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귐의 기도 20
사귐의 기도를 위한 9가지 도구 ⑤금식기도
마태복음 9:15 2018/12/26(수)
9: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공)9:15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잔치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곧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금식禁食이란 음식을 일정기간 끊는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는 단식斷食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식을 뜻하는 히브리어 ‘צוס춤’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금식 즉 먹지 않는 행위보다 히브리어 ‘צוס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더욱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즉 금식을 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촉발하는 인간의 연약한 본능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금식을 행합니다.
속죄, 몸의 정결함, 자성(반성), 깨달음(자아성찰), 간구, 치유 등 어떤 특정한 의도의 목적을 가지고 금식에 접근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צוס춤’ 원칙적으로 그런 것들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먹고 자는 문제가 무의미해 지는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식음을 전폐하는 것이지요.
그런 후 하나님의 개입을 간절히 간구하는 것이 바로 구약성경의 금식기도입니다.
다니엘의 세이레(21일) 금식기도가 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단10:1 바사 왕 고레스 제 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
10:2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10:3 세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공)10:1 페르시아 왕 고레스 제 삼년에 일명 벨트사살이라고도 하는 다니엘은 계시를 받아 틀림없이 큰 싸움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환상을 보고 그 뜻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10:2 그 때 나 다니엘은 삼 주간 동안 고행을 하고 있었다.
10:3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았고 고기나 포도주도 입에 대지 않았으며, 머리에는 기름을 바르지 않은 채 예정된 삼 주간을 채웠다.
헬라어의 금식은 ‘νηστις네스티스’입니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히브리어 ‘춤’과 헬라어 ‘νηστις네스티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괴로움’과 ‘슬픔’을 촉발시킨 어떤 동기로 인해 ‘먹지 않음(식음 전폐)’이라는 결과가 자연스럽게 파생된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구원만을 바라는 자연스러운 금식이지요.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런 것입니다.
세리와 죄인과 함께 어울려 식사하는 것을 아주 못 마땅하게 여긴 바리새인과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찾아와 예수님께 묻습니다.
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우리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주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보면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요한의 제자들이 행하는 금식이 앞서 설명한 것의 의미 보다는 영적 자만심이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을 빙자한 종교적 행위 즉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는 규율이 된 것입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이 참된 금식의 의미를 바로 잡아 주십니다.
9:15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잔치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곧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잔치 집 신랑을 빼앗기는 날
즉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슬픔과 아픔과 고통의 상황이 오면 그들도 오직 하나님의 구원만을 바라는 자연스러운 금식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가 금식을 접근할 때 원어적인 의미 즉 의도적이지 않은 금식보다는 의도적인 금식(신앙적 종교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고 또 그렇게 행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웨슬리 목사님의 표준 설교 중 ‘산상설교 7번’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우선 웨슬리 목사님은 금식을 두 종류로 나눕니다.
첫째 의도치 않는 금식입니다.
깊은 슬픔과 고통이 찾아왔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금식입니다.
앞서 설명했던 성서의 금식입니다.
둘째 은총의 도구로 사용되는 의도적인 금식입니다.
① 절제 없는 삶을 견제하거나 탐심과 같은 육신의 욕망을 방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하는 금식.
② ‘영혼의 술 취함’ 곧 모든 영적 감각들을 무디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도적으로 행하는 금식.
‘의도치 않는 금식’이나 ‘의도적인 금식’이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 유익하다는 입장이 웨슬리입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어떠한 금식이던 간에 영적 감각을 무디게 하는 것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영적 감각을 증진시킬 수 있는 은총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 방종에 대한 자기 형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웨슬리 목사님이 금식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의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더불어 행하는 금식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금식을 통하여 기도가 더욱 간절해질 뿐만 아니라 금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열망하는 거룩한 마음씨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웨슬리 목사님은 금식을 생활화합니다.
생활신앙으로서의 금식기도입니다.
금식, 왜 해야만 하는가?
첫째, 회개케 하는 하나님의 은총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회개하는 이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용서받은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성화의 은총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금식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웨슬리는 금식과 관련해서 두 가지의 극단적인 입장을 경계합니다.
첫째 금식을 과소평가하는 ‘금식 무용론’입니다.
주로 세대주의 역사관에 따른 율법 폐기론 자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데 은혜의 시대에는 금식이 필요 없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회개의 은총, 용서의 은총, 성화의 은총으로 이끄는 귀한 도구가 금식입니다.
두 번째로 금식의 대한 과대평가입니다.
마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6: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한 마디로 이런 뜻입니다.
금식 참 좋은 것인데, 자칫 잘못하면 과대평가되어 자기 의를 드러내는 자랑의 수단으로 변질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금식은 은총의 수단이지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한계를 분명히 알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금식과 관련하여 웨슬리 목사님의 입장은 중간입니다.
첫째, 만능열쇠처럼 전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무익한 것도 아니다.
둘째, 신앙의 목적 그 자체가 될 수 없지만 신앙의 목적 달성을 위한 귀중한 은총의 수단이다.
셋째, 하나님이 제정하신 은총의 수단으로 적절히 사용할 때 하나님이 틀림없이 그 안에서 자신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금식과 관련된 웨슬리의 말입니다.
‘금식하지 않는 이는 기도하지 아니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하늘가는 길에서 멀다.’
다음은 ‘그리스도인의 바림직한 금식기도’ 안내서입니다.
1) 금식
①일정기간 음식을 먹지 않거나, 특정 음식을 금하는 것.
(예를 들자면, 나실인의 포도주 금주, 레갑 족속의 포도주 금주)
②화려한 의복을 피하거나 장식이나 화장을 제거하는 일.
③머리에 재를 뿌리거나 베옷을 입는 일(‘욤 키부르’ 대속죄일)
④자신의 몸을 괴롭게 하거나 상하게 하는 일 등 다양함.
*구약시대에는 이 모든 것을 금식의 행위로 여겼지만 신약 시대에 와서는 ①을 제외하고 ②-④까지는 바람직한 금식의 행위로 여기지 않았다.
2) 금식의 정도 또는 분량
①모세 엘리야 우리 주님처럼 초자연적 능력을 하늘로부터 부여 받아 하는 ‘40일 주야 금식’
②성경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일반적인 금식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금 식’, 특히 이 금식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고 행함.
③ ‘절반금식’ 연중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양일에 걸쳐 오후 세시까지 금식.
(웨슬리 목사님이 가장 선호 한 금식)
④ ‘절식금식’ 금식이 불가능한 병자나 신체가 허약한 사람이 쓰는 방법으로 평상 시 보다 소량의 식물을 섭취하거나 부분적으로 금식하는 것.
(성경에 없는 금식 방법이지만 사용가능한 금식의 방법이며 하나님의 축복 또한 동일하게 임할 것이라는 것이 웨슬리 목사님의 견해)
⑤ 최하위의 금식으로 사용되는 방법은 ‘미식(美食)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고기와 포도주(왕의 진미)를 거부하는 것(단1:8)
⑥ 공동체가 특정한 날을 정하여 하는 금식, ‘공동체 특별금식’
*해마다 정기적으로 하는 금식
부활절을 기준으로 해서 ‘금요일 토요일 48시간 금식’, ‘고난 주간 금식’, 또는 ‘고난 주간 포함 두 주간 금식’으로 매일 저녁때 까지 금식함.
*매주 넷째 날(수요일), 여섯째 날(금요일) 금식
*대림절 금식
⑦ 때에 따라서 개인이 정하는 ‘개인 특별금식’
자신의 형편에 따라 행하는 은밀한 금식
3) 그리스도인의 금식기도
오직 주님만을 향하는 ‘향심’이 준비된 금식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고정시키고 금식 그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번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 하나님의 말씀을 범한 우리가 범죄로 인한 그 마음의 슬픔과 수치심을 표현하기 위해
- 더욱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위하여
- 기도의 진지함과 간절함을 더하기 위하여
-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금식기도의 결론입니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아니하든
첫째 회개의 은총으로 사용하십시오.
둘째 용서의 은총으로 사용하십시오.
셋째 성화의 은총으로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