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호세아 10:9-15 공의를 비처럼

心貧者 2017. 4. 9. 15:38


공의를 비처럼

호세아 10:9-152017/04/09 종려주일
10:9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그러니 범죄한 자손들에 대한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

10:10 내가 원하는 때에 그들을 징계하리니 그들이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치리라

10:11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0:13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10:14 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라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

10:15 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늘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

종려주일의 배경이 되는 구약의 말씀이 있습니다.

어디에 나옵니까?

스가랴 99입니다.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구원을 베푸시는 왕 곧 메시야이자, 공의로우신 왕이 오시는데

무엇을 타고 오신다고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하십니까?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입니다.

짐이나 실어 나르는 나귀 중에서도 나귀 새끼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나요?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 하나 해 보지요.

공의로운 왕이자 우리를 구원할 왕이 오신다면 무엇을 타고 오셔야합니까?

적어도 백마는 타야지요.

그런데 무엇을 타고 오신다고 합니까?

볼품없는 그래서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나귀 새끼입니다.

 

어찌되었든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구원의 왕)’로 그리고 공의로우신 왕으로 영접하고 찬양하는 날이 바로 종려주일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대추야자 나무 가지를 흔들었다고 해서 ‘Palm() Sunday’ 또는 호산나’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찬양했다고 해서‘Psalm() Sunday’라고 부릅니다.

 

찬송가 142장입니다. (시온의 오시는 주)

 

1. 시온에 오시는 주 호산나 찬송하며 두 손 들고 기쁨으로 내 주를 맞이하리

겸손히 나귀타고 우리 주님 오시는 날 내 주를 소리 높여 호산나 찬송하리

 

2. 시온에 오시는 주 호산나 찬송하며 종려가지 손에 들고 내 주를 맞이하리

만왕의 왕이 되신 우리 주님 오시는 날 내 주를 소리 높여 호산나 찬송하리

 

3. 시온에 오시는 주 호산나 찬송하며 모든 백성 노래하며 내 주를 맞이하리

만민의 구주되신 우리 주님 오시는 날 내 주를 경배하며 호산나 찬송하리

 

요한복음 12장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보시면 첫 번째 종려주일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2: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2: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2:15 이는 기록된 바(스가랴 99)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2: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다시 16절입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입니다.

그런데 언제 깨닫습니까?

계속해서 읽습니다.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다시 말해 부활승천 하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즉 스가랴 99절이 이루어 진 것과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13절의 행동들이지요.

13절만 다시 읽겠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했던그 의미를 비로써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의 선지자 스가랴의 예언처럼 작고 보잘 것 없는 나귀새끼에 대한 깊은 묵상과 이해가 없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첫 번째 종려주일입니다.

 

따라서 20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가 첫 번째 종려주일의 의미를 올곧게 되찾기 위해서는 그 동안 교회가 외면했던 섬김의 상징, 낮아짐의 상징, 희생의 상징인 나귀새끼를 좀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 스승 중에 한 분인 김영봉 목사님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Palm() Sunday ‘종려주일보다는 Ass Sunday ‘나귀주일로 부르는 것이 어떻겠는가?‘ 라는 제안입니다.

개인적이지만 저는 이 제안에 적극 동의합니다.

그래서 종려주일이 섬김의 주일, 낮아짐의 주일 그리고 희생의 주일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나귀처럼 항상 낮은 자리에서 백성의 짐을 대신지고 그 시대와 하나님의 말씀을 살핀 분들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예언자들입니다.

나귀처럼 항상 백성의 짐을 지신 분들이지요.

그 중에서 오늘 우리가 살피고자 하는 분은 호세아 선지자입니다.

호세아

그 이름의 뜻부터 남다른데, 무슨 뜻을 품고 있습니까?

구원하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호세아와 연결할 수 이름들이 성경에 등장합니다.

어떤 이름들이 있습니까?

호세아이름 앞에 여호와의 약자인 자를 붙이면?

여호수아

 

또 어떤 이름이 있습니까?

저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예수입니다.

호세야 예수아 예수스 예수 이렇게 변천되지요.

호세야’ ‘예수발음은 다르지만 둘 다 구원하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호세아속에는 어떤 구원의 역사, 어떤 구원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지 본문 속으로 한 걸은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호세아가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은 주전 8세기 여로보암 2세 때입니다.

여로보암 2.

역사의 운을 타고난 왕이지요.

그 이전 까지 북 왕국 이스라엘은 매일이 전쟁이었습니다.

남 왕국 유대와의 전쟁이 아니면 주변 강대국과의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강대국들인 시리아와 이집트의 정세가 격동하자 상대적으로 북 이스라엘은 역사상 최고의 안정과 호황을 누리게 됩니다.

그 때 북 왕국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왕이 바로 여로보암 2세였습니다.

역사의 운을 타고난 왕이지요.

 

모처럼 북 왕국 이스라엘에 평화가 찾아오자 그 평화는 백성들에게 경제적 풍요를 안겨 주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빼앗아가는 일도 또 빼앗기는 일도 없으니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풍요로움의 혜택이 모든 백성들에게 골고를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째다카하나님의 공의가 깨집니다.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했고

힘 있는 이들의 억압과 착취는 멈출 줄 몰랐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였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 마련한 왕립성소 두 곳, 곧 사마리아와 벧엘에 풍요의 신이자 물질의 신이자 다산의 신들을 모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들여 온 것이지요.

정말 모처럼 찾아온 꿀 같은 평화 그리고 그 평화의 산물로 얻어 진 물질의 축복들을 북 왕국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로 바꾼 것이지요.

 

그래서 호세아는 나귀처럼 그 시대의 짐을 지고 이렇게 예언합니다.

4: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여기에 보면 북 이스라엘 그 어느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게 않는 두 가지의 죄를 호세아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렇게 고발합니다.

첫째,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긍휼과 자비)도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0:10

즉 올무에 걸린 이스라엘의 두 가지 죄입니다.

 

어떻습니까?

슬프지만 꼭 오늘 우리가 처한 시대와 비슷하지요.

 

진실과 인애가 사리진 평화, 어떤 열매를 맺게 될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라진 경제적 풍요, 어떤 사회적 열매를 맺게 될까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공의인 쩨다카즉 사회 정의가 붕괴됩니다.

4:2 오직 저주(낮잡아 봄)와 속임(사기)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살육과 학살)

 

이 뿐만이 아닙니다.

 

둘째 신앙의 본질, 교회의 본질도 붕괴하게 됩니다.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6: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인애 곧 사랑의 행실이 없는 제사

그리고 하나님 없는 예배

결국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반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붕괴, 교회의 붕괴이지요.

이것이 풍요로움이라는 덫에 걸린 이스라엘의 두 가지 죄입니다.

 

그렇다면 이 죄의 뿌리,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3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무지’ ‘무감각그리고 무자비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오늘 본문 109절에 나옵니다.

10:9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그러니 범죄한 자손들에 대한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

 

이스라엘의 죄, 그 죄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까?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였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기브아 시대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그 때부터 죄가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실까요?

 

우리가 기브아 시대를 엿보기 위해서는 사사기 19장 이하를 참고해야 합니다.

사사기 19장 어떤 이야기가 나옵니까?

 

당시 이스라엘은 왕이 없었을 때입니다.

에브라임 산골에 살고 있던 레위 사람(오늘날로 말하면 종교지도자급에 해당하는 인물을 가리킵니다) 하나가 베들레헴에서 한 여자를 자신의 첩으로 맞아들입니다.

부인이 아니라 첩을 맞아드립니다.

아주 생소하지요.

그런데 더 막장인 것은 레위 사람의 첩이 딴 남자와 바람을 피우다가 남편을 떠나 친정집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넉 달이 지납니다.

할 수 없이 첩을 찾아 나선 레위 사람은 집 나간 첩을 잘 달래서 다시 집이 있는 에브라임 산골로 데려오게 되었는데 그 거리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는 도중에 베냐민 지파의 땅 기브아에서 잠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에 대한 무지’ ‘무감각그리고 무자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아주 참혹한 일이 터지게 됩니다.

겨우 한 노인이 맞아 준 집에서 쉬고 있는데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찾아와서 나그네 곧 레위 사람과 재미를 좀 보겠다.’면서 그들을 내놓으라고 겁박합니다.

아무리 집 주인인 노인이 달래고 달래도 불량배들이 좀처럼 물러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레위 사람이 자기를 대신할 희생 제물로 누구를 불량배에게 넘겨 준 줄 아십니까?

바로 자기 첩입니다.

어렵게 설득해서 다시 고향으로 데려가는 첩을 내 줍니다.

이런 무지이런 무감각이런 무자비이런 무책임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불량배에게 밤새도록 윤간을 당한 이 첩은 노인의 집 앞에 버려진 채로 죽고 맙니다. 더 끔찍한 것은 첩의 남편인 레위 사람이 그 억울한 시신을 12덩이로 토막 내서 이스라엘의 온 지역으로 하나씩 보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사사기의 저자가 이런 끔찍한 일을 자기 책의 말미에 기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죄의 잔인함과 죄의 잔악성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무지 우리의 무감각 우리의 무자비가 이런 죄의 잔인함과 죄의 잔악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없이 풍요의 환상에 빠져 살아가는 이스라엘 곧 에브라임의 죄입니다.

 

이스라엘, 그들 역시 언약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요?

바로 자기 맹신입니다.

13절입니다.

10:13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지 말라는 것을 오늘날 말로 풀어 설명하면 한 마디로 하나님 외에 다른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군사용 병거와 많은 수의 군인을 믿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고고도미사일 사드를 맹신하지 마십시오.

인간의 힘은 다 부질 없는 짓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그러면 이 문제 어디서부터 다시 풀어나가야 할까요?

12절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첫째, 다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쩨다카공의를 심고 인애 곧 사랑의 열매를 거두는 일에 내 인생 전부를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우리에게 인애 곧 사랑의 열매를 맺어준다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 다시 공의 곧 착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단비를 머금지 못하는 돌을 정약용 선생님은 우석雨石이라고 했는데, 그 우석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묵은 땅을 갈아엎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입니다.

바로 지금, 공의를 비처럼 내려주시는 여호와를 찾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사랑의 열매를 거둘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답은 항상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항상 하나님의 뜻을 먼저 여쭙고 그리고 그 뜻을 온몸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더 늦기 전에 항상 공의를 차별 없이 심으십시오.

그러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은총의 단비를 머금지 못하는 우석이 아니라 항상 좋은 열매가 보장 받는 좋은 밭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