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잠언8:32-33 지혜를 얻으라

心貧者 2018. 8. 13. 11:32


지혜를 얻으라

잠언8:32-33 2018/08/12 성령강림 후 128:32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8:33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볼만한 신앙의 명제세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오늘 본문 잠언에서는 그것을 또는 훈계라는 단어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도’ ‘하나님의 훈계’ ‘하나님의 말씀같은 의미입니다.

둘째 명제입니다.

태초에 계셨던 그 말씀(/훈계)’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셋째,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그 말씀(/훈계)’은 곧 누구다?

하나님이셨다.

 

그래서 새 번역 성경은 이 부분을 세 가지 명제로 나누어서 아주 명확하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1: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이렇게 세 가지 명제가 우리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틀이 됩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

 

말씀

헬라어로 로고스라고 합니다.

로고스란 헬라 문학과 철학에서 아주 다양한 말로 번역되었지만 주로 또는 진리등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아주 보편적인 번역이지요.

 

그런데 우리 성경은 헬라어 로고스를 진리로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태초에 도가 계셨다, 태초에 진리가 계셨다가 아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직역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뜻을 살리는 의역을 한 것이지요.

개역개정판 새 번역판 공동번역판 모두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역을 했습니다.

아주 의도적이지요.

 

왜 그랬을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이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천지 창조의 모든 에너지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1:3 하나님이 이르시되(가라사대/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1: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15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이처럼 하나님이 이르시되(가라사대/말씀하시기를)’라고 선포하고 명령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대로 되었다는 것이 창세기 1장의 증거입니다.

천지 창조의 모든 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이 창세기 1장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헬라어로는 로고스라고 하지만 히브리어 동사아마르라고 합니다.

말하다, 말씀하다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동사가 명사가 되면 이렇게 발음합니다.

다바르

우리말로 번역하면 또는 말씀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동사 말씀하다아마르

명사 말씀다바르

 

그런데 성경은 이 두 단어가 아주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말씀하다라는 동사 아마르말씀이라는 명사 다바르나 항상 그 뒤에는 그에 상응하는 사건이 반드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시 창세기 13절입니다.

1:3 하나님이 이르시되(아마르) 빛이 있으라 하시니 / 빛이 있었고

 

1:6 하나님이 이르시되(아마르)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따른 응답과 반응 사이에 빈틈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처럼 입으로만 아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말한 대로 반드시 이루지는 참말히브리어 동사 아마르히브리어 명사 다바르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요한복음에서 헬라어 로고스를 번역할 때, 일반인들처럼 진리로 번역하지 않고 말씀으로 일부러 의역한 것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빈말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지는 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내 삶을 변화시키는 참 말씀’ ‘인생말씀가지고 있습니까?

 

제가 요즈음 묵상하고 인생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 324-7절입니다.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여기서 나온 제 인생의 첫 번째 명제가 하나님은 항상 옳다입니다.

 

하지만 325절입니다.

32: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

여기서 나온 두 번째 명제가 있습니다.

나는 항상 악하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자리로 항상 나아가는 것입니다.

 

32: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오,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32:7(그러니)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여기서 나온 세 번째 명제는 주여 자비와 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지혜는 항상 저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는 바늘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바늘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인데, 침 잠, 바늘 잠 ()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 마음에 찔리는 말씀들의 모음집이 바로 잠언이라는 책입니다.

 

따라서 잠언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반드시 두 가지의 반응이 일어나야 합니다.

 

첫째 찔림, 각성입니다.

제 정신을 차리는 것이지요.

누가복음 15장의 나오는 탕자처럼 ‘15:17 스스로 돌이켜입니다.

회개가 되겠지요.

제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즉각적인 돌이킴과 지속적인 변화입니다.

탕자처럼 다시 돌아와 아버지 품에 덥석 안기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버지 집에서 회복된 아들의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탕자처럼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우는 각성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각성이지요.

바로 들었을 때 믿음이 생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8:32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8:33 훈계를 들어서 /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연이어 나오는 동사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들으라, 지키라, (다시)들으라, 얻으라, 버리지 말라

 

어떻습니까?

이런 말씀에 붙들려 살아갑니까?

 

잠언의 지혜 자는 아주 분명하게 권면합니다.

제 정신이 확 드는 말씀

그 말씀에 붙들려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르침, 그 은총의 깨우침인 지혜를 버리지 말고 지금 당장 행하라는 것입니다.

행하되아주 우직하게 정직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버리지 말고’, 제발 우직하게 정직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대속의 은총, 십자가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거룩함의 신선도가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삶 가운데 유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강진으로 유배되었을 때입니다.

불혹에 나이인 40대 초반의 닥친 유배 생활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은 시절을 원망하기 않았습니다.

자기를 갈고 닦고, 또 세상을 경륜할 지혜를 쌓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리고 인재들을 불러들여 공부를 시켰지요.

 

어느 날 아전의 자식이었던 열다섯 살 소년 황상이 다산을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저같이 머리 나쁜 아이도 공부할 수 있나요?"

그러자 다산은 오로지 부지런히 노력하면 안 될 일이 없다며 삼근계三勤戒'의 가르침을 글로 적어주었습니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

그런 후 재능 있는 이의 병통이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외우는데 빨라 매사에 소홀하고, 재주로 글을 지어 글이 들뜨고, 빨리 깨달아 결이 거칠다. (하지만) 둔탁한 끝으로는 처음엔 뚫기 어렵지만 한 번 뚫리면 막힘이 없고 갇혔던 봇물이 한 번 터지면 흐름이 장대해지며 답답함을 이기고 연마하면 더욱 더 빛이 나는 법이다.’

 

무슨 말입니까?

삼근계三勤戒'

재주 많은 사람이 우직하게 노력하는 사람을 당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고린도교회 정말 좋은 교회였습니다.

온갖 은사가 충만한 재주 많은 교회였습니다.

물질도 넉넉했고 교회도 크고 정말 재주 많은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에게 가장 큰 근심을 준 교회가 바로 고린도교회였습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훈계 곧 깨달음 말씀에 대한 반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편지 말미에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적어 보냅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거의 절규지요)

 

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고린도교회에 비해 형편없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규모나 교회의 재정이나 사역에 있어서 정말 재주가 없는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항상 미소를 머금게 하는 흐뭇한 교회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훈계 곧 복음의 가르침에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 즉시 반응을 보였던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살전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믿음의 역사믿음의 일, 믿음의 활동입니다.

사랑의 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은 자들의 정직한 반응들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두주후면 60주년 기념 예배를 드립니다.

제가 기도하면서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플라스틱 교회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의 말입니다.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썩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주님의 말씀은 날마다 썩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름도 없이 형체도 없이 썩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날마다 죽는 것그것이 나의 자랑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빛바랜 플라스틱으로 남아 있습니까?

 

재주 없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칭찬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 이유를 바울은 이렇게 밝힙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13절입니다.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