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5장1-11 믿음의 열매 ‘화목’
믿음의 열매 ‘화목’
로마서 5장1-11절 2015/5/20(수)
아주 오래 전 부흥 강사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믿음에는 두 종류의 믿음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개떡 같은 믿음이 있고 또 하나는 찰떡같은 믿음이 있다고 합니다.
개떡 같은 믿음이란 말 그대로 개떡 같이 제 멋대로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어린아이와 같이 변죽이 심합니다.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니 신앙의 성숙으로 얻게 되는 믿음의 맛을 모르고, 믿음의 주변에서만 서성거리는 ‘The Almost Christian’(조지휫필드)에 머물게 됩니다.
옛날 목사님들이 목회 할 때는 파송제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연회에서 감리사가 파송기를 낭독하면 그 파송지에서 목회를 하는 제도입니다.
그 때 선배 목사님들이 후배들에게 꼭 이런 주의사항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사 갔을 때 제일 먼저 가방 들어준 사람을 조심하라’
왜 그럴까요?
가방 들어준 사람이 나중에는 목사님이 가방 싸는데 제일먼저 앞장서기 때문입니다. 자기 맘에 안 든다는 것이지요. 자기를 섭섭하게 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생긴 말이 ‘제일 먼저 가방 들어준 사람을 조심하라’입니다.
이것이 개떡 같은 신앙의 특징입니다.
반면에 찰떡같은 믿음의 사람이 있습니다.
‘찰떡같다’
뭔가 믿음직하지요.
이 말의 뜻을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풀어 말합니다.
‘서로 떨어질 수 없을 만큼 정이 두텁고 관계가 깊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런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절대 흔들림이 없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결코 변치 않는 믿음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편지를 쓸 때 특히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한 사람을 아주 힘 있게 부각시킵니다.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도 아니고 성전을 상징하는 다윗과 솔로몬도 아니고 아브라함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의 의, 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를 설명하면서 한 사람 아브라함을 아주 두각 시킵니다.
왜 바울은 하나님의 ‘의’인 믿음을 설명하면서 아브라함을 선두에 두고 있는 것일까? 믿음 그러면 노아도 있고 에녹도 있고 그리고 엘리야도 있는데 왜 아브라함일까? 사실 의문스러운 부분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우선 아브라함은 출발부터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첫째, 그는 갈대아 사람입니다.
달의 신, ‘신’을 섬기는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여호와의 신앙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둘째, 자식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당시 자식은 복의 기준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증표입니다.
여기서도 자격 미달입니다.
셋째, 주체적이지 못한 즉 책임감이 좀 결여 된 사람입니다.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 말씀만 보면 아브라함이 대단한 사람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앞 절을 보시시오.
창11: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11: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고향인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날 때도 아버지 데라의 손에 이끌려 떠납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에도 그 약속을 지켜내지 못한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버리고 이집트에 피난 간 것도 모자라 자기 혼자 살겠다고 아내를 두 번씩이나 남에 남자에게 넘겼던 아주 못난 사람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의로운 삶과 거리가 먼 사람이지요.
그런데 바울은 믿음, 곧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특히 아브라함의 믿음을 두각 시킵니다.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4: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볼 대목이 있습니다.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4:19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했다는 것입니다.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찰떡같은 믿음이지요.
그래서 22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고 바울은 재해석합니다.
바울의 통찰력이지요.
바울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 육체의 조상인 아브라함, 그의 믿음의 행동인 하나님의 ‘의’를 언급하면서 로마에 사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율법의 삶을 넘어 그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믿음으로 나아갈 것을 지금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 다음이야기로 이어갑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인 그 믿음을 언급한 후 그 믿음이 주는 유익, 그 실제적인 삶을 언급하면서 죄와 율법을 극복한 성령 안에서의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5장 1절입니다.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여호와’의 관계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려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목적이 바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둘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주어진 하나님의 ‘의’ 즉 믿음의 삶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인생을 살아내자는 것입니다.
율법에 매여 사는 불신앙의 삶을 버리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셋째, 하나님의 의 즉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아래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을 이루자
둘째, 하나님의 ‘의’ 즉 믿음을 가졌다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인생으로 거듭나자.
셋째, 거듭난 자답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은혜아래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지금 로마 교회 특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유명한 성구가 3,4절입니다.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그리고 그 소망(기대)은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증거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을 만큼 두터운 정분을 쌓고 나누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도, 예배드릴 때도,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 하나님과 ‘화평’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있는지 따져 물어야한다는 것입니다.
6-11절입니다.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5: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5: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 부분을 새 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5:6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제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5:7 의인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욱이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은 드뭅니다.
5:8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5:9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5:10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5:11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해(화목,화평)
만약 이 증거가 없다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증거가 확실하다면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 얻었다는 증거로서의 화해
그리고 둘째, 이 일을 이루신 분 곧 하나님에 대한 자랑
이 두 가지의 삶으로 나가가는 것이 성령 안에서의 삶, 즉 죄와 율법을 극복한 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살다보면 실족할 만큼 큰 환난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첫째, 인내 (언약의 신뢰 즉 믿음)
둘째, 소망 (하나님의 은혜)
누구처럼?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4:19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인내와 소망을 저 버리지 않은 아브람처럼 찰떡같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