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4:35-41 바람을 꾸짖다
바람을 꾸짖다
마가복음4:35-41절 2018/03/16 금요기도회 4: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4: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조미미씨가 부른 노래 중에 ‘바다가 육지’라면 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아시나요?
후렴 가사는 이렇습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을 것을아 아 바다가 육지라면눈물은 없었을 것을 (KBS 가요무대)
이처럼 바다는 인간이 넘을 수 없는 한계 상황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으로 눈을 돌려 보겠습니다.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아주 짤막하게 한 절로 묘사하고 있지만 사실 엄청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람을 향해 꾸짖었다’
그랬더니 ‘바람이 그치고, 풍랑이 아주 잔잔해졌다.’
누구의 말씀 한 마디로 이런 역사가 나타났다고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자, 한 번 물어 봅시다.
이 말씀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믿어지십니까? 정말 믿어지십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눈으로 직접 목격한 제자들도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41절입니다.
막4: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 이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한 로고스, 곧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에 나오는 이야기부터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공생애 사역지로 택한 곳이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갈릴리입니다.
막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성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변방 갈릴리지요.
거기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정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십니다.
소위 기적사화라고 불리는 5가지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➀1장 21-28: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쫒습니다.
➁1장 29-31: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줍니다.
➂1장 40-45: 나병환자를 고쳐주십니다.
➃2장 1-12: 중풍 병자를 고쳐주십니다.
➄3장 1-6: 안식일에 손마른 자를 고쳐주십니다.
이것을 마가는 3장에서 이렇게 총평합니다.
3: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3: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앞서 설명 한 5가지의 기적사화)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3: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3: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3: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이처럼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 하는 일이였기도 하지만 제자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늘 그렇듯 공의로운 일,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늘 삐딱하게 보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누구일까요?
첫째는 예수를 잘 안다고 하는 친족들이였고,
둘째는 드러내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우선 친족들, 곧 고향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3: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둘째, 바리새인의 반응입니다.
3: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그러니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가만있을 수 없었습니다.
“얘야? 니들 큰 형이 미쳤단다.” 그러면서 예수의 형제들을 모두 데리고 예수를 찾아 길을 나서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물어물어 자신의 아들 예수가 있다는 갈릴리 바닷가에 이르게 됩니다.
이 상황을 인식한 무리들이 예수님께 고하지요. 3: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그 때 우리 주님이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제대로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을 하십니다.
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제대로 미친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이 앞으로 열어 가실 새 세상
곧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볼 때는요?
불의가 없는 참된 세상이지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내 자매요 내 어머니가 되는 세로운 질서의 세상입니다.
그 어떤 분리도, 그 어떤 차별도, 그 어떤 경계도 없는 평화의 세상, 평등의 세상, 참된 화목으로 가득한 세상이지요.
하나님 안에서 누구나 하나가 될 수 있고, 대접 받을 수 있는 평화와 평등,
이것이 우리 주님이 행하신 갈릴리 사역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갈릴리와 이방을 경계를 짓는 바닷가로 제자들을 이끌고 나아가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 바다 저쪽, 그쪽이 어디입니까?
5장 1절입니다.
5: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경건한 유대인이 꺼리는 이방인의 땅 ‘거라사인의 지방’입니다. ‘그곳으로 건너가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마음은 탐탐치 않았습니다.
때 마침 바람도 심상치 않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거센 바람이 일더니 순식간에 파도가 배 안으로 들이치는 것입니다. 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배 안이 완전 아수라장이 됩니다.
밤은 깊어가지요.
큰 광풍은 그칠 줄 모르지요.
물이 가득 찬 배는 점점 가라안지요.
결국 극치의 두려움과 공포감에 빠진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요?
그 와중에 예수님이 어떻게 하고 계시다고 성경이 증거 합니까?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이 그림, 상상이 좀 되십니까?
그래서 제자들이 나섭니다.
38절 후반부입니다.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첫째,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교회의 모습입니다.
갈릴리 바닷가 즉 갈릴리라는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의 땅으로 가자는 것은 예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차별 없이, 경계선 없이 모든 이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역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다라는 경계선, 그 한계선을 넘어 이방인의 땅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가신 것입니다.
거기 누가 있었기 때문입니까?
귀신들린 자
곧 하나님의 구원, 그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귀신들린 사람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이야기가 오늘 본문이후 5장에 나오는 거라사 귀신들린 사람의 치유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의 비명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되었어여.’
하지만 정작 그들이 말하는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손길, 그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는 불신앙의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라는 공동체 배 안에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계십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쫒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고, 나병환자를 고쳐주고, 중풍 병자를 고쳐주고, 심지어 안식일에 손 마른 자도 고쳐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말합니다.
‘선생님, 왜 우리를 돌보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얼마나 불신했던지,
‘아도다이,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라오니,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이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나만 살려주고, 나만 구원하여 달라는 이기주의적 신앙과 왜 지금 당장 나를 돌보지 아느냐는 불신앙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선 첫째, 주님의 호통(꾸짖음)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잠잠하라 고요하라’
우선 이 두 마디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왜요?
구원, 그것은 하나님의 몫이고 책임이니 그 구원의 역사를 잠잠히 그리고 고요치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요?
믿음입니다.
둘째, 순종입니다.
거친 바람이 순종하고 억센 바다가 순종하는 것처럼 너희도 좀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앞에 놓인 인생의 바람(풍랑)을 그치고,
그래야 우리 앞에 놓인 바다와 같은 망망한 미래가 잔잔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 밤에 ‘어찌 믿음이 없느냐?’는 주님의 꾸짖음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무기력에서 벗어나 믿음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