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열왕기상 17:13-16 사르밧의 기적

心貧者 2016. 11. 30. 11:37


사르밧의 기적

왕상17:13-162016/11/25(금요기도회)

17: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7: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7: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7: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오늘 밤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말씀의 주제는 기적입니다.

기적,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지요.

하지만 기적이 일상적인 일이 아닌 만큼 기적을 이야기 할 때는 제가 늘 조심합니다.

특히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기적을 말씀드릴 때는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기적이 소위 은사자라는 분들에 의해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에 나타난 기적은 하나님의 나타남 곧 하나님의 현현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증거가 기적입니다.

그래서 기적을 다른 말로 세메이온표적이라고도 부릅니다.

하나님의 자기 나타남 곧 하나님의 자기 현현이지요.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자기 나타남, 곧 하나님의 현현을 소위 은사들은 재현하려고합니다.

인위적으로 재현하지요.

문제는 그 기적의 재현 속에 정말 하나님의 현현이 있는가? 입니다.

판단은 여러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는 임파테이션)

 

둘째, 기적이 조심스러운 것은 기적의 세속화입니다.

개인의 소원 성취 정도로 하나님의 기적을 낮잡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적을 이야기 할 때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합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일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을 때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든다면 병원에서 포기한 사람이 멀쩡하게 살아났을 때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산이나 혹은 바다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이 도무지 벗어날 길 없는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 살아 돌아오면 우리는 이것 역시 '기적적인 생환'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운동경기에서 이미 승패가 결정이 났다는 여론을 뒤집고 무명의 선수가 승리를 따냈을 때 우리는 그것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관점에서 기적은 다릅니다.

결코 기이한 일이 아닙니다.

지극히 과학적이고 지극히 상식이 됩니다.

그래서 국어사전을 보면 기적에 대한 또 다른 뜻으로 이런 정의가 나옵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정의 합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불가사의한 현상이지만 하나님 관점, 믿음의 관점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적은 하나님의 의해서 행해지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을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창세기 1장으로부터 시작해서 성경의 끝이 되는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온통 기적이야기입니다.

병자를 고치는 이야기는 아주 흔한 일이고, 귀신을 쫓아낸다든지, 물위를 걷는다든지, 죽은 자를 살리는 이야기 등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 이야기는 성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종교에서나 기적이야기는 아주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등장하는 기적과 타 종교에서 말하는 기적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은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타 종교에서 나타나는 기적은 인간의 소원, 인간의 간절한 바람이 기적의 근원이 됩니다.

인간의 마음, 인간의 선한 양심이 기적의 중심이 됩니다.

간절히 바라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준다는 박근혜식 기적입니다.

 

반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기적은 인간의 소원, 인간의 간절한 바람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표출, 가기 드러남이지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고

둘째는 사랑의 하나님,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는 것이 기적의 목적입니다.

자기 백성, 자기 자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그 증거가 바로 기적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르밧의 기적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주전 9세기 중엽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약 850년 전의 일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850년 전의 일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을 다스린 왕이 아합이었습니다.

오므리 왕조의 두 번째 왕인 아합은 성경에서 대단히 부정적인 인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열왕기상 1630절을 찾아보겠습니다.

16: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언제나 그러하듯이 임금의 악행은 백성들의 곤고함과 가난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피해는 항상 연약한 백성이 당하지요.

그래서 임금의 악행을 우리가 묵인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지도자들인 제사장이나 궁중 예언자들이 아합의 죄 앞에서 침묵을 합니다. 심지어 백성들마저 우상 숭배라는 불의함 앞에서 침묵을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가만 두고 볼 수 없지요.

엘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비커녕 이슬 한 방울도 이스라엘 땅에 내리지 않겠다고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참 흥미로운 것을 이런 예언을 남긴 엘리야가 요단 강 동쪽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서 지냈다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지요.

거기서 그는 아침, 저녁으로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떡과 고기로 배를 채우게 되지요. 물론 물은 그릿 시냇가에서 얻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가뭄이 얼마나 깊었던지 그릿 시냇가의 시냇물마저 다 말라버렸습니다.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지요.

그 때 하나님이 엘리야를 다시 찾아와 명령합니다.

시돈에 있는 사르밧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17: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7: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시돈, 이 지명이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시돈은 이스라엘 왕 아합을 망친 이세벨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시돈의 공주가 이세벨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세벨이 가지고 온 바알과 아세라의 고향이 시돈입니다.

어찌보면 이번 가뭄의 가장 큰 원인을 제공 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왕이 사는 왕궁이 아닌 별 볼일 없는 과부에 집에 가서 공궤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공궤.

윗사람에게 음식을 바치는 것을 공궤라고 하는데 과부에게 가서 음식을 대접받으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원수의 땅 시돈에 속한 사르밧에 가서 공궤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시돈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가라고 했을까?

 

그 이유를 엘리야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하나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합니다.

대단하지요.

우리 같으면 할 수 없는 일을 그대로 순종합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성문 안으로 들어가자 마침 땔감을 줍고 있던 한 과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실 물 한 그릇을 부탁하지요.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

지친 나그네에게 물 한 모금은 생명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마실 물 한 그릇을 부탁하는 것 얼마든지 이해되고 용납되는 일입니다.

 

그런데요.

물을 가지러 가는 여인을 다시 불러 세우더니 정말 염치없는 부탁을 합니다.

물과 함께 자신을 공궤할 떡 한 조각을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낯선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이 그 시대의 의무였기에 어쩌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사실 여인 입장에서는 좀 황당한 요구였습니다.

 

당황한 여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그네인 엘리야에게 자기 처지를 설명합니다.

자기에게는 빵 한 조각도 없고, 있는 것이라곤 밀가루 한 줌과 기름 몇 방울 밖에 없는 데, 이제 막 땔감을 구해다가 아들과 함께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기를 기다리던 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엘리야가 이 여인의 사정을 듣지 않습니다.

13-14절입니다.

17: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7: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참 몰인정한 명령이지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욕 한 바가지를 해 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요.

놀랍게도 시돈 여인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의 말 그대로 행합니다.

그러자 진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17: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7: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저는 이 기적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에 있어서

하나님은 참 못 말리는 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랑에 맥 못 추시는 하나님이지요.

우상의 도시 시돈, 그 시돈의 작은 마을 사르밧, 그 사르밧의 가장 보잘 것 없는 과부에게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은 마르지 않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어떠하겠는가? 입니다.

그러니 마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너희가 좀 깨달아 알고 우상에서 제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방의 땅 시돈 사르밧에서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의 진짜이유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적을 꿈꿉니다.

하지만 우리가 꿈꾸고 구하는 기적이 나만을 위한 세속적인 것이라면 이 시간 빨리 버리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적이 아닌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해서 행해지는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일, 사람의 영혼을 혼미케 하는 사단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기적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기적이다.’

시돈 사르밧의 과부에게까지 찾아 오셔서 사랑의 기적을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지금도 사랑의 기적을 베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서 보이지 않는 것뿐이지 마르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 그 기적은 지금도 우리 안에 흘러넘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마른 법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라기는 이 믿음을 굳세게 가지셔서, 이 시대의 하나님의 사랑을 품은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