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요한일서 1:3 사귐의 기도 3

心貧者 2018. 5. 18. 13:48


사귐의 기도 3

요한일서 1:32018/05/16()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사귐의 기도란?

은총의 수단으로 허락된 기도를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과 온전한 사귐(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기대하고, 형성하고, 이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처음 지음 받은 그 원형의 형상(原形像)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1:27-28)합니다.

자녀 됨이지요.

 

사귐의 기도를 통하여 자녀 된 자는 다음과 같은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첫째, 감히 바랄 수도 없는(焉敢生心)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사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을 더 진실하게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셋째, 죄인 된 우리가 감히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거듭난 은총 속에서 자녀 된 자는 모든 기도의 초점을 사귐의 대상 곧 하나님 자신에게 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고 생활 속에서 드리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성서적이지 않고 미신적이며 이교적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타종교가 말하는 기도와 별 다를 바가 없는 기도 생활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6:7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

6:8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따라서 은총의 도구로 주어진 기도가 하나님과 진실하게 사귀는 그 역할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기도로 하나님을 대할 때, 아버지가 들고 있는 선물 꾸러미에 관심을 두는가? 아니면 하나님 그분에게만 관심을 두는가?

 

어릴 적에는 아버지 보다는 양손 가득히 들고 있는 선물꾸러미일 것입니다.

하지만 장성한 후에는 어떻게 되어야 하겠습니까?

선물꾸러미가 아니라 그것을 들고 있는 아버지여야 합니다.

비록 기대하는 선물 꾸러미가 손에 들려 있지 않다 하더라도 항상 아버지여야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방인들처럼 현세적인 삶에 필요한 것을 얻는 수단으로 기도가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시옵소서가 우리 기도의 전형이자 전부가 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기도의 내용인데 거의 대부분이 현세적이고 물질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도는 요구하는 것그리고 기도의 응답은 우리가 요구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 진리처럼 통용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기도가 주는 한계와 폐해입니다.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을 소외시킵니다.

아버지 손에 들린 선물꾸러기만 바라봄으로 정작 아버지의 사랑을 망각하게 됩니다.

 

기도 자인 자신이나 공동체의 변화를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녀 됨의 성숙이나 성화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역시 외면 받게 됩니다.

 

기도 자인 우리와 아버지 하나님 사이(관계)가 발전하거나 진일보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공동체 안에서 사랑의 열매(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선한행실’)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선물이나 보내 주기를 바라는 이는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삶에 율법(말씀, 훈계)으로 개입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아니 불편하게 여깁니다.

그 결과 어린 아이처럼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신앙에 매몰되게 되고, 공동체의 근심거리를 제공하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어떻게 가르쳐 주고 있을까요?

11:9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11:10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11:11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11:12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13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여기에 보면 은총의 도구인 기도를 통해 자신의 자녀에게 정말 주고 싶은 것이 등장합니다.

무엇일까요?

빵과 생선과 달걀과 같은 현세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빵과 생선과 달걀처럼 실체하는 성령입니다. 핵심은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영(숨 생명 바람)이지요.

 

따라서 기도 자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과 사귈 수 있고, 성령을 통해서만 그분의 성품을 닮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 사귈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동사의 뜻입니다.

이것은 성령을 보내 달라는 단순한 요청이 아닙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성령과의 교제(친교)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더욱더 열정적으로, 더욱더 가까이 추구하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성령이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알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래 ’(루하흐’ / 프뉴마’)바람혹은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바람에 비유한 이유는 물질로 오해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 중에 바람과 같이 현존함으로(3:8)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분을 진심으로 찾아야 합니다. 바람이 고요할 때 공기가 나를 감싸고 있음을 느끼려면 마음을 모아 집중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영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사귐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즉 성령과의 교제(친교)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더욱더 열정적으로, 더욱더 가까이 추구하는 애씀이나 희생이 있을 때 바람()으로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빵과 생선과 달걀처럼 항상 좋은 것으로 제 자식에게 주는 자비하신 아버지로 드러나실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할 때 다짜고짜 자기 말(소위 기도제목이라는 것들)부터 시작하는 것은 무익합니다. 상대를 생각하지 않고 다짜고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 다면 온전한 대화, 온전한 사귐이라고 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게 기도해야할 적발한 순간들도 있습니다. ‘주여 삼창(다니엘9:19)’으로 하나님을 깨워야할 위기의 순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전에 기도 자가 해야 할 것들을 이렇게 가르칩니다.

시편 131:1 야훼여, 내 마음은 교만하지 않으며

내 눈 높은 데를 보지 않사옵니다.

(오만하여 남을 낮잡아 보지 않사오며)

나 거창한 길을 좇지 아니하고 주제넘게 놀라운 일을 꿈꾸지도 않사옵니다.(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6:33)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는 것을 헤치는 기도가 앞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총의 도구로 주어진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알아가고(히브리어 동사 야다’) 사귀고(헬라어 코이노니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분을 사랑하는 최고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고의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살전5:17 늘 기도하십시오.

 

그러니 안 계시는 듯한 시간안 계시는 듯한 골방(기도의 지성소)’에 들어가 안 계시는 듯한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시편 131:1을 오늘의 언어로 이렇게 바꾸어 기도합니다.

내 마음의 교만(하나님 없이 한 일)을 죽여주시옵소서.’

내 마음의 오만(남을 낮잡아 본 일)을 꺽어주시옵소서.’

내 마음의 자랑(자신을 높이는 일)을 없이 하여 주시옵소서.’

 

한 마디로, 주여 우리를 용서하여(불쌍히 여겨,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호산나(히브리어 우리가 당신께 구하오니 우리를 구원하소서.’)가 우리 기도의 첫 말이자 첫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바람처럼 안 계신 듯한 하나님의 영성령내주 역사하실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기도의 초점은 하나님 그분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소위 말하는 우리의 기도제목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는 것(6:33)안에 속한 것들인지를 살피시고 또 살피실 때 입의 침묵 눈의 침묵 마음의 침묵 생각의 침묵을 통해 성령의 검증, 성서의 검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피정 避靜 retreat, 잠시 물러나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일인지 항상 묵상(되새겨 보십시오)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