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1-2 약점을 담당하는 교회
약점을 담당하는 교회
로마서 15:1-2 2018/08/19 성령강림 후 13주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퀴즈하나 드리겠습니다.
다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경남 양산시 통도사, 경북 영주시 부석사, 경북 안동시 봉정사
충북 보은군 법주사, 충남 공주시 마곡사, 전남 순천시 선암사
전남 해남군 대흥사
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유네스코가 2018년, 올해입니다.
세계문화유산에 새롭게 등록한 전통사찰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우리에게도 생소한 일곱 개의 사찰들을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찰이 빼어나게 아름답거나 역사가 오래되어서가 아닙니다.
또 교세가 크거나 명망이 있는 스님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이들 일곱 사찰을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7∼9세기 창건 된 이후 현재까지, 천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입니다.
종교의 가치인 신앙심과 수도자의 생활과 그리고 구도자의 정진 생활이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천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입니다.
다음 주는 우리 교회가 60년의 세월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생으로 따지면 60년 만에 맞는 환갑이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다음 주에 우리가 환갑잔치를 여는 것입니다.
환갑이 될 때 까지 우리 교회가 교회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말씀의 선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난 6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 강단에서 선포되었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바뀌고 회중이 바뀌어도 3,120회 주일 동안 단 한 번의 멈춤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 강단에서 매일 이어졌다는 가치입니다.
두 번째는 성례전입니다.
두 가지 성례전입니다.
성찬과 세례가 지속적이고 그리고 연속적으로 집행됨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증거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단에서 선포된 모든 말씀들이 과연 하나님이 의롭다 여기실까?’
또 ‘그리스도의 몸의 증거인 성찬과 세례에 있어 우리가 너무 무지하고 게을렀던 것은 아닌가?’
라는 아쉬움과 자기반성이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참 고맙다 참 감사하다’라는 말 외에는 다른 적정할 표현이 없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37절에서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앞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었던 신앙의 선배들의 헌신과 헌물과 눈물 덕분임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합니다.
헌신과 헌물과 눈물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심지 않은 것을 거두고 있고 또 그것을 아주 유용하게 누리고 있다는 고마움과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주제를 나눕니다.
전반부의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죄란 무엇인가? 그리고 죄로부터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에 대한 깊은 논의를 주로하게 됩니다.
그것이 1장부터 8장까지의 주 내용입니다.
반면 편지의 후반부에 가서는 구원의 은총을 받은 이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마음과 태도를 가르쳐 줍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다시 읽겠습니다.
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새 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면 이렇습니다.
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15:2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이웃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면서, 유익을 주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여기에 보면 참된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마음가짐과 태도가 나옵니다.
첫째, ‘믿음이 강한 우리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제가 환갑을 맞는 우리 교회에 가장 바라는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돌보아 주는 믿음이 강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강해야 하는가?
자랑 질이 아닙니다.
자기만족이 아닙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돌보아 주기 위해서입니다.
관심으로, 마음으로 그리고 물질과 몸으로 돌보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는 공감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 보다 못한 사람들과 진심으로 사귈 수 있고,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만 아는(제 식구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가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거듭난 이에게 있어서 우주의 중심(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지.
그래서 거듭난 이들은 중력, 곧 물질의 힘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은총 곧 십자가에 의해 지배당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중력의 힘을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연약함(육신의 연약함)은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제 좋은 데로 제 편한 데로 제 욕심 것 살아간다면 그것은 악한 일이고 하나님을 근심케 하는 일입니다.
특히 나보다 연약한 형제자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일부러 골탕 먹이기 위해 장애물을 놓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욕보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이들을 향하여 이렇게 힘주어 권면합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달리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내 형제에게(이웃에게) 좋은 대로만 해야 합니다.’
빌립보소 2장 4절의 말을 빌린다면, 제 실속만 차리지 않고 남의 이익을 돌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남 좋은 대로 하는 곳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특히 나보다 더 연약한 형제가 좋다고 여길 때까지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진짜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나 보다 못한 이들과의 진실함 사귐 없이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바울의 권면을 꼭 귀담아 들으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15장 2절입니다.
15:2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이웃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면서, 유익을 주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빈자리를 채우고 우리 교회가 부흥할 수 있는 제1원칙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작곡가인 이건용 선생님이 쓰셨던 ‘알토들의 존재감’이라는 칼럼의 일부분입니다. (중앙일보, ‘삶의 향기’ 꼭지, 2015년 8월 25일)합창에서 알토 파트의 존재감은 약하다. 다른 파트들에 비하면 확실히 그렇다. 소프라노의 존재감은 분명하다. 우선 합창의 네 파트 중에서 제일 높은 성부를 부른다. 잘 들린다. 또 소프라노는 거의 항상 주선율을 맡는다(중략). 소프라노는 음악을 리드하는 역할을 맡으며 그 음악의 표정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베이스는 합창에서 화음의 기초이자 기둥이다. 소프라노가 선율로서 합창을 리드한다면 베이스는 화성으로 음악의 틀을 만들어 준다. 다른 파트와는 움직이는 원리가 다소 다르다. 그래서인지 저음이지만 잘 들린다.반면 알토는 이도 저도 아니다. 선율을 책임지는 것도 아니고 화성 진행의 기둥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여성의 저음이어서 소리가 약하다. 다른 파트들에 묻혀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하지만 알토는 우선 합창에 볼륨감을 준다. 스스로의 소리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전체의 합창 소리를 풍부하게 만든다. 알토는 협력자다. 소프라노와 협력하여 이중의 선율 선을 만들기도 하고 테너와 협력하여 화성을 완성한다. 만일 색채감이 많은 화성을 사용하고 싶다면 내성, 특히 알토의 협력이 절실하다.”
그렇습니다.
알토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사람들,
협력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복되게 하는 이들 덕분에 그나마 우리 교회가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그러니 그런 알토란같은 복된 이들을 홀로 있게 하지 마십시오.
외롭게 하지도 마십시오.
또 그들이 스스로 지쳐 우리 교회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관심과 배려와 사랑을 진심으로 베푸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