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1: 8-17 복음의 능력
복음의 능력
로마서 1: 8-17절 2015/ 1/ 14(수)
1: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1: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로마서 3번째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로마서는 사도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낸 편지형태의 글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바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선 로마서를 쓸 때 로마 교회의 상황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쓰기 전에 이미 로마에는 상당수의 그리스도인이 존재했단 사실입니다.
어떤 경로로 또 누구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로마에까지 들어갔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학자들마다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추측이지 정설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쓰지 전에 또 사도 바울이 로마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로마에는 하나님의 복음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공동체로서 교회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의 수신자를 이렇게 구별해서 부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 절인 7절입니다.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로마서의 수신자입니다.
로마서의 수신자가 누구라구요?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
이미 로마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교회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무명의 전도자로 인해 로마에는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로마교회가 지금까지 모든 교회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적극적인 수용입니다.
이는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의 부흥.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부흥에는 다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는 한국교회는 외국 선교사의 의해 특히 미국 선교사(아펜젤러, 언더우드)의 의해 복음이 처음으로 증거 되고 그들의 도움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조금 지나쳐서 지금도 미국을 아버지의 나라,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나라로 여기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일정부분 그러한 면이 없다고 부인할 수 없습니다.
특히 6.25전란이후 미국, 영국(성서공회), 필리핀(장충체육관), 인도, 터기 등 당시 유엔의 원조로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역시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선교와 부흥의 역사는 외국선교사들의 손에서만 이루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자생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성장시켰다는 점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천주교회든 개신교회든 선교사가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자생적으로 또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가장 큰 자랑이요 특징입니다. 로마교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것이 한국교회 부흥의 가장 큰 밑천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에 선교사의 헌신으로 교회가 부흥할 수 있는 부흥의 틀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물론 교파주의라는 부정적인 면을 양산한 것도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자생적으로 우리 민족 스스로 복음을 받아들었다는 것.
이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천주교회의 경우, 정약용의 처남 이승훈이 그 대표적인물입니다.
친구 이벽을 통해서 이미 서학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인 이승훈은 중국에 가서 교리공부를 하고 그라몽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은 한국 최초의 영세자가 됩니다.
조직적인 천주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또 사제가 조선 땅에 파송되기 전에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한국천주교회의 자랑이요 힘입니다.
이분의 묘가 인천대공원 가기 전 물홍보관 뒷산 장수동 반주골에 있습니다.
개신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 그리고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가 오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는 자생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서상륜 서상우 두 형제가 주역이 되어서 세운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있는 소래교회입니다.
이것이 한국최초의 교회입니다. (총신대 양지캠퍼스 복원)
그리고 그 다음 해 선교사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가 정동제일교회이고 새문안교회입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숨은 힘입니다.
이처럼 로마교회나 한국교회나 적극적인 복음의 수용은 교회의 시작뿐만 아니라 교회 부흥의 역사로 이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질문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날처럼 교회의 형태를 갖춘 조직도 없었고 또 선교단체도 없었는데 어떻게 로마에 있는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였을까? 입니다.
그것도 제국의 심장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 해답이 지난 시간에 다루었던 본문 1장 1절-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능력 때문입니다.
첫째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능력이고,
둘째는 이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능력입니다.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래서 오늘 본문 끝 절에서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복음(좋은 소식)은 두 가지입니다.
1장 4절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첫째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능력이고,
둘째는 이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복음을 거짓 없이 수용하고 받아들인 곧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으로 응답한 사람들에는 예수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믿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의가 나타나는 구원의 역사를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능력을 동일하게 얻게 되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복음은 그 자체가 능력이고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복음 그 자체의 능력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교회라는 조직의 능력 때문도 아니고 목사 개인의 능력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복음.
하나님의 복음 그 자체가 능력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복음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능력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4장 12절입니다.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복음 그 자체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한국교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복음, 그 복음의 능력 자체를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믿고 의지하려 하고, 물질을 믿고 의지하려 합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복음 그 자체의 능력보다는 사람을 의지하고, 물질의 힘을 의지하고 신뢰하다 보니까 부흥의 시계가 멈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시 한 번 부흥의 바람을 타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복음, 그 자체의 능력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능력에 ‘믿음(신뢰)’이라는 날개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된다는 이 복음의 능력.
여기에 우리교회가 믿음의 날개를 달아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신앙이 비상하고 우리교회가 비상하고 우리 한국교회가 비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쓰면서 염려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그 복음의 능력으로 세워진 로마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상실할까 하는 염려입니다.
바로 분쟁으로 말미암은 복음의 능력 상실입니다.
은사주의로 나누어지고 그리고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헬라인 그리스도인으로 분열할까 하는 염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로마 교회가 바울의 염려대로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상실합니다.
그 결과 로마교회가 분쟁가운데 놓이게 되고 부흥이 멈추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쓰면서 가장 중심을 두고 한 말이 하나님의 복음, 그 복음의 능력을 다시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즉 복음의 능력에 믿음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다시 로마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이유입니다.
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바라기는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복음을 듣고 또 들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복음 듣는 일에 게으름 피지 마십시오. 부지런히 듣고 열심히 들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에 믿음의 날개를 달아주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