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로마서 14:17 우리 안에 우리를 통해

心貧者 2016. 11. 15. 15:34


우리 안에 우리를 통해

로마서 1417 2016/11/13(주일오후)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과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미국의 45대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역사상 최악의 후보들이라는 평가 속에서 맞붙었던 이번 대선에서 미국사람들이 선택한 카드는 공화당 트럼프 정부였습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호감을 갖고 기대를 했던 분은 트럼프도 힐러리도 아닙니다.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입니다.

민주당 경선에 나갔다가 힐러리에게 져서 물러난 분입니다.

이 분은 자신을 가리켜서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라고 부릅니다.

 

민주적 사회주의

그의 주장은 아주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현재 미국의 경제 상황을 보면 99%의 사람들이 잃은 돈이 1% 밖에 되지 않는 자본가에게 모두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made in u.s.a’ 제조업의 해외진출도 그리고 수출과 경제성장의 둔화도 아닌 1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 자본가들에게 미국의 모든 자본들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99%가 누려야할 경제의 몫들을 1% 자본가에게 모두 도둑맞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그는 '카지노식 자본주의'(a casino capitalism)라고 부릅니다.

카지노식 자본주의

이것으로 인해 미국의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의 경제도 동시에 병들어 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단순하지만 아주 정확한 진단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천박한 미국의 카지노식 자본주의를 뜯어 고치기위해서는 특히 경제 분야에 있어서 민주적 사회주의(우리말로 하면 경제 민주화이지요)의 도입이 절신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지만 결국 젊은 층의 지지를 얻는 돌풍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제가 이런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본주의자일까요? 사회주의자일까요? 아니면 공산주의자일까?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자본주의에 가까울까? 사회주의에 가까울까? 아니면 공산주의에 가까울까?

딱히 이렇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디에 더 가까울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우선 하나님의 나라가 자본주의에 더 가깝다고 여기는 분들의 주장입니다.

그 근거로 교과서처럼 여기는 말씀이 창세기 128절입니다.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하신 첫 번째 말씀입니다.

첫째,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둘째, 땅을 정복하라.

셋째,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얼핏 보면 땅의 소산물들 곧 자본에 있어서 인간에게 그 모든 것을 맡기시고 마음껏 즐기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고 기억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에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타락하기 이전의 인간의 본능은 먹고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자본 곧 물질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을 지으신 분 하나님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첫 사람의 본능은 지금 우리의 것과 아주 달랐다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입니다.

이 점을 우리가 꼭 명시해야합니다.

 

그러니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하나님의 피조 세계가 훼손하고 오염될 가능성이 없었을 뿐 만 아니라 물질, 곧 먹는 것과 입는 것과 마시는 것에 대한 욕심 또한 없었습니다.

이것을 밑받침해 주는 말씀이 창세기 225절입니다.

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왜 옷을 걸치지 않았는데도 부끄럽지 않았을까요?

창세기 127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가 남자와 여자가 걸친 옷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위에 은금으로 치장할 필요가 없었고 명품 옷이나 명품 핸드백이나 명품 구두 같은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타락하기 이전 남자와 여자의 관심은 오직하나.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형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128절의 말씀을 교과서로 삼아 자본을 인간의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가 하나님의 뜻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리 합당하지 못합니다.

 

천국을 설명할 때 가끔 이렇게 설명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천국에 가 봤더니 어떤 사람은 개털모자 면류관을 쓰고 돌아다니고 또 어떤 사람은 황금 면류관을 쓰고 돌아다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천사님, 제가 쓸 면류관은 개털모자입니까? 아니면 황금 면류관입니까?’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천사의 손에 들려진 것은 개털모자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을 천사가 강제로 쓰여 줄려고 하는 순간 꿈은 깨지요.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갔더니 초가집과 궁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천사가 자신을 금과 옥으로 지은 궁궐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초가집을 가리키면서 이 집이 네 집이다 하더라는 것입니다.

역시 천사가 초가집에 밀어 넣는 순간 꿈은 깨지요.

물론 살아있을 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보자는 교훈을 담고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얼마나 자본주의식 천국에 익숙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사실 씁쓸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나라가 공산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분들의 주장입니다.

사도행전 2장입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나라가 공산주의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교과서처럼 여기는 말씀인데 사도행전 244-45절입니다.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첫째 믿는 사람이 모두 함께 지냈다.

둘째 모든 것을 팔아 공동으로 소유했다.

셋째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었다. (2:44-45)

공동거주 공동생산 공동분배

표면적으로 보면 공산주의와 매우 닮았습니다.

하지만 한걸음 더 들어가 하나하나씩 따져보면 꼭 그렇지 만은 않습니다.

 

우선 공산주의의 핵심은 소유권이 개인이 아닌 국가에 있습니다.

오직 국가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국가를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기반으로 한 하나님의 나라를 뿌리로 한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강림이라는 곧 파루시아의 신앙으로 무장된 그들은 자신의 소유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225절의 말씀처럼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정말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든 것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한 데로 나누어 주었지만 정말 근심과 걱정이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파루시아, 주님의 나라가 곧 강림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말씀이 사도행전 246절에 나옵니다.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NIV, sincere 진실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기쁨과 순전한(NIV, sincere 진실한) 마음입니다.

물론 그러한 삶의 방식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강력한 성령 체험으로 인해 한 동안 일어났던 일시적 현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죄로 물든 욕망이 치료되고 이기심이 치유되며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 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이처럼 사도행전 2:44-45절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공산주의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세 번째 사회주의입니다.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담긴 하나님의 나라가 사회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조금은 흡사해 보이지만 역시 이것도 아닙니다.

 

우선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 본성에 주목합니다.

즉 타락하기 이전 속에 담긴 하나님의 형상과 그리고 타락 한 이후의 변질 된 죄인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믿고 맡길 수 있지만 또한 타락한 죄인이기에 무제한적인 자유는 위험하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도입한 방법이 사회보장제도라는 시스템입니다.

그 시스템으로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자유를 어느 정도 보장을 해 주면서도 지옥으로 가는 길만은 사회보장 제도를 통하여 막아 보자는 것입니다.

상당히 합리적이지요.

하지만 이것도 우리 예수님이 증거 한 하나님 나라와도 거리가 멉니다.

 

여기까지 들으시면 여러분은 저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확실할 것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이 땅의 그 어떤 사상이나 어떤 주장이나 어떤 제도로도 남아 낼 수 없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으로도 담을 수 없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의 뿌리는 이 땅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하늘로부터(위로부터) 곧 우리 아버지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우리가 꼭 주목해야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를 보면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시작되고, 또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입니다.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첫째,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서부터 시작됩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부터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도 위로부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부터 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 역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곧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뿌리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은 피조물인 사람을 왕으로 세우거나 섬겨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 시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꺾고 사람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 거기에 모든 희망을 겁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2500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이 됩니다.

사람이 왕이 될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의 뿌리는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부터시작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나라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때.

그 때, 그 상태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국그러면 많은 분들이 하늘나라 곧 죽고 나서 가는 곳으로만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나라는 죽고 나서 가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시 우리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을 지배했던 신앙이 나라가 임하시오며’ ‘파르시아’, 강림신앙입니다.

 

그런데 그 강림의 때가 지연되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도 그리고 개념도 점차 거짓된 교회 지도자들 특히 교황에 의해 변질되게 됩니다.

이것을 바로 잡자는 운동이 바로 마틴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운동입니다.

프로테스탄트바로 우리 개신교인들입니다.

사실 하나님 나라라고 했을 때 그 나라를 어느 특정 장소나 공간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 천국이라는 말은 장소의 개념 보다는 '상태'(dimension)를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다스리는) 상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통치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내 안에입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지배하고 통치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안에입니다.

또 하나님이 죄와 불의로 가득한 이 땅을 지배하고 통치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 어디에 있습니까?

이 땅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마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소원하는 것이 하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비록 이 땅이 죄와 불의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할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이 땅에서 주의 나라를 소망하는 이들이라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경험하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헌신하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험과 헌신입니다.

우선 하나님 나라를 깊이 그리고 뜨겁게 경험하고 그리고 그 경험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일꾼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죽고 나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한 분이 바울입니다.

로마서 1417절입니다.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바울은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3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성령 안에 있는 입니다.

인간의 의로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한자 를 보십시오.

어린 양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내 자아가 죽었다고 들어가 상태가 바로 의이다.

이러한 관계가 올바르게 맺어질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성령 안에서의 평강입니다.

찬송가 4123절과 4절의 상태입니다.

3 내 영혼에 평화가 넘쳐 남은 주의 큰 복을 받음이라

내가 주야로 주님과 함께 있어 내 영혼이 편히 쉬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4.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희락입니다.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대할 때 그리고 형제자매를 대할 때 얼굴을 피십시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우리를 통하여 그 나라가 나타나야합니다. 내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 우리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도구가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 까요?

때 마침 좋은 예가 있어 소개할까합니다.

어느 권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대형마트 인수- 호떡장사 5만원(매일) - 하나님이 기뻐할 일이 아님을 깨달음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일에 쓰임 받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