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사사기 3:1-7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心貧者 2017. 2. 22. 18:36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사사기3:1-72017/2/17()

3:1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3: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3: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3:4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3:5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3:6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3: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오는 본문은 아주 어려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분깃에 따라 땅을 나누어 줄 때 왜 그 땅에 거주하는 이방민족을 하나님이 속히 쫒아내지 않고 요소요소에 남겨두셨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2:23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

 

출애굽의 하나님 그리고 광야 40년의 하나님.

그 하나님의 강력한 힘 때문에 붙어진 이름이 엘 샤다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선호한 하나님의 이름이지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가르쳐준 이름이 여호와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름보다 더 선호하고 즐겨 부른 이름이 있었는데 엘 샤다이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지요.

 

그만큼 하나님은 출애굽의 역사를 샤다이전능하신 분답게 완전무결하게 해결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칼자루 하나 들고 있지 않아도 전능하신 분답게 정말 흠 잡을 때 없는 구원의 역사를 완전무결하게 완수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광야 40년의 역사 역시 삽자루 하나 들지 않아도 완전무결하게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고 이끌어 내십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르는 짐승들까지도 온전하고 완전하게 보호하시고 구원하십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 간 후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전능성을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불기둥 구름기둥 더 이상 베풀지 않습니다.

하늘의 만나 역시 더 이상 내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원의 책임을 상당부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임시킵니다.

 

그래서 가나안 정복의 첫 관문인 여리고성 전투를 앞두고는 엘 샤다이곧 하나님의 전능성을 상징하는 그 모든 것을 멈춥니다.

여호수아 5장입니다.

5: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5: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여기서 우리가 아주 어려운 문제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때,

출애굽이나 광야시대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다른 곳도 아닌 약속의 땅 아닙니까?

하지만 가나안 땅 정복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전능성을 일방적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예전과 달리 칼도 들어야 했고 삽도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타난 부작용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완전무결하게 정복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민족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되지요.

 

오늘 본문 3절입니다.

3: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동서남북 사방으로 남겨두심)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처음 명령은 가나안에 거하는 모든 족속의 전멸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본문이 신명기 20장에 나옵니다.

20: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20: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그 이유가 그 다음 절에 나옵니다.

20: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그런데 오늘 본문 사사기로 돌아와서 2절 하반부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진멸하라고 한 민족 중에서 상당 부분을 하나님이 일부러 남겨두십니다.

3: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3: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왜 그랬을까?

4절 때문인데 2절부터 봅니다.

3: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3: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3:4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과연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조상들에게 내리신 명령에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지를 알아보시려고 이런 민족들을 남겨놓으신 것입니다.

왜요?

가나안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신세대들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직 자기 조상들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의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시험하는 차원에서 남겨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유독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습니다.

2:22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3:1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3:4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시험한다.’

다시 말해 검증하겠다는 말입니다.

전쟁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그들의 조상들처럼 약속의 땅에 거할 만한 거룩한 백성인지, 아닌지를 하나님이 친히 검증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20장에서 진멸하라고 한 자신의 명령을 거두시고 상당수의 이방 민족을 약속의 땅 요소요소에 남겨두십니다.

시험거리(검증거리)가 될 만한 일들을 하나님이 일부러 만드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도움이 없어도 이쯤 되면,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정착했으면, 그 은총의 자리, 그 믿음의 자리, 그 구원의 자리에 들어갔으면 그 자리에 걸맞게 그들이 이 시험에서 이길 것이라는 기대와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험거리가 될 만한 일들을 하나님이 일부러 요소요소에 남겨두십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시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 좋게 걸려 넘어집니다.

5-7절입니다.

3:5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3:6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3: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제가 이 본문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안타까운 역사.

이 불신앙의 역사를 오늘 우리의 반면교사로 삼아보자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2절입니다.

3: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입니다)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그러면 무엇을 가르쳐 알게 할까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입니다.

모세가 아니라 여호수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 훈련의 장으로 왕이 없는 사사시대를 약 330여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실 가나안 전투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가장 불안을 겪는 것은 강력한 지도자의 부재였습니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이방민족을 지척에 두고 있으니 불안하지요.

그들의 텃세, 그들의 힘, 그들의 무기를 감당할 힘이 가나안 전투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여호수아 장군까지 죽었으니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이제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갈까?’

이것이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신세대들에게 닥친 가장 큰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누구를 의지할까?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요?

물론 정답은 하나님입니다.

머리로는 잘 알지요.

하지만 12지파로 각각 흩어진 상황에서 이스라엘 신세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왕도 없지요 법도 없지요.

그렇다고 강한 군사가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니 누가 우리 지파를 보호할 것인가? 에 대한 두려움이 늘 있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내가 친히 왕이 되어 지켜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좀 믿고 나를 좀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을 이끈 그 하나님이

광야 40년을 이끈 그 하나님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이방 민족으로부터 너희들을 완전무결하게 구원하는지 구원하지 않는지를 좀 믿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이지요.

다시 말해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고 검증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문제에 부닥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이 이 문제를 풀어주지 않을까?

하나님이 왜 우리 교회의 고질적인 이 문제를 풀어주지 않을까?

다른 것은 다 풀어주시는데 왜 이 문제만큼은 풀어주지 않을까?

이쯤 되면 풀어 줄만도 한데, 왜 그러실까?

 

왜 그러실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고

둘째,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여러분들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만났을 때 꼭 이런 기도와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세 가지 기도인데 마태복음 6장입니다

첫째,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사죄의 기도’ ‘용서의 기도입니다.

 

둘째,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시험을 이길 만한 담대한 믿음이지요.

그 담대한 믿음의 용기를 구하십시오.

 

마지막 세 번째,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613절 후반부입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여러분 시험을 당할 때 악에게 지지 마십시오.

악에게 지면 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지는 순간 내가 비난했던 그 악의 자리가 바로 내 자리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반드시 악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매 순간 순간 기도하십시오.

특히, 환란과 핍박 속에 거하거든 그래서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만나거든 더욱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