이신 하나님의 형상이요 만물보다 앞서 나신 분입니다.

(5) 主之神所在 使人自由 得觀主榮 如鑑照我 主之神化我 效主像久而彌光 [고린도후서 3:17]

주님의 성신이 계신 곳에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합니다. 바라보니 주님의 영광이 거울처럼 우리를 비춰줍니다. 그래서 주님의 성신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언제까지나 더욱 빛나게 합니다.

(6) 旣有大力 服萬物 歸己 必能化我 卑陋之身 效厥榮顯之體 [빌립보서 3:21]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시키시는 큰 힘을 지니셨으니 반듯이 우리의 비루한 육신을 변화시켜 능히 당신의 그 영광을 드러내는 몸과 같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


감사하신 하나님, 저희들이 두 달 동안 여러 곳에 흩어져서 저희들의 일을 보다가 오늘 또다시 당신 앞에 나와서 당신의 말씀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신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시온의 영광이 저희들의 마음속에 비칠 수 있도록 당신께서 도와주시고, 앞으로 한 한기 동안 저희들이 공부하는데 저희들에게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을 주셔서 저희들이 기쁜 마음으로 한 한기를 공부할 수 있는 아름다운 학기가 될 수 있도록 당신께서 도와주시고, 이 시간에도 당신께서 같이 하셔서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실 수 있기를 바라 와서 예수님 공로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경 강의


오늘은 교재의 제1페이지, 성경(聖經). 성경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한참 말하고, 그러고 시간이 있으면 그 다음 페이지로 넘어 가겠어요. 그러니까 하루에 얼마큼 한다고 정한 게 없고 그냥 시간 되는대로 계속해서 할 테니까 그렇게 하시고.


神之啓示 二千年 四四人


<성경>이라 그러면 이것은 다른 책들하고는 조금 달라요. 우리가 플라톤의 <이상국가> 그러면 플라톤의 생각이라고 하지 뭐 다른 것은 없지요. 그런데 성경이라 그러면, 여기에 성경을 쓴 사람이 마흔네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들의 생각이라고는 안 해요. 그 사람들의 생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 누구의 생각인가 그러면 그건 하나님의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그 아래 보면 신지계시(神之啓示)라 그랬는데, 성경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지 어떤 사람이 생각해서 쓴 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어느 사람의 말이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지요. 물론 그 속에는 사람의 말도 많지요. 사람의 말도 많은데, 그 가운데 도저히 이것은 사람의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하는 그런 말들이 참 많거든요. 예수님도 한참 말하다가는 지금 말한 거, 이거는 내가 말한 게 아니고 이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게 말 하는 걸 보면, 예수님도 자기가 말하는 걸로 하다가도 갑자기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움직여서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을 하게 되는 거지요.

우리가 로마인서 같은 것을 봐도 물론 바울이가 다 썼지요. 바울이가 썼지만, 도저히 이건 바울이의 말이라고 할 수 없다 하는 그런 것들이 자꾸 있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것을 생각해 볼 때, 뭐 성경이 한자 한자 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렇게 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그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다는 거, 그걸 우리가 알 수 있어요. 그래서 교재에 성경은 신지계시(神之啓示)라 했는데, 하나님의 계시라고 생각한다 이거지요.

쓴 기간은 2천년(二千年)이라 이거지.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에, 그러니까 이 다음에 나오는 아브라함 그러면 아브라함이 언제 때 사람인가 그러면 4천년 전 사람이거든. 4천년 전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예수님 그러면, 예수님은 2천년 전이다 이렇게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4천년 전부터 2천년 전까지. 뭐 신약이야 예수님 오신 이후 한 100년 동안 쓴 거니까 그건 별로 문제가 안 되고.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말하면 2천년동안 쓴 책이라 이거지. 그런데 4천년 전의 얘기가 어떻게 그리 생생한지. 그거 정말 놀래지요. 여러분도 창세기 같은 거 읽어보면 그 속에 있는 얘기들이 그건 뭐 어떻게 이렇게 살아있는지. 산 글들이 참 많이 들어가 있어. 이건 뭐 도저히 이건 사람의 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글들이 참 많거든요. 물론 문학 작품인데, 그 작품이 정말 뛰어난 작품이다. 또 그런 글들이 4천년 전에 어떻게 보존됐는지. 모세가 나온 게 3,500년 전이거든. 만일 모세가 썼다고 그래도 3,500년 전에 그런 글들이 어떻게 보존이 된 건지. 그거 참 정말 알 수 없지요, 뭐.

물론 이집트에 옛날 벌써 이집트 글자가 있었으니까 이집트 글자를 썼을지 모르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 가서 450년 동안 거기서 살게 되니까. 이집트의 문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거는 사실이지요. 그때 벌써 이집트 사람들이 파피루스라고 하는 종이를 만들고, 알파 베타가 맨 처음에 이집트에서 시작하는 거니까. 거기 글자로 쓰고. 이제 그래도 어떻게 이게 보관됐는지. 그거 정말 하나의 신비지요. 인도 사람들은 베다니 그런 것을 어떻게 보관했나 그러면, 만일 책으로 썼다 그러면 네 사람이서 한 사람은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따로 외고, 한 사람은 이렇게 (아래서 위로) 따로 외고, 한 사람은 이렇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따로 외고, 한 사람은 이렇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따로 외고. 그러니까 뜻도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냥 따로 외는 거지. 그래서 좌우간 몇 천 명이 그거만 전문적으로 따로 외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아들에게 또 연결해주고, 연결해주고, 연결해주고, 이래 가지고 그걸 계속해서 내려오는 거거든. 그런데 이 유태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했는지. 정말 하나의 신비지요. 두루마리에 적어서 내려왔다고 그러는데 정말 하나의 신비지요. 하여튼 우리에게 이런 글이 살아남아 있다는 거, 이게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이런 경전을 가졌다는 거, 이게 말하자면 문화의 근원 아니겠어요. 문화의 근원이지요. 요새 뭐 문학들 많이 나온다고 그래도 다 근원은 고전에 있지 다른 데 있지 않지요. 서양 그러면 소크라테스 계통의 희랍 문화하고, 또 유태 문화하고, 이 두 가지가 서양 문화의 근원이란 말이지. 누구의 책을 읽어봐도 다 거기서 나오는 거거든. 우리 동양 그러면 불교, 불교 불경보다 더 높게 또 뭐, 뭐, 그렇게 올라가잖아요. 베다니 우파니샤드니 이렇게 자꾸 올라가는 거지. 또 중국사람 그러면 중국 사람은 논어, 맹자, 주역, 서전, 이게 또 자꾸 올라가거든요. 우리 요전에 장자, 장자 이전에 노자. 이런 것들은 말이지 몇 천 년이 가도 통 없어지지 않는 책들이거든. 왜냐하면 그게 없으면 인류의 문화가 그만 없어지고 말거든. 인류 문화의 뿌리니까. 뿌리니까 우리가 그걸 소홀히 할 수 없는 거거든. 그래서 우리가 그 동안에 주역도 공부해보고, 화엄경도 해보고, 노자도 읽어보고, 다 읽어 봤는데, 오늘부터는 우리가 성경을 한번 생각해보자 이거지. 그 동안에도 우리가 신약성경은 여기 저기 많이 공부했는데, 전체적으로 이렇게 한번 보는 거는 처음이에요. 내가 요전에도 그랬지만, 내가 금년 초에 구약, 신약을 한번 쭉 읽어보니까 시간이 얼마 걸리나 하면은 꼭 보름 걸리더라고. 그러니까 신문 보듯 하면 보름이면 된다 이거지. 뭐 스물네 시간 보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한 서너 너댓 시간씩 그렇게 쭉 봐가니까 보름이면 다 보겠더라구. 그러니까 여러분도 언젠가 시간을 내서 한번 쭉 보면 괜찮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하여튼 성경의 대지(大指:대강의 요지)만 요령만 내가 말할 테니까.

그래서 성경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이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야 돼요. 그리고 2천년동안 썼지만 하루에 쓴 거나 마찬가지야. 천년은 하루 같고 하루는 천년 같다는 그런 말이 있어요. 천년은 하루 같고 하루는 천년 같다. 그러니까 이거 2천년 걸렸다고 하지만 이틀 동안에 쓴 거나 마찬가지야. 그 만큼 살아있다 이 소리지. 마흔네 사람이 썼다고 하지만 한 사람이 쓴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계시다. 그걸 우리가 알아야 되는 거지.

그래서 아래 성경 구절이 몇 절 쭉 나오는데, 여러분께서 거기에 번호를 매겨주세요. 일, 이, 삼, 사, 오, 육, 그렇게. 번호를 매겨주면 거기서 내가 뽑아서 말할 테니까. 우선 3번부터 읽겠어요. 3번.


(3) 惟上帝 以聖神 啓我 蓋聖神 窮萬理及上帝之奧 乃聖神所敎 卽以神言傳神道 [고린도전서 2:10]


유상제(惟上帝), 오직 하나님께서. 중국 사람들은 하나님을 상제(上帝)라 그래. 이성신(以聖神), 성신(聖神)을 통해서. 성신을 가지고. 그러니까 성경은 성신의 감동을 받아서 쓴 책이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야지요. 그러니까 성신을 통해서. 계아(啓我), 내게,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그 마음을 열어 보여주셨다. 그래서 계(啓)자가 열 계자라 이거지. 계아(啓我)야. 하나님이 열어서 보여주셨다. 계시(啓示)라고 보통 그러지요. 열어서 보여주셨다.

개(蓋), 대개, 성신이라고 하는 것은. 궁만리(窮萬理), 모든 이치를 궁(窮), 다했다. 모든 이치를 다 안다 이거지. 성신이라고 하는 건 모든 이치를 다 알아. 궁만리(窮萬理)야. 모든 이치를 다 알아. 급(及), 그와 동시에. 상제지오(上帝之奧), 하나님의, 오(奧)하는 거, 깊은 속마음, 하나님의 깊은 속마음을 안다 이거지. 하나님의 깊은 속마음을 다 안다. 그러니까 이 성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데 우리 보통은 성령(聖靈)이라 그러지요. 그런데 여긴 언제나 성신, 성신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가 옛날 교회 다닐 때는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 늘 그렇게 말했거든요. 그런데 요새는 성령이라고 하는 말을 많이 써요. 그러니까 상제지오(上帝之奧)야. 하나님의 깊은 속을 궁(窮), 다 알고 있어. 궁(窮)이라고 하는 것은 꿰뚫어 안다, 그 소리지요. 하나님의 깊은 속을 다 알고 있어.

내성신소교(乃聖神所敎), 그러니까 성신이 가르치는 것은, 뭘 가르치나. 하나님의 깊은 속하고.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지요. 하나님의 깊은 속하고 또 모든 이치, 이치를 가르치는 거지요. 그래서 성신의 가르침은 이신언(以神言), 신(神)의 말이라. 하나님의 말이라고 그런다. 하나님의 말은 뭘 전하는 건가? 신의 도(道), 하나님의 도를. 이제 도란 말이 자꾸 나오니까. 우선 그냥 도라 그래 둡시다. 하나님의 세계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거다. 그렇게 해두지요. 전신도(傳神道)야.

자 이거 고린도전서 2장 10절인데, 고린도전서 2장 10절부터 쭉 20절까지 읽어보면 거기 아주 재밌는 말들이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난 여기서 읽지 않지만 여러분은 집에 가서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서부터 쭉 한 20절까지 한번 읽어보면 거기에 여러 가지 재밌는 말들이 많아요 [보충자료 1]. 이거 아주 성경에서도 아주 유명한 말이에요. 그래서 성경이 뭔가 그럴 때는 언제나 고린도전서 2장 10절, 이것이 성경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아주 확실히 말해주지요.


基督 救世


이제 그렇게 하고 그 다음에는 성경의 핵심은 누구인가, 성경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면 그리스도라 이거지. 성경의 주인은 그리스도야. 그래서 보통 구약 그러면 그리스도가 온다, 그걸 말하는 거고, 신약 그러면 그리스도가 왔다, 그걸 말하는 거야. 성경의 주인은 그리스도야. 그러니까 아까 하나님의 도는 뭔가 그러면 그리스도라 이렇게 봐야지.

도(道)라고 하는 걸,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말씀이다 이렇게 말하거든. 옛날에 이 도(道)자를 쓰고서 말씀 도 그랬단 말이지. 근데 동양식으로 생각하면 말씀 도(道)고 서양식으로 생각하면 로고스라는 거지. 그런데 로고스라고 하는 게 뭔가 그러면, 로고스라고 하는 건, 그리스도를 로고스라 하는 거지. 그래서 나중에 또 나오겠지만, 성경의 핵심은 도인데, 도라고 하는 게 뭔가? 그리스도라 이거지. 그리스도라 하는 건 뭔가 이거지. 그리스도라는 건 구세주(救世主)라 이거지. 세상을 구원해주는 분이라 이거지. 그러니까 세상을 구원해주는 분임과 동시에 나를 구원해주시는 분이라 이거지. 나의 주님이다 이렇게 되지. 구세주가 되는 거지. 나의 주님이야.

자 그래서 그 아래, 4번. 이제 3번 읽었는데, 4번을 읽어 봅시다.


(4) 基督 象無形之上帝 生於萬物先 [골로새서 1:15]


그리스도는, 기독(基督)하는 거. 그리스도는 상무형지상제(象無形之上帝). 우리가 볼 수 없는, 형(形)이 없으니까,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그리스도가 뭔가 그럴 때는. 그리스도의 정의에요. 그리스도가 뭔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야. 어만물선(於萬物先), 모든 만물보다도 더 앞에 있다 이거지. 요한복음 1장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말씀이라는 게 도(道) 거든. 그 도가 그리스도거든. 그리스도가 태초에 있으니까 모든 만물보다도 앞서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근데 갑자기 자꾸 너무 어려운 말 하니까 좀 당황할지 모르지만 하여튼 그쯤 하고 또 지나갑시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야. 그래서 그 위에 보면, 형상(形相)이라 제목을 달았어요. 서양식으로 말하면 이 형상이라 그러고 중국 사람들은 그냥 코끼리 상(象)자 써 가지고 형상形象이라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골로새서 1장 15절. 이 15절도 유명한 구절이에요. 거기서 또 여러분들이 한 열절쯤 보면 좋아요 [보충자료 2]. 그런데 19절에 가면 형상이라는 말의 설명을 쭉 하다가 그 다음에 하나님의 본질이라 이렇게. 하나님의 본질이다. 그러니까 형상이라는 말하고 본질이라는 말하고 둘이 다 나와요. 근데 어떤 성경의 번역에는 그게 안 나와요 [보충자료 3]. 근데 내가 글자 크게 쓴 이거 공동번역, 여기 보면 15절에는 형상이라 그러고 19절에 가면 본질이다. 그렇게 아주 달라져요.


서양 철학적으로 말하면 형상이라고 하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훗설(Husserl)이라고 하는 사람이야. 훗설이라고 하는 사람이 자기의 학문을 현상학이라 그러는데 거기서도 형상이라는 말을 많이 써요.


Husserl 現象學 形相 Eidos 本質直觀 Ideation


훗설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의 학문을 현상학(現象學)이라 그래요. 현상학. 그런데 이런 현상現象이란 말도 쓰고 형상(形相)이란 말도 쓰고 다 써요. 그래서 형상적 환원, 현상학적 환원, 뭐 이렇게 두 가지 다 써요.

형상이라 할 때는 내 마음속에서 보는 어떤 형상이에요. 예를 들면, 이사야 53장을 쭉 읽어보면, 그 속에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형상이 있어요. [보충자료 4]. 그 형상이 뭔가 그러면 어린양이지요. 그래서 그걸 보고 세례 요한도 예수님 지나가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 그렇게 말하는 거거든. 그 어린양의 형상을 어디서 보나 그러면 이사야 53장에서 보거든. 그런데 예수님도 이사야 53장을 보고는 거기에 어린양을 보면서 그것이 자기의 형상인 동시에 그것이 자기의 운명(運命)이라 이렇게. 운명이라. 철학에서는 운명이라 그러지 않고 뒤집어가지고 명운(命運)이라 이러는데. 명운이야. 뭐 같은 말인데. 자기의 운명이야. 그러니까 내가 어린 양이니까 이게 이 사람의 형상이야. 예수의 형상이 뭔가 하면 어린양이야. 어린양은 어디서 왔나 그러면 이사야 53장에서 오는 거지. 그런데 어린양이니까 난 꼭 십자가를 져야해. 왜? 어린양이니까.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야 되니까. 이게 소위 속죄설이라는 거지. 제물이 되어야 되니까. 그래서 난 십자가를 지고 간다고 그냥 가 죽는 거예요. 그 형상이라는 게 예수에 있어서는 무엇인가? 예수의 명운이야. 예수의 운명이야. 형상인 동시에 그게 뭔가? 예수의 본질(本質)이야. 그래서 형상이라는 말을 쓰면서 동시에 본질이라 그래.

이 본질은 직관(直觀)하는 거야. 생각해서 알아내는 게 아니야. 직관하는 거지. 그래서 이걸 본질직관(本質直觀)이라 그래. 이데아치온(ideation)이라 그러는데. 이데아치온 그러면 본질직관이야. 직관이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그러면 무슨 생각해서 말해서 아는 게 아니야. 보면 아는 거야. 나는 내 아내하고 하루 종일 집에 같이 있는데 거의 하루 종일 말 안 해요. 할 말이 없어요. 할 말이 없으니까 말 안하지. 그래도 속은 다 알고 있어요. 꿰뚫어 보고 있어. ‘아, 오늘 저 사람이 오늘 지금 어떤 생각하고 있다. 뭐 하고 있다.’ 다 알고 있어. 또 우리 집사람 내 마음 다 알아. 이런 게 소위 본질직관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생각해서 하고 말을 듣고 하는 게 아냐. 서양 사람들은 사랑한다고 할 때, 난 당신을 사랑한다고 해야 알지. 사랑 한다 그러지 않으면 3년이 지나도 몰라. 그런데 동양 사람은 그게 아냐. 일생 살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안 해. 그래도 사랑하는 줄 다 알아. 직관이라는 거지. 우리는 말없이 다 아는 사람들이야.

그래서 우리에게는 관(觀)이라는 게 발달된 거야. 관자재(觀自在)이러거든. 결국 나 자신을 어떻게 아나? 관자재야. 이것도 나를 직관해서 아는 거야. 뭐로 직관하나? 이 형상 속에 직관하는 거야. 그렇게 말할 수 있지. 형상이라는 말하고 직관이라는 말하고 언제나 연결되어 있는 거야. 예수의 본질이 예수의 본질인 동시에 예수의 형상이야. 어린양이라는 것이 예수의 본질인 동시에 온유하고 겸손한 게 예수의 본질이지. 본질인 동시에 예수의 형상이야. 예수의 운영이야. 본질과 형상이라는 게 같이 붙어 다녀.

현상(現象)이라는 것은 뭔가 그러면 석가가 연꽃을 딱 꺾었더니 가섭이가 보더니 씩 웃었다 이거야. 그런데 다른 사람은 아무리 쳐다봐도 안 웃어. 가섭은 왜 웃었나? 연꽃의 본질을 직관한 거야. 그게 무슨 뜻인지. 그래 석가가 아무 소리 안 했어도 그걸 직관한 거야. 불립문자(不立文字)야. 설명한 것도 아무것도 없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야. 무슨 얘기한 것도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도 딱 보니까 알았어. 이런 걸 소위 현상직관(現象直觀)이라고 그래. 형상직관(形相直觀)도 있고 현상직관도 있어. 형상직관은 글 속에서 보는 거지. 현상직관은 연꽃이면 연꽃, 잣나무면 잣나무, 이 현실 물(物)속에서 직관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 두 가지가 다 중요해.

이제 그래서 내가 전에 서른다섯 살 난, 며칟날이죠? 3월 17일, 오전 9시 5분에 난 뭐했다 그랬어요? 하여튼 뭐 했다 그랬지. 뭐 했나 그러면 하나님을 만나는 거지. 하나님을 만났다 하는 것도 신의 계시야. 신의 계시에요. 성경말씀도 신의 계시지만, 또 나한테 직접, 하나님께서 나한테 직접 와 닿을 때도 있어. 예수님한테 직접 와 닿을 때도 있어. 그걸 우리가 또 신의 계시라 그래. 신의 계시라 그러는데, 그럼 하나님께서 얼굴을 내밀고 나한테 말했나 그러면 그건 없어. 무엇을 내게 주었나? 말씀을 내게 준거지. 그래서 내가 늘 시 하나를 적고 있는 거지요.


斷斷無爲自然聲, 卽心如龜免成佛, 三位復活靈一體, 天圓地方中庸仁.


그걸 왜 내가 계시라고 생각하나 그러면, 내가 생각해서 쓴 게 아니야. 내가 생각해서 쓴 게 아니고, 나도 골치가 아파서 책도 못 보겠고 그냥 종이에 낙서를 하다가 그게 나온 거야. 그러니까 내가 생각해서 쓴 게 아니거든. 쓴 걸 보니까 나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무슨 뜻인지 모르는데, 모르면서도 보이는 게 있어. 이게 현상이라는 거지. 그게 보이는 것, 어떤 형상이 있어. 그 형상이 누구의 형상인가? 그건 내 형상이야. 그래서 나는 나를 알았다. 이게 ‘나알알나’라는 시작이야. 나를 내가 어떻게 알았나 하면 내 형상을 보고 아는 거지. ‘아, 내가 이거구나. 그리고 내 본질이 뭐구나.’ 하는 것을 그 글이 무슨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뭔지 몰라. 모르는데 거기 보이는 게 있어. 그러니까 이 성경에 거울 경자를 쓰는 사람도 많아요. 하나의 거울이야. 내 얼굴이 비치는 거울이야. 너 자신을 알라 그럴 때, 나 자신을 어떻게 아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안다 이거지.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 되나? 거울의 역할을 한다 이거지. 나중에 거울이라는 게 또 나오니까 그때 또 말해요.

그런데 그 형상을 보니까, 이게 형상적 환원인데, 형상을 봤는데 또 보이는 게 있어. 또 보이는 게 뭔가 그러면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는 거야. 그게 소위 현상학적 환원이야. 하나님의 얼굴은 현상으로 보이고, 내 얼굴은 형상으로 보이고, 그래 가지고 둘이 보이는 거야. 그래서 훗설 같은 사람은 둘을 따로따로 쓰지만 보통은 그냥 형상의 형상이라 이렇게 말해.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뭔가 그럴 때 형상의 형상이라 하지. 형상이라고 하는 걸 에이도스(eidos)라 그러는데, 형상이라는 거지. 형상이라는 뜻도 있으면서 이데아라고 하는 뜻도 있어. 그러니까 언제나 에이도스 하고 이데아는 같이 쓰는 거야. 그러니까 에이도스가 있는 곳에 이데아가 있고, 이데아가 있는 곳에 에이도스가 있고, 이거 다 같이 써요. 형상을 봤다고 할 수도 있고, 본질을 봤다고 할 수도 있고, 이 두 가지 다 보는 거야.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내 형상을 봤는데, 그 다음에가 이제 중요한 거야. 하나님의 본질 속에 내 본질이 들어가 있고, 내 본질 속에 하나님의 본질이 들어가 있어. 이게 중요한 거야. 하나님의 본질 속에 내 본질이 들어가 있고, 내 본질 속에 하나님이 들어가 있어. 이걸 소위 동양에서는 범아일여(梵我一如)라 하지. 범(梵)이라고 하는 건 바람이라는 말이고, 아(我)라고 하는 건 숨이라는 말이에요. 바람과 숨인데, 바람 속에 숨이 들어가 있고, 숨 속에 바람이 들어가 있어. 항구 속에 태평양 물이 들어가 있고, 항구 물이 또 태평양 속에 들어가. 이걸 소위 일여(一如)라는 거지. 범아일여라는 거야.

그래서 이걸 기독교에서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에, 내안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 안에 내가 있다, 요한복음 14장 10절쯤 되면 그렇게 되요 [보충자료 5]. 내 안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 안에 내가 있다. 또 요한복음 1장에, 말씀이 하나님과 같이 있으니 말씀이 곧 하나님이다.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게 뭔가 그러면 말씀 속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 속에 또 말씀이 있고. 그러니까 아버지 속에 아들이 있고, 아들 속에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의 얼굴과 아들의 얼굴이 닮았다 이거지. 아버지의 얼굴과 아들이 얼굴이 꼭 닮았다 그럴 때는 그걸 형상이라 그러고, 아버지의 생각하고 아들의 생각이 똑같다 그럴 때는 본질이라 그러고. 그렇잖아요. 결국 내 안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 안에 내가 있다는 뭔가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은 아버지라. 이걸 소위 부자(父子) 관계라 이거지. 그래서 그걸 키에르케골은 실존은 하나님 앞에 있다. 키에르케골은 형상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실존이라는 말을 쓰거든.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실존이 있고, 실존 속에 또 하나님이 있어. 태양 속에 감 알이 있고 감 알 속에 태양이 있어. 그렇잖아요? 형상이라 그럴 때는 동그란데 본질이라 그럴 때는 새빨간 거야. 감 알도 동그랗고 태양도 동그래. 그러나 본질은 새빨개. 감 알도 새빨갛고 태양도 새빨갛고. 형상과 본질이 같은 거지.

우리가 기독교에서 제일 많이 쓰는 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비유할 때, 하나님은 태양 같고 예수님은 달 같다. 그런데 태양도 동그랗고 달도 동그랗고, 크기도 같아. 같은 형상이지. 그런데 태양빛이나 달빛이나 같은 빛이야. 그러니까 빛이라 그럴 때는 본질이고 동그랗다 그럴 때는 형상이고. 그렇잖아요. 아버지의 얼굴, 아들이 얼굴, 비슷하다 할 때는 형상이고, 아버지의 속이나 아들의 속이나 꼭 같다 그럴 때는 본질이고. 그래서 형상과 본질. 그래서 키에르케골 같은 사람은 관계의 관계다, 이런 말을 써요. 관계의 관계라. 아버지하고 아들하고의 관계하고 아들하고 아버지의 관계가 하나다 이거지. 관계의 관계. 여러 가지 말을 쓰는데, 결국은 다 같은 말인데, 결국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거 한 마디를 하느라고 여러 말을 쓰는 거예요. 왜 자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꾸 그러나 하면, 결국은 나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 그것 때문에 그러는 거지요. 나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 자 그것이 6번이에요. 6번을 보면,


(6) 旣有大力 服萬物 歸己 必能化我 卑陋之身 效厥榮顯之體 [빌립보서 3:21]


기유대력(旣有大力), 예수님께서는 큰 힘을 가지고 있어. 만물을 다 복종시켜. 그리고 귀기(歸己),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할 수 있어. 그리고 반드시 능화아(能化我)야. 나를 변화시킬 수가 있어. 뭘? 비루지신(卑陋之身), 죄 많은 몸을. 영현지체(榮顯之體), 영광에 빛나는 몸으로 바꾸어 놓을 수가 있다. 더 쉽게 말하면 계란을 병아리로 바꿔 놓을 수 있어. 누가? 예수님께서. 또 하나님께서 계란을 병아리로 바꾸어 놓을 수가 있어. 그것이 1번이에요.

우리가 신앙이라고 하는 건 뭔가? 한번 이렇게 바뀌는 거야. 이게 종교의 위대한 거지요. 종교의 위대성은 사람을 바꾸어 놓는 거야.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어. 아주 악질이 한없이 착한 사람이 돼. 변화하는 거야. 그래서 결국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이라는 게 병아리지. 그리스도만 병아리가 되는 게 아니라 우리도 병아리가 된다 이거지. 병아리가 된다는 것을, 불교에서 강조하면 이걸 각(覺)이라 하는 거지. 우리 기독교에서는 그걸 각이라 하지 않고 형상이라고 그러는 거지. 자 그래서 예수 믿는다고 하는 건 뭔가? 바뀌는 거야. 아주 형편없는 내가 굉장한 나로 바뀌는 거야. 악질이 선질로 바뀌는 거야. 죄인이 의인으로 바뀌는 거야. 그 바뀌는 것을 경험하는 것을 우리가 구원받았다. 자 그 위에 5번 그거 같은 말이에요. 


(5) 主之神所在 使人自由 得觀主榮 如鑑照我 主之神化我 效主像久而彌光 [고린도후서 3:17]


주의 신이, 하나님의 성령이. 소재(所在), 있는 곳에는. 사인자유(使人自由), 사람으로 하여금 자유롭게 한다. 왜 성령이 있는 데는 자유롭게 되나? 성령이 진리의 영이니까.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 성령은 아까도 만 가지 이치를 다 꿰뚫고 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러면 진리라 이거거든. 진리의 영이 나하고 같이 있으니까, 내가 자유롭게 되는 거지. 득관주영(得觀主榮), 그래서 주님의 영광을 내가 꿰뚫어 볼 수 있다. 본질직관이지. 본질직관 그럴 수도 있고. 주님의 영광이라는 말 대신에 주님의 형상을 내가 볼 수 있다 그럴 때 형상직관이지. 그래서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어. 감조아(鑑照我), 거울에 비치듯이 내가 볼 수 있다. 내가 아까 그랬어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데, 그 말씀이 무엇이 되나? 거울이 되었어. 그 거울에 뭐 비치나? 내 형상이 비추었어. 내 형상이 비춘 것을 보고 내가 뭐다 그렇게 알았다 이거지. 우리가 어떻게 나 자신을 아나? 하나님의 말씀 속에 비치는 얼굴을 보고 나 자신을 알게 되는 거지. 그래서 주지신(主之神), 주님의 성령이. 화아(化我), 나를 변화하게 할 거야. 바꾸어 놓아. 뭘로? 효주상(效主像), 주님의 형상과 꼭 같은 얼굴로. 주님의 형상과 꼭 같은 얼굴로 나를 바꾸어 놓을 거야. 그래서 영원히, 오랫동안, 더욱더욱 빛나게 될 거야.

자, 고린도후서 3장 17절, 이것도 아주 유명한 말이에요. 이것도 가서 대여섯 줄 계속해서 읽어보면 참 중요한 말들이에요. 그래서 나라고 하는 게 어떻게 변하나. 그걸 여기 말하는 거야. 지금 둘을 내가 썼어요. 1번 봅시다.


(1) 道成人身 居於我儕之間 我儕見其榮 誠天父獨生子之榮 [요한복음 1:14]


도성인신(道成人身)이야. 보통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이렇게 말하지. 쉽게 말하면 계란이 병아리가 됐다 이거지. 계란이 병아리가 됐어. 그래서 우리 사이에 있는데,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우리가 그 병아리를 보니, 어떤 모습인가? 하나님의 모습과 같더라. 어미닭의 모습이나 같더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형상과 그리스도의 형상이 같다, 이렇게 되지. 이게 소위 형상이라는 거지. 그런데 같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이 있나 그러면 얼굴이 없지. 얼굴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이 같다 이거지. 하나님의 마음은 뭔가? 사랑이지. 예수님의 마음은 뭔가? 사랑이지. 예수님의 사랑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면 예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고. 그래서 같다. 이게 소위 범아일여라는 거야. 같은 거야. 근데 우리가 남을 미워하던 사람이 어쩌다가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됐어. 이게 병아리라는 거지. 그러니까 이 변화하는 것, 이것이 구원받는 거지.


(2) 耶蘇心喜曰 父乎以此道隱於智者顯之於赤子 [누가복음 10:21]


자 그럼 2번이 남았어요, 2번. 이거는 누가 복음 21절에 있는 말인데, 이것도 누가복음 10장 15절쯤부터 한 25절쯤까지 쭉 보면 좋을 거예요. [보충자료 6].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를 보냈어. 그래서 제자들이 돌아왔어. 돌아와서 하는 말이, “내가 가서 병도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사귀(邪鬼)들린 사람도 내 쫓아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하는 말이, “내가 하늘에서 악마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악마가 떨어지는 것을 봤어. 그러고선 예수님께서 한 없이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해서 그러고 하는 말이야. 아버지여. 차도(此道), 이 진리를, 은어지자(隱於智者), 세상에 똑똑하다는 사람에게 다 감추고. 현지어적자(顯之於赤子), 어린애 같은,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곱, 뭐 이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어부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을 보내줬다 이거지.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다 숨기고 어린애 같은. 그래 나는 이 어린이라고 하는 걸, ‘얼’, 얼이라고 하는 건 영(靈)이야, 영. 아주 영인이지. ‘얼인이’야. 그렇게 어린이 같은 사람에게 보여줬다. 예수의 제자라는 사람이 다 어떤 사람인가 그러면 아주 순수한 사람들이야. 남 속일 줄도 모르고, 정말 난대로 있는 사람이지. 난대로 있는 사람들에게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지 많이 아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건 아냐. 그래서 우린 어떤 사람이 되나? 우리도 어린애 같은 사람이 되는 거지. 어린애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이 전체 지금 말이 뭔가 그러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거.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난다. 그래서 서양철학이서는 이런 것을 소위 근본경험이라 그러는 거지. 근본경험. 내가 늘 말하는 윌리엄 제임스가 ‘내가 있어서 경험이 있는 게 아니라 경험이 있어서 내가 있다.’ 내가 있어서 있는 경험은, 그것은 현실적인 경험이지. 근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어. 자,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어.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거야. 이제 그런 것을 근본경험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뭔가? 우리가 일생에 한번 하나님을 만나는 거야. 하나님을 만나는 게 이게 아주 근본경험이야. 키에르케골 같은 사람은 이것을 체험이라 그래. 하나님을 체험하는 거야.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다.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는 것은 뭔가 하면 하나님을 한번 체험하는 거야.

이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체험의 종교지 무슨 지식의 종교가 아니야. 한번 체험하면 되. 베드로 같은 어부도 한번 체험하면 베드로가 되는 거야. 그러니까 바라는 것의 실상. 한번 체험하는 거야. 난 35세에 나서야 비로소 한번 체험하는 거야. 그것이 바라는 것의 실상이야. 그렇게 하고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야. 자기 속의 자기가 자꾸 변해 간다는 것, 계란 속에서 병아리가 자꾸 되간다는 것, 그것을 느끼게 되는 거야. 그것이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는 거지. 그러니까 자기 속에서 병아리가, 형상이지, 형상이 자꾸 이루어져 가는 것을 느끼는 거야. 그게 믿음이라는 거야.

믿음이라는 것은 반드시 체험이 있어야 되고 둘째로는 형상이 있어야 되고.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는 것은 체험이고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는 형상이고. 요 두 가지가 합해서 믿음이 되는 거지. 기독교라 하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거야. 그러니까 이게 동양종교하고 다른 것은 뭔가 하면, 동양종교는 자각(自覺)이야. 자기가 깨닫는 거야. 우리 기독교는 자기가 깨닫는 게 아니야.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다고? 하나님께서 믿게 해주시는 거야.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야. 하나님께서 나를 믿게 해주시는 거야. 다르게 말하면, 내 힘으로 믿는 게 아니야. 하나님의 힘으로 믿는 거야. 그래서 난,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믿는다.’ 이게 소위 내가 헤엄쳐가는 게 아니라 배를 타고 간다. 하나님의 힘으로 내가 살아. 예수님의 힘으로 내가 살아. 성령의 힘으로 내가 살아. 그래서 이게 자꾸 힘으로, 힘으로, 이게 수동적이지. 이게 소위 기독교의 특징이지. 그래서 기독교는 타력종교라는 거지.

하나님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힘으로, 성령의 힘으로 사는 거지. 내가 깨닫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연구해서 그렇게 사는 게 아냐. 그 힘으로 악질(惡質)이 선질(善質)로 바뀌는 거지. 내가 노력을 해서,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내가 악질이 선질로 바뀌어 진다. 그거 안 돼. 이 다음에 바울이 또 나오지요. 바울이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힘을 받으니까 저절로 되네. 그래서 기독교는 저절로 되는 종교지. 뭐, 노력해서, 노력해서. 물론 노력 안하는 것보다는 노력하는 게 좋겠지만, 그것이 다는 아냐. 우리가 보통 내가 노력해서 돈을 벌었다 할 때, 그렇게 벌어야 얼마나 벌겠어요? 한 달에 몇 백만 원씩 받아가지고 언제 벌겠어요? 그러나 운이 좋은 사람은 쑥쑥 벌더라고. 그래 운이 좋아야 벌지.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이라는 분이 같이 있어서 우리에게 힘을 줘. 그 힘을 믿고 사는 거. 그게 신앙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언제나 우리가 말씀이 하나님과 같이 있으니,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사는 거지. 내가 오늘 여기 와서 말할 때도 ‘내가 말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 성령이 지금 나 하고 같이 있어서 말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이거 내가 말하는 게 아니야. 이거 성령이 말하는 거야. 여러분은 내가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난 그렇지 않아요. 난 ‘성령이 말한다.’ 그렇게 생각해. 내가 오늘 하루 사는 거, 밥 먹고 살았다, 나는 이렇게 생각 안 해. 난 말씀으로 산다. 밥으로 사는 게 아니야. 말씀으로 산다. 그리스도의 힘으로 산다. 내가 3월 17일, 오전 9시 5분, 내가 깨달은 게 아니야.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다 이거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거지.


時間際斷 不安 恐怖 絶望 信 愛 希望


그래서 그렇게 하는 걸, 시간제단(時間際斷)이라고 그래요.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는데, 그 시간이 끊어지는 거야. 시간제단. 시간이 끊어져. 그러니까 계란이 스물 하루 만에 계란이 깨지고 병아리가 된 거야. 이게 지금 변했다는 거지.

계란이라고 하는 건 어떤 것을 계란이라고 하나? 불안(不安), 공포, 절망. 계란이라고 하는 건 언제나 동그라니까, 데굴데굴 구르니까, 언제나 불안하지. 또 계란이라고 하는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언제나 무섭지. 또 계란이라고 하는 건 떨어지기만 하면 깨져 죽어. 절망이지. 그래서 언제나 계란 같은 인생, 이 계란 같은 인생이라는 건 언제나 불안과 공포와 절망에 빠진 인생을 계란 같은 인생이라 그래. 그래서 키에르케골은 너희가 죽을 때 너희가 돌아봐서 네 일생이 절망에나 빠지지 않았는지, 그거 한번 생각해 보라는 거야. 네가 그냥 계란으로 있다가 그냥 계란으로 뒈지지 않는가, 그걸 한번 깨달아 보라는 거야.

그래서 사람은 한번 병아리가 되어야 돼. 병아리가 되면 불안이 아니라 믿음(信)이지. 공포가 아니라 사랑(愛)이지. 절망이 아니라 희망(希望)이지. 병아리의 세계는 언제나, 언제나, 뭐야? 발이 있으니까 불안이라는 게 없지. 믿음이지. 자신이 있는 거지. 병아리는 눈이 있으니까 무서울 게 없지. 공포가 없지. 그러니까 사랑이지. 병아리는 날개가 있으니까, 뭐가 쫓아오면 파드득 날아 가면되니까, 언제나 희망이 있는 거지. 불안과 공포와 절망에 살던 내가 어떻게 되는 거야? 희망과 소망과 사랑의 나로 바뀌는 거지. 이걸 소위 변화라고 하는 거지. 쉽게 말하면, 계란 같은 내가 병아리 같은 나로 바뀐다 이거지.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아무 무서운 게 없고, 희망을 가지고.

난 이거 어디 가서 배웠나 그러면, 어디 가서 알았나 그러면, 미국 가서 알았어요. 미국 가니까 미국 사람만 보면 자꾸 무서워. 클래스에만 들어가면 언제나 불안해. 시험만 치면 절망이야. (웃음). 그래서 나 하고 같이 갔던 선생은 죽었어요. 너무 그만 불안과 절망과 뭐라 그러죠? 공포에 죽고 말았어. 나 하고 같이 갔다가 같이 못 왔어요. 우리 과에서 두 사람 갔었는데, 그 사람은 죽고 말았어요. 나 그 사람 죽었다는 말 듣고, 거, 죽을 만하다. 죽을 만 해, 정말. 정말 못살겠더라고.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나중에는 말이 통하게 되고, 쓰기도 하고 말하게 되고, 그렇게 되니까 그 다음엔 미국사람 보면 아주 반가워. 클래스에 들어가도 하나도 불안이 없어. 앞으로 또 박사과정하래도 또 하겠어. 교수하래도 하겠어. 희망에 자꾸 차게 돼. 아는 거 하고 모르는 거 하고 그렇게 차이가 있더라고. 모르면 불안이야. 헤엄칠 줄 모르면 불안과 공포와 절망이야. 그런데 헤엄칠 줄 알면 어떻게 돼? 자신이 생기고, 희망이 생기고, 물속에 들어가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생겨. 하는 거 하고 모르는 거 하고는 이렇게 달라.

성경을 모르면 밤낮 예수 믿어도 밤낮 믿음이 없다고 그래. 그런데 성경을 알면 그 다음엔 불안도 없어지고, 공포도 없어지고, 절망도 없어지고. 그 다음엔 뭐가 되나? 언제나 기쁨이 있게 되고, 언제나 희망이 있게 되고. 죽는다, 그래도 희망이야. 왜? 난 하늘에서부터 왔다가 가는 거지. 난 죽는 게 아니야. 이제 하늘에서 왔다가 간다, 이렇게 생각하지 났다가 죽는다, 그게 아니야. 났다가 죽는 것도 있지. 근데 그건 ‘나’가 아니야. 카알라일 말마따나 그건 내 옷이지 나가 아니야. 나는 옷이 아니야. 나는 왔다가 가는 거야. 그 왔다가 가는 게, 이게 나야. 그러니까 이제 난 누가 죽었다 그래도 별로 섭섭하지 않아. 그 사람 왔다가 좀 일찍 갔구먼. 일찍 간 것뿐이지. 별로 섭섭하지 않아. 나도 이제 언제 죽을지 몰라. 이 성경 끝내고 죽으려는지. 더 있으려는지 몰라. 아무 때 죽어도 괜찮아. 왜? 왔다가 가는 거니까. 사람은 났다가 죽는 게 아니라 왔다가 가는 거다. 이거 하나만 하는데도 몇 십 년이 걸려. 그래서 35세 3월 17일 처음 알았어. ‘아! 인생이라는 건 났다가 죽는 게 아니구나. 왔다가 가는 거로구나.’ 처음 알았어. 시간제단이야. 그 전의 나하고 그 후의 나는 아주 달라졌어. 그 전에는 계란이야. 그런데 그 후에는 병아리야. 달라졌어. 남들은 나 보면 다 같겠지만, 나는 달라진 거야. 이걸 시간제단이라 그래.

성경을 아는 거 하고 모르는 거 하고 이게 다르다 이거야. 그래서 여러분이 이번 기회에 성경을 알아서, 정말 절망에서부터 벗어나서 희망으로 사는. 교회에 밤낮 다니면서도 난 믿음이 없어서, 믿음이 없어서, 밤낮 그러고 살면 안 돼. 자신을 가지게 돼야 돼. “난 믿음이 있다! 누가 뭐라 그래도 난 믿음이 있다.” 그런 자신이 있어야 돼. 그러니까 믿음을 가지고, 언제나 희망을 가지고. 난 왔다가 가는 거지 났다가 죽는 게 아니야. 언제나 희망을 가지고. 내가 이 세상에 왜 사나? 남을 조금이라도 도와주기 위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사는 거지.

내가 오늘 여기 와서 성경 강의를 왜 하나? 여러분을 도와주기 위해서. 여러분 혼자서 성경 보면 빨리 모르니까, 내가 조금 빨리 알게, 쉽게 알게 해주기 위해서. 이런 걸 우리가 사랑이라 그래. 여러분은 여기 또 왜 왔나? 나 사랑하기 위해서. 나 안가면 텅 비니까. (웃음). 내가 가서 좀 자리 채워줘야지. 그래야 또 듣는 사람 있다 그러지. 한 사람도 없으면 말도 못하고 그냥 가잖아. 여러분은 날 사랑하기 위해서 온 거고, 난 또 여러분을 사랑하기 위해서 말하는 거고. 서로 사랑하느라고. 이것이 사랑의 세계야. 이런 걸 우리가 보통 이상세계라 그래. 이런 게 이상세계야. 이런 것이 확대되면 더 크게 되는 거고, 그래서 온 인류전체가 한번 사랑하면서 살게, 그렇게 되기를 우리가 기도하면서 사는 거지.

        

2강 창세기, 2006/9/10


1. 창세기(創世記)

(1) 遂造人惟肖乎己象上帝像 [창세기 1:27]

(2) 有生命樹亦存別善惡之樹 [창세기 2:9]

(3) 於是耶和華旣造世人旋有悔心愁然憂之我所造人翦滅  [창세기 6:6-7]

(4) 或止十人則何如曰十人吾亦佛滅 [창세기 18:32]

(5) 我知爾畏我遂往執羊燔而獻之以代其子 [창세기 22:12]

(6) 雅各獨留遇一人與之角力今以後更名以色列與人爭無不勝 [창세기 32:24]

(7) 約瑟因弟中心如焚急擇一所潛焉出涕故入室而哭 [창세기 43:30]

(8) 待我雖懷惡念上帝反使我有善遇 [창세기 50:20]



본문 해석


1. 창세기(創世記)

(1) 遂造人 惟肖乎己象上帝像 [창세기 1:27]

드디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어내셨는데 오직 당신을 닮도록 하셨으니 그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2) 有生命樹 亦存別善惡之樹 [창세기 2:9]

생명나무가 있었고 또한 별도의 선악나무를 두셨다.

(3) 於是耶和華 旣造世人 旋有悔 心愁然 憂之 我所造人翦滅  [창세기 6:6-7]

이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세상에 사람을 지어내심을 돌이켜 후회하시니 마음이 언짢고 우울하셨다. “내가 지어낸 사람들을 쓸어버리겠다.”

(4) 或止十人 則何如 曰十人吾亦弗滅 [창세기 18:32]

만약 의인 열 사람만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씀하시길 열명이라도 나는 또한 멸하지 않겠다.

(5) 我知爾畏我 遂往執羊 燔而獻之 以代其子 [창세기 22:12]

나는 네가 나를 경외함을 알았다. 양을 잡아다 그 아들을 대신하여 불에 태워 바쳤다.

(6) 雅各獨留 遇一人與之角力 今以後更名以色列 與人爭無不勝 [창세기 32:24]

야곱이 홀로 머무르고 있을 때 한 사람을 만나 그와 더불어 힘겨루기를 했다. 이제부터 이름을 바꿔 이스라엘이라고 하라. 싸움에서 이기지 못함이 없다.

(7) 約瑟因弟中心如焚 急擇一所潛焉出涕 故入室而哭 [창세기 43:30]

요셉은 아우로 인한 마음의 정이 불길처럼 솟구쳐 급히 한 장소를 택하여 몰래 눈물을 흘렸으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울었다.

(8) 待我雖懷惡念 上帝反使我有善遇 [창세기 50:20]

나를 대접하기를 비록 악한 생각으로 했지만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선한 일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기도


감사하신 하나님, 오늘 저희들에게 한없이 깨끗한 하늘을 허락해 주시고, 시원한 바람도 허락해 주시고, 그리고 맑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올 수 있도록 해주신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 저희들이 당신 앞에 나왔으니, 당신께서 저희들과 같이 하여 주시고, 저희들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당신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당신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일생 사는 것이 한없이 허무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나 이 삶이 우리에게 참된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믿고 살아오고 있사오니, 당신께서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보살펴 주셔서, 우리의 가는 길이 더 높은 곳을 향해서 가는 아름다운 길이 될 수 있도록 당신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 당신께서 같이하여 주시기를 바라오며 예수님 공로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神之啓示 二千年 四四人 基督 救世

A. 準備舊約 39

  1. 律法: 創世記, 申命記

  2. 史記: 여호수아, 역대기.

  3. 詩歌: 욥기, 哀歌

  4. 預言: 이사야, 말라기

B. 完成新約 27

  1. 出現: 共觀福音, 요한福音

  2. 傳達: 使徒行傳

  3. 理論 實際: 로마서, 유다서.

  4. 總結: 黙示錄


요전에 성경이라는 말을 했고, 신의 계시, 이천년, 마흔 네 사람, 그리스도, 구세(救世), 거기까지 했어요.

그 다음 A 준비구약(準備舊約). 그러니까 구약이라고 하는 것은 신약에 대해서 하나의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는 소리에요. 준비(準備). 그 다음에 구약이 39권이 있다. 그래서 삼구 이십칠. 구약은 39권이고 신약은 27권이다. 삼구 이십칠 그렇게 옛날부터. 구약에는 율법(律法), 사기(史記), 시가(詩歌), 예언(預言), 그렇게 있는데, 율법은 창세기(創世記)부터 출애굽기 쭉 해가지고 신명기(申命記)까지, 이걸 소위 모세오경이라 그러는데. 모세오경이고. 그 다음에 사기(史記)는 여호수아에서 사무엘, 열왕기, 역대기, 이런 걸 사기라 그런다. 그리고 시가(詩歌)는 욥기, 전도서, 시편, 에게 다 시가라 이거지. 예언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맨 끝에 말라기. 이렇게 해서 예언.

신약은 구약을 완성했다 이래서 신약이라 부르는데, 27권. 맨 처음에 그리스도가 나타났다 (出現). 그게 공관복음(共觀福音)이지요. 그래서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마태, 마가, 누가, 요건 공관복음이라 그러고 거기에 요한복음을 붙여서 사복음이라 그런다. 그 다음에 사도행전(使徒行傳), 전달(傳達). 그 다음에 이론(理論), 실제(實際). 이론에서 제일 중요한 게 로마서, 갈라디아서, 요새로 말하면 기독교 해석학이라고 봐야지요. 그리고 마지막에 야고보 이런 게 소위 실천을 강조하는 거라 봐야겠지요. 그리고 마지막에 결론(總結)으로 묵시록(黙示錄), 이렇게 됐어요.


多神 汎神 一神


오늘 조금 더 말해야 될 건, 이 신(神)이라고 하는 개념이 아주 독특하다는 거. 보통 신이라 그럴 때는 다신론(多神論), 맨 처음에 나오는 거고. 그 다음에 범신론(汎神論), 태양이 신이다, 달이 신이다, 이런 건 다신론이지요. 범신론 그렇게 되면 우주가 그대로 신이다 이렇게 돼. 그러니까 많던 것이 우주 전체가 신이 되고 마는 거지. 철학적으로 말할 때는 세계가 곧 신이다. 이게 소위 범신론이라는 거지. 그런데 또 하나 나오는 것은 일신론(一神論)이라 이거지. 기독교는 일신론에 속하지. 그런데 어떻게 일신론이라고 하는 게 나와 가지고 그렇게 아주 강하게 기독교가 끌고 왔는지. 그거 정말 아주 신비한 일이다 이거지.

그런데 일신론이 어디서 나왔을까 학설이 많지요. 학설은 많은데 뚜렷한 학설은 별로 없어요. 없는데, 이건 순전히 내 개인 생각이에요. 개인 생각으로는 인도에서 베다라는 게 있는데, 베다라고 하는 것이 4천 년 전, 옛날에 쓴 책이거든요. 고대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중국, 중국에서 글자도 나오고, 문학도 나오고, 여러 가지 나오잖아요. 그런데 또 중국 못지않게 인도에서 또 그렇게 나오거든. 아주 고대부터 말이지, 글자가 있고, 문학이 있고, 문화가 있고, 그것도 굉장히 높은 문화야. 근데 그렇게 하고는 그리고 이 바빌론, 바빌론 계통의 글자가 있고, 또 문학이 있고, 문화가 있고. 바빌론에서도 4천 년 전에 벌써 글자가 있고. 글자를 전문으로 쓰는, 뭐라 그러나, 서기관 같은 그런 직책이 있어. 요새 바빌론에서 나온 그림에 다 그렇게 조각에 나와요. 서기관들이 여기(귀)에다가 펜을 꽂고 말이지. 바빌론 유물 그런데 다 나와요. 그러니까 이 바빌론의 문화도 굉장히 높다 이거지. 바빌론에서 제일 많이 발달된 게 소위 천문학이야. 하늘의 별자리는 다 이 바빌론 사람들이 만든 거라고 이렇게 돼. 그리고 뭐, 점성술이라 그러나? 그것도 다 바빌론이지요. 그리고 수학이라는 게 굉장히 발달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쓰는 아라비아 숫자, 그 기원이 이 바빌론이거든요.

바빌론의 수학이 발달됐는데, 그 수학 가운데 소위 하나, 둘, 셋, 넷은 바빌론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공, 하나, 둘 할 때 공이라는 하는 사상은 인도에서 왔어요. 그러니까 인도 사상이 바빌론에 상당히 영향을 줬을 거라 해요. 인도에서 수냐타라고 하는 공, 우리가 진공묘유(眞空妙有)할 때 그 공(空)이라고 하는 것은 인도에서 나온 사상이거든요. 그러니까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게 바빌론이고, 또 바빌론의 독특한 문화가 있었을 거라.

그런데 이 바빌론의 고대문화와 더불어 오래 전부터 발달된 또 다른 문화가 이집트 문화거든. 이집트 문화라는 게 벌써 4천년, 5천 년 전부터 글자가 있었고, 그 다음에 문학이 있었지. 그렇게 이집트 문화, 그런 게 보통 발달된 게 아니야.

내가 여러 번 말했지만, 내가 영국에 가 있을 때, 대영박물관에 대여섯 번 갔었는데, 수만 점의 작품이 있는데, 거기서 제일 멋있는 건 이집트의 무슨 왕의 머리, 얼굴, 그게 그렇게 멋있더라고. 그 얼굴, 대리석인데, 조금 홍색 띤 대리석인데, 어떻게 그런 대리석을 매끈하게 다듬어 놨는지 모르지만, 정말 아주 멋있게 해 놨는데. 그거 보면 다른 건 다 보기 싫어. 뭐 미켈란젤로 이런 건 문제도 안돼. 희랍의 12신상, 뭐 그것도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그러니까 이것도 순전히 내 감성이겠지만 하여튼 이집트의 그거를 본 후에는 그 다음에는 대영박물관에 가면 그거 하나만 보면 되지 다른 건 보기가 싫어. 그러니까 미술이 발달되었는지 후퇴되었는지 모르겠어. 내 생각으론 그때 그게 제일 발달된 거지. 그 다음엔 별로 없어. 그 만큼 이집트가 여러 가지로 발달됐다는 거야.

그런데 유태사람들이 본래 어디서 산 사람들인가 그러면 바빌론에서 산 사람들이거든. 바빌론의 문화에 접해서 살았다 이거지. 이 사람들이 또 이집트에 가서 이집트에서도 한 450년 살았거든. 이 사람들은 이집트 문화와 바빌론 문화를 다 흡수한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이 사람들도 상당히 고도의 문화를 가졌는데, 그 가운데 특별한 게 뭔가 하면 일신론(一神論)이라는 거야.


自然卽神 人格卽神


근데 일신론이라는 게 어디서 나온 건지. 나도 많이 생각하고 그랬는데, 순전히 내 개인적으로는 인도의 베다라는 고대 사상 문헌이지. 난 베다의 내용이 뭔지 다 잊어먹었는데, 그 특징이 뭔가 그러면 죽음이라는 게 없다는 거야. 죽음이라는 게 없다는 사상이 베다의 특징이야. 사람이 매일매일 죽어가는 거 보면서도 죽음이 없다는 거야. 사상이라는 게 무서운 거지요.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망상이라는 거야. 베다의, 4천년 전의 인도사람이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런데 베다의 말기에 리그베다라 그러는데, 리그베다의 말기에 나오는 게 소위 우파니샤드Upanisad라고 해요. 그런데 이 우파니샤드라고 하는 철학이 뭔가 하면 일원론 철학이라 그래. 유일신이라는 게 일원론이거든. 일원론 철학이지. 거기의 핵심이 뭔가 그러면 소위 브라만Brahman이라는 거, 이 브라만이라는 게 절대자인데, 이 절대자가 뭔가 이거야. 절대자가 뭔가 그러면 아트만Atman 에 불과하다는 거지. 아트만이라는 게 뭔가 그러면 본래적인 자아라 이거지. 인간의 본래적인 자아에 불과해. 그러니까 이 브라만이라는 건 본래적인 아트만에 불과하다 이거거든. 더 다르게 말하면 아트만의 뿌리가 브라만이라 이거지. 브라만이라고 하는 절대자는 본래적인 아트만에 불과한데, 아트만이라고 하는 게 ‘나’ 거든. 그러니까 브라만이란 나의 뿌리에 불과하다 이거야. 브라만이라고 하는 것은 아트만의 뿌리에 불과하다. 요것이 소위 범아일여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거예요.

나의 뿌리, 예수님은 나의 뿌리 그럴 때 그 뿌리라고 하는 걸 뭐라 표현 했는가 그러면 ‘아버지’ 이렇게 표현해. “아버지. 아버지시여!” 누가복음 10장에 이렇게 나오지. 나의 뿌리는 아버지야. 내 개인의 뿌리는 아버지지만, 온 인류의 뿌리, 인류의 뿌리니까 아버지는 아버지인데 전체적인 아버지지. 전체적이라는 말 대신에 우리가 하나님 이렇게 말해. 그래 하나님 아버지야. 브라만과 아트만 사랑이라는 게 우리 식으로 말하면 소위 하나님이 나의 뿌리시다, 나의 근거다, 그런 말이란 말이지.

여기서 자연즉신(自然卽神)이라는 사상에서부터 인격즉신(人格卽神)이라는 사상으로 온 것 같아. 그러니까 자연이 그대로 신이라, 이런 범신론이 되면 자연이 그대로 신이다 이거거든. 우주가 그대로 신이요, 자연이 그대로 신이다. 사람은 뭔가? 사람은 자연의 일부분이다. 그랬다가 인격즉신이 되고 말면, 인격의 뿌리가 신이지 자연은 신이 아니야. 그럼 자연은 뭔가? 자연은 물체야. 자연이 그대로 물체다 하는 사상이야. 자연이 그대로 물체다 하는 사상 때문에 과학이 발달되거든. 그렇지 않으면 과학이 발달될 수가 없지. 자연은 뭔가? 자연은 신이 아니고 이건 물체야. 우주라, 별이라 해도 이게 다 뭔가? 이게 다 하나의 물체야. 이렇게 해서 자연은 신이 아니고 물체다 하는 사상이 나오지. 그럼 신은 뭐만이 신인가? 인간의 뿌리만이 신이다. 그리고 인간의 뿌리가 자연도 만드는 거다. 이게 소위 창조설이라는 거지. 자연도 만들어. 마치 새가 알을 까려고 할 때 반드시 새집부터 지어야 되거든. 새집을 짓고서 그러고 알을 낳는 거거든. 말하자면 절대자가 인간의 뿌리지. 인간의 뿌리, 그러니까 아버지지, 아버지가 우주라고 하는 집을 지어놨어. 왜 집을 지었나? 알을 낳아서 길러야 되니까. 인류를 길러내기 위해서 이 우주라는 집을 지은거야. 그래 창세기라고 하는 건 뭔가 그러면, 우주라고 하는 건 집이라는 것, 그리고 출애굽기라고 하는 건 뭔가 그러면, 인류라고 하는 알을 까는 이야기가 출애굽기야. 그래서 말하자면 자연은 하나의 물체가 되고 인간의 뿌리, 이건 신이 된다 이거지. 이게 소위 인격신이라는 거지. 인격 즉 신이라는 거야.

자, 여기 돌멩이 하나가 있다고 하자. 돌멩이 그러면 인격즉신의 사상에서는 돌멩이는 그냥 하나의 물체야. 그런데 자연즉신이라는 사상은 돌멩이는 물체가 아니야. 그것은 신이야. 우리 동양에서는 신이라는 말을 안 쓰고 불교식으로 말하면 부처라 이거지. 돌멩이는 부처야. 그러니까 돌멩이보고 절하면 이쪽 기독교 계통에서는 우상숭배라 해. 사람보다 못한 돌멩이보고 왜 절하느냐? 말이 안 되잖아. 사람이 돌멩이보다 높은데 왜 돌멩이보고 절하냐? 그건 우상숭배다 하고 나와. 이사야서에 자꾸 나오거든. 너희가 왜 우상숭배 하느냐? 돌멩인데, 돌멩이가 사람보다 훨씬 못한데 왜 거기 가서 자꾸 절하느냐 이거거든.

그런데 불교에서 보면 그건 돌멩이가 아니고 부처님이다 이거지. 돌멩이가 아니고 부처야. 이걸 소위 표상表象숭배라 그러는 건데. 그건 우상이 아냐. 표상이야. 우리가 국기보고 절을 한다, 그럴 때 국기보고 절하는 게 아니야. 국기라고 하는 것이 나타내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 존경심,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절하는 거야. 이건 표상이지. 그러니까 국기는 우상이 아냐. 그냥 표상이야.

돌멩이 그러면 돌멩이가 여기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그냥 돌멩이지만 불교입장에서는 그거 돌멩이가 아니야. 그건 뭔가? 그건 부처님이야. 돌멩이가 어째서 부처님인가? 욕심이 없지 않느냐. 돌멩이가 무슨 욕심이 있냐? 욕심이 없으면 부처야. 모든 자연이 욕심이 없어. 그러니까 다 부처야. 사람은 욕심이 있으니까, 이건 부처가 못되는 거지. 그런데 사람도 욕심이 없어지면 부처지. 그것이 소유 진공묘유라는 거지. 사람도 욕심이 없어지면 부처인데 욕심 때문에 부처가 못되는 거야. 계속 불교에서는 중생이라고, 중생에 머물러 있지. 이 부처가 못돼. 욕심이 없어졌어.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이런 거. 무소유란 말이 뭔가? 욕심이 없어졌다는 말이지. 욕심 없이 저기 오대산에 가서 혼가 가만히 앉아있다 이거지. 난 아무 욕심이 없다. 욕심이 없으면 부처야. 자연은 전부 욕심이 없어. 강아지, 아무 욕심이 없어. 닭, 아무 욕심 없어. 그거 다 부처님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식이 서로 다르잖아요. 욕심이 있는 거는 죄인이야. 욕심이 없으면 그건 부처님이야. 불교에서 예수를 볼 때, 예수도 그거지. 예수도 욕심 없는 사람이야. 불교에서 보면 예수도 부처야. 이렇게 나오지.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중생이야. 이게 소위 미성불이라는 거지. 자연이라는 게 사람보다 훨씬 높다 이렇게 보니까 돌멩이나 먼지보고 절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생각이 이렇게 달라요.

같은 돌멩이를 놓고도 기독교에서 보면 우상이지만 불교에서 보면 표상이야. 불교에서는 우상숭배라는 게 없는 거야. 표상숭배지. 그러니까 자연즉신이라. 자연은 욕심이 없어. 그대로 신이지. 이렇게 되지. 생각이 이렇게 달라져요.

그런데 브라만과 아트만이라는 것,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하는 사람 없어요, 내가 지금 처음 하는 건데, 난 그렇게 생각해. 아트만이라고 하는 게 브라만이라는 본래적인 아트만이거든. 본래적인 아트만을 브라만이라 그런다. 본래적인 아트만이라는 건 아트만의 뿌리가 브라만이라 그 소리거든. 그러니까 나 그러면, 내 뿌리가 뭔가 하면 아버지다. 이게 소위 아트만, 브라만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뭔가? 내가 아트만이야. 브라만은 누군가? 아버지가 브라만이야. 그러니까 내 뿌리가 브라만이다. 여기에서 말하자면 일신론 사상이 나온 게 아닌가.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 이거지. 그런 인도 사상이 바빌론으로 와가지고 유태사람들, 우리가 지금 많은 사람은 알지도 못하지만, 노아라던가 아브라함이라던가, 이런 사람들이 그 사상에 접해서 이게 옳다 그러고 수긍을 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더구나 일신론을 강화한 건 뭔가 하면 유태사람들이 목축업을 했다는 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제일 숭배하는 게 뭔가 하면 하늘이에요. 왜 하늘을 숭배하나 하면은 비가 오니까. 농사할 때 제일 필요한 게 비거든. 인도 그러면 인도라는 말도 비를 다스리는 신이 인드라야. 인드라라고 하는 신도 비 오게 하는 신이예요. 그러니까 농사짓는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게 하늘이에요. 이집트 그러면 이집트도 농사짓는 데니까 거기도 하늘을 많이 숭배하지. 하늘을 숭배할 때 대개 하늘이라고 하는 게, 은하수가 쭉 이렇게 오니까, 그걸 어떻게 생각했나 하면, 우주가 하나의 소고 은하수가 소젖이야. 소젖이 흘러내린다. 소위 밀키웨이(milky way)라는 거지. 소젖이 흘러내리는 걸로 봤다. 그래서 이 범신론 하는 사람은 대개 소라고 하는 걸 상징으로 해서 절한다. 인도사람은 지금도 소라 그러면 꼼짝 못한다. 중국 사람도 황하 변에 쇠로 만든 큰 소를 갖다 놓고 거기다가 제사를 지내거든. 그런데 이집트 사람들도 소를 만들어 놓고 거기다 제사를 지내. 금송아지라는 거. 이거 전부다, 말하자면 범신론의 자취들이지.

그런데 이 일신론이라 하는 게, 이게 정말 독특하지. 유목하는 사람들은 비가 필요 없어. 비가 필요 없고 뭐가 필요한가? 그러면 풀밭이 필요해. 오아시스라는 거지. 오아시스를 자꾸 찾아다니는 거지. 오아시스라는 게 많지 않으니까, 하나의 오아시스를 찾으면 여기서도 오고, 저기서도 찾아와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하면 싸움이 일어나. 그러니까 싸움을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어디 사람들인가 하면 목축하는 사람들이야. 아라비아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서양 사람들이 전부다 목축하는 사람들 아냐? 다 고기 먹는 사람들, 버터 먹고, 치즈 먹고, 우유 먹는 사람들이거든.

그런데 그 목축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가 그러면 목자야. 목자라는 사람은 힘이 있어야 되고, 지혜가 있어야 되고, 여러 가지 뛰어나서 정말 사람이 잘나야 돼. 다윗 같은 사람도 젊은 아이인데도 벌써 사자하고 싸워서 이겼다고 그러고 삼손 같은 사람, 사자를 쫙쫙 찢었다고 그러고. 이렇게 보통 강한 자들이 아니거든. 그런 사람들이 자꾸 자꾸 중심이 되는 거지. 그래서 사람이라고 하는 게 자꾸 중요하게 돼. 시편 23편에 보면, ‘여호와 나의 목자시니’ 하는 그런, 여호와는 목자 가운데 하나의 제일 최고의 목자, 이런 식으로 발달되지 않았을까. 농사짓는 사람들은 범신론을 넘어서기 어려운데 목축하는 사람들이 범신론을 넘어서서 일신론까지 간 게 아닌가,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일신론이라고 하는 게 굉장히 강하게 발달했어. 그렇게 되니까 사람, 우리 동양에서도 공자, 맹자, 이런 사람을 물론 사람이라고 그러지만, 그 후엔 사람이라고 하는 게 별로 나오지 않거든. 그런데 서양에는 사람이라는 게 자꾸 나오거든. 소크라테스 있다 그러면 플라톤 나오지. 아리스토텔레스 나오지. 프로테우스 나오지. 어거스틴 나오지. 계속 사람이 나오거든. 계속 사람이 나와 가지고, 종교가 철학이 되고, 철학이 과학이 되고, 이렇게 되거든. 우리 동양에는 과학이라고 하는 게 발달을 못했다. 왜? 수학이 없으니까. 수학이 어디서 나왔나 그러면 인도에서 나왔다. 인도에서 아라비아를 거쳐가지고 유럽에 들어가면서 수학이라고 하는 게 발달이 되.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을 볼 때, 정말 일신론이라 하는 것이 인류 문명에 대해서 굉장히 큰 역할을 한 거거든. 일신론이 아니었으면 철학이나 과학이나 이런 게 이렇게 발달이 되었을까. 자연이 그대로 신이라고 하는데 과학이 어떻게 발달이 되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생각해볼 때, 기독교가, 인격 즉 신이라고 하는 일신론이 나왔다는 게 중요한 거다.


창세기:

1장  우주창조

3장  인류의 타락

6장  노아와 홍수

11장 아브라함

25장 이삭

28장 야곱

37장 요셉


앞서 말한 것처럼, 우주 그러면 이게 하나의 물체지 신이 아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우주가 나오지. 창세기 3장, 거기 보면 사람이 나오지. 사람이 나오는데, 맨 처음에 나온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창세기에 보면 악마에게 그만 유혹을 받아 가지고 악마처럼 되고 말았다 이거거든. 사람이 하나님을 닮아야 될 텐데,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데 악마가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지만 3장에 그렇게 나와.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고 상당히 후회했다. 내가 괜히 만들었다. 내가 이걸 다 없애고 말겠다. 전멸할 계획을 했다는 게 소위 노아 홍수라는 거거든. 내 인류를 아주 완전히 없애고 말겠다. 없애고 그 가운데 조금이라도 나를 알고 있는 놈만 남겨놓겠다. 그래 가지고 에녹, 노아, 이렇게 남겨두게 되는 거지. 그래 가지고 좋은 사람만 길러가지 나쁜 놈은 그냥 죽이고 말겠다. 이게 말하자면 창세기에 나온 말이지. 그러니까 6장에 보면 이제 홍수 얘기가 나오거든.

그렇게 하고, 좋은 사람의 대표로 나오는 게 아브라함이라 이렇게 나온다. 아브라함이라는 게 이제 나중에 나오지만, 아브라함 네가 인류의 조상이 될 거다. 인류의 조상이란 좋은 사람들의 조상이 될 거란 말이다. 그렇게 아브라함이라는 게 칭찬받게 되고. 11장에 아브라함. 그러고 25장에 이삭,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 그리고 28장에 이삭의 아들 야곱, 또 37장에 야곱의 아들 요셉, 그렇게 해서 1대, 2대, 3대, 4대의 4대까지 얘기가 창세기가 되는 거지.


출애굽기:

1장   노예생활

3장   하나님과 모세

7장   애굽에 내리는10가지 재앙

14장  홍해바다를 건너감

19장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감

20장  십계명을 받음

32장  금송아지 우상과 징벌


그런데 이 요셉의 때에 유태사람들이 이집트에 가서 살게 돼. 요셉이가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됐다. 이제 그런 얘기지. 그때서부터 450년을 이집트에서 산다. 이집트에 사니까 이집트의 문화 일체를 받아들였겠지. 이제 그렇게 살았는데, 이집트 사람들하고 유태 사람들하고 사이가 좋지 않아서, 말하자면 애시 당초엔 잘 대접을 했는데, 나중에는 노예로 대접을 했다. 그래서 피라미드를 만든다고 이럴 때 유태사람들이 노예 노릇을 했다. 노예노릇을 해서, 그게 그 다음에 출애굽기 1장이야. 출애굽기 1장에 유태사람들이 노예 노릇을 했다.

그 다음에 2장은 건너뛰고 3장. 3장에 가면 하나님이 나타난다. 여기에 하나님이 나타나는 거야. 하나님이 나타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내가 유태민족들이 고생하는 것을 봤다. 내가 그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가만있지 않겠다. 반드시 너희를 내가 구원해주겠다.” 이렇게 해서 말하는 하나님, 다 보고 아는 하나님, 이걸 유태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사랑계신 하나님이야. 그러니까 하늘보고 아무리 제사 지내도, “하늘이 언제 말하더냐?” 공자 말이지요, 유교의 하나님은 말하는 신이 아니야. 근데 이건 말하는 신이야. “내가 너희를 구원해 주겠다. 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이삭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말하고, 내가 다 안다, 들었다, 그렇게 나오지.

이제 그래서 구원해주는데, 어떻게 구원해주나? 애굽의 왕을 아주 혼쭐을 내주는 거야. 그래가지고 유태 사람들 내놔라, 이렇게 된 거지. 그러니까 이 사람들 생각은 하나님이 유태사람들의 하나님만 아니라 인류의 하나님이야. 인류의 하나님이고 애굽의 왕도 하나님한테는 꼼작 못해. 그리고 그 다음에 바빌론 왕도 내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어떻게 할 거다. 그러고 페르시아 왕도 내가 어떻게 하겠다. 그러니까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하나님이 자연신이 아니고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타나게 되거든. 그래서 바빌론도 내 맘대로 한다. 페르시아도 내 맘대로 한다. 희랍도 내 맘대로, 로마도 내 맘대로. 모든 인류를 지배하는 나다. 그런데 내가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 조그맣고 불쌍하니까 내가 너희를 도와주겠다. 그렇게 해서 도와주는 거야.

그래서 먼저 출애굽기 1장에서는 유태사람이 고생하는 거고, 2장에는 모세라는 사람이 나왔다는 얘기고, 그래서 3장에 가면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데가 나오거든. 그게 3장이에요. 그래서 3장에 ‘나는 너희 사람들을 있고 있게 하는 하나님이다.’ 있고 있게 하는. 너희 사람들을 있고 있게 하는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었나 그러면 하나님은 있고 있게 하는데, 없던 것을 있게 하고, 죽었던 것을 살려주는 그런 하나님이다. 이게 소위 신앙의 핵심이에요. 죽었던 것을 살려준다는 게 신약의 사상이고, 없던 것을 있게 한다는 건 구약의 사상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단 두 마디로 없던 것을 있게 하고 죽었던 걸 살리고. 그 전체를 말하면, 나는 너희들을 있고 있게 하는 하나님이다. 이게 소위. 있고 있게라는 에히엘(ehyeh)이라는 말이지.

에히엘 이렇게. 에히엘이라 그러는데, 유태 말이에요. 있다(eh), 있다 (eh) 에요. 이게 전부다 자음이니까 발음을 못하니까 여기다가 주님이라고 하는 단어의 모음을 빼서 갔다 붙여가지고 발음을 해서 보통 야훼 이렇게 되지. 야훼. 야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걸 여호와 이렇게 말하는 건데 여호와라는 발음보다는 야훼라는 발음이 조금 더 가깝고. 본래 이 발음이라는 것을 못하니까. 왜 이 사람들이 못하게 했냐 하면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이랬으니까. 발음하면 망령되게 부르니까 안 된다 그래서 몇 천 년을 못 불렀다. 못 부르는 동안에 다 잊어먹고 말았다 이거지. 요새는 에히엘인데, 야훼 지금 이렇게 말하는 거지. 있고 있는 자라. 모든 만물을 있고 있게 하고, 모든 사람을 살고 살게 하는 그런 하나님이야. 그게 3장이지요.

그리고 7장에 가면, 하나님께서 이집트 왕을 혼내는, 그래서 10가지 재앙을 내려주는, 10가지 재앙을 내려주는 게 7장이지. 그러다 나중에 이집트 왕도 꺾여 나가고 손을 들어. 손을 들어서 유태사람을 해방시켜줘. 그래서 해방해서 나오는 게 소위 홍해바다를 건넌다는 거지. 14장에서는 홍해바다를 건넜다 이거지. 



<그림 1. 중동 지역 지도>


자 그럼 이 지도 한번 보세요. 여기가 인도에요. 여기가 파키스탄이지요. 여기가 이란이에요. 요기가 이라크이야 지금. 여기는 시리아지요. 요기가 레바논이지. 요기가 요르단이지. 요기가 지금 이스라엘이지. 요기가 지금 이집트지. 그러니까 여기가 이집트고, 여기가 수단이고, 여기가 이디오피아이고. 여기가 아라비아 반도지. 이쪽에 가면 메카라는 데가 있어요. 메카. 왜 사람들 많이 모여서 새까만 거울보고 절하는 데가 있잖아. 마호메트교의 중심이지요. 메카. 근데 여긴 (아라비아 반도) 다 사막지대에요.



<그림 2. 시나이 반도>


그런데 요것이 말하자면, 홍해가 이리로 들어가고 저리로 들어갔어요. (시나이 반도 좌우 만). 요기서부터 요기까지가 지금 수에즈 운하지요. 이 수에즈 운하에도 호수가 몇 개가 이렇게 있어요. 그것을 연결해서 운하를 만든 거지.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의 어디서 살았나 하면, 여기가 나일강인데, 여기서 살았다. 이쪽에서 살았는데, 홍해바다를 건넜다 할 때 어디를 말하는지 지금 학설이 몇 가지인데, 요기 호수를 건너간 게 홍해바다를 건너갔다고 그러는 건지 (그림2의 경로 1), 그 다음에 대고해(Great Bitter Lake)라는 호수를 건너갔다고 하는 건지 (경로 2), 또 요기 홍해 끄트머리, 여기를 건너간 것을 홍해바다를 건넜다고 그러는 건지 (경로 3), 모두 확실치 않아요. 확실치 않은데, 하여튼 홍해바다를 건넜다 그랬어. 그래서 여기 이집트에서 동쪽으로 건너가 시내산이라 그러는 산이 있는 시나이 반도 앞에까지 갔다 이거지.

시나이반도 여기 높은 산이 있어요. 얼마나 높은가 하면은 2,650m쯤 되는 산이, 백두산이 지금 2,700이거든. 백두산이 2740m인데, 백두산보다 조금 낮아요. 굉장히 높은 산이 있고, 그 높은 산 밑에 또 2,200m되는 산이 또 있어요. 그런데 요새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아마 그 2,200m의 그것이 모세가 올라갔던 시내산일 거라 그래요. 이게 한라산 보다 훨씬 높지요. 한라산이 1,950m거든. 이건 2,200이니까 한라산 보다 300m 더 높다 이거지. 모세가 올라갔던 산이 그 산이야. 지금 학자들은 대게 그 산이라고 해. 제벨 무사 그러는데, 난 무슨 소린지 잘 모르지만, 아무튼 무사라고 하는 산에, 그게 시내산이라는 것인데, 왜 그걸 자꾸 시내산이라 그러나 하면, 그 시내산 앞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야. 오아시스가 있으니까 거기서 유태민족이 살았을 거라 그 얘기지.

그런데 여기(아리비아 반도)가 전부 사막이지요. 여기(시나이 반도)도 사막이지요. 그리고 여기 사해가 있는데, 사해 앞까지 다 사막이에요. 신 광야, 하란 광야, 다 사막이거든. 다 사막이라서 사는 길은 목축밖에 없거든요. 목축을 해야 되고, 목축에 제일 필요한 게 뭐가 그러면 오아시스라는 거지. 물 나오는 오아시스 없으면 이거 안 돼. 무사라고 하는 산 밑에 오아시스가 있으니까, 아마도 그것이 시내산일 거라 그래서 학설로 이렇게 정해졌어요. 이게 2천2백 몇 십 미터에요. 굉장히 높거든. 모세가 거기에 올라가서, 말하자면 출애굽기 19장이라는 거, 모세가 지금 시내산에 올라가는 거거든, 그리고 거기서 십계명을 받았다, 율법을 받았다, 성막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 이런 거 쭉 받았다는 거, 그것들이 20장 이후에 나오지요.

그런데 더 놀랄만한 일은 이 시내산에 올라서 모세가 40일 동안 금식기도 하는 거지. 이건 무서운 거지. 나도 한번 40일 금식을 해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거 도저히 안돼. 생각도 못해. 역사적으로 40일 금식기도한 사람은 많지가 않아요. 성 프란시스가 40일 금식기도 했다고 그러고, 인도의 산다싱이라는 사람이 40일 금식기도를 했다고 그러지. 40일 금식기도라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물론 저기 아일랜드에 가면 70일 금식하고 죽은 사람이 많아요. 영국하고 싸우다가 그랬어. 그런데 사람은 며칠 동안 금식하면 죽나 그러면 72일 만에 죽어요. 아무것도 안 먹어도 72일까지는 살아. 우리도 3.1운동 때, 예산 사람 한 사람이 ‘나는 왜놈들이 주는 밥은 안 먹는다.’ 그러고 금식을 했는데, 72일 살았어요. 그렇게 하고 죽은 거지. 그래서 사람은 72일 안 먹어도 되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욕심 때문에 하루만 안 먹어도 죽을 것 같아. 72일 안 먹어도 되는데, 하루만 안 먹어도 죽을 것 같고 한 끼만 안 먹어도 죽을 것 같아. 자, 이게 사람이지.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데, 모세가 거저 받은 게 아니야. 40일을 금식기도 하면서 십계명을 받는 거야. 40일 금식기도하고 법전이니 뭐니 다 받아가지고 내려와. 근데 학자들 말은, 십계명이니 여러 가지 법전이 소위 바빌론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해. 바빌론에 함무라비라고 하는 왕조가 있거든. 함무라비 왕조에 함무라비 법전이라는 게 있거든. 그 법전의 영향을 받는 게 아닌가, 그렇게 말하지. 근데 하여튼, 영향을 받았건 안 받았건, 여기 20장의 십계명, 법전을 받아가지고 내려왔는데, 유태사람은 그 40일 동안을 참지 못해서 다시 이집트 생각이 나가지고, 금덩어리를 다 모아가지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다가 절을 해. 그렇게 하고 춤추고 야단이 났어. 모세가 그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가지고 내려온 십계명, 돌비석이지. 그 돌비석을 내던지는 거지. 내던져서 돌비석이 그만 깨져나가고 마는 거지. 그렇게 하고는 거기서 야단을 쳐 3천명을 죽이고 말아. 무섭지 정말. 3천명을 다 죽이고 말아. 그래서 그때 죽은 사람이 3천명이라고 성경에 나와.

그렇게 하고는 다시 시내산에 또 올라가. 다시 시내산에 올라가서 또 40일 금식기도를 하는 거야. 금식기도를 하면서 다시 십계명을 석판에 다시 써가지고 내려오는 거지. 그러니까 모세라는 인물이 말이야 40일 금식기도를 두 번이나 한거야. 무서운 일이지요. 이 모세가 보통 녀석이 아니더라고. 무서운 사람이지요. 우리는 한 끼만 안 먹어도 죽겠는데 40일씩 두 번씩이나 금식기도를 했으니 말이지. 그 영향에 예수도 40일 금식기도 하는 거거든. 그런 이야기가 32장에 나와요. 그래서 다시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와.

그 다음에 이 사람들의 예배당, 말하자면 천막으로 만든 예배당으로 성막이라 그러는데, 그 성막을 지어. 성막을 만들어 가지고 거기서 예배를 보기 시작한 거거든. 그래서 이야기가 40장까지 가게 되거든. 그게 출애굽기 전부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창세기를 50장까지 다 한 거야. 이렇게 오늘은 창세기 다 끝났어. (웃음) 내용은 그거야. 창세기란 천지창조에 대한 얘기지. 그리고 창세기 1장의 27절에 가면 거기 벌써 사람을 만들었다는 게 나와요.


(1) 遂造人 惟肖乎己象上帝像 [창세기 1:27]


드디어 조인(造人), 사람을 창조했다. 그런데 유초호기(惟肖乎己)야.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어. 그러니까 사람의 근본이 하나님이야. 사람이 아트만이라면 하나님이 브라만이라는 그 소리지. 사람의 근본이 하나님이야. 이것이 인격신의 시작이야. 하나님을 중국 사람들은 상제(上帝)라 그러는데, 이 상제라고 라는 사상은 인격신이라기보다는 자연신의 사상이야. 중국 사람은 아직도 상제라 그래요. 하늘을 다스리는 신이라 이거거든. 이것은 인드라, 비 오게 하는 신이나 마찬가지지.


(2) 有生命樹 亦存別善惡之樹 [창세기 2:9]


그 다음에 2장 9절에, 유생명수(有生命樹), 에덴동산엔 생명(生命)나무가 있었다. 또 역존별선악지수(亦存別善惡之樹), 선악(善惡)과의 나무가 있었다 이 말이지. 선악과라 하면, 선이 악도 될 수 있고 악이 선도 될 수 있다 이거지. 악마가 붙잡으면 모든 선이 다 악이 되고 마는 거야. 하나님이 붙잡으면 모든 악도 다 선이 되고 마는 거야. 그래서 선이 악도 될 수 있고 악이 선도 될 수 있는 그런 과일, 분별지의 세계에 떨어지고 말았다.


(3) 於是耶和華 旣造世人 旋有悔 心愁然 憂之 我所造人翦滅  [창세기 6:6-7]


어시(於是), 그래서, 여호와(耶和華), 야훼지. 기조세인(旣造世人), 사람을 만들었다. 사람을 만들었는데 전부 악마가 되고 말았으니까, 만든 것을 선유회(旋有悔), 아주 대단히 후회했다 이거지. 그리고 심수연(心愁然), 마음이 좋지 않고 아주 기분이 나빠. 마음이 찜찜해. 내가 왜 사람을 만들었나 후회야. 악마의 밥이 되고 말았으니, 내가 왜 사람을 만들었나, 그러고 아주 후회했다. 수(愁), 근심했어. 우지(憂之), 걱정을 했어. 그래서 아소조인(我所造人), 내가 만든 사람을, 전멸(翦滅), 내가 멸망시키고 말겠다.

도자기 만드는 사람들 도자기를 딱 구워놓고 보아서 안됐으면 그냥 깨뜨려버리고 말아. 또 만들어 보고 안 되면 또 깨뜨려. 열 번이고 백번이고 깨져. 그래서 되는 거만 남는 거지. 마찬가지 이야기지. 하나님은 도자기를 굽는 사람 같다는 이런 성경 이야기도 나오잖아. 그래서 잘 안 되면 다 그만 깨뜨려버리고 말아. 그렇게 하여 결국엔 노아홍수가 나오는데 노아홍수라는 건 바빌로니아, 메디나 고전에도 또 나온다. 그러니까 고대의 얘기다 그 얘기지.


(4) 或止十人則何如 曰十人吾亦佛滅 [창세기 18:32]


그 다음에 18장은 아브라함의 얘기지. 홍수로 멸망시키고 그 다음에 소돔 고모라가 나오지. 소돔 고모라에도 아주 악한 사람이 가득 찼다. 그래서 거기도 다 멸망시켜.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기도하는 거지. “만일 그 소돔에 50명 좋은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랬더니, “나 벌주지 않겠다.” 그러니까 다시 “40명이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했지. 그렇게 30명, 20명, 그리고 10명이야. 혹지십인즉(或止十人則), 소돔 거기 의로운 사람이 열 명이 있는 즉. 하여(何如),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랬더니 왈(曰), 십인(十人), 열 명만 있어도. 오역불멸(吾亦佛滅), 나는 멸망시키지 않겠다. 그런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지. 그런데 열 명이 없어서 그만 멸망당하고 만다. 그래서 롯이라고 하는 의인만 나오게 되지.


(5) 我知爾畏我 遂往執羊 燔而獻之 以代其子 [창세기 22:12]

또 그 다음에 아브라함이 아흔 살에, 백 살이지. 아브라함이 백 살 때 하나님이 나타나서, “저 하늘에 별을 봐라.”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말이지 [보충자료 1]. “저 하늘에 별을 화라.” “아, 별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네 자손이 별처럼 많아질 거다.” 이제 그렇게 아주 복을 예언을 하는 거거든. 별처럼 많아질 거다. 이제 그런데 아브라함이 백 살, 부인 사라가 아흔 살, 그때 정말 아들을 낳게 되는 거거든. 아들이 이삭이라 이거지. 근데 아들을 낳았는데,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삭을 너무 사랑했던 모양이지.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니까 하나님께서 질투심을 느꼈다 이거지. ‘저놈 새끼 저희 아들을 나 보다 더 사랑하나.’ 그러곤 아브라함에게 명령을 해서, “그 아들을 나에게 바쳐라.” 그러고 바치라 그랬다. 그랬더니 그때야 아브라함이 회개하고서 자기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게 된다. 그래서 가슴에 칼을 꽂으려고 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됐다. 네 마음이 그렇게 나한테 있는 걸 알았다. 네 옆에 내가 양 한 마리를 갖다 놓았으니까 그 양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라.” 이게 소위 이 얘기거든. 그래서 양을 잡아서 제사를 지냈다 하는 것이 모든 제사의 근원이거든. 제사의 근원이 되가지고 결국 기독교가 ‘예수도 하나의 양이다.’ 이런 사상이 여기서 나온다. 그래서 이삭 대신에 양이 죽듯이 인류 대신에 예수가 죽었다. 그게 십자가다. 이 십자가의 사상이라는 게 어디서 나오나 그러면 여기서 나왔다.

그래서 아지이외아(我知爾畏我), 난 알았다. 네가 나를 공경하는 줄을 내가 알았다. 그러니가 수왕집양(遂往執羊), 저기 양 한 마리를 갖다 놨으니까 그거를 잡아서. 번이헌지(燔而獻之), 나한테 제사를. 번(燔)자, 제사지낼 번 자야. 제사를 지내라. 이대기자(以代其子), 네 아들을 대신해서. 이게 소위 대속(代贖)이라고 하는 사상이 여기서 나온다. 신약이라고 하는 거는 구약이 벌써 준비돼있다 이거거든.


(6) 雅各獨留 遇一人 與之角力 今以後更名以色列 與人爭無不勝 [창세기 32:24]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야곱의 얘기. 야곱이 독(獨), 혼자서. 그러니까 야곱이가 자기 형 에서를 만나러 가는데, 직접 가서 에서를 만났다가 맞아 죽으면 안 되니까. 우선 선물을 많이 에서에게 보내고, 자기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자기는 에서가 자기를 허락하는 기미가 보이면 갈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혼자서 뒤 떨어져서 소위 얍복강이라고 하는 강가에서 혼자서 기다리고 있는 거지. [보충자료 2].

그런데 우일인(遇一人),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다 이거지. 그 하나님의 사자, 우일(遇一), 한 사람을 만났어. 그런데 그 사람이 여지각력(與之角力), 자꾸 씨름하자고 그래. 그래서 씨름을 했다 이거지. 씨름을 하고, 또 씨름을 하고, 그래서 나중에는 그 사람을 이겼다. 그 사람을 이겨서, 그래서 그 사람이, “이 후로는 네 이름을 야곱이라 그러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그래라.” 이게 소위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이 나오는 기원이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게 뭐냐 하면은, 성경의 해석은 말하자면, 이스라‘엘’, ‘엘’이라고 하는 게 하나님이거든. 하나님을 이겼다. 근데 난 아랍어를 잘 모르니까, 이슬람, 지금 이슬람교라 그러잖아요. 이슬람교라 그럴 때 이슬람을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 복종한다.’ 그런 뜻이에요. 그런데 여기는 하나님을 이겼다 이러는데, 어느 게 정말인지 모르겠어요. 이겼다는 말이 정말인지, 복종이라는 말이 정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여튼 나중에 천사를 이기게 되니까 천사가 야곱의 허리를 한대 후려갈겼어. 환도 뼈라 그러지. 환도 뼈를 후려갈겨서 야곱이 그만 쓰러지게 됐어. 그래서 졌다는 말인지. 하여튼 여기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여인쟁(與人爭), 너는 하나님하고 싸우는 놈이니까 사람하고 싸우면 다 이길 거다. 그래서 사람과 싸우면 이기지 못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승리라는 말이에요. 지금 자꾸 이스라엘, 이스라엘 하는 말이 승리라는 말이지.


(7) 約瑟因弟中心如焚 急擇一所 潛焉 出涕 故入室而哭 [창세기 43:30]


자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요셉이 얘기. 요셉이가 인제(因弟), 요셉이가 벤야민이라는 동생을 만났어. 벤야민이라는 동생을 만나서 중심(中心), 감격이 너무 그만 솟구쳐서 말이지. 여분(如焚), 불꽃이 일어나도록 그렇게 감격이 솟구쳤다, 이 말이지. 택일(擇一), 어느 한곳을 택해서. 잠언(潛焉), 가서 숨어서. 잠길 잠(潛) 자니까 숨어서. 출체(出涕), 눈물을 한 없이 흘렸다. 그러고는 고입실(故入室), 자기 방에 들어가서. 이곡而哭(), 계속 통곡을 했다. 이제 그런 얘기에요. 그런 얘기가 나오고.


(8) 待我雖懷惡念 上帝反使我有善遇 [창세기 50:20]


그 다음에 마지막에는 형제들이 자기네 죄를 용서해 달라 그랬더니 요셉의 대답이에요. 대아수회악념(待我雖懷惡念), 너희들이 나를 대하기를 아주 나쁜 마음으로 대했어. 나쁜 마음이라는 게 요셉이를 죽이려고 했거든. 요셉이를 죽이려고 하다가 유다가 죽이지 말자. 저기 마른 우물이 있으니까 우물에 집어넣자. 그래 우물에 집어넣었거든. 그러다가 마침 이집트로 가는 장사꾼이 오니까, 잘됐다 팔아먹자. 그래서 팔아먹은 거거든. 대아수회악념(待我雖懷惡念), 너희들이 나를 죽이려 그러고 나한테 한없이 악한 마음을 가졌지만. 상제(上帝), 하나님께서는. 반사(反使), 도로 나를 시켜서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고, 나로 하여금 이스라엘 사람을 다 살려주는, 그때 기근이 들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굶어죽게 되었을 때, 그 이스라엘 사람을 다 살려주는, 그런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 나를 이렇게 크게 키워줬으니, 너희는 나를 죽이려 그랬지만 하나님은 너희의 악한 생각을 이용해서 도로 너희를 살리는데 나를 썼다 이거지. 이게 아까 말 한대로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만드는 하나님이다. 악마는 선을 악으로 만들었지만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만들었어. 그래서 내가 오늘 너희들을 살리게 됐다. 이제 그 얘기에요.

        


3강 창세기 (계속), 2006/9/17


 아브라함(亞伯拉罕) (1. 창세기)

(1) 上帝所許 亞伯拉罕及其裔 非指衆裔言之 乃指其裔一人 卽基督也 [갈라디아서 3:16]

(2) 使亞伯拉罕之福 由基督耶蘇 施及異邦人 致我能信 可受上帝 所許之聖神焉 [갈라디아서 3:14]

(3) 亞伯拉罕篤信上帝 故在其前 得爲吾衆之父 亞伯拉罕本絶望 因信而有望 得爲萬民之父 爾之後裔 將若星然  [로마서 4:17]

(4) 擧目遙見 亞伯拉罕懷中 有拉撒路 [누가복음 16:23]

(5) 我之日 爾祖亞伯拉罕 極欲見之 見則樂矣 未有未有亞 我在 [요한복음 8:56]



본문 해석


 아브라함(亞伯拉罕) (1. 창세기)

(1) 上帝所許 亞伯拉罕及其裔 非指衆裔言之 乃指其裔一人 卽基督也 [갈라디아서 3:16]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브라함의 후예는 많은 무리의 후예를 말하는 것이 아니요 그 후예 한 사람을 지칭함이니 곧 그리스도라.

(2) 使亞伯拉罕之福 由基督耶蘇 施及異邦人 致我能信 可受上帝所許之聖神焉 [갈라디아서 3:14]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이 베풀어져 이방인에게 미치게 되고 나에게까지 이르게 되어 나도 능히 하나님을 믿게 되고 사랑하게 되니 하나님께서 허여하여 주신 성신을 받음이라.

(3) 亞伯拉罕篤信上帝 故在其前 得爲吾衆之父 亞伯拉罕本絶望 因信而有望 得爲萬民之父 爾之後裔 將若星然  [로마서 4:17]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깊이 믿었으니 그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요 무에서 유를 있게 하시는 분이요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시라. 그러므로 그분 앞에서 아브라함이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되었도다. 아브라함은 본래 희망이 끊어졌으나 믿음으로 인하여 희망을 가지게 되었도다. 만백성의 아버지가 될 것인즉 장차 너의 후손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리라.

(4) 擧目 遙見 亞伯拉罕懷中 有拉撒路 [누가복음 16:23]

눈을 들어 멀리 보니 아브라함의 품속에 나사로가 있더라.

(5) 我之日 爾祖亞伯拉罕 極欲見之 見則樂矣 未有未有亞 我在 [요한복음 8:56]

내가 나온 지금 이 날을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 얼마나 보고 싶어 했던가. 그가 이를 본즉 한없이 기뻐하리라.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었음이라.



기도


감사하신 하나님, 한 주일 동안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또 저희들이 나와서 아버지를 찬송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신대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저희들에게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을 허락하여 주시고, 우리가 사물을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을 깊이 이해함으로 말이 암아 당신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나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서소. 이 시간 당신께서 같이하여 주시기를 바라 와서 예수님 공로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경강의



<그림 1. 구약시대 지도>


먼저 지도부터 설명을 하겠어요. 저기 왼쪽 위에 보이는 것이 지중해에요. 그리고 아래로 쭉 내려 간 거, 이것이 홍해고, 오른쪽 요것이 페르시아만이에요. 그리고 오른쪽 위가 카스피해, 카스피해라는 게 있잖아요? 그리고 그 위로 올라가면 흑해라는 게 있지요. 그러니까 흑해가 위에 있고, 그 아래 카스피해가 있고, 그 아래가 페르시아만이고, 요기 왼쪽이 홍해고, 그 사이 여기가 지금 아라비아 반도지요. 아라비아 반도라는 게 거의 사막지대, 요새도 다 지금 사막지대지요.

그리고 두 줄로 요렇게 그은 것이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예요. 강 위에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이 아라랏이라는 산이에요. 아라랏이라는 산이 무슨 산인가 그러면 노아방주 때 노아 방주가 아라랏산에 멎었다 그렇게 되어있어요.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어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는데 그 방주가 아라랏산에 멎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그 아라랏산이 백두산의 두 배쯤 높아요. 5165m에요. 그러니까 아주 굉장히 높은 산이지요. 그래서 거긴 언제나 눈이 덮여 있으니까 늘 물이 흐르게 되지요. 거기서 흘러내려온 물이 저렇게 길게 흘려 내려온 것이 유프라테스강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그 오른쪽에 동그라미는 아라랏산 아래 있는 호수인데, 그 호수에서 이렇게 흘러내려온 게 티그리스 강이라는 거지. 유프라테스 강 하고 티그리스 강 하고 아주 유명한 강이지요. 성경에 에덴동산에서 유프라테스강하고, 티그리스강하고, 또 무슨 강하고, 무슨 강하고, 그렇게 흘러 내려왔다, 그렇게 쓰여 있거든. 그러니까 에덴동산은 아마 아라랏산 밑 거기 어디 경치 좋은 데가 있었나 본데, 그래서 거기를 이 사람들이 에덴동산이라 생각한 거 같아. 그래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또 무슨 강, 무슨 강, 이렇게 네 강이 흘러 내려오는 거기가 에덴동산이다, 그렇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에덴동산이 아마 그쯤 어디 있는 거 같아요.

큰 강에 사철 물이 흘러내려오니까, 그 강변이 아주 옥토가 된 거지요. 이게 소위 메소포타미아 평야라는 거지. 그래서 여긴 아주 오랜 고대부터 문명이 발달된 거지요. 우린 그 이전은 잘 모르지만, 하여튼 티그리스강 있는 데는 앗시리아, 앗시리아 문명이라는 게 있고, 이 아래 유프라테스강 있는 쪽에는 바빌론 문명이라는 거, 그러니까 그 다음에도 메디아, 무슨 페르시아, 나중에 희랍, 로마, 이게 옥토니까 이렇게 저마다 이걸 먹으려고 달려 붙는 거지. 그래서 애초엔 앗시리아가 먹고, 바빌론이 먹고, 메디아가 먹고, 희랍이 먹고, 그래 희랍의 알렉산더 대왕이 여길 쳐들어가는 거지. 그래서 여길 먹고서 좀 더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인도니까, 알렉산더는 인도까지 갔다 이거거든. 중국도 가보면 옥토거든. 그러니까 왜놈들도 쳐들어가고, 청나라도 쳐들어가고, 몽고족도 쳐들어가고, 자꾸 먹으려고 다 쳐들어간다 이거지. 그런데 쳐들어가지 못한 게 우리만 못 쳐들어갔어요. 하여튼 여기가 옥토에요.

아브라함이 살던 데가 어딘가 하면, 유프라테스 강 아래 거기가 아브라함이 살던 ‘우르’라고 하는데, ‘우르’, 그러니까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은 바빌론 문명 속에서 자란 사람이지. 바빌론의 과학, 바빌론의 철학, 바빌론의 종교, 이런 것을 다 안 사람이야. 그렇게 하고 이 사람이 나중에는 이집트까지 가거든. 그러니까 이집트에 가서도 이 사람이 거기 이집트 문화도 접한 사람이야. 그 두 문화를 접해가지고 거기서 다시 한 단계 올라가 나오는 게 소위 우리 지금 하나님을 믿는 일신교라고 하는 유일신교가 나오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모세라는 사람도, 모세는 저 이집트에서 나오지만, 그 사람도 이집트에 있는 모든 학문, 무슨 예술, 철학, 종교, 그걸 다 연구한 사람이거든. 왜 그런가 하니, 이집트 왕의 조카니까. 모세가. 그렇잖아요. 이집트 왕의 누이의 아들이니까, 그 당시에는 최고의 인텔리였을 거란 말이지. 그렇게 하고선 미디안, 미디안이라는 건 홍해바다 이쪽이 미디안인데, 미디안에 가 있으면서도 이 사람이 그저 놀고 가만히 있었을 리는 없단 말이지. 여기서 바빌론의 철학, 더구나 인도의 철학까지 이 사람이 다 공부했을 거란 말이지. 그러니까 모세가 쓴 글 가운데는 에덴동산 얘기도 나오고, 저 아라랏산 얘기도 나오는 거 보면, 아주 이 근방에 대해서 환하게 아는 사람이란 말이지. 모세도 이 두 문명을 다 소화시켜서 그렇게 하고 다시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말하자면 다신론과 범신론을 다 소화시켜 가지고 그렇게 하고 나오는 게 일신론이라 이렇게 된단 말이지. 그러니까 유태사람들의 사상이라는 게 굉장히 높아진다 이거지. 그러니까 종교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그런 종교적인 문명을 가지고 살게 되는 거지. 그 문명이 지금 우리에게까지 와서 우리도 지금 아브라함 얘기를 안 할 수 없는 이런 처지가 됐다 이거지.

이것이 ‘우르’라는 땅이고. 그 위의 동그라미가 소위 바빌론이에요. 밤낮 바빌론 하는 바빌론. 그 위에 동그라미 하나 친 거는 지금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요. 그리고 그 위에가 지금 이란이지. 저 아라랏산 저편 왼쪽이 지금 터키지요. 그러니까 여기가 쭉 이라크란 말이지. 이쪽 아래는 아라비아고. 그리고 저기 동그라미가 하나 있는데, 그건 ‘마리’라고 하는 덴데, 그 보다 더 하나 올라가면 거기가 ‘하란’이라는 데야. 하란은 뭔가 그러면 이삭이 자기 아내를, 리브가지요, 리브가를 데려 온데가 하란이에요.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떠나서, 바빌론을 지나서 쭉 올라가서, 저기 하란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거예요. 내려와서 거기 산이 하나 있는 게 헬몬산이에요. 헬몬산도 높이가 3,200m에요. 그러니까 언제나 눈이 덮여있는 산이지요. 눈이 덮여있으니까 거기서 언제나 흘러내려오는 물, 그게 요단강이라 이거지. 그리고 헬몬산 그 아래 동그라미 한 게 소위 우리 예수님이 사시던 갈릴리 호수에요. 그 아래 조금 더 내려와서 요렇게 길쭉한 건, 소위 사해라는 거지. 사해 옆에 동그라미, 거기가 예루살렘이지. 그렇게 하고, 저 하란에서 내려올 때, 헬몬산 옆에 거기 지금 동그라미 하나가 다메섹이지요. 바울이가 다메섹에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그러잖아요. 그게 다메섹이에요. 그러니까 이 다메섹이라고 하는 도시는 옛날부터 있던 도시에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여기 우르에서 하나님께 어떤 하나님 말씀을 들었나 하면, “넌 가나안으로 가라.” 지금 가나안 복지라는 거, 이게 아브라함이 시작한 거거든. 그래서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나서, 즉 바빌론을 떠나서, 마리, 하란, 다메섹, 그렇게 지나 예루살렘이 있는데, 거기가 소위 아브라함이 가서 정착한데란 말이지. 거기가 지금 말하는 가나안 복지에요. 그러니까 모세가 가나안 복지로 갔다는 것도 아브라함이 살던 그 땅으로 들어가는 거지 모세가 처음으로 가나안에 가는 게 아니에요. 아브라함은 거기 있다가, 지중해 저 아래 있는 저기가 카이로거든, 그 이집트의 카이로까지 갔다가 왕도 만나보고 다시 오는 거거든. 그러니까 아브라함처럼 여기저기 다니면서 왕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그 당시에 대단한 사람이지.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 양떼나 끌고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걸 우리가 알아야 해.

그리고 홍해 위쪽 거기에 산 하나가 있는 거, 그게 소위 시내산이에요. 시내산 높이는 2,631m에요. 그러니까 우리 백두산과 거의 비슷해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다는 건 백두산에 올라갔다는 얘기나 같은 얘기야. 그리고 그 밑에서 살았다는 건, 결국 요새로 말하면 함경도, 거기서 살았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면 돼요.


신명기: 1장 Ka, 2장 東, 5장 十, 12장 宗, 16장 政, 22장 社, 27장 賞, 34장 모

민수기: 1장 人口, 10장 出, 14장 Ka, 26장 人口, 27장 여, 31장 모

레위기: 1장 祀, 8장 長, 11장 聖, 23장 節, 26장 賞.

출애굽기: 1장 학, 2장 모, 3장 神, 14장 紅, 20장 十, 32장 十

창세기: 1장 天, 3장 人, 6장 노, 12장 아, 25장 이, 28장 야, 37장 요


그리고 시내산에서 쭉 올라가서, 사해 밑으로 동그라미가 하나 있어요. 그 동그라미가 ‘카데스바니아’라고 하는 지명이에요. 이 카데스바니아라고 하는 게 아주 유명한 곳인데 이걸 우리가 알아야 돼요. 신명기 1장에도 나오는 게 카데스바니아에요. 그리고 민수기 14장에 나오는 것도 카데스바니아에요. 그래서 카데스바니아라는 게 상당히 중요한거야.

그게 왜 이렇게 중요한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2년 동안 준비를 했어요. 제일 중요한 게 무기니까, 우선 무기를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젊은 사람들이, 장정들이 군인이 돼야 되거든. 그런데 내가 어느 책에서 봤는지 잊어서 잘 모르지만, 이 시내산 근방이 아마 쇠의 산지, 철의 산지인가 봐.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시내산으로 간 것은 물론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 간 것도 사실이지만, 거기 쇠가 많으니까, 거기서 무기를 만들어가지고 무장하기가 좋다, 아마 그렇게 해서 그리로 갔던 것 같아. 그래서 2년 동안 칼도 만들고, 창도 만들고, 화살도 만들고, 전부다 만들어 가지고 준비를 하는 거지. 그리고 그때 이 사람들의 군인이 몇 명이나 되나? 60만이에요. 지금 대한민국 군대만해요. 그러니까 만일 그걸 사실이라 그런다면, 그 당시에 이집트에서 이 시내산으로 간 인구가 한 200백만 명쯤 될 거라 이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한 200백만이 여기 함경도에서 살았다 이거지. 시나이반도에서 살았는데 시나이 반도의 크기가 얼마나 크냐하면 지금 우리 북한만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돼. 북한보다 조금 더 크겠지요. 그러니까 북한만한데서, 함경도에서 쭉 내려와 가지고, 요 카데스바니아 쯤 되면, 아마 원산이나 그쯤 되겠지요. 쭉 내려왔는데, 그러니까 2년 동안 준비해서, 무장해 가지고, 그렇게 하고서 가나안으로 갈 준비를 하는 거지요.


민수기: 1장 人口, 10장 出, 14장 Ka, 26장 人口, 27장 여, 31장 모


민수기 1장에 군인의 수를 세요. 군인의 수를 세었는데 60만이라 이렇게 돼. 그래 다 준비해가지고 출발을 하는 거야. 그것이 민수기10장이야. 그렇게 출발을 해가지고 어디까지 갔나? 카데스바니아까지 갔다. 그러니까 저기 시내산에서 쭉 가서 카데스바니아까지 갔다 이거지. 우리나라로 말하면 함경도에서 쭉 내려와서 원산이나 그쯤까지 왔다 그렇게 생각하면 될 거에요.

그래서 카데스바니아에서 10명을 뽑아가지고 가나안의 형편이 어떤지, 그걸 탐정하러 보내는 거야. 정탐하러 10명이 갔다 왔는데, 그 10명 가운데서 8명이 어떻게 보고했나 그러면, “가보니까 사람들이 다 장대하고 우리는 그들에 비하니까 메뚜기만도 못하더라.” 했어요. 여러분 알지요? 다윗이 때려눕힌 게 누구에요? 골리앗이죠. 거기 골리앗 같은 놈들만 산다 이거지. “사람들이 장대하고 우리는 그 앞에 가니까 메뚜기만도 못하더라. 그러니까 가면 도저히 우리가 살아남지 못한다.” 그렇게 보고한 놈들이 8명이에요. 그리고 두 사람만, 여호수아하고 갈렙하고 두 사람만이,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문제없다.”했어요.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눕히는 것처럼, 그 놈들이 힘은 셀지 모르지만 우리는 머리가 있지 않느냐, 골리앗하고 힘으로 싸울 수는 없지만 머리를 써서 싸우면 이기지 않느냐 이거지. 우리는 머리로 싸우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자. 여호수아하고 갈렙하고는 그렇게 말하는데, 8명은 “안 된다. 가면 죽는다.”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누구 말을 들었나 하면, 8명의 말을 들었다 이거지. 그러곤 “우린 안 간다. 모세가 아무리 뭐라 그래도 우리 안 간다. 거기 가서 죽는 거 보다 여기서 죽던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누구 하나 대장으로 세워 이집트에 돌아가서 거기서 우리가 노예 생활하는 게 더 낫다.” 그러고는 다 안가겠다고 그렇게 했어요.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이 백성을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이렇게 말 안 듣고, 이렇게 틀어 막힌 백성을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그러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거지. 그래서 하나님께서, “좋다. 그렇다면 너희 60만 다 죽이겠다.” 아주 전멸하겠다고 했어요. “너희 60만 다 죽이겠다. 그렇게 하고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자.” 그래서 다 죽이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또 모세가,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우리를 이끌어내셨는데, 사람들이 지금 정말 하나님이 살아있나 보고 있는데, 여기서 다 죽었다 그런다면 하나님께 그 무슨 망신입니까? 그러니까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렇다면 40년 동안 살려주마. 40년 동안 살려줄 테니까, 그 동안에 너희들이 새로운 군대를 길러내라.” 그래서 새로운 군대를 기르는 거야. 그래서 이집트에서 나올 때 20살 이하짜리와 이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들을 군대로 조직해가지고, 군대훈련을 시켜 다시 새로운 군대를 만드는 거야. 이것이 민수기 제26장이야. 다시 새로운 군대를 만들어 가지고 인구조사를 또 하는 거야. 그랬더니 그 인구가 얼마나 됐나 그러면 60만이 됐다 이거지. 그러니까 제1장의 인구조사, 이건 애굽에서 온 사람들이지. 애굽에서 온 사람들이니까 뭐랄까, 에굽에 미친 사람들이지. 노예를 해도 거기 가서 사는 게 게 낫다는 이런 사람들이지. 요새말로 하면 독재체제에서 산 사람들이지. 그런데 여기 26장은 다시 길러낸 사람들이지. 민주체제로 다시 길러낸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1장의 먼저 번 사람들 40년 안에 다 죽었어요. 그렇게 하고 여기 새로 길러낸 60만이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40년을 광야에서 헤매게 만든 게 뭐냐 하면 소위 카데스 사건이라는 거지. 카데스 사건이라는 게 말하자면, “우린 죽어도 안가겠다. 우린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겠다. 우리는 하나님 모른다.” 이러고 달려드는 거지. 그래서 결국은, 아마 정확하게 말하면 38년이지, 카데스를 중심으로 그 근방에서 38년을 살았다 이거지. 그리고 새 백성 60만을 또 길러 가지고 다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지.

그래서 제1장의 인구조사, 이것은 옛날 헌 백성이지. 10장은 출발하는 거지. 14장은 카데스 사건이지. 그 다음에 26장은 새 백성이 60만이지. 그렇게 하고 새로운 지도자로 여호수아가 이끌고 가는데, 이게 27장이지. 그 다음엔 모세가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가나안 복지를 바라만 보고, 여호수아에게 부탁하고 자기는 거기서 죽는다 이거지. 그래서 제31장에서부터 모세의 노래가 나오고, 모세의 축복이 나오고, 모세가 죽는 장면이 나오지. 이것이 민수기의 얘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민수기 읽을 때는 이 14장을 읽어야 돼. 그걸 읽어야 왜 이 사람들이 40년 동안을 거기서 헤매게 되었나, 그걸 알게 되요. 40년 동안 하나는 버리고 하나는 새로운 백성을 만들어 내는 거지. 새 사람을 만들어 내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 40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이거지. 그렇지 않고 그냥 곧장 갔으면 뭐, 1년 안으로 다 들어갔을 거지. 그런데 그렇게 안 되니까 40년이 걸렸다 이거지. 자, 이게 지금 민수기 얘기에요.


신명기: 1장 Ka, 2장 東, 5장 十, 12장 宗, 16장 政, 22장 社, 27장 賞, 34장 모


그러니까 신명기라고 하는 거는 모세가 지금 요단강 건너가기 전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며 새 국민들에게 다시 얘기하는 것으로 제1장에 보면, 카데스바니아의 얘기가 우선 나오지. 이래서 너희가 광야에서 40년을 살게 된 거다, 이제 너희는 가나안 복지로 가는 거다, 이걸 얘기하는 거지.

그렇게 하고 우선 요단강 동편 쪽부터 먼저 공격을 하는 거야. 근데 요단강 동편하고 요단강 서편하고 어떤 관계인가 그러면, 요단강 동편은 우리나라 강원도, 경상도 같은 땅이야. 그리고 요단강 서편이 충청도 전라도 같은 곳이지. 말하자면 충청도, 전라도, 여기가 옥토지. 여기 아주 나무가 무성하고. 헬몬산 그러면 헬몬산에서 레바논의 백향나무라 그러잖아요? 그런 나무가 많이 자라고 그래서 거기가 지금 좋은 데란 말이지. 그러니까 맨 처음에 이 동편으로 가는데 동편이라 그러면 경상도 이쪽이거든. 그러니까 별로 좋지는 않는 덴데 목축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풀은 넉넉하다 이거지. 그때 세 지파가 자기네들은 여기서 살겠다, 그러고 거기에 남아있겠다, 그러니까 모세가 “안 된다. 가서 다 같이 싸움을 하고, 이긴 다음에 와서 차지해라.” 그래서 가족들은 거기 다 놔두고 거기 군인들만 다시 요단강을 건너가서 싸움 다하고 이긴 후에 다시 그리로 돌아오는 거지요. 그래서 동부에서 세 지파가, 12지파 가운데 세 지파가 동부에서 그냥 살게 되는 거지.

그렇게 하고 5장서부터는 다시 이집트에서 나온 얘기, 그리고 십계명 받은 얘기, 그렇게 하고 종교적인 규칙(12장), 정치적인 규칙(16장), 사회적인 규칙(22장), 이런 말하자면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서 너희가 이렇게 살아야 된다 하는 것을 모세가 새 민족에게 다시 한 번 가르치는 거지. 그렇게 하고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면 상을 받지만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희가 저주를 받는다. 벌을 받는다.” 그러고 나오는 게 27장이지. 그렇게 하고 34장에 가서 모세가 죽는 거지. 요것이 신명기에요.

신명기는 카데스바니아 사건, 요단강 동부로 가는 거, 그렇게 하고 출애굽기, 십계명, 그리고 말하자면 여러 법률들, 그걸 다시 한 번 쭉 설명하고, 27장에 가면,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면 되고, 안 들으면 죽는다, 이렇게 말하고 모세 자기는 죽는 거지. 이것이 신명기에요.


민수기: 1장 人口, 10장 出, 14장 Ka, 26장 人口, 27장 여, 31장 모


그렇게 하고 요건 아까도 말했지만 민수기라는 거지. 첫 번에 인구조사, 60만이야. 군인들만 60만이지. 그리고 10장엔 떠나는 거지. 그리고 14장에 지금 카데스바니아 사건이 일어나는 거지. 그래서 할 수 없이 40년을 카데스바니아에서 보내는 거지. 그 근방에서 40년, 정확히는 38년을 보내는 거지. 그렇게 하고는 새로운 군인이 60만이 나와 가지고 다시 시작을 하는 거지. 그래서 그 새로운 군인들을 여호수아라는 사람이 맡아 가지고 건거 나게 되는 거지요. 모세는 멀리서 그냥 바라만 보고, 요단강 건너가려고 하는 거기까지 가서 끝나는 거지.


레위기: 1장 祀, 8장 長, 11장 聖, 23장 節, 26장 賞.


레위기라는 건 뭔가 그러면 유태사람들의, 아까도 그랬지만, 일신교지요. 하나님을 섬기는데 어떻게 섬기냐. 우리가 요새는 예배 본다, 그러지만 그때는 예배 보는 게 아니고 제사를 지낸다, 이렇게 되거든. 제사를 지낸다. 그래서 예배 보는 방법이 레위기 제1장부터 쭉 나오거든요. 그리고 8장에 가면 그 다음엔 예배 인도하는 사람들, 그때는 소위 제사장이라 그러지. 요새로 말하면 목사지. 목사에 대해서 쭉 또 나온다 이거지. 그렇게 하고 11장에 가면 예배 보는 의미가 뭔가. 의미가 뭔가 그러면 거룩하게 되는 거다. 예배 보는 게 뭐 어떻게 해야 되는가? 거룩해지는 거다 이거거든. 그리고 1년에도 부활절, 추수감사절, 몇 번 큰 예배 보는 절기가 있거든. 23장에 가면 그 절기를 말하는 거지. 그리고 26장에 가면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면 상을 받지만 안 들으면 또 벌을 받는다. 이제 그런 얘기가 또 나오는 거지.



<그림 2. 거룩할 성(聖>


여기서 거룩할 성(聖) 자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이(耳)는 귀라는 거지. 목(目)은 눈이지요. 비(鼻)는 코지요. 구(口)는 입이지요. 그렇게 넷인데 그 대표로 귀와 입만 나타낸 것이고, 그 다음에 그 아래 세금인데 맨 위의 이건 하늘이지요.  가운데는 사람이지. 그리고 아래는 땅이지. 그리고 이 셋을 꿰뚫는 것이지요. 이걸 소위 거룩할 성(聖) 자라 하지요.

우리가 거룩하다 하는데, 거룩하다는 게 뭔지 난 잘 몰라요. 거룩하다는 게 뭔지 기껏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거는 깨끗하다는 정도지. 그러니까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깨끗하다.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깨끗하다.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올라가면 깨끗하다. 그렇잖아요? 산꼭대기만 올라가면 자꾸 깨끗하잖아요. 아래로 내려오면 자꾸 더러워지잖아요. 그러니까 더러운데서 깨끗한 데로 올라가는 거, 이게 소위 거룩해 지는 거지요.

그런데 이 성(聖)자는 어떻게 썼는가? 우리가 영어공부를 한다고 그럴 때, 처음에 귀가 뚫려야 해. 영어 말하는 것이 다 들려야 돼. 그 다음에는 눈이 뚫려야 돼. 그러니까 영어 책을 맘대로 볼 수 있어야 돼. 그 다음엔 코가 뚫려야 돼. 마음대로 작문할 수 있어야 돼. 그렇게 하고 입이 뚫려야 돼.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게 돼야 돼. 요새말로 말하면 마스터(master)했다 이거지. 영어를 마스터했다. 마스터했다는 게 뭔가 하면, 귀도 뚫리고, 눈도 뚫리고, 코도 뚫리고, 입도 뚫리고, 이걸 마스터 했다 그래. 물론 학문하는 사람은 어학부터 그렇게 시작하지만, 그 다음에 아래를 보면 맨 밑금이 과학이야. 과학을 마스터해야 돼. 과학의 이론을 들을 줄 알고, 실험할 줄 알고, 연구할 줄 알고, 그렇게 하고 실천할 줄 알고, 그렇게 하고 설명할 줄 알고. 그러니까 애초에 이 과학을 마스터해야지. 그 다음에 가운데 이건 철학이야. 그래 언제나 과학의 뿌리가 뭔가? 철학이에요. 과학을 자꾸 하다보면 과학 가운데서도 모르는 문제가 나와. 그 모르는 문제를 어디서 해결해 주나? 철학에서 해결해 줘. 과학의 뿌리가 철학이야. 그리고 철학의 뿌리가 종교야. 철학에 또 모르는 문제가 나와. 그걸 어디서 해결해 주나? 종교에서 해결해 줘. 그러니까 과학, 철학, 종교, 이 셋을 다 꿰뚫어야 돼.

그것이 말하자면 지도자지. 지도자라는 사람은 역시 과학도 알아야 되고, 철학도 알아야 하고, 종교도 알아야 지도자지 과학도 전혀 모른다, 철학도 모른다, 종교도 모른다, 그러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 아브라함이라 그러면 그는 이 셋을 다 뚫은 사람이야. 모세도 다 뚫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지도자지 그렇지 않으면 지도자가 될 수가 없지. 그래서 이걸 다 뚫어야지. 과학에 있어서도 귀도 뚫리고, 눈도 뚫리고, 다 뚫려야지. 그렇게 해서 무지의 세상으로부터 아주 지혜로운 세계로 올라간 거, 그걸 성(聖)이라 그러는 거지. 그게 거룩한 거야. 그러니까 이런 게 없이, 그저 그냥 거룩하다 그러면 안 돼. 다 속에 꽉 차서 거룩해야지. 그렇잖아요? 겸손해도 이거 다 알고 겸손해야지, 그저 “네, 네” 해가지고는 안 돼. 예수님이 겸손하다고 할 때, 예수님은 벌써 그 당시의 과학, 철학, 종교, 다 꿰뚫어 알고서 겸손한 거지 그저 겸손한 거 절대 아냐. 그러니까 이것이 속에 들어가야 사람 속이 꽉 차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속이 텅 비어서 바람만 불면 날아가지.

그래서 우리가 거룩하다는 글자 하나를 잘 알면 우리 성서라고 하는 것도 우리가 알 수 있어. 이거 거룩한 책이거든. 이 거룩한 책에는 과학도 들어가 있고, 철학도 들어가 있고, 종교도 들어가 있어. 다 들어가 있지. 그저 무식한 사람이 그냥 적은 그런 게 아니야. 이게 벌써 4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거거든. 4천 년 전부터 이집트 문화, 바빌론 문화, 인도 문화, 이런 모든 문화의 결정체로서 지금까지 내려오는 거지 이게 갑자기 어디서 뭐, 그렇게 되는 게 아니야. 예수 그러면 예수가 갑자기 뭐 그렇게 되는 게 아니야. 다 수천 년의 역사의 끄트머리에 내려오는 거고, 그 분이 또 다시 역사의 첫 시작을 해서 가는 거고. 이렇게 되는 거지. 이런 역사적인 배경과 미래가 없으면 성경이라 할 수가 없는 거지. 그렇잖아요?


출애굽기: 1장 학, 2장 모, 3장 神, 14장 紅, 20장 十, 32장 十


출애굽기 1장은 이집트에서 학대받던 거, 그 다음에 2장은 모세가 자라게 되는 거, 그리고 3장에 가면 모세가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거, 그렇게 하고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홍해바다를 건너가는 것이 14장, 그리고 20장에 가면 십계명이야. 십계명을 받는 거지. 그런데 32장에 가면 십계명을 또 받게 돼. 그건 요전에도 말했지요.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는데 이스라엘 민족들은 다시 이집트에서 섬기던 금으로 만든 송아지, 아론을 앞세워서 금으로 만든 송아지에게 절을 하고, 춤을 추고, 야단쳤거든요. 요전에 그랬지요. 그래서 모세가 그 꼴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십계명 받은 돌 비석을 내던졌다 이거지. 내던져서 다 깨지고 그리고 춤추는 사람 3천명을 그냥 죽이고 만다 이거지. 모세도 무서운 사람이에요. 3천명을 죽였으니. 그렇게 하고 자기는 시내산에 또 올라가.

이 십계명 받을 때도 40일 금식기도 해. 그런데 두 번째 올라가서도 40일 금식기도 해. 난 모세가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모세의 종교라고 하는 게 거저 쉽게 나온 게 아니야. 40일 금식기도를 두 번씩이나 했어. 역사에 그런 사람 없어요. 아씨씨 프란시스가 40일 금식기도 하고 인도의 산다싱이 40일 금식기도 했다는 그런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두 번씩이나 했다는 거는 없어. 그러니까 모세라고 하는 사람의 종교가 말하자면 최고의 종교라고 봐야 돼. 예수님도 40일 한번 했는데, 이 사람 모세는 두 번을 했어. 그만큼 모세가 대단해. 모세가 보통내기가 아니야. 정말 위대한 인물이야. 이런 사람이니까 정말 민족을 끌고서, 200백만을 끌고서 40년을 헤매면서 가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가겠어요. 그 고집 세고, 말 안 듣고, 그런 사람들 끌고 어떻게 갑니까? 그래 이 사람은 정치가도 되고, 종교가도 되고, 문화인도 되고, 여러 가지가 다 구비된 말하자면 온전한 전인(全人)이라고 볼 수 있어. 그런 사람이니까 이스라엘 종교에 아브라함 다음에 모세가 나오는 거지. 그리고 모세 오경은 전부다 이 사람이 썼다 이렇게 되니까 그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이 사람은 바빌론 문명도 알고, 이집트 문명도 알고, 다 아니까 이걸 쓰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쓰겠어요?


창세기: 1장 天, 3장 人, 6장 노, 12장 아, 25장 이, 28장 야, 37장 요


창세기는 요전에 말했지. 1장은 천지를 창조했다, 그리고 3장에 가면 사람을 창조했다, 그리고 6장에 가면 하나님이 화가 나서 물로 다 멸망시키고 만다. 자꾸 죽인다, 죽인다 하는 얘기가 많은데, 그래서 오토(Otto)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라 해서 트레멘덤(tremendum)과 패시나툼(fascinatum)이라는 말을 했지. 트레멘덤하는 건 벌벌 떤다는 전율이지. 하나님은 한 없이 무서워. 그러니까 죽이려면 그냥 인류를 다 죽이고 말아. 그거 정말 무섭지. 그리고 또 하나님이 살리려면 인류를 다 살려. 그럴 때 패시나툼(fascinatum), 패시나툼은 매력적이다는 말이지. 하나님은 한없이 살갑다 이거지. 하나님은 무섭기도 하고 살갑기도 하고, 그래 생사(生死)의 주인이라 이거지. 그래서 오토라는 사람이 구약을 읽어보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이거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생사의 주인공이야. 그러니까 하나님이 거룩하다는 건,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그런 힘을 가진 걸 거룩하다고 그런다, 오토란 사람은 그렇게 말해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 거룩하다는 걸 단순히 그렇게 독재자처럼 말이지, 히틀러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 우리 동양의 거룩할 성(聖)자로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다 뚫린 분이야, 하나님은 다 통달한 분이야, 그러니까 그 하나님이 우리를 가르칠 수도 있고, 지도할 수도 있고, 다 할 수 있는 거지. 그러니까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너희들도 거룩해라, 그 말은 결국 하나님이 다 아는 것처럼 너희들도 다 알아야 된다, 그렇게 우리가 해석하는 게 제일 좋아요.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는 다 무식한 사람들만 모인 기독교가 되니까. 물론 무식한 사람도 다 구원받는 거는 사실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기독교의 지도자로 있는 사람들은 무식한 것을 좋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 남보다 더 과학에 대해서도 더 알아야 되고, 철학에 대해서도 더 알아야 하고, 종교에 대해서도 더 알아야지. 모르는 게 하나의 자랑처럼 그렇게 해서는 안 돼. 그러니까 땅과 사람과 하늘, 종교와 철학과 과학을 다 꿰뚫어 알아야 돼.

창세기 6장은 노아 얘기고, 12장은 아브라함 얘기, 25장이 이삭의 얘기, 28장이 야곱의 얘기, 37장이 요셉 얘기지.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 이 네 사람의 얘기지.

이상이 모세오경이지요. 모세오경의 내용은 이것이 전부에요.


그럼 교재 원문을 읽어 봅니다. 요전에 창세기는 했지요? 창세기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누군가? 아브라함이다 이거지. 그런데 아브라함에 대해서 신약에 있는 사람들, 예를 들면 바울이라던가, 요한이라던가, 이런 사람은 아브라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제 그런 문제에요. 그래서 맨 처음에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 나오는 말을 봅니다. 그러니까 이건 바울의 얘기지요.


(1) 上帝所許 亞伯拉罕及其裔 非指衆裔言之 乃指其裔一人 卽基督也 [갈라디아서 3:16]


상제소허(上帝所許), 하나님께서, 상제(上帝)라고 하는 게 우리 여기서 하나님이지, 하나님께서 소허(所許), 허락하신 아브라함 급기예(亞伯拉罕及其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브라함 또 그 후예들. 그 후예들이란 비지중예언지(非指衆裔言之), 그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말이 아니야. 물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니까 다 이스라엘 사람이지. 이스라엘 족속인데, 이스라엘이란 말이 아니야. 그럼 누군가? 내지기예일인(乃指其裔一人),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가리키는 거야. 그 한 사람이 누군가? 즉기독야(卽基督也), 즉 예수님이야.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후예 그럴 땐 이스라엘 민족을 말하는 게 아니고 그건 예수를 말하는 거야. 아브라함의 아들 그러면 이삭인데, 이삭을 말하는 게 아니야. 예수를 말하는 거야.

이런 걸 소위 해석학이라 그래. 이렇게 바울 자기는 아주 새롭게 해석한다. 왜? 예수를 통해서 온 인류가 구원받게 됐으니까 아브라함이 인류의 조상이라고 그러는데 그것은 유태사람의 조상이라는 말이 아니지 않느냐? 이스라엘의 조상이라 하면 어떻게 인류의 조상이겠냐?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서 예수가 나왔지 않느냐.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 다윗의 자손 예수, 이렇게 나온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그건 예수란 말이지. 무슨 이삭이란 얘기도 아니고 유태사람이란 말도 아니야. 그래야 아브라함이 인류의 조상이 되지. 인류의 조상이 뭔가 하면 믿음의 조상이라 이거지. 그래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거지.


(2) 使亞伯拉罕之福 由基督耶蘇 施及異邦人 致我 能信 可愛 上帝 所許之聖神焉 [갈라디아서 3:14]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복을 받게 됐어. 누가? 인류가. 그래서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된다.’ 그런 말이 나와요.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다, 복의 뿌리라 이거지. 아브라함이 복의 뿌리가 됐어. 그런데 그 복의 뿌리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뭐 가나안 복지에 가서 잘 먹고 잘 사는 그걸 말하는 건가? 바울은 그게 아니다 이거지. 그게 아니고 뭔가? 유기독예수(由基督耶蘇), 예수님 때문에, 시급이방(施及異邦), 이방사람에게도 복이 돌아가게 됐어. 예수님 때문에 이방사람, 더 크게 말하면 모든 인류가 복을 받게 됐어. 치아(致我), 그런데 그 복이 나한테 까지 왔어. 바울 나한테까지 왔어. 그래서 능신(能信), 나도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을 나도 가지게 됐어. 능신(能信), 능히 나도 믿게 됐어. 그래서 가애(可受), 사랑하게 됐어. 누굴 사랑하게 되나? 상제(上帝), 하나님을 사랑하게 됐어.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무얼 받게 됐나? 소허지성신(所許之聖神), 성신(聖神)을 받게 됐어.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라는 게 뭔가 하면, 성신을 받게 된 게 복의 근원이라 이거지. 잘 먹고 잘살자는 얘기가 아니야. 하나님의 성신을 받게 됐어. 하나님의 거룩한 생각, 하나님의 거룩한 뜻, 그런 것을 알게 됐어. 그래서 나도 사람이 됐어. 나도 사람 구실을 하게 됐어. 이게 복이라 이거지.

자, 그렇게 말 들으니까, 바울의 생각이 옳잖아요. 이 바울이라는 놈이 대단한 놈이야, 이놈이. 옛날 사람들은 그저 고전에 있다 그러면 꼼짝 못하고 그대로만 쫓아가는 사람인데, 바울은 그게 아니거든. 제멋대로 해석해서라도 우리 인류에 도움이 되면 된다 이거거든. 그러니까 이렇게 딱 해석을 해 놨다. 이렇게 해석한 걸 보고서 그 당시에 희랍사람이나 로마사람들이 “옳다. 우리도 예수를 믿어야 되겠다.” 그러고 믿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이런 해석이라는 게, 이게 여간 중요한 게 아니에요.


(3) 亞伯拉罕篤信上帝 使死者生 變無爲有 萬物爾而造 故在其前 得爲吾衆之父 亞伯拉罕本絶望 因信而有望 得爲萬民之父 爾之後裔 將若星然  [로마서 4:17]


그 다음에 아브라함 독신상제(篤信上帝), 아브라함이 아주 상당히 깊이 하나님을 믿었다 이거지. 독신(篤信), 독(篤)이라는 건 돈독할 ‘독’ 자인데, 아주 깊이 하나님을 믿었다. 그런데 어떤 하나님을 믿었나? 사사자생使死者生 변무위유變無爲有 만물이도이조萬物爾而造

사사자생使死者生,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생명의 근원이라 이거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그리고 변무위유變無爲有, 없는 것을 변해 가지고 있게 만드시는 하나님.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도 밤낮 ‘하나님은 무(無)에서 우주를 창조했다.’ 그런 말이 자꾸 나오게 되거든. 없는 것을 변해서 유(有)로 만드는 하나님.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이렇게 만들었어. 그럼 뭐로 있게 만들었나? 만물이도이조(萬物爾而造). 도(道)는 말씀이지. 말씀을 가지고 만물을 있게 만들었다 이거지. 하나님은 우주를 뭐로 만드나? 말씀으로 만들었다 이거지. 말씀에 대한 해석이 나중에는 ‘말씀이 그리스도다.’ 이렇게 되면 요한복음 1장 1절이 나오는 거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말씀이 하나님과 같이 있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다.’ 이런 생각이 나오는 거지. 그러니까 이 우주를 만들 때도 그저 되는대로 만든 게 아니야. 깊이 생각해서, 이치에 꼭 맞게, 그러니까 진리로서 우주를 만든 거지. 그저 그냥 말씀으로 한 마디 탁, 이게 아냐. 잘 생각을 해가지고 진리와 하나 되게 만들었어. 이 우주가 천만년이 지나가도 깨지지 않게, 그렇게 아주 완전무결하게 만들었다 이거지. 말씀으로 창조했다 이거지. 그런데 무슨 물질을 가지고 또 만드는 게 아니야. 없는 것을 있게 만들었어. 요전에 노자가 한 말 있지요? 텅 비었는데 자꾸 나온다. 허위불굴동이유출(虛而不屈動而愈出) 그랬지요? 이거 노자 사상하고 같아요. 아주 텅 비었는데, 불교에서는 진공묘유(眞空妙有)야. 진공(眞空)이 묘유(妙有)가 되는 거야. 다 같은 사상이지. 텅 비었는데 자꾸 나온다.

내가 오늘 여러분께 내가 아는 모든 말 다 할 거에요. 다하면 내 속이 텅 비는 거야. 텅 비면 요 다음 날 되면 또 가득 차. 그래 또 하고. 그런데 오늘 조금 남겨두면 요 다음에 안 나와. 다 말해 줘야지. 이게 소위 무(無)를 유(有)로 만든다는 거야. 이게 사랑이라는 거야. 다주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야. 또 가득 차. 어린애가 엄마 젖을 다 빨아먹으면 그 다음날 또 가득 차. 또 다 빨아먹으면 또 가득 차. 이게 사랑이라는 거야. 아이가 빨아먹으니까 이제 젖 안 난다, 이게 아니에요. 다 빨아먹으면 또 꽉 차서 또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다 가르치면 또 꽉 차서 또 가르치게 돼. 이런 걸 사랑이라 그래. 그래서 무(無)가 변해서 유(有)가 되는 거, 이게 사랑이라는 거야.

사사자생(使死者生), 이것은 생명이라는 것, 죽은 자를 살린다, 이건 생명이라는 거고, 변무위유(變無爲有), 이것은 사랑이라는 거고, 만물이도이조(萬物爾而造), 이것은 우리 기독교에서 도(道)라 것, 말씀이라는 것. 그러니까 말씀, 사랑, 생명, 이게 하나님의 속성이라 이렇게 보는 거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그런 하나님으로 믿었다 이거지. 하나님은 진리의 근원이요, 생명의 근원이요,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야. 그것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믿음이라는 거지.

아브라함독신상제(亞伯拉罕篤信上帝),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깊이 믿었다 이거지. 고재기전(故在其前),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득위오중지부(得爲吾衆之父), 온 인류의 아버지가 됐다 이거지. 온 인류의 아버지가 됐어. 아브라함(亞伯拉罕)이라는 사람이, 본래 절망(絶望)에 빠졌던 사람이야. 왜? 아브라함 나이는 백 살이거든. 아브라함의 마누라는 90세거든. 근데 아브라함의 아들이 없는 거야. 이러니까 절망에 빠졌지. 그런데 인신(因信)이야. 그래도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지 않나, 하나님의 힘을 믿은 거야. 그게 신(信)이라는 거야. 하나님의 힘을 믿은 거야. 믿고서는 언제나 유망(有望), 희망을 가지고, 언제나 희망을 가지고 우르를 떠났어. 우르에서 예루살렘까지 대개 몇 리가 되나? 5천리에요. 여기서 부산가는 거, 다섯 번 가야 돼.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4천리야. 하란에서부터 예루살렘 있는 데까지 또 천리야. 그렇게 하고 저 카이로까지도 또 천리야. 아브라함이 걸어 다닌 것만 해도 얼마나 걸어 다녔는지 몰라. 뭐든지 알기 위해서 또 찾아다니고, 또 찾아다니고, 그래 가지고 아브라함 일생에 한 6천리 걸었을 것 같아.

그리고 시내산에서 카데스바니아까지도 천리야. 또 저 나사렛 호수까지 또 천리야. 그러니까 그 당시에 군대 60만 명을 끌고서 천리 길을 간다는 게, 이게 보통일이 아니지요. 이게 웬만한 사람 같으면 못하지요. 그 어떻게 하겠어요? 60만 명을 먹여야지, 무기도 있어야지, 뭐도 해야지. 그걸 다 준비해가지고, 작전을 짜 가지고, 그러고 가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게 보통 대가리 가지고는 못하는 거지. 이게 정말 큰 대가리라야지. 이게 정말 보통 대가리 가지고는 안 되는 거지. 그러니까 모세도 위대한 사람이지. 거저 쉽게, ‘하나님이 하라하니까 했다.’ 그런 정도가 아니지. 하나님이 뭐 다 힘주니까 됐다, 이렇게 되지 않지. 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하나님 하고 의논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40일을 금식하면서 하나님하고 의논해서 하는 일이지 거저 쉽게 됐다고는 보지 않아. 그렇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거저 쉽게 되겠어요? 한 민족이 지금 흥하느냐 망하느냐가 여기 달려있는데, 그게 거저 쉽게 되겠어요?

자 그래서, 아브라함이 유망(有望), 희망을 가지게 되었어. 그래서 결국은 만만의 아버지가 된 거다. 이지후예(爾之後裔), 네 후예(後裔)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장약성연(將若星然), 장차 하늘의 별처럼 많아진다. 이거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말인데. 별처럼 많아진다, 이것은 온 인류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라, 그걸 그렇게 바울이 해석을 하는 거지.


(4) 擧目遙見 亞伯拉罕懷中 有拉撒路 [누가복음 16:23]


그리고 예수님도 나사로, 거지 나사로의 얘기를 할 때, 부자가 지옥 속에 떨어져 가지고 거목(擧目), 눈을 들어서 멀리 하늘을 쳐다보니까 아브라함 품안에 유나사로(有拉撒路), 나사로가 앉아 있더라 이거지.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게 하나의 하늘나라나 마찬가지지. 그러니까 믿음의 조상이 결국 무엇이 되었나? 모든 믿는 자를 받아들이는 하늘나라가 됐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렇게 말하는 거지.


(5) 我之日 爾祖亞伯拉罕 極欲見之 見則樂矣 未有未有亞我在 [요한복음 8:56]


이것도 또 예수님 말이지. 요한복음 8장 56절이지. 아지일(我之日), 내가 지금 나와서 하나님 나라를 전도하는데 오늘 이 날을 이조아브라함(爾祖亞伯拉罕),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극욕견지(極欲見之), 얼마나 보고파서 그랬겠냐. 그러니까 예수도 또 새로운 해석이에요. 아브라함이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겠냐. 나를 얼마나 보고 싶었겠냐. 견즉락의(見則樂矣), 봤으면 얼마나 좋아했겠냐. 미유미유아아재(未有未有亞我在). 미유미유(未有未有)라는 게, 아브라함 있기 전에, 아재(我在), 아브라함 있기 전부터 나는 있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가? 아브라함보다 나는 훨씬 더 큰 사람이다. 나는 아브라함보다 훨씬 더 위대한 존재다. 그러니까 뭐 ‘옛날 아브라함보다 더 옛날에 있었다.’ 그런 말 보다는 ‘난 아브라함의 믿음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정말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런 나를 아브라함이 봤으면 얼마나 반가워했겠느냐.’ 하는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이에요.


자 고거 한번 내가 다시 읽을게요. 그러니까 내가 멎으면 거기가 끊어지는 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끊어지는데 금을 요렇게 그으면 돼.

상제소허(上帝所許), 아브라함급기예(亞伯拉罕及其裔), 비지중예언지(非指衆裔言之), 내지기예일인(乃指其裔一人). 상제소허지성인언(上帝所許之聖神焉). 그렇게 하면 의미가 통하는 거에요.

또 그 다음 절. 사아브라함지복(使亞伯拉罕之福), 거기 끊고, 유기독예수(由基督耶蘇), 거기 끊고, 시급이방인(施及異邦人), 거기 끊고, 치아능신(致我能信), 거기 끊고, 가수상제소허지성신언(可受上帝所許之聖神焉).

그 다음에 아브라함독신상제(亞伯拉罕篤信上帝), 거기 끊고, 고재기전(故在其前), 거기 끊고, 득위오중지부(得爲吾衆之父), 거기 끊고, 아브라함본절망(亞伯拉罕本絶望), 거기 끊고, 인신이유망(因信而有望), 거기 끊고, 득위만민지부(得爲萬民之父), 거기 끊고, 이지후예(爾之後裔), 거기 끊고, 장약성연(將若星然).

그 다음에 거목(擧目), 거기 끊고, 요견(遙見), 아브라함회중(亞伯拉罕懷中), 유나사로(有拉撒路).

그 다음에 아지일(我之日) 끊고, 이조아브라함(爾祖亞伯拉罕), 극욕견지(極欲見之), 견즉락의(見則樂矣), 미유미유아(未有未有亞), 아재(我在). 그렇게 되면 돼.

그러면 주기도문으로 끝냅시다.




























        

        

        

4강 출애굽기, 레위기, 2006/9/24


2. 출애굽기

(1) 我鑒吾民受苦於埃及我降臨以拯之 [출애굽기 3:7]

(2) 我必以爾爲民我亦必爲爾之上帝 [출애굽기 6:7]

(3) 惟汝室以血爲徵我見之將逾越爾室 [출애굽기 12:13]

(4) 爾果聽我言守我約則於列國中我必以爾爲寶 [출애굽기 19:5]

(5) 余而外不可別有上帝 [출애굽기 20:3]

(6) 全能之上帝仁慈矜憫恒忍施恩眞實無妄錫恩於人至千百世 [출애굽기 34:6]

(7) 有雲覆會幕耶和華之榮光盈其室摩西不能進會幕雲不移民不行及夜雲狀若火以色列悉目擊焉 

    [출애굽기 40:34-38]


 모세(摩西) (2. 출애굽기)

(1) 例授自摩西恩寵眞理則由耶蘇基督 [요한복음 1:17]

(2) 共立新約我將以我律法置其衷銘其心我爲彼上帝彼爲我民 [히브리서 8:10]

(3) 律法聖誡亦聖義且善也誡旣善乃爲死我何耶 [로마서 7:12]

(4) 因賴基督耶蘇受聖神得生之法脫我於陷罪致死之法 [로마서 8:2]

(5) 惟愛人愛人者盡律法 [로마서 13:8]

(6) 摩西受洗於雲海食靈食飮靈飮其所飮者隨在皆有靈磐之水磐者基督也 [고린도전서 10:2]

(7) 摩西蒙帕於面讀摩西書有帕蒙心主可去[고린도후서 3:13]



본문 해석


2. 출애굽기

(1) 我鑒吾民受苦於埃及 我降臨以拯之 [출애굽기 3:7]

내 백성들이 애급에서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내가 강림하여 그들을 구했다.

(2) 我必以爾爲民 我亦必爲爾之上帝 [출애굽기 6:7]

너를 꼭 나의 백성으로 삼고 나 또한 반드시 너의 하나님이 되겠다.

(3) 惟汝室 以血爲徵 我見之將逾越爾室 [출애굽기 12:13]

다만 너의 안방에 피를 발라 징표로 삼으라. 그러면 나는 그것을 보고 너의 집을 건너뛰고 지나갈 것이다.

(4) 爾果 聽我言 守我約 則於列國中 我必以爾爲寶 [출애굽기 19:5]

네가 진실로 내 말을 듣고 내 약속을 지키면 열국 가운데서 나는 꼭 너를 보배로 삼겠다.

(5) 余而外 不可別有上帝 [출애굽기 20:3]

나 이외 다른 하나님을 따로 두어서는 안 된다.

(6) 全能之上帝 仁慈 矜憫 恒忍 施恩 眞實 無妄 錫恩於人 至千百世[출애굽기 34:6]

전능하신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늘 참으시며 진실하시고 거짓이 없으시며 사람들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

(7) 有雲 覆會幕 耶和華之榮光 盈其室 摩西不能進會幕 雲不移 民不行 及夜雲狀若火 以色列悉目擊焉  [출애굽기 40:34-38]

구름이 있어 회막을 덮었으며 여호와의 영광이 그 예배실에 가득하였다. 모세도 그 회막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구름이 이동하지 않으면 백성도 이동하지 않았다. 밤이 되면 구름의 모습이 불처럼 빛났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그것을 목격했다.


 모세(摩西) (2. 출애굽기)

(1) 例授自摩西 恩寵眞理則由耶蘇基督 [요한복음 1:17]

율법은 모세로부터 받게 되었으나 은총과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다.

(2) 共立新約 我將以我律法 置其衷 銘其心 我爲彼上帝 彼爲我民 [히브리서 8:10]

함께 새로운 약속을 세웠으니 내 율법을 가져다 그 맘속에 두고 그 심장에 새기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된다.

(3) 律法 聖誡亦聖義 且善也 誡旣善 乃爲死我何耶 [로마서 7:12]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 또한 거룩하고 의롭고 또 선한 것이다. 계명이 그렇게 선한 것인데 나를 죽게 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4) 因賴基督耶蘇 受聖神 得生之法 脫我 於陷罪致死之法 [로마서 8:2]

그리스도 예수를 힘입음으로 말미암아 성신을 받게 되었고 생명의 법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죄에 빠져 죽음에 이르는 율법으로부터 나를 벗어나게 해주었다.

(5) 惟愛人 愛人者盡律法 [로마서 13:8]

오직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완성한 것이다.

(6) 摩西受洗於雲海 食靈食飮靈飮 其所飮者 隨在 皆有靈磐之水 磐者基督也

   [고린도전서 10:2]

모세는 구름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았다. 영적인 음식을 먹고 영적인 음료를 마셨다. 마시는 자는 곳에 따라서 다 영적인 반석의 물을 가졌는데 반석이라 함은 그리스도라.

(7) 摩西蒙帕於面 讀摩西書 有帕蒙心主可去[고린도후서 3:13]

모세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모세의 글을 읽을 때 수건이 마음을 가리고 있는데 주께서 그것을 제거하실 수 있다.



기도


감사하신 하나님, 오늘 아침에도 저희들을 불러주시고, 당신의 말씀을 생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을 주신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늘 생각하면서 당신의 진리를 깨닫는 날이 있을 수 있게 하셔서, 당신의 진리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당신께서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이 나라를 살리고 이 나라에 조금이라도 힘을 주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당신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 당신께서 같이하여 주시기를 바라 와서 예수님 공로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경 강의


출애굽기의 핵심은 율법이라고 하는 거지요. 율법을 요새말로 말하면 법이라는 거지요. 법. 그런데 지금 모세라는 사람은 유태나라를 일으켜 세우려니까, 나라의 터가 나라의 뿌리가 법이니까, 말하자면 그 법을 만들어 낸 사람이지요. 이 사람들은 그 법을 하나님께서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다, 그렇게 이 사람들은 믿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법이라는 게 무엇인가? 요새도 법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게 뭔가 그러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또 남을 속이지 말라, 이런 거지요. 옛날 한나라 때는 법삼장 그랬는데. 법삼장이라는 게 뭔가 그러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이것인데 그게 법의 핵심이지요. 그런데 그 법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그 법을 지키는 어떤 힘이 있어야 돼. 우리나라로 말하면 지금 법을 지키는 게 국가지요. 만일 누가 살인을 했다 그러면 나라에서 그 사람을 갖다 죽이는 거지. 간음을 했다 그래도 또 나라에서 그 사람을 잡아다가 어떻게 하고. 그러니까 나라에서 그렇게 하는데, 이때, 모세 때는 하나님이 직접 다스린다는 말하자면 신정체제지.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린다. 그러니까 죽여도 누가 죽이나? 하나님이 죽인다. 그래서 요전에 여러분도 대개 알지만 모세가 40일 금식기도하고 십계명을 받아서 내려오는데 아래서는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가지고 거기다가 절하고 야단치고 있으니까, 모세가 십계명을 조각한 비석을 내던졌다고 요전에 그러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날 거기서 우상숭배한 사람 3천명을 그대로 죽이고 말았다. 그렇게 하나님이 직접 다 죽이고 마는 거지.

십계명 속에 맨 처음이,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그렇지요? 그 다음에 우상 섬기지 말라. 그런데 우상 섬기지 말라 그걸 범하면 그냥 죽이고 마는 거지. 그러니까 아주 법이 세지요. 또 간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고 했는데, 유태사람들이 미디안이라고 하는 땅에 가서 정복하고, 거기 있는 미디안 여자들을 말하자면 요새로 말하면 성폭행한 거죠. 성폭행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날 성폭행한 사람 2만 4천명을 죽이고 말았다 그렇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살인하지 말라도 문제지만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는 걸 하면 아주 죽이고 마는 거지요. 그러니까 읽어보면 2만 4천명을 죽이는 얘기도 나오고 3천명을 죽이는 얘기도 나오고, 그래서 누구든지 법을 어기면 가차 없이 죽이는 거야.

난 요새 우리나라에 법이 어떻게 됐는지 말 모르는데, 우리나라도 살인이 아마 제일 중한 벌을 받겠지요. 그런데 유태사람들은 간음하는 게 가장 중한 벌을 받아요. 왜 그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로마 그러면 로마가 왜 망했나 하면 간음 때문에 망한 거지. 로마가 음란 때문에 망했다는 거지. 소돔 고모라가 왜 망했나? 그것도 음란 때문에 망했다는 거지. 그리고 노아 때 왜 홍수로 사람을 쓸어버렸나? 음란 때문이지. 음란이라고 라는 걸 그렇게 나쁜 걸로 생각했어요. ‘네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그 말을 가정적으로 생각하면 다른 남자나 다른 여자를 쳐다보지 말라 이렇게 같은 말이라 이거지. 그러니까 아주 엄격한 1부1처제를 실시하고 또 이 사람들은 다른 나라 민족하고는 절대 결혼 못한다 했어요. 왜 그런가 하니 다른 나라 민족들은 다른 신을 섬기니까 다른 나라 민족하고 결혼하면 다른 신을 섬기게 되기 때문이지.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그랬는데 만일 다른 나라 여자하고 결혼해서 다른 신을 섬긴다고 그러면 그것도 죽음에 마땅한 거다 이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유태의 율법에서 제일 강한 것이 남녀의 순결, 그게 제일 강했어요.

그런데 그저 내 짐작인데, 그때 아마 성병이 굉장히 심했겠지요. 요새 에이즈 같은 거지. 지금 아프리카에는 1500만 명이 에이즈에 걸렸다 그러잖아. 그렇게 하면 다 죽고 마는 거지. 그때는 에이즈보다는 매독, 임질 그런 게 성했는데. 하여튼 로마에 성병이 걸려가지고 나중에는 징기스칸이 쳐들어가도 대항에서 싸울 군인이 없었다니까. 그러니까 할 수 없이 이방군인을 빌려다가 로마를 지키려고 했으니까. 그 만큼 성병이 심했나 봐요. 그래서 걸리면 다 아마 꼼짝 못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성병을 막느라고 이렇게 엄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여튼 정신적으로 벌써 자기 아내가 있는데 다른 여자를 본다고 그러면 정신적으로 잘못된 거니까.

그래서 살인, 간음, 도둑, 이 가운데 이 사람들이 제일 심하게 벌을 준 것은 간음이에요. 간음 가운데도 특별히 근친상간이라는 거. 근친상간은 그냥 불로 태워버렸어. 불로 태워버리고 근친상간이 아닌 간음은 돌로 때려죽이고. 그 만큼 이 사람들이 자기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쓴 거라 볼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간음을 가장 나쁜 죄라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 사람들이 죄 짓는다 그러면 간음죄가 최고로 중한 죄지.

그래서 우상을 섬긴다 그래도 죽이고. 간음을 한다 그래도 죽이고. 그렇게 해서 열 가지 계명을 범하지 말라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유태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게 율법이라는 거지. 그 가운데서 제일 중요한 게 십계명이고, 십계명 가운데서도 제일 중요한 게, 살인, 간음, 도둑,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 섬기지 말라,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란다고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보지 못했어요. 불러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쓰긴 썼는데, 자음으로만 표시했기 때문에 읽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저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름이 나올 때는 가만있으면, ‘아,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나왔구나.’ 이렇게 생각해. 그러고 나중에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부르지 못하니까 그냥 ‘주님’ 그러고 불렀어. 그래서 나중에는 주님이라고 하는 단어의 모음을,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단어에 붙여가지고 지금 야훼 그렇게 발음하는 거지요. 하여튼 이 사람들은 철저하지요.

한때 희랍하고 싸울 때, 희랍군대가 이스라엘을 점령했거든.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을 때 하여튼 안식일 날이라고 해서, 그 사람들이 안식일에 쳐들어오니까 이 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죽고 말았어. 안식일날 일하지 말라는 데 어떻게 우리가 싸우느냐. 그러니까 아주 철저하긴 철저한 사람들이야. 독특한 민족이지요. 다른 나라 같으면 그렇게 못하지요. 쳐들어오는데 안식일이라고 앉아서 죽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만큼 이 사람들은 율법에 대해서 강한 집념을 가지고 있는 거지. 그래 출애굽기 핵심은 요거 율법이라는 거지.


(1) 我鑒吾民受苦於埃及 我降臨以拯之 [출애굽기 3:7]


내가 애굽에 있는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내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백성들을 구원하기로 결정했다. 이게 모세에게 하나님이 하는 말씀이에요. 이게 출애굽기 3장에 있는 말이지요.


(2) 我必以爾爲民 我亦必爲爾之上帝 [출애굽기 6:7]


나는 반드시 너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 또한 반드시 너희의 하나님이 되겠다. 이걸 소위 이 사람들은 언약이라고 그러는데, 하나님하고 이스라엘 백성하고 서로 약속했다, 계약을 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라 그렇게 계약을 했다는 거지. 이건 아브라함하고 계약했었어요, 그러니까 아브라함하고 했던 계약을 지금 모세하고 다시 하는 거지.


(3) 惟汝室 以血爲徵 我見之將逾越爾室 [출애굽기 12:13]


그 다음에는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놔주지 않으니까 10가지 재앙을 퍼붓는 거지요. 10가지 재앙 가운데 맨 마지막 재앙이 맏아들을 다 죽이는 거예요.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하기를 “유태사람들의 집에는 양을 발라서 그 피를 대문간에 발라라. 그렇게 하면 맏아들을 죽이는 천사가 피 묻은 집에는 들어가서 죽이지 않겠다.” 그렇게 해서 이 말이 나온 거죠. 오직 네 방에, 네 집에, 피를 가지고 발라서 표를 삼아라. 나는 그것을 보면 너희 집은 건너 뛸 거다. 이게 소위 예수의 피로 인류의 죄를 사한다는 사상의 뿌리가 여기에 있어요. 피 바른 집은 구원해준다. 그러니까 예수의 피를 믿는 사람은 구원해준다. 이런 사상인데 우리 동양 사람으로서는 정말 잘 납득이 안 되는 거지요.


(4) 爾果聽我言 守我約 則於列國中 我必以爾爲寶 [출애굽기 19:5]


네가 진짜로 내 말을 듣고 내 약속을 지키면 열국(列國) 가운데서 내가 반드시 너를 보석처럼 빛나게 하겠다. 그러니까 너희가 내 말을 잘 들으면 너희가 세계에서 으뜸가는 나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는 거지요.


(5) 余而外 不可別有上帝 [출애굽기 20:3]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이건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가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만이 신이다. 여기 지금 인격신이라 하는데, 이 사람들은 범신(汎神) 그것도 아니고, 다신(多神) 이것도 아니고, 인격신만이 신이라는 이런 사상이지요. 그것이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그러니까 다른 신이라 하는 것은 그 때에 이집트에는 태양신이, 바빌로니아는 달을 섬기는 월신, 로마에는 또 로마대로, 희랍은 희랍대로 신이 있지요. 희랍 거기는 제우스, 뭐 주피터 다 있는데, 그런 신들을 섬기지 말라 하는 말은 다른 나라에 절대 굴복하면 안 된다, 너희는 어디까지나 너희로서 독립을 해야지 다른 나라에 노예가 된다거나 포로가 되면 안 된다는 말하자면 독립을 강조하는 사상이지요.


(6) 全能之上帝 仁慈 矜憫 恒忍 施恩 眞實 無妄 錫恩於人 至千百世 [출애굽기 34:6]


전능지상제(全能之上帝), 전능(全能)하신 하나님은 인자(仁慈)하시다. 하나님이 무섭긴 무섭지만 하나님은 인자하시다. 왜?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인격신이니까. 인격신이라는 건 뭔가 그러면 아버지라는 거니까. 아버지가 무섭지요. 무섭지만 아버지만큼 든든한 게 또 어디 있어요? 무등도 태워주고 업어주고. 아버지는 무섭지만 아버지처럼 든든한 데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능한 아버지인데, 인자하고 긍휼(矜恤)이 많고, 오래참고, 은혜를 베풀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고, 은혜를 베풀고, 언제나 천대까지 이르도록 은혜를 베푼다. 그게 이 사람들의 생각이에요.


(7) 有雲 覆會幕 耶和華之榮光 盈其室 摩西不能進會幕 雲不移 民不行 及夜雲狀若火 以色列悉目擊焉 [출애굽기 40:34-38]


성막, 말하자면 예배당을 지었는데, 요새처럼 건물로 짓지 않고 천막 예배당을 짓는 거지요. 유목민이니까 왔다 갔다 하면서 예배를 보니까. 그걸 소위 여기서는 회막(會幕)이라 그래요. 구름이 회막을 덮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강의실 여기는 하나님이 어디 나타난 거 하나도 없지만, 이 사람들이 살던 그때 회막에는 하나님이 직접 있다는 것을 표시해줬다 이거지.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직접 나타난 것은 없고 대개 구름과 불을 가지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나타냈다. 그래서 구름이 있는데 회막을 덮었다. 여호와의 영광(榮光)이 그 집 속에 가득 찼다. 모세도 그 회막 속에는 마음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구름이 움직이면 백성들도 움직이고 또 밤에는 구름이 아주 불처럼 빛났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그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때는 하나님이 직접 무엇으로든지 위엄을 나타내 보이는 거지요.

이런 말들이 출애굽기에 중요한 말이지.


(1) 例授自摩西 恩寵眞理 則由耶蘇基督 [요한복음 1:17]


맨 처음에 율법은 모세에게서 나왔다. 은총(恩寵)과 진리(眞理)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다.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요새 말로 말하면 과학이지요. 사회과학이지요. 그 다음에 진리라고 하는 것은 요새말로 말하면 철학이지요. 과학의 뿌리가 철학이고 철학의 뿌리가 종교니까. 과학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철학이고 철학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종교니까. 언제나 법보다는 진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 법이라고 하는 거는 밖에 있는 다른 존재가, 국가면 국가가, 그것을 지키고 있어야 돼. 그런데 진리라고 하는 것은 아무도 지킬 필요가 없어. 내가 열심히 생각해서 진리를 깨달으면, 난 스스로 모든 율법, 모든 죄악을 초월하게 된다. 그걸 다르게 말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 그러니까 누가 와서 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자유롭게 되는 거지요. 나 스스로 죄를 넘어서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진리와 율법은, 진리라고 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거고 율법이라 하는 거는 남이 도와줘야 하는 거고. 그러니까 예수의 복음하고 모세의 율법하고 차이가 하늘인가 자연인가, 그 차이가 되는 거지. 예수는 우리에게 율법을 준 게 아니고 진리를 주었다. 진리를 주었다고 하는 것은 자꾸 생각하게 하는 그런 말씀을 주었다 이거지. 그래서 나 스스로 깨닫게. 누가 죽이지 말라 그러지 않아도 죽이지 않고, 간음하지 말라 그러지 않아도 간음하지 않고, 그렇게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거는 국가적인 차원이 아니라 인류적인 차원이 되는 거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는 거지. 생각을 통해서. 그러니까 법이 아니고 진리로, 이것이 유태교하고 기독교하고 차이지요. 유태교는 유태라고 하는 나라를 강조하지만 기독교라고 하는 건 나라라고 하는 게 필요가 없으니까.

이 유태라고 하는 나라가 3천년 내지 4천년을 계속 했는데, 제대로 나라다운 나라를 해본 거는 얼마 되지 않아요. 모세 때 40년 나라다운 나라를 하는 거지. 그리고 이제 조금 더 가게 되면, 다윗, 솔로몬 이때가 아주 나라다운 나라가 되는 거지. 그런데 벌써 솔로몬이 죽고 나면 나라가 절반 갈리고 말아요. 그래서 북쪽은 이스라엘이고 남쪽은 유다가 되고 그렇게 갈리거든.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의 왕들이 형편없는 놈들이 왕이 됐어. 좋은 녀석은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200년 동안 가기는 갔지만 제대로 나라 구실을 못한 거지. 그리고 남쪽은 350년을 갔어요. 거기는 좋은 왕도 있고 나쁜 왕도 있고 섞이긴 섞었는데, 전체를 보면 시원치 않았지. 그러니까 나라 구실을 제대로 못한 거지. 더구나 예수까지 내려오면 유태나라라고 하는 거는 없어지고 마는 거지. 그러니까 예수로서는 율법을 말할 수가 없는 거지. 예수로서는 철학을 말할 수밖에 길이 없는 거지.

예수 그러면 예수는 자기의 유태를 사랑하긴 사랑했지만 그것보다도 이제는 국가를 넘어선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 준거지. 그것을 가장 확실히 이해한 사람이 바울이라 이거지. 예수의 생각은 유태민족이 아니다. 물론 예수의 말 가운데는 나는 유태민족을 위해서 왔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인류를 구원해야 되는 거니까. 이제는 유태민족이니 무슨 민족이니 다 필요가 없다. 그래서 소위 기독교는 세계화가 되고, 유태교는 유태화가 되는데, 나라 없는 유태교라는 건 아무 쓸모가 없는 거지. 맥을 못 추는 거지. 그러니까 기껏 한다는 것이 예수를 죽이는 것 밖에 한 게 없는 거지. 그러니까 선지자는 다 잡아 죽이는 것 밖에 한 게 없는 거지. 그러니까 유태교라는 게 본래 빨리 없어졌어야 되는 건데, 예수 당시에도 있어가지고 예수에게 많은 고통을 주게 되는 거지. 그렇게 되는 거지. 이건 아주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는 진리이고 모세는 법률이다. 모세는 국가주의이고 예수는 세계주의이다. 그 차이에요.


(2) 共立新約 我將以我律法 置其衷 銘其心 我爲彼上帝 彼爲我民 [히브리서 8:10]


그래서 그 다음에 또 나와요. 그래서 기독교는 신약이고 모세는 구약이라는 거지. 신약의 내용이라고 하는 건 뭔가? 물론 신약에도 율법이 있지만, 그런데 그건 유태 같은 율법이 아니야. 어떤 율법인가 그러면. 치기충(置其衷)하는 게 뭔가. ‘그 속에다 둔다.’ 하는 말은 생각하게 한다는 거지. 그래서 요새 우리나라 번역에도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번역했어요. 명기심(銘其心)하는 거는 깨닫게 한다. 그래서 율법이라는 말을 쓰지만 이거는 진리라는 말이라 이거지. 신약은 진리의 세계지 율법의 세계가 아니다. 깊이 생각하고 깨닫게 하는 그런 것이 신약이라 이거지. 우리의 복음이라는 게 그런 거라 이거지. 그래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된다.’ 그럴 때 그들이라고 하는 거는 유태사람이 아니라 온 인류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온 인류의 아버지가 되고, 이제 그렇게 변했다 이거지요.


(3) 律法聖誡亦聖義且善也 誡旣善 乃爲死我何耶 [로마서 7:12]


율법은 물론 거룩하고 또 옳고 선하고 다 좋은데 나로 하여금 죽게 만드는 건 왜 그런가. 이게 바울이의 호소지요. 율법 가지고는 살수가 없다. 율법은 죽게 만들어. 죽게 만든다는 건, 율법 때문에 남을 죽이기도 해. 바울도 스데반을 쳐 죽이는데 한몫한 사람이거든. 그러니까 사람을 살려야 되는데 죽이는 데만 열심을 내니 이게 뭔가 그러고 한탄하는 거지요. 율법은 사람을 죽이는 거지 살리는 게 못된다는 그 소리에요.


(4) 因賴基督耶蘇 受聖神 得生之法 脫我於陷罪致死之法 [로마서 8:2]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수성신(受聖神). 성신(聖神)이라고 하는 건 무엇인가. 우리가 성신 그러면 이상하게 성신 받는다는 이런 생각을 하지만, 성신이라고 하는 건 뭔가 그러면 진리의 영을 성신이라 그래. 진리라는 말과 같은 말이지. 그러니까 진리의 영을 받아서, 자기를 살리고 남을 살리는 그런 법, 그게 신약이요, 그게 복음이다 이거지. 그러니까 탈아어함죄치사지법(脫我於陷罪致死之法), 사람을 죽이는 법에 빠지는 나를 해방시켜 주어서 내가 살게 됐다. 그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나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진리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됐다는 그 소리에요.


(5) 惟愛人 愛人者盡律法 [로마서 13:8]


그래서 오직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진리를 깨달았다는 게 뭔가 그러면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 이거지. 진리를 깨달으면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율법을 완성하게 된다. 그렇지요.


(6) 摩西受洗於雲海 食靈食 飮靈飮 其所飮者 隨在 皆有靈磐之水 磐者基督也 [고린도전서 10:2]


그 다음에 모세는 구름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거는 결국 홍해바다를 지나갔다 이 소리지요. 이스라엘 민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바다를 건너가는 거지요. 홍해바다를 건너갔다는 것을 우리 기독교에서는 세례 받는다, 이렇게 말하는 거지. 우리 기독교에서 세례, 세례 하는 게 뭔가 그러면 홍해바다를 건너갔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세례지요. 그 다음에 영적인 음식을 먹었다. 또 영적인 음료를 마셨다. 이 영적인 음식, 영적인 음료를 기독교에서는 성만찬이라 그러는 거지. 이때 광야에서 만나라고 하는, 요새로 말하면 쌀 튀긴 거 같은, 군대에서 비상식으로 가지고 다닐 때 건빵이라고 하는 걸 가지고 다니는데, 그런 거지요. 건빵을 먹었고, 그렇게 하고, 샘물을 마셨다. 이제 그것이 요새 성만찬이라 하는 것의 시작이지요. 그래서 그 마실 물을 어디서나 마셨는데, 다 거룩한 반석에서 터져 나온 물이다. 그 다음에 그 반석이라는 것은 뭔가 하면 그리스도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성만찬에서 포도주니 피니 그러지만 사실 내용을 볼 거 같으면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이거지. 언제나 진리라고 하는 것은 말씀을 가지고 진리를 깨닫게 되는 거니까.


‘예수 믿는다.’ 그럴 때, 내가 자꾸 주장하는 건 뭔가?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많이 생각하는 거다.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복을 받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가 복 받는다 그러면 기복신앙이라 그러는데, 복 받는다는 게 대개 뭔가 그러면 오래 살게 해 달라, 돈 많이 벌게 해 달라, 아들 많게 해 달라, 이게 우리나라의 기복신앙이지요. 아들을 많이 낳게, 그리고 돈 많이 벌게, 그리고 오래 살게, 그게 기복신앙이에요. 그런데 이 유태사람들이 우상숭배라고 하는 건 뭔가 그러면 요새말로 말하면 기복신앙이지요. 우상 숭배를 왜 하나 그러면 돈 많이 벌게 해 달라, 오래 살게 해 달라, 그리고 아들 많이 낳게 해 달라, 그거 거든.

그러니까 우상숭배 하지 말라 하는 말은 요새말로 말하면 너희 기복신앙하면 안 된다. 기복신앙 하려면 예수니 불교니 하는 게 없잖아요. 그냥 저 밑에 산에 가서 그냥 밤낮 빌면 돼지. 무슨 교회니 절이니 하는 게 필요 없잖아요. 그래도 교회니 절이니 하는 건 뭔가 하면 생각하자는 거지. 절에 가면 참선한다는데, 참선한다는 게 뭐예요? 깊이 생각해서 진리를 깨달았다 그럴 때는 불교에서는 부처라 해. 부처라고 하는 게 뭐야? 아들 많이 난 사람이 부처에요? 오래 산 사람이 부처에요? 돈 많은 사람이 부처에요? 그거 아니거든. 결국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부처다 이거지. 기독교에도 그리스도라는 게 뭐겠어요?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그리스도지. 무슨 예수가 오래 살았어요? 예수가 뭐 아들이 많아요? 예수가 무슨 돈이 있어요?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지요. 또 결혼도 안한 사람이 아들을 어떻게 낳았겠어요? 그리고 33살에 죽었는데 오래 살긴 뭘 오래 살아요?

우리에게 돈이나, 아들이나, 오래 사는 거나, 이런 것이 인간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인간의 목적은, 인격이 정말 인간의 목적이다. 칸트의 말대로 인격이 인간의 목적이지 다른 거는 인간의 목적이 될 수가 없지. 그래서 우리가 제일 인격이 높은 사람, 그걸 우리는 예수라, 그리고 제일 높은 분, 예수의 근원, 그걸 우리는 인격신 혹은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하는 거지. 우리가 하나님 믿는다는 것은 무슨 아들 낳겠다는 것도 아니고, 딸 낳겠다는 것도 아니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 보자, 절대 거짓말 하지 않는 정직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그리고 진실한 그런 사람이 되자. 그게 인간의 목적이지 무슨 돈 많이 벌고, 그건 아니지. 그건 동물의 세계지요.

아들 많이 낳는 거는 하루살이 같은 거 보면 몇 억 마리를 낳지요. 그리고 물고기 같은 건 떼로 몰려다니까 한번 알을 낳으면 몇 만개를 낳지요. 몇 만개가 낳아서 돌아다니는 거지. 그러니까 그건 다 동물의 세계지. 먹을 걱정도 없지. 풀이 먹을 것인데 뭐 먹을 걱정이 있어. 동물들은 앓지 않아요. 동물들은 병이 없어. 그러니까 오래 사는 거지요. 그러니까 오래 살고, 먹을 거 넉넉하고, 아들 많이 낳고, 그런 건 동물의 세계지. 그건 사람의 세계가 아니에요.

사람은 아들이 없어도, 먹을 게 없어도, 오래 못 살아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거, 그 존엄성을 유지하고 다니는 게 사람이지. 세계 사람들이 우리 한국 사람을 믿을 수 있다, 이렇게 돼야 이게 한국 사람이지. 한국사람 믿을 수 없다 하면 한국인이 아니지. 6.25때는 미국 갔다 오려고 배를 타면, 그 배속에서 방송하기를 “한국이 가까워오니까 다들 가지고 있는 물건 조심하라, 한국이 가까워오니까 도둑맞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고 한국에 들어가서는 절대 믿지 말라” 그런 방송을 무수히 했다 이거야. 외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믿지 않는 거야. 난 부시도 노무현을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르겠어요. 요랬다 저랬다 하니까. 한국 사람도 외국 사람이 볼 때,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 이 사람들은 거짓말 안한다, 그렇게 되어야지. 한국에 거짓말 하나만 없어져도 얼마나 좋겠어요? 요새도 중국에서 나온 것을 같다가 한국거로 팔아먹고 말이야. 요새도 뭐 명품을 만들어가지고 천억 원어치를 팔았다나. 명품을 만들어가지고 천억을 팔았다는 거 이게 상상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무슨 바다이야기, 상품권을 30조를 만들었다, 이게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가 지금 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외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사람으로 알겠어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절대 거짓말 안한다는 이런 소문이 나야 예수 믿는 거지. 그저 밥 싸가지고 교회만 다닌다, 이거 예수 믿는 게 아니지요. 사람 되자고 예수 믿는 거지 무슨 복 받겠다고 예수 믿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기복신앙이라 그러고 유태사람들은 우상숭배라 그러지. 그러니까 우상숭배하면 다 죽인다는 것은 우리말로 말하면 기복신앙 하는 사람은 다 죽인다 하는 이런 말이나 같은 말이지요.


(7) 摩西蒙帕於面 讀摩西書 有帕蒙心主可去 [고린도후서 3:13]


모세는 얼굴에 수건을 썼다. 수건을 왜 썼나 하면,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올 때, 얼굴이 너무 빛이 나니까 사람들이 도저히 얼굴을 볼 수가 없어. 그래서 모세가 얼굴에 수건을 썼다. 출애굽기에 이런 얘기가 나와요. 그런데 요새 사람들은 모세의 책을 읽으면서도 모세의 뜻을 몰라. 그러니까 이거는 얼굴에 보자기를 쓴 게 아니라 마음의 보자기를 쓴 거다 그렇게 바울이가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요한복음 5장 47절, 거기 보면 예수가, “너희들이 모세를 믿으면 나를 믿을 수 있다. 모세의 모든 말들은 나를 증거하는 거다.” 그렇게 말했어요. 모세의 모든 핵심은 예수다. 율법의 핵심은 뭔가 하면 진리라 그 소리지요. 그러니까 과학의 핵심이 뭔가 하면 철학이라 그 소리지요. 그 다음에 주가거(主可去), 예수만이 이 수건을 벗길 수 있다, 이제 그런 얘기지요.


아감(我鑒), 오민수고어애급(吾民受苦於埃及), 아강이이증지(我降이以拯之). 증(拯)자는 구원할 증 자야.

아팔이이위민(我必以爾爲民), 아역필위이지상제(我亦必爲爾之上帝).

유여실(惟汝室), 이혈위징(以血爲徵), 아견지장유월이실(我見之將逾越爾室)

이과(爾果), 청아언(聽我言), 수아약(守我約) 즉어열국중(則於列國中), 아필이이위보(我必以爾爲寶).

여이외(余而外), 불가별유상제(不可別有上帝).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그 소리지요.

전능지상제(全能之上帝), 인자(仁慈), 긍민(矜憫), 항인(恒忍), 항(恒)자는 항상 항. 시은(施恩), 진실(眞實), 무망(無妄), 무망은 거짓이 없다는 거지. 석은(錫恩), 석(錫)자는 줄 석 자지. 은혜를 베풀어 준다. 석은어인(錫恩於人), 지천백세(至千百世).

유운(有雲), 복회막(覆會幕), 여호화지영광(耶和華之榮光), 영기실(盈其室), 머세불능진회막(摩西不能進會幕), 운불이(雲不移), 민불행(民不行), 급야운상약화(及夜雲狀若火), 이스라엘실목격언(以色列悉目擊焉).


예수자모세(例授自摩西), 은총진리즉(恩寵眞理則), 유예수기독(由耶蘇基督).

공립신약(共立新約), 아장이아율법(我將以我律法), 치기충(置其衷), 명기심(銘其心), 아위피상제(我爲彼上帝), 피위아민(彼爲我民).

율법(律法), 성계역성의(聖誡亦聖義), 차선야(且善也), 계기선(誡旣善), 내위사아하야(乃爲死我何耶).

인뢰기독예수(因賴基督耶蘇), 수성신(受聖神), 득생지법(得生之法), 나를 살릴 수 있는 진리를 주셨다 이거지. 그것이 성신이라는 거지. 탈아어함죄치사지법(脫我於陷罪致死之法). 나를 죽게 하고 죄에 빠뜨리는 거기서부터 나를 벗어나게 했다.

유애인(惟愛人), 애인자(愛人者), 진율법(盡律法).

모세(摩西), 수세어운해(受洗於雲海), 식영식(食靈食), 음영음(飮靈飮), 기소음자(其所飮者), 수재(隨在), 재유영반지수(皆有靈磐之水), 반자기독야(磐者基督也).

모세몽파(摩西蒙帕), 파(帕)자에 요 파. 수선 파, 보자기 파. 모세몽파어면(摩西蒙帕於面), 독모세서(讀摩西書), 유파몽심(有帕蒙心), 주가거(主可去).


이렇게 출애굽기가 끝나고 다음에는 레위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12족속이거든. 왜 그렇게 됐나 그러면 야곱의 아들이 12명이야. 그 12명이 하나의 지파가 되는 거지. 그래서 열두지파지.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를 열둘을 택했다고 하는데 그건 열두지파 때문에 그런 거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애굽에서 살 때, 어느 사람들이 제일 잘 살았나 그러면 모세의 집안이 제일 잘살았죠. 왜냐? 모세는 그때 공주의 아들이니까, 왕의 조카니까 최고의 높은 세력을 가지고 부유하고, 그러니까 모세의 집안들이 제일 많이 교육을 받은 거죠. 인텔리지. 열두지파 중에서 레위라고 하는 인텔리 지파를 택해서 유태사람을 지도하는 민족을 만든 거지요. 모세가 유태민족을 지도했지만, 모세 다음에 모세 집안들이 힘을 합해서 맡아 하는 거지.

레위지파 사람들이 뭐 했나 그러면 그 당시에 종교적인 지도자, 이것을 레위사람들이 맡았고, 그 다음에 교육, 학교 선생들, 이런 것도 다 레위사람들이 맡았지. 또 그때 여기 남아서 하는 게 뭐냐 하면 군대훈련이니까 이 군대훈련을 맡았지. 왜 그런가 하니 군대훈련처럼 나라를 사랑한다는 건 없으니까. 군인은 나라를 위해서 죽는 거니까. 그렇잖아요? 의사 안중근이 왜 의사인가? 나를 위해서 죽었으니까. 윤봉길 의사도 나라를 위해서 죽었으니까 의사지. 가장 큰 애국자가 누군가? 말하자면 이런 의사들이지요. 그러니까 그 의사가 확대된 것, 그게 군대니까. 군대가 나가서,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거니까. 지금 이스라엘에 가면, 이스라엘은 남자 여자 구분 없이 다 군대에 들어가지.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게 지금 3백만밖에 안되거든요. 그런데 그 주변에 아랍계통 사람들이 1억도 넘어요. 그러니까 1억 넘는 사람들과 3백만이 싸우려면 군대가 강해야 되니까. 유태사람들이 지금 훈련하는 제일이 뭔가 하면 군대지요. 그래서 애국정신을 고취하는 거지. 그러니까 이 군대를 훈련하는 교관, 또는 선생, 그땐 제사장이라 그러죠. 목사라 그러지 않고 제사장이라 그러죠. 이 제사장은 다 누가 맡았나 하면 레위사람들이 맡았지. 인도로 말하면 브라만이나 같은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상층 계급으로서 온 백성들을 지도하는 그런 사람들이 이 레위 사람들이에요. 이 레위사람들이 결국은 종교, 교육, 기타 모든 훈련의 중심이 되는 거지. 이 사람들이 제일 깬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는 거지.





그런데 이 깬 사람들, 요전에도 내가 설명했듯이, 이건 (耳) 귀라는 거죠. 귀가 뚫렸다 이거지. 이건 (目) 눈이 뚫렸다. 이건 (鼻) 코가 뚫렸다. 입이 (口) 뚫렸다. 군대 가면 말 안 들으면 맞으니까, 귀가 뚫릴 수밖에 없죠. 군대 가면 눈치가 빨라야지. 눈치가 빠르지 못하면 따라 못가지. 그러니까 눈이 뚫려야지. 군대를 가면 실력이 있어야지. 체력이 약하면 못 견디지요. 그러니까 체력이나 정신력이 강해야지요. 그리고 입이 뚫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고, 지도할 수 있게 돼야지요. 그래서 귀, 눈, 코, 입을 제일 빨리 뚫는 방법이 군대예요. 거기 가면 어쩔 수 없지. 상관에게 경례해라 그러면 밤에 자다가도 저쪽 보고도 딱 경례하지. 왜 그런가 하면 경례안하면 맞아 죽으니까. 그래서 가장 율법이 강한 데가 군대 계통이에요. 그래서 유태사람, 요전에 내가 2백만 명 된다고 그랬는데, 그 가운데 군대가 60만 명이거든. 그 60만 명을 좌우간 군대 교육을 시킨 거지. 국가 교육이랄까 애국교육을 시킨 거지. 애국교육을 시킨 사람들이 이 레위 사람들이지.

임금왕자에서 위의 금, 이건 하늘이고, 가운데 이건 사람이고, 맨 아래 이건 땅이고, 세로금 이건 뚫려야 된다 이거지. 말하자면 맨 아래 이건 과학이고, 가운데 이건 철학이고, 맨 위 이건 종교지. 과학을 마스터하고, 철학을 마스터하고 종교를 한다. 철학을 마스터해야 사람이 된다. 이게 사람의 핵심이지요. 이게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거를 교육시키기 위해서 레위기라는 책이 나온 거지요. 레위기의 핵심은 뭔가 하면 거룩할 성(聖)자 한자지요.


godosh 切 分離


그런데 유태말로 거룩하다고 하는 성(聖)자가 보통 그냥 그저 학교에서, 내가 신학교 다닐 때, ‘카도시(godosh)’라고 그렇게 불렀는데, 카도시인지 코도시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카도시라고 신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어요. 카도시라고 하는 이 뜻은 뭔가 그러면, 자른다던가(切), 분리(分離)하는 거지. 그러니까 집을 떠나서 이 교회에 온다, 이게 카도시지요. 왜? 교회는 거룩한 데니까. 그런데 집은 속된 데니까. 골짜기에서 떠나서 산으로 오는 거지. 이걸 소위 거룩하다고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제일 처음에는 집을 떠나서 선생님을 찾아가는 거니까 그걸 불교에서는 출가(出家)라 그러는데, 출가가 제일 중요한 거지요. 만일 학교 안 다니면 뭐가 되겠어요? 집을 떠나서 학교에 가서 선생님하고 자꾸 가까워지는 거지. 그런데 선생님은 어떤 사람인가? 귀가 뚫리고, 눈이 뚫리고, 코가 뚫리고, 입이 뚫린 사람이지. 선생님은 과학이 뚫리고, 철학이 뚫리고, 종교가 뚫린 사람, 그게 선생님이야. 그래서 선생님에게 자꾸 가까이 가서 선생님과 같이 지내게 된다. 옛날 사람은 산에 가서 선생님하고 같이 살았지요. 산에 가면 한 10년 아주 선생님하고 같이 사는 거지. 그러면서 선생님의 기술, 선생님의 지식, 학문, 인격, 그런 것을 배워가지고 오는 거지. 그게 카도시예요. 요새 말로 번역하면 출가라 그러겠지요.


기독교: 聖別 聖化 聖神 (21일)

노자  :      無爲 自然

불 교 :      眞空 妙有


그래서 기독교의 핵심이 뭔가? 기독교의 핵심은 결국, 이거 거룩할 성(聖), 성별(聖別)이라 그래도 좋죠. 그 다음에는 성화(聖化), 그 다음에는 성신(聖神). 이게 기독교의 핵심이에요.

기독교라는 게 뭔가? 제일 쉽게 말하면 내가 선생님 품에 가서 안기는 거지. 목사님 품에 가서 안기는 거지. 난 일본 가서는 성서학자의 품에 안기고, 그리고 한국 와서는 유영모 선생님 품에 들어가죠. 이렇게 품에, 품에 들어가, 그러면서 뭐가 되나? 내가 계란이라면, 계란이 병아리로 바꿔지는 거지. 그렇잖아요? 계란이 병아리로 자꾸 바꿔져. 내가 자꾸자꾸 바뀌고, 바뀌고, 바뀌어서, 완전히 병아리로 깨어나는데 이것이 아까 진리를 깨닫는다는 말과 같은 말이지. 완전히 깨어나는 거지.


時間際斷 神 永生 自由


그걸 우리가 시간제단(時間際斷)이라, 딱 자르는 거지. 이걸 기독교에서는 카이로스라 그래. 그러니까 카도시하고 카이로스는 연관이 많아요. 이런 세계를 기독교에서는 뭐라 그러나? 임마누엘이라 그런다. 임마누엘. 태초에 계란이 있으니, 계란이 하나님과 같이 있으니. 이렇게 같이 있다는 걸 임마누엘이라. ‘엘’이라고 하는 건 ‘하나님’이란 말이고, ‘임마누’라는 건 ‘같이’ 라는 말이고. 하나님과 같이 있으니 이것이 임마누엘이지.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과 같이 있겠어요? 하여튼 선생님하고 같이 있는 거지. 선생님하고 같이 있다가, 나중에는 하나님하고도 같이 있게, 그렇게 되는 거지.

그래서 하나님하고 같이 있게 되면 어떻게 되나? 계란이 21일이 되면 어떻게 돼? 딱 깬다. 21일 되어 딱 깨나는 걸, 시간제단이라 그래. 그것이 시간제단이고 카도시지. 혹은 카이로스지. 그러니까 인생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게 뭔가 그러면 그거야. 철학에서는 ‘이데’라 하는데, ‘이데’라는 건 신(神), 영생(永生), 자유(自由)거든. 그런데 하나님 품에 안겨서 그래서 어디까지 가나? 카도시지. 혹은 카이로스지. 시간이 제단 되는 거지. 그러니까 신이 우리에게 해주는 게 뭔가 하면 성별(聖別) 카도시까지 가. 자 그게 중요한 거지요.

그 다음에 깨어나면, 기독교에선 이걸 뭐라 그러나? 영생이라 그래. 영원한 생명이라. 영원한 생명이란 뭔가 그러면 시간이라고 하는 게 제한이 없다 이거지. 자, 우리가 대학 다니다가 대학을 졸업했다. 이것은 카도시지요. 그런데 화사에 들어간다, 혹은 시골에 들어가 농사를 짓는다. 이게 영생이야. 왜 영생이라 그러나 하면, 이건 시간이 없어. 새벽에도 나가 일해야 하고, 밤에도 나가 일해야 하고, 낮에도 일해야 되고, 밤낮 일이야 일. 여러분 농사 지어 본 사람은 알겠지요. 시간이 없어. 무슨 아침 9시에 시작한다, 그런 것 없어. 컴컴하면 벌써 나가 봐야해. 그리고 또 달이 뜨면 그때야 들어오는 거야. 또 들어오면 그거 가만 놔두나? 또 다림질 해야지, 빨래해야지, 뭐 해야지. 계속 일이야.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는 세계지. 거기는 시간이 없는 거야. 시간이 없는 세계를 영생이라, 그게 영원한 생명이라는 거야. 우린 영원한 생명 그러면 오래 사는 걸 영생이라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야.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는 거, 그게 영생이야. 그러니까 도산 안창호가 밥을 먹어도 나라를 위해 먹고, 잠을 자도 나라를 위해서 자고, 이게 영생이야. 바울 같은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어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체가 그리스도를 위해서야. 거긴 시간이 없어. 이걸 소위 영생이라 그러는 거지.

이거 성별(聖別)이란 계란 시대에요. 계란이 21일이 되어 시간제단 할 때 계란이 깨지는 거야. 이건 성화(聖化) 병아리 시대야. 요건 화(化)라 그래서 변화 이렇게 되는 거지. 변화야. 계란이 병아리가 되면 그 다음에는 어른이 돼야 되니까. 큰 닭이 되지.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되게 되면, 닭이 되면 어떻게 돼나? 그 다음에는 알을 낳아야지. 알 낳는 세계를 성신(聖神)이라 그러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이 샘이 강같이 흐른다.” 요한복음 7장 37절. 생명의 샘이 강같이 흘러. 성신의 세계지. 그걸 불교에서는 설법의 세계라 그러지. 설법의 세계지. 부처가 됐다는 거는 병아리가 됐다는 거지. 설법의 세계가 돼야 제대로 닭이 되는 거지. 그래서 모든 사람을 살려내는 그걸 소위 자유(自由)라 해. 자유라고 하는 게 내 맘대로 돌아다닌 다는 그런 게 아냐. 모든 사람을 살려주는 생명의 샘이 강같이 흐른다는 이게 자유야.

그래서 노자로 말할 거 같으면 이거 성화(聖化) 이거 성신(聖神)이란 뭔가? 성화(聖化)를 무위(無爲)라, 성신(聖神)을 자연(自然)이라 그랬죠. 불교로 말하면 성화는 진공(眞空)이지. 그리고 성신, 이게 묘유(妙有)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가는 거지. 성신, 이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가는 거야. 불교에서는 이걸 새로운 가치의 창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가는 그것을 이실법계(理實法界)라 그랬는데, 이실법계가 뭐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가는 거야.

기독교의 핵심이 성별(聖別), 성화(聖化), 성신(聖神)이지. 그래서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서 난 지금 어디에 있나 생각해야 돼. 난 시간 제단이 됐나, 안 됐나? 안 됐으면 더 바짝 달려 붙어야지. 임마누엘이 되어야 해. 더 바짝 달려 붙어야지.

그러니까 이 3단계, 이걸 키에르케골은 인생의 삼단계라 불러. 니체는 인생의 삼전신이라 그래. 계란이 됐다가, 병아리 됐다가, 큰 닭이 되서 알을 낳는 창조성이지. 창조성 그것을 니체로 말하면 어린애라 이렇게 말한다. 그래 사람들은 세 단계를 거치지. 예수라 그러면 예수가 어려서 공부하는 제1단계 그리고 집짓고 일하는 제 2단계지. 40일 금식하고 나와서 십자가를 지는 이게 제 3단계지. 이런 제3단계가 소위 성신이 충만하다는 거지.

인생의 3단계가 다 어디에 있나? 다 성(聖)자 하나에 있어요. 그러니까 성부라는 1단계, 성자의 2단계, 성신의 3단계, 이 세 단계를 거쳐 가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준거지. 그러니까 나는 지금 성부에 있는가, 성자에 있는가, 성신에 있는가, 그걸 언제나 생각해야 돼. 그래서 내가 어디에 있다 그럴까, 그것은 각각 다를 테니까 어차피 이걸 자기가 생각해야지 남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가 없지요. 자 여러분, 주기도문으로 끝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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