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요한계시록 3:1-6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心貧者 2018. 11. 27. 11:31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요한계시록 3:1-6 2018/11/25 왕국주일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3: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3: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교회력으로 오늘은 왕국주일입니다.

성령강림절의 마지막 주일이자 교회력의 끝을 우리는 왕국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주일이지요.

 

왕국주일을 교회력의 끝으로 지키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다스리심, 하나님의 통치(나라) 때문입니다.

왕이신 주님 아래 우리의 삶을 두는 것이지요.

우리 삶의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죽음과 심판까지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왕국주일의 의미를 사도 요한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15절입니다.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첫째 세상 나라가 누구의 나라가 된다고 합니까?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본디오 빌라도도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18)

 

둘째 사도 요한은 왕국주일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가다시 말해 그리스도가 세세토록(영원토록) 왕 노릇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세토록 왕 노릇하는 그리스도의 나라

그 거룩한 소망을 담고 기념하는 주일이 바로 왕국주일입니다.

 

왕국주일

다른 말로는 하나님나라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성령강림의 최종 목표가 하나님의 통치 즉 그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단 보를 흰색(영광, , 성결, 거룩)으로 거는 것입니다.

해 마다 고백하는 일이지만 왕국주일이 돌아올 때 마다

늘 몸과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 이유는 왕국의 예표인 교회, 그 교회의 현실이 그리 아름답게 비추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 우리나라에 편의점이 몇 개인 줄 아십니까?

25천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전국에 몇 개일 것 같습니까?

75천개라고 합니다.

 

교회.

1)교회란 과연 무엇일까?

교회의 정체성이겠지요?

2)교회란 어떤 일을 하는 곳일까?

교회의 목적성입니다.

그리고 3)누가 교회를 이루는 것일까?

교회의 본질성입니다.

 

이 세 가지 물음은 늘 우리의 물음이지요.

 

교회, 왕국의 예표인 교회가 무엇인지 그리고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소개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44-47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여기에 보면 교회를 특징짓는 몇 가지의 사실들이 나옵니다.

 

첫째 244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는 믿음, 그 믿음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200데나리온이 없어도 오천 명의 장정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금과 은이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뛰어 서서 걸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제물을 겸하여 섬기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동양철학 제자백가가 주장하고 꿈꾸었던 예(함께 사냥해서 재단에 바친 양을 동일하게 분배)의 실제이자 현실이지요.

동양철학이 주장했던 하지만 늘 현실에서 실패했던 의 공동체가 유일하게 현실로 다가온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정약용, 정약종 등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실사구시의 학문으로 공부한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이 최초의 천주교인이자 그리스도의 나라를 바라는 최초의 그리스도인 된 것입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는 믿음, 그 믿음의 공동체를 본 것입니다.

바로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예의 공동체 교회를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소위 말하는 사유화, 개인화를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내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것,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한 것이지요.

따라서 이거 내꺼야, 이거 내가 헌금한거야, 이거 내가 헌물한거야, 이거 내가 봉헌 한거야, 이거 내가 건축한거야?’ 하는 순간, 교회는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사단의 밥이 되는 것이지요.

 

둘째, 교회란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교제(친교)하는 공동체입니다.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누가복음 169,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재산이나 재물이나 재능을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의 도구, 친교의 도구로 사용하는 곳이 바로 교회라는 말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둘째는 이웃에게 입니다.

그렇게 해서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나누는 일에 있어 전혀 어려움이나 걸림돌이 없는 곳이 바로 교회라는 말입니다.

 

셋째 교회의 본질입니다.

찬미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 곧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데 있습니다.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사람을 높이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고 영화스럽게 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의 예표인 교회는 두 가지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첫째,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세상으로부터 호감을 사는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호감을 사는 교회, 멋있지 않습니까?

 

둘째,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부흥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교회의 참모습이지요.

 

하지만 이런 교회의 참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곧 변질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변질하고 무너졌는가?

바로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는 믿음, 그 믿음이 깨지면서 교회 공동체의 금이 가지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제물을 겸하여 섬기기 시작한 것이지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험을 안겨 주고 그리스도의 나라의 확장을 막은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데교회입니다.

물론 고린도 교회가 이 문제에 있어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사데 교회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사데교회는 소아시아 지역에 세워진 일곱 교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사데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 차분하지만 아주 통렬합니다.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여기에 보면 아주 무서운 말씀들이 연이어서 나옵니다.

첫째, 내가 너희의 행위를 안다

그러니 속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네가 살았다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제로는 죽은 자라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름과 실체가 꼭 들어맞아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데 교회는 교회라는 제 이름값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사데 교회는 교회라는 제 이름값도 못하는 죽은 교회가 된 것일까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데교회가 받은 재물의 부유함을 옳게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데 교회가 세워진 '사데'라는 도시는 일찍부터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고가에 팔리는 양모업과 귀금속 사업으로 늘 부유함을 누렸던 도시가 바로 사데였습니다.

 

문제는 사데교회가 받은 제물의 축복을 옳게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사데 교회의 문제를 이것이 문제다라고 꼭 집어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데라는 도시의 제물이 교회를 지배하면서 교회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제물을 섬긴 것이지요.

3: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네 행위 속에서 온전함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9, 주님의 말씀을 빌린다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데 교회는 하나님과 제물, 두 주인을 섬김으로 제 이름 값도 못하는 죽은 자들의 교회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데 교회를 향한 희망을 거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적은 수이지만 사데 교회 안에는 다시 말해 자신의 정체성, 교회의 정체성을 더럽히지 않은 남은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옷을 더럽히지 않은 남은 자를 향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3:3 그러므로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새겨서, 굳게 지키고, 회개하여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같이 올 것인데, 어느 때에 내가 네게 올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

 

3가지의 권면입니다.

첫째, 주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새겨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3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육의 마음 판에 새기는 것입니다.

둘째, 가르침을 받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것을 굳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영혼의 근육, 영혼의 맷집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셋째, 회개, 곧 삶의 변화입니다.

나 중심으로부터 하나님 중심으로의 변화이지요.

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 나라로의 변화이지요.

하나님을 향해, 그 나라와 그 의를 향해 ‘let’s go‘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이현주 목사님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 적지 않게 실망한 어느 친구가 흥분하면서 따지듯이 말합니다.

목사님, 제가 다니는 교회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교회가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 교회, 다시는 안 나갑니다. 그게 무슨 교회입니까?‘

그러자 한참 이야기를 듣던 이현주 목사님이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자네 하나님을 믿나?’

그럼요, 교회는 안 믿어도 하나님은 믿습니다.’

그래, 그러면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라는 것도 믿나?’

그럼요, 당연히 믿지요. 이래봬도 저 모태신앙입니다.’

그러면 자네가 말한 그런 교회에도 하나님이 있겠지

 

오늘날 한국교회가 희망보다는 절망을 안겨주는 것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저 역시 우리가 처한 교회의 현실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냉소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교회, 교회의 희망이 분명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

그 몇 명으로 그리스도의 나라의 예표인 교회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