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3장 12절 다섯 가지의 예복
다섯 가지의 예복
골로새서 3장 12절 2017/06/16(금)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마태복음 22장을 보시면 ‘천국’과 관련해서 비유 하나가 등장합니다.
어떤 비유입니까?
왕의 아들을 혼인시키는 ‘혼인 잔치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을 왕실의 혼인 잔치로 비유한 것입니다.
이 비유를 보시면 초청은 받았지만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두 부류가 등장합니다.
첫째, 초청을 거부한 이들입니다.
여기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의 거부 의사는 이런 행동으로 나다납니다.
22:5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22: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22:5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떠나갔다.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가고, 한 사람은 장사하러 갔다.
22: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종들을 붙잡아서, 모욕하고 죽였다.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떠나갔다.’
이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결국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자격’을 하나님은 파괴하십니다.
22: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자격 없음을 선언하십니다.
그런 후 곧 바로 새로운 이들을 향한 구원의 역사를 초대입니다.
9절입니다.
22:9 네거리 길에(동서남북)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그렇게 해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모든 이들에게 천국 찬지에 참여하는 자격이 주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열린 천국이라고 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 마태복음 22장 11-13절입니다.
22: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22: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여기에 보면 천국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기준 하나가 분명하게 명시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 집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예복’
보통 우리가 이것을 ‘성령의 옷’으로 해석합니다.
물론 그렇게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한 주님의 뜻을 살피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전체의 맥락에서 찾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 천국 잔치에 들어 갈 때 입어야할 예복이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바로 ‘의’라고 하는 '선한(착한) 행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의 빛이 되는 존재의 변화, 행실의 변화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과 20절입니다.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것을 사도 바울은 훗날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서 ‘그리스도의 옷’으로 비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언급한 ‘그리스도의 옷’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발전해서 설명한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골로새서 3장 12절입니다.
여기에 보면 천국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할 다섯 가지의 예복이 등장합니다.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①긍휼(동정심)과 ②자비(친절함)와 ③겸손과 ④온유와 ⑤오래 참음을 옷 입고
다섯 가지의 예복을 설명하기 전에 우선 살펴 볼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너희’를 수식하는 하나님의 은총(선물) 3가지입니다.
첫째, 택하심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을 입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주목해야합니다.
두 번째로 거룩함입니다.
‘거룩함’
사실 들기는 좋지만 저는 이 말이 종종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저의 현실과 거룩함은 너무도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거룩한 사람’이라고 선언하듯이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셋째, 사랑받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자’
말만 들어도 흥분되지요.
이것이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세 가지의 은총이라고 바울은 설명합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러한 은총을 받은 자답게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택하심을 입은 자답게
거룩함을 입은 사람답게
그리고 하나님 사랑을 입은 자답게 살아가는 ‘착한 행실’ 다시 말해서 ‘의’의 행실이 우리 삶속에서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긍휼의 옷 자비의 옷 겸손이 옷 온유의 옷 그리고 오래 참음의 옷(착한 행실, 의의 행실)입니다.
첫째는 ‘긍휼’의 옷입니다.
긍휼이란 ‘가엽게 여기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뜻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다른 말로는 ‘동정’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말 국어사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김.’
그리고 이렇게도 설명합니다.
‘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베풀어 줌.’
이것이 곧 긍휼입니다.
나도 모자라지만 나 보다 조금 더 모자라는 사람에게 베풀고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조금 더 힘든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나도 능력이 없지만 나 보다 조금 더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며
나도 슬프지만 나 보다 더 슬픈 사람에게 마음을 쓸 줄 아는 것
이것이 긍휼이라는 착한 행실입니다.
구세군 창설자의 딸인 에반젤린 부스가 지저분한 빈민가에 앉아 어느 술 취한 여인의 상처를 닦아주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녀의 친구가 말했습니다.
“나는 떼돈을 준다 해도 이런 일은 안 할 거야.”
그러자 에반젤린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돈 때문이라면, 나 역시 안 할 거야.”
하나님으로부터 지금 동정을 받고 싶습니까?
그러면 먼저 동정을 베푸십시오.
나도 어렵고 힘들지만 나 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을 향해 동정을 베푸십시오.
환경 탓 여건 탓 하지 말고 먼저 긍휼의 옷을 입고 동정이라는 착한 행실을 베푸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도 우리의 삶을 동정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5장 7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의 본뜻입니다.
두 번째로 자비의 옷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비란 친절함을 뜻합니다.
좀 더 설명을 드리면 慈, 사랑하는 마음과 悲,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동시에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절을 베풀 수밖에 없는 상태가 자비입니다.
세 번째 겸손의 옷입니다.
로마서 12장 16절에 있는 사도 바울의 말을 빌린다면 ‘높은 데 마음을 두지 않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누구처럼 요?
하늘 보좌 버리고 말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헛된 교만 버리고 겸손의 옷을 입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입어야할 옷은 ‘온유’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싸움’에 미친 것 같습니다.
나라도 그렇고 ‘전쟁’에 미친 것 같습니다.
‘타둠과 분쟁’이 끝이 없지요.
‘타둠과 분쟁’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온유의 헬라어는 ‘프라우테스’입니다.
‘프라우테스’
야생에 상태에 있던 야생마가 조련사에 의해 길들어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 드리면 하나님의 의해 길들어진 성품이지요.
그 성품을 가진 사람만이 땅을 기업으로 받아 ‘타둠과 분쟁’으로 가득한 이 땅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래 참음, 인내의 옷입니다.
헬라어 마크로튜미아(makrothymia)라고 합니다.
‘긴, 느린’이란 뜻을 가진 마크로스(makros)와 ‘노여움’이란 튜미아(thymia)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문자 그대로 풀면 오래 참음이란?
‘화내는 데 느리고 노하는데 더딘’이란 뜻입니다.
더 나아가서 화나 노를 품지 않는 것까지 말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은 다섯 가지의 예복을 입고 있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진정한 그리스도이라면 ‘세상과 다른 가치관’,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 줄 필요와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명함이 아니라 아파트가 아니라 자동차가 아니라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사는 사람답게 감히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그 어떤 것들을 보여주고 행할 필요와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한
①긍휼(동정심)과 ②자비(친절함)와 ③겸손과 ④온유와 ⑤오래 참음의 행실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떳떳한 행실을 보고 불의한 세상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