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고린도전서 1:1-3 은혜와 평강이 있는 교회

心貧者 2017. 9. 19. 14:55


은혜와 평강이 있는 교회

2017/09/17 성령강림 후 15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늘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얼마 전에는 보수적인 교단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모여 세미나 겸 학술 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자칭 재미이단연구가라는 분이 등장해서 웨슬리의 후예인 감리교와 성결교 그리고 구세군이 이단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분이 주장하는 판단의 근거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존 웨슬리의 글 어디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고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칭의 사상과 칼빈의 예정 사상이 존 웨슬리의 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안에 속한 신실한 교인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웨슬리의 신학과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감리교, 성결교 그리고 구세군은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

흔히 하는 말 중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지하기 때문에 무례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분들의 주장.

일일이 대구 할 가치조차도 없는 무지이고 무례이지요.

 

갈라디아서 325-28절입니다.

3: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이 말은 믿음의 사람은 초등교사 아래 있는 어린 아이처럼 편 가름이나 선긋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청팀 이겨라 백팀 이겨라’, ‘장로교 이겨라 감리교 이겨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장자 차자가 없지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 다 동일한 신분입니다. 높고 낮음이 없지요.)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런데도 이런저런 선 긋기를 하고 장벽들을 세우고, 경계선 밖의 사람들을 조롱하고 경멸하는 것을 보면 그저 그 분들이 딱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말처럼 아직도 초등학문에 묻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딱하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기독교연합’, ‘한국교회연합’, ‘한국독립교회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회’ ‘한국기독교보수교단협의회’ ‘한국기독교개혁교단협의회등 이름이 비슷비슷한 여러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단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그 돈은 한국 교회의 성도들이 드린 헌금으로 충당하지요.

 

문제는 한국교회의 연합, 곧 교회의 하나 됨을 추구하고 표방하면서도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갈라졌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갈라져가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정부도 그리스도교와 이야기할 때 난색을 표합니다.

오직 자신들만이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서로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조금 박하게 평가하자면 이런 단체의 중심에는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습니다.

‘00 대표회장’, ‘00 총회장등 권력에 대한 욕망과 명예의 자리만 보이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 그리스도의 뜻을 중심으로 연합하며,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고자 하는 신앙의 본질이 보이지 않습니다. 민심도 모르고 사회의 변화도 읽지 못하는 그냥 그분들만의 세상이지요.

안타깝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의 도입 부분입니다.

도입부인 만큼 내용은 주로 안부를 묻는 인사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저 의례적이고 개인적인 인사말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곱씹어가며 눈여겨보면 오늘 우리 교회가 회복해야 할 교회의 정체성과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렇게 밝힙니다. 다시 1절 전반부입니다.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

 

하나님의 뜻으로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자신을 아주 분명하게 소개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뜻을 아주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한 때 그리스도의 적대자였던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시고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파송하신 이가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시고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행하고 있는 그 모든 행위의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명맥하게 밝힙니다.

여기서 교회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에베소서 37절입니다.

3:7 이 복음을(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부르심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리고 보내심을 통해 하나님의 일꾼, 사도가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은혜의 선물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잃어버린 교회의 정체성을 발견해야합니다.

바로 소명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소명

그리고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명과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사명입니다.

따라서 이 소명과 사명이 우리 중심 속에 살아 있지 않으면 건강한 그리스도의 교회, 건강한 교회공동체라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침 이와 관련된 적절한 복음성가가 있어서 한 번 불러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나를 지으신 하나님

나를 부르신 하나님

그리고 나를 보내신 하나님.

그 은혜가 여러분 중심 가운데 거하십니까?

정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여겨지십니다.

그러면 그 교회와 그 교회 공동체는 희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분란에 휩싸이고 시끄러운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부르심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소명

그리고 보내심을 통해 하나님의 일꾼 되었다는 사명

하나님이 주신 이 소명과 사명을 망각하고 상황을 자기 방식대로 주도하려거나 대접 받으려는 태도를 품는 순간 그래서 자기 말만 옳다고 주장하는 순간 교회와 교회 공동체는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1절이 편지를 쓴 사람 곧 편지의 발신인을 기록하고 설명하고 있다면 이어서 나오는 2절은 편지를 받는 사람 곧 수신인을 기록해 놓고 있는데, 그 수신인을 바울은 이렇게 설명입니다.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인데, 두 부류의 수신자입니다.

첫 번째 수신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신앙의 모티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구절입니다.

바울신학의 핵심이자 바울신앙의 전부이지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 말의 뜻은 이런 바울의 의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주님의 삶과 죽으심을 나도 함께 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주님의 고난, 나도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나도 함께 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유기성 목사님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아주 간단하지만 이 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왜냐하면 나를 포기해야 내 안에 우리 주님이 들어오실 수 있고, 그래야만 예수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자아가 가득한 곳에는 우리 주님이 들어 설 자리기 없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입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의 삶의 방식입니다.

 

첫째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지요.

그냥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둘째 그래서 내 안에 그리스도만 살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면 우리의 인생길이 단순하고 분명해 집니다.

갈라디아서 220절 부반부입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잃어버린 교회공동체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믿음의 법이지요.

제 맘대로 하는 자기의 법이 아니라 믿음의 법을 세우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교회는 그랬다는 관습의 법이 아니라 믿음의 법이지요.

이것이 부흥을 갈망하는 우리 교회공동체가 꼭 찾아야 할 정체성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믿음의 법대로 사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바울의 편지를 받는 수신인은 고린도에 있는 교회와 교인만을 향하지 않습니다.

다시 고린도전서 12절 후반부입니다.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입니다)

 

사실 이 표현으로만 보아서는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 교인은 아니지만 각처에서 그리스도인의 몫을 감당하는 교인들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어찌되었든 바울은 고린도 지역 밖에 있는 교인들까지 편지의 수신인을 확대합니다. 그만큼 이 편지는 개인의 편지가 아니라 공적이며 공동체의 성격을 지닌 편지라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바울은 이 모든 이들, 즉 고린도 교회 안에서 믿음을 감당하는 이들이나 또 고린도교회 밖에서 믿음을 감당하는 이들이나 그들 모두를 향해 두 가지를 기원합니다.

바로 은혜와 평강이지요.

십자가의 은혜 그리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평강입니다.

 

교회?

여러 가지의 사명이 있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의 사명은 항상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은혜와 평강을 기원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던지, 믿던지 안 믿던지, 항상 하늘로부터 오는 십자가의 은혜와 하늘로부터 오는 평강을 모든 이들에게 기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이 자신의 핏 값으로 사신 교회의 사명이자 존재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큰 환란과 시련 속에서도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그리고 세상의 조롱과 방해 속에서도 이 세상에 없는 하나님의 선물, 그 선물을 주기 위해 은혜와 평강을 날마다 기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응답의 증거가 한 때 십자가가의 원수였던 바로 저와 여러분들 아닙니까?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은 은혜와 하나님의 평강을 서로 서로 기원하십시오.

부정적인 언사를 버리시고, 편 가름을 버리시고, 무엇보다도 교회의 상황을 자기 방식대로 주도하려는 어리석음을 버리시고, 그리고 남에게 대접이나 받으려는 태도 도 버리시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평강만을 기원하는 우리의 진실한 태도만이 남기를 주님께 간구하십시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람들은 우리 교회를 교회라고 부릅니다.

우리도 그렇게 소개하지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린다면 동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동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이렇게 불리어지는 순간 우리는 깊은 고민을 해 보아야합니다.

바로 동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린도에 세워진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응답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도 우리가 속한 동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응답할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준비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분명한 소명과 사명입니다.

동을 향한 분명한 소명과 사명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믿음의 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동을 향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미션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동에 거하는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해 하늘로부터 오는 십자가의 은혜와 하늘로부터 오는 평강을 비십시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