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흥겸을 위한 <아주 특별한 배웅> | ||||||||||||
10주기 맞아 유고집 출판기념회와 함께 '작은 공연' 마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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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대학 3학년 때인 1983년부터 파주 백석교회와 신림동 낙골교회를 섬긴 전도사. 1987년부터 사당동, 돈암동, 신대방동 등 철거 지역에서 활동한 빈민운동가. 서른여섯 살의 짧은 생을 살다간 故 김흥겸의 10주기를 맞아 그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아주 특별한 배웅>(나눔사)을 펴냈다. 이 책은 그가 죽은 직후 펴낸 <낙골연가>를 다시 편집한 것이다. 80~90년대를 뜨겁게 살다간 김흥겸을 다시 불러낸 것은 그의 친구들이다. 작년 이맘때쯤 김흥겸의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고인의 친구들이 꽤 모였다. 그 자리에서 10주기를 기념하기로 하고 ‘김흥겸과 벗들’(cafe.daum.net/kcomrade)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유고집을 만든 것이다. 친구이자 신학과 동기인 정혁현 목사(한살림교회)는 1984년 축제 때 공연한 ‘누가 예수를’을 떠올렸다. 그때 예수 역을 맡은 것이 김흥겸이었다. 이때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민중의 아버지’도 직접 작사 작곡했다. 공연을 함께한 친구들은 3000명을 몰고 다니며 연세대 교정을 누볐다. 시위 군중으로 돌변할 태세였다. 그러나 김흥겸과 친구들은 연극이 끝나자 급하게 사라졌다. 정 목사는 이때 받은 정서적 충격이 컸을 거라고 했다. “그날 우리는 연극을 마친 뒤 비겁하고 무책임하게 도망쳤던 사실을 괴로워하며, 한 곳에 모여 밤을 지새웠습니다. 연극 ‘누가 예수를’에서 결국 우리는 겁이나 도망간 베드로를 실감나게 표현한 것이지요.” (1991년 8월 7일 부모님께 보낸 옥중편지에서 <아주 특별한 배웅>, 169쪽) 정 목사는 김흥겸이 이때를 계기로 더욱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고 회상했다. 자신의 비겁함과 나약함을 감추려는 듯 말이다. “이때부터 김흥겸은 낙골교회 전도사로 활동하고, 철거민운동에도 앞장섰죠. 늘 굶고 철거하는 사람들과 함께 싸우며 거리에서 돌아다니는 삶을 살았어요. 그러다가 1990년대 초 수감된 후로 많이 지친 상태에서 새로운 모색을 하던 중에 발병했죠.” 그의 장례식은 특이했다. 그가 죽기 3개월 전에 치른 것이다. “제 장례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라고 말할 만큼 담담하게 치른 장례식이었다. 그렇게 떠난 그는 친구들과 함께 늘 살아 있었다. 그래서 10주기를 준비하는 정 목사의 모습도 담담해보였다. ‘김흥겸과 벗들’은 출판기념회도 마련했다. 2월 13일 연세대학교 신학과 채플실에서 홍순관 이지상 류금신 박준이 노래하고, 조성진 회장(한국마임협의회)이 마임을 공연한다. 낙골교회를 담임했던 오충일 목사(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장)가 덕담도 나눈다. 오후 5시 30분에 모여 함께 식사하고, 오후 7시부터 행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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