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직분의 기원-
(들어가는 말)
현 한국교회에서 집사, 권사, 장로, 목사, 감독의 직분은 일종의 ‘계급’처럼 이해 되는 경우가 많다. 집사에서 권사로, 권사에서 장로로 임직되는 것을 마치 ‘진급’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아는 어떤 권사 한사람은 여러 번 장로 선거에서 떨어지자, 장로보다 더 높은 계급(?)인 ‘목사‘직으로 ’특진‘하겠다고 하면서 어떤 이상한 야간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목사가 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교회 역사에서 어떤 기간 동안 교회 직분을 ‘계급’혹은 위계질서(hierarchy)로 정한 때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에도 그런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교단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는데, 성경정신이나 개신교 신학에서 볼 때, 교회 직분은 결코 ‘계급’이 아니며, ‘은사’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처음 시작한 사역에서, 그리고 초대교회에서 과연 ‘직분’제가 어떻게, 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으며, 그리고 시대와 환경과 사회체제가 바뀌었다고 해도 , 그 ‘처음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초 예수의 공동체에서 12제자는 ‘직분’이었나?
기원 1세기 초반의 예수의 활동이나 그의 사역에 대하여는 신약성서 외에 다른 자료에서는 별로 찾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역사가 요세푸스, 타시투스(Tacitus), 플리니(Pliny)등의 기록에 단편적으로 나와 있을 뿐이다 (주.1) .
분명한 것은 예수는 '교회’를 창설하거나 어떤 조직을 만들지는 않았다. 예수의 사역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의 순회전도자 혹은 혜성같이 나타난 예언자 같은 종류로 보였을 것이다.(마13:57,막8:28,마21:11, 눅24:19, 요4:19, 6:14, 7:40, 9:17) 그래서 예수께서 하신,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질문에 대하여, ‘엘리야, 예레미야, 혹은 세례 요한의 환생, 또는 선지자중 에 하나라고 사람들이생각하고 있다’라고 제자들은 대답을 한 것이다.(마16:13-14)
대부분 예언자들의 사역에서 보듯이, 예수에게도 그를 따르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복음서 기자들은 그들을 ‘믿는 자들’이나 ‘제자’로 부르지 않고, 단순히 ‘무리’ (crowds)라고 표현하고 있다. 예수는 그런 ‘무리’를 조직화 하거나 또는 그 속에 어떤 직분이나 리더쉽 자리를 만들지는 않았다. 12명의 제자들의 위치는, 예수의 최초 공동체에서는 , 직분 혹은 리더쉽의 자리는 아니었다. 최초에는 다만 예수의 ‘메시야’ 즉 이스라엘의 왕 됨을 기대하고 따라다녔던(마20:20-21, 행1:6 참조) 갈릴리 어부출신이나 세리 등 하층민이거나 그저 평범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저 ‘제자’들이었다.
예수가 떠난 후, 첫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 후, 교회가 시작이 되었다. 어느 조직이나 모임이 생기면 그것을 이끌어가는 ‘리더쉽’의 자리가 필요하게 된다. 자연히 예수가 택하였고, 그에게서 훈련받은 ‘12제자’가 ‘사도’라는 명칭으로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행정적, 권위적 혹은 제왕적 지도자들이 아니라, 그때 ‘한번만’ 있었던 특수한 ‘사도’라는, ‘즉 보냄 받은 자’(apostolos)라는 ‘은사직’의 ‘직분자’들이었다.
최초로 시작된 ‘직분’, ‘일곱’ (the Seven) 사역자.
시간이 지나면서 믿는 자들의 수가 늘어나게 되자 사도가 아닌 일반 신자들 중에서 최초의 ‘직분’제가 시작이 되었다. (행 6:1-6). 사도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것인데(행 6:4) 교인수가 증가하게 되자 교회 내에 자연히 교인 관리, 봉사하는 일 등 행정적인 일들이 생기게 되었다. 특히 구제하는 일로 히브리파 신자와 헬라파 교인들 사이에 어떤 갈등 혹은 불평 까지 생기게 되었다(주 2). 그래서 사도들은 신자들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듣는 사람’ (행 6:3) ‘일곱’을 택하여, 사도들을 도와 구제하는 일과 기타 봉사하는 일을 맡도록 한 것이다.
그것은 교회 조직과 행정 및 직분제도의 원시적인 시작이었다. 한데 그때 사도들이 안수하여 세운 ‘일곱’이 과연 어떤 ‘직분’의 성격이었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이론이 많다. 우선 그들은 최초의 ‘집사’직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그것은 그들을 세운 목적이, 사도들을 도와, 교회의 구제하는 일을 돕도록 한 것을 유추해 볼 때 그들의 직무가 집사의 직이라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사도행전기자가 언급한 ‘음식 베푸는 일’ (행6:2)의 히랍어 표현, ‘식탁(table)을 섬긴다’에 나오는 단어, 헬라어는 diakonein(동사)인데, 이것의 명사형 diakonos는 ‘집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약 어디에도 그들을 ‘집사’라고 표현한곳은 없다. 또한 예루살렘 교회에 장로와 함께 ‘집사’의 직이 있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그 ‘일곱’중에 한 사람인 스데반은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기도 하고, 담대하게 말씀전하는 일을 행하였다.(행 6:8-7:60) 또 한사람은 ‘전도자 빌립’(Philip the Evangelist)이란 이름으로 불리면서, 사마리아 등에서 전도하며 병도 고치고, 이방전도에 공헌했다.(행8:4-7) 그리고 세례도 베풀었다.(행8:36-39) 그 ‘일곱’을 최초의 장로들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행 11:30에서, 안디옥 교회가 ‘구제금’을 모아서 예루살렘의 ‘장로’들에게 보냈다고 했는데, 그 ‘일곱’이 구제와 관련된 예루살렘교회의 장로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곱은 대부분 헬라파 유대인들로 보이는데, 예루살렘교회에 ‘헬라파’장로들이 있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이에 대하여 교부 크리소스톰은 ‘그 일곱’은 최초의 집사이고 또 장로이다. 그러나 집사도 아니고 장로도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그때 예루살렘 교회의 특별한 상황에서 요구된 특별한 임무를 수행했던, 그리고 그때에만 존재했던, 선택된 사명자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집사직분의 시작이었건, 최초의 장로들이었건, 혹은 단순한 봉사자였건, 교회가 최초로, 성도들 가운데서, ‘직분자’들을 선택하고, 기도와 안수라는 형식으로 임명하기 시작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한데 교회가 최초로 세운 그 ‘일곱’, 교회역사에서 시작된 최초의 ‘직분’인 그들 역시 어떤 행정적인 혹은 ‘계급’적인 직책이 아니고, 다만 ‘섬기는 자’의 ‘은사 직’을 받은 사람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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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 역사가 Tacitus: 110년경, 네로황제에 의한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 고문 등을 기록하고 있다.
• Babylonian Talmud: (Sanh.43a): 'Jeshu ha-Nostri' 에 대한 언급이 있 다. ‘그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고 길 잃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였다.’ ‘이스라엘은 그 사람을 유월절 저녁에 매달았다.’
• 로마의 집정관, Pliny (61-113 ad.)는 크리스쳔 죄수들을 조사하면서, 과연 이 새로운 종파가 위험하고도 악한 일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면서, 황제에게 그 당시 크리쳔들이 행하는 관례 등을 보고하는 글을 올렸었다.
(주.2.)이것은 2천년간 교회 역사에 계속 있어왔던 갈등 및 분쟁의 최초 사건이다. 여기서 갈등의 원인은 단순한 ‘구제’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그룹내에서의 ‘파워(power)’문제였다. 아람어를 사용하며 예루살렘 지역에 뿌리를 가 진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주류’행세를 했고, 헬라말을 사용하는 그룹을 무시하거나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가 ‘분파’의 원인이 될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과 같이 다인종 사회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그룹들 이 있을 때,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언어 때문에 오해와 분파가 생길수도 있 음를 보여주는 첫 케이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