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요한삼서 1:1-4 사랑하는 가이오

心貧者 2018. 12. 11. 15:06


사랑하는 가이오

요한삼서 1:1-4                                      2018/12/07()

1: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1: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1: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신약성경은 27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짧은 책이 요한삼서입니다.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짧습니다.

요한삼서.

요한이 보낸 세 번째 편지라는 뜻입니다.

 

편지의 수신자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째, 11절의 장로 가이오입니다.

 

초대교회를 이루었던 신앙의 지도자 두 그룹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흩어져 복음 전도의 사역을 감당했던 사도들입니다.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라고 합니다.

오늘날 선교사들의 원형이지요.

또 하나는 그렇게 해서 형성된 교회 공동체를 내실 있게 지도하고 감독했던 장로들(오늘날의 목회자)입니다.

헬라어로 에피스코포스라고 하고 감독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의 원형이지요.

 

사도들과 장로들, 초대교회를 이루었던 지도자 그룹입니다.

이중에서 가이오는 장로에 해당하는 사역을 감당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째 등장하는 수신자는 9디오드레베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등장하는 수신자는 12데메드리오입니다.

세 분 모두 장로의 직임을 감당했던 분들로 한 분씩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11절에 언급된 장로 가이오입니다.

장로 가이오

동력 자였던 사도 요한의 평가가 참 후합니다.

1: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

이것이 장로 가이오에 대한 사도 요한의 평가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은 장로 가이오에 어떤 삶의 진면목을 보고 이런 평가를 내리게 된 것일까요?

그 시대적 배경을 좀 설명 드리겠습니다.

 

13절은 형제들이 와서로 시작됩니다.

형제들

여기서 말하는 형제들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마을마다 가정마다 찾아다니면서 증거 했던 떠돌이 전도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문제는 탁발 스님과 같이 떠돌아다니는 떠돌이 설교자들(전도자들)에 대한 대우와 처우가 문제였습니다.

우선 그들이 머무는 동안 먹을 것과 잠자리를 해결해 줘야 했고, 떠날 때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다음 행선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약간의 여비와 먹을거리도 챙겨줘야 했습니다.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이 일을 교회 안에서 부담으로 여겼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떠돌이 전도자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둘째 그들이 진짜 전도자인지 아니면 전도자를 가장한 떠돌이 집시인지 분별하고 검증할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 당시 교회 공동체가 처한 경제적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떠돌이 설교가나 떠돌이 복음 전도자를 선대하고 환대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돌이 설교자나 떠돌이 복음 전도자를 영접하고 환대한 사람이 바로 장로 가이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떠돌이 설교자나 떠돌이 복음 전도자가 전한 복음의 메시지 즉 진리의 증언들을 허투루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받았고 진심으로 행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장로 가이오에 대한 아름다운 소식을 접한 사도 요한이 편지를 쓰게 되었고 그 편지에서 인사말과 함께 장로 가이오를 존중하고 칭찬하게 됩니다.

13절부터 8절까지 새 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1:3 신도들(떠돌이 복음전도자) 몇이 와서, 그대가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그대의 진실성을 증언해 주는 것을 듣고 나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1:4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1:5 사랑하는 이여, 그대가 신도들, 더욱이 낯선 신도들을 섬기는 일은 무엇이나 충성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1:6 그들은 교회의 회중 앞에서 그대의 사랑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대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게, 그들을 잘 보살펴서 보내는 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1:7 그들은(떠돌이 복음전도자)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나선 사람들인데, 이방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습니다.

1:8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돌보아주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진리에 협력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장로 가이오의 진면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로 가이오와 달리 행동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장로로 추정되는 9디오드레베입니다.

요한 삼서의 두 번째 수신자이지요.

 

디오드레베

사도 요한은 그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1: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내가 ‘1등 장로’ ‘수석장로라는 것이지요.

문제는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만큼 으뜸 되는 믿음의 행동을 교회공동체 안에 있는 교우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본이 되지 못했지요.

 

그래서 디오드레베를 사도 요한이 책망합니다.

10절입니다.

()1: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가 하는 일들을 들추어내겠습니다.

그는 악한 말로 우리를 헐뜯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자기도 신도들을(떠돌이 복음전도자)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려는 사람들까지 방해하고, 그들을 교회에서 내쫓습니다.

 

이것이 장로로 추정되는 디오드레베의 부끄러운 행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처한 공동체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떠돌이 전도자들을 대책 없이 영접하고 환대했던 장로 가이오 보다는 어쩌면 교회의 형편을 고려해서 냉정하게 판단했던 장로 디오드레베가 더 현실적이고 옳다고 여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 안에는 디오드레베와 같이 현실적인 사람이 더 많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현실적인 사람 디오드레베가 아니라 믿음의 사람 가이오편에 드십니다.

왜요?

하나님의 속성 뿌리가 나그네에 대한 긍휼과 자비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 율법에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가이오와 같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그리고 낯선 형제들을 섬기는 일에도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그런 성도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라는 신앙공동체, 믿음의 공동체는 이런 분들에 의해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디오드레베본명이 아니라 세례명일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풀면 하나님에게 양육 받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양육을 받는 사람디오드레베입니다.

복되고 정말 멋진 이름이지요.

 

하지만 디오드레베는 자신의 이름값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위협하는 걸림돌이 됩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바로 교만 때문입니다.

 

세 번째 등장하는 수신자는 데메드리오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와 이름만 같고 전혀 다른 사람이지요. 사도행전 19장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는 아데미 신전이 있는 에베소에서 아데미 신상모형을 만들어서 팔았던 장사꾼이었지만 요한삼서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는 바울처럼 이방인 전도자로 이방인 선교사로 부름 받은 훗날 장로의 직임을 감당했던 사람입니다.

요한삼서를 장로 가이오에게 전달한 인물이지요.

사도 요한은 데메드리오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1: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1:12 데메드리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고, 또 바로 그 진실한 삶으로 그러한 평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데메드리오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떤 그의 진실한 삶이 이런 평을 얻게 하였을까요?

바로 그 앞 절 11절을 보시기바랍니다.

악한 것을 본받지 않고 선한 것을 본 받아 선을 행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가이오’ ‘디오드레베’ ‘데메드리오

한때 그리스도라는 한 길만을 걸었던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자 복음의 동역 자들이었지요.

 

하지만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마음하나 때문에 가는 길이 갈라지게 됩니다.

가이오’ ‘데메드리오는 끝까지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한 길을 가지요.

반면 디오드레베는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고도 그 길을 이탈하게 되지요.

 

묻겠습니다.

어느 길을 가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