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3:7-11 오래된 기도
오래된 기도사사기 3:7-11 2018/11/18 성령강림 후 26주
3: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3: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3: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3:10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3:11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그리고 위로와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사사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의 모습과 교회의 현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사기는 열 두 명의 사사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2지파, 12사사, 12제자(따르는 자) 12사도(보내심을 받은 자: 가롯 시몬 유다→바울)
성경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코드입니다.
사사.
사사가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전쟁이 났을 때, 외부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받았을 때,
이스라엘의 12지파 공동체를 지키는 일을 합니다.
12지파가 동맹한 연합군의 총사령관 역할이지요.
이런 사사를 우리가 ‘대 사사’라고 부릅니다.
6명입니다.
①옷니엘(삿3:7-11) ②에훗(3:12-30) ③드보라(4-5장) ④기드온(6-8장) ⑤입다(10:6-12:7) ⑥삼손(13-16장)입니다.
이들처럼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전쟁영웅 6명을 ‘대 사사’라고 부릅니다.
사사가 하는 일 두 번째.
재판관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백성들의 시시비비 곧 옳고 그름을 판결하는 재판관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이런 사사를 가리켜 우리가 ‘소 사사’라고 부릅니다.
‘대 사사’와 동일하게 역시 여섯 명입니다.
①삼갈(삿3:31) ②돌라(10:1-2) ③야일(10:3-5) ④입산 ⑤엘론 ⑥압돈(12:8-15)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재판관들이지요.
이처럼 대 사사 여섯 명의 전쟁영웅과 소 사사 여섯 명의 재판관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는 책이 바로 사사기입니다.
사사기.
다른 책의 비해 매우 도식적입니다.
형식만 도식적인 것이 아니라 사사기가 담고 있는 내용 또한 아주 도식적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합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지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거짓의 결정체인 우상 숭배이고 거짓과 허의 의식인데 그것을 백성들이나 지도자들이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등진 것이지요.
둘째, 그러자 하나님은 즉각 분노하십니다.
분노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곡식 빻듯이 심판하십니다.
그것도 아주 치욕스럽게 심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개, 돼지로 여겼던 이방인들의 손에 의해 아주 철저하게 무너지는 징계를 당하게 하십니다.
아주 무섭지요.
셋째, 그 가혹한 시련의 시간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드디어 입을 엽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호산나)’
간절히 부르짖으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합니다.
그러면 넷째, 구원자를 보내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보내진 자가 바로 사사입니다.
하지만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또 다시 죄를 짓고, 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또 부르고, 심판은 다시 하나님을 찾는 부르짖음으로 또 나타나고, 그러면 인자하신 하나님이 또 구원자 곧 사사를 보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다시 평화가 깃들게 됩니다.
죄, 심판, 부르짖음, 구원자의 도래, 평화,
다시 죄, 심판, 부르짖음, 구원자의 도래, 평화,
이렇게 순환 구조를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소 도식적인 이 구조가 우리의 삶과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기는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과 우리 교회 공동체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반면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꾀 신뢰할만하고, 꾀 확실한 반면교사이지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옷니엘 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이지요.
웃니엘이 역사 속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가나안 정복 전쟁이 한창일 때입니다.
가나안 정복시기, 유다 지파에 속했던 갈렙이 드빌 곧 기럇세벨을 치러 갈 때입니다.
그 때 전쟁터에 나가는 군사들 앞에서 갈렙이 약속하나를 합니다.
드빌 곧 기럇세벨의 도성을 쳐서 굴복시키는 자에게 자기 딸 악사를 주어 혼인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여성을 소유물로 간주했던 시기임을 감안하고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누가 나서는가 하면,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앞장섭니다. 그렇게 해서 옷니엘이 기럇세벨 도성을 정복시키고, 그 상급으로 갈렙의 딸 악사와 혼인하게 됩니다.
갈렙의 딸 악사, 보통 내기가 아니었습니다.
남편 옷니엘을 시켜 밭을 얻게 하지요.
그렇게 해서 얻은 땅이 남방 지금의 네게브 사막, 메마른 땅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악사가 직접 나서서 아버지에게 조릅니다.
남방, 네게브 사막의 메마른 땅을 주셨으니 거기에 있는 샘 몇 개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샘이 윗샘과 아랫샘입니다.
사사기 1장 14-15절입니다.
1:14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15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네게브 사막, 그 메마른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목축뿐이었습니다.
결국 옷니엘은 아브라함처럼 외로운 목축 업자가 됩니다.
하지만 농사지을 수 있는 좋은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가 살았던 다른 형제들의 형편은 좀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처럼 이미 가나안 정착민들이 누리고 있던 땅의 풍요로움, 곡식의 풍요로움, 열매의 풍요로움, 포도주의 달콤함이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입니다.
그러니 광야생활과 정복 전쟁에 지친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겠습니까?
가나안 정착민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의 다른 형제들이 두 가지를 타협하게 됩니다.
세상과의 타협이지요.
하나는 이방 민족 가나안 사람들과의 혼인이고,
또 하나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을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은 것이지요.
3: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새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겨,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다.
짧은 한절이지만 여기에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섭섭함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주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겨’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다.’
그러니 의의 하나님이 가만있을 수 없지요.
그래서 앞서 설명 드린 것처럼 하나님이 즉시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메소포타미아(시리아 지역) 왕 구산리사다임의 손에 이스라엘을 넘기신 것이지요.
3: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팔년, 적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참회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더 이상은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십니다.
3: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그렇게 해서 등장한 인물이 사사 옷니엘이었습니다.
네게브, 메마른 땅에서 윗샘 아랫샘을 왔다 갔다 하면서 목축이나 했던 옷니엘.
그 옷니엘이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이스라엘의 사사로 나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사로잡은 하나님의 영을 어떻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3:10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이후 사사 옷니엘은 40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평화를 선물하게 됩니다.
3:11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말씀을 마칩니다.
한 주를 살아가면서 마주한 시 한편이 있었습니다.
시인 이문재의 오래된 기도입니다.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남방 변두리 사람 옷니엘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위샘 아랫 샘을 아무 의미 없이 왔다 갔다 하듯, 우리가 처한 삶의 자리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고 우리의 처지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기도 응답으로 우리를 하나님이 쓰시겠다하면, 여러분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시대에 구원의 도구로 쓰시겠다하면서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영을 부어시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 번쯤, 한 번 쯤 멋지게 사로잡혀 쓰임 받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눈을 감기만 해도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그것이 누군가 기도의 응답이 된다면,
한 번 쯤 멋지게 이 시대의 참된 기도 자로,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시대를 깨운는 예언자로 쓰임 받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