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9절 주기도문 강해⑩
주기도문 강해⑩
마태복음 6:9절 2017/11/15(수)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장을 보면 예수님이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기도를 가르쳐 주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자의 올바른 태도로 마태복음 6장 5-6절입니다.
6: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여기에 보면 기도자의 서로 상반된 태도가 나타납니다.
하나는 절대로 따라 하지 말아야 할 기도의 태도이고
또 하는 반드시 갖추어야할 기도의 태도입니다.
우선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기도의 태도’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기도 즉 외식의 기도입니다.
외식의 기도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은총의 도구로 주어진 기도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기도란?
하나님과 기도자의 사이의 ①소통(대화)이고 ②사귐이고 ③일치이고 ④찬양입니다.
소통(대화), 사귐, 일치, 찬양 이것을 위해 은총의 도구로 주어진 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기도자가 은총의 주관자 이신 하나님보다 다른 사람(피조물)을 더 의식한다면, 그래서 그들로부터 ‘경건한 자, 신앙심이 깊은 자(Pious)’라는 좋은 평가와 높아짐을 기대한다면 대화의 상대자이자 은총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아주 기분 나쁘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님은 기도의 올바른 자세에 있어서 아주 극단적인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바로 골방기도입니다.
골방으로 들어가 세상을 향해 열린 근심의 문, 의심의 문, 자랑의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숨어)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오직 하나님의 은총 속으로 들어가 소통과 사귐과 일치와 찬양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리새인의 외식처럼 경건의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는 어리석은 기도의 태도를 버리시고 골방(영의 중심)으로 들어가 우리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은총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주기도문에 등장하는 여섯 가지의 청원 중에서 첫 번째 청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청원은 하나님을 위한 기도로 6장 9절 후반부에 등장합니다.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을 향한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첫 번째 청원.
‘(아버지의,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입니다.
여기서 잠깐
주기도에 등장하는 ‘청원의 순서’를 주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 셋은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1) (아버지의,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2) (아버지의,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아버지의,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청원 셋은 우리 자신과 우리 공동체를 위한 것들로,
4)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곧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
5)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6)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이 순서를 통하여 예수님이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 있습니다.
기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우선이 되어야할 것은 하나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기도의 중심축이 되어야한다는 뜻입니다.
그분의 이름, 그분의 나라 그리고 그분의 뜻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원칙을 어기고 나의 필요, 나의 문제를 먼저 언급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를 가르쳐주신 이후 기도의 결론에서 이렇게 당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6:30-34절(새 번역 성경)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6: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6:32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6: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오늘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
이처럼 ‘나 중심의 기도’에서 ‘우리 중심의 기도’로 그리고 ‘우리 중심의 기도’에서 ‘하나님 아버지 중심의 기도’로 전환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기 계시인 말씀 묵상이 충분히 이루어져야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계신된 말씀의 힘으로 ‘나 중심의 기도’에서 ‘하나님 중심의 기도’로 전환될 수 있기 은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없는 기도는 결국 하나님을 향한 방향을 잃게 할 것이며, 기도 없는 말씀은 결국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과 기도, 기도와 말씀은 반드시 우리 삶 속에서 짝을 이루어야합니다.
사도행전 6장입니다.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6: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주기도의 첫 번째 청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를 원문으로 직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당신의 이름이 거룩해지소서.’
우리말 국어사전에 따르면 ‘듣는 이를 조금 높여 가리키는 말’이 ‘당신’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당신’이 보편적으로 낮잡아 부를 때 사용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소서.’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핵심은 ‘이름’이지요.
예수님시대 이름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곧 ‘자신의 전부(모든 것)’이자 ‘존재(생명)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버지의) 이름’은 ‘아버지 하나님 자신’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런 ‘존귀한 이름’이 죄인 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감히 입에 담을 수도, 감히 부를 수도 없는 존귀한 이름이 죄인 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죄인 된 우리에게 첫 번째로 가르쳐 주신 청원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카도쉬’입니다.
이 말은 원래 ‘구별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라는 말은 ’하나님은 전적으로 다른 분이시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과 전적으로, 질적으로 다른 분이라는 고백과 찬양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의 뜻입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피조물은 유한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피조물은 물질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고 피조물은 그 한계에 갇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선과 진리와 정의와 아름다움에서 흠이 없으시고 피조물은 무엇이 선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정의를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처럼 그 다름과 한계를 인정한 것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의 뜻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이 기도는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 특히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구별되심을 알아보고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인정하기를 비는 기도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피조물과 얼마나 다른 분인지를 모든 인류가 알게 되기를 기원하는 청원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기도인 시편 8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8:1 주 우리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저 하늘 높이까지 주님의 위엄 가득합니다.
8:2 어린이와 젖먹이들까지도 그 입술로 주님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는 원수와 복수하는 무리를 꺾으시고, 주님께 맞서는 자들을 막아 낼 튼튼한 요새를 세우셨습니다.
8:3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둘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할 때 그 누구보다도 우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단독 자, ‘나 자신’을 생각해야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피조물인 나와 얼마나 다른지를 아는 것.
이것이 기도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하늘 아버지, 저로 하여금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절로 나와야 합니다.
그럴 때 다 알 수 없지만 좀 더 하나님을 넓고 높고 길고 깊게 알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사로잡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는 체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이 기도가 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을 향한 중보기도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알게 되기를 구하는 중보기도이지요.
우상을 버리고 거짓된 신에서 벗어나 영원하고도 참된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구하는 중보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 자는 이렇게 바꾸어 기도할 수 있어야합니다.
‘하늘 아버지, 저로 하여금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하옵소서’
⇨‘하늘 아버지, 제 자녀에게도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하옵소서’
⇨‘하늘 아버지, 제 친구에게도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하옵소서’
⇨‘하늘 아버지, 북녘동포들에게도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하옵 소서’
이런 시각에서 보면, ‘전도와 선교’는 또 다른 면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려는 노력입니다.
‘전도’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모든 노력으로, 전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는 스스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것입니다.
또한 ‘선교’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게 하는 모든 노력으로,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며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높일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 아버지를 향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전도와 모든 선교에도 적극적 이어야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 원하는 이들은 이 세상에 불의와 부정 그리고 거짓과 오만에 대해서 가슴 아파해야 합니다.
불의와 부정 그리고 거짓과 오만의 뿌리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임을 잊지말아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둠도 그림자도 거짓도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저희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희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통해 아버지의 이름이 높아지게 하시며,
주님의 몸 된 우리 교회를 통해
주님의 이름이 온 세상 앞에서 높아지는 회복의 역사가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