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5:8-10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에베소서 5장 8-10절 16/10/28(금요기도회)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5: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들어오실 때 교회 입구에 걸린 현수막 보셨는지요?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행복하십니까?’
그리고 그 밑에 이런 성구가 쓰여 있습니다.
행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행복,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요, 또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요?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에 따르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시고 살아 갈 때 그 때 비로써 사람은 인생의 모든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으로부터 질병으로부터 전쟁으로부터 그리고 실패와 좌절로부터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입을 빌려 선포한 말씀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입니다.
어떻습니까?
동의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까?
행복하십니까?
정말 주님 한 분만으로도 행복하십니까?
네, 감사합니다.
그러면 다시 묻지요?
어떻습니까?
여러분 눈에 제가 행복해 보입니까?
행복한 목회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네, 감사합니다.
2015년 유엔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세계 58위라고 합니다.
경제지표 지수가 11위인데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수치이지요.
더 비참한 것은 백성들이 느끼는 체감 행복지수는 58위보다도 한참 못 미친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은 불행하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 자녀 세대를 봅시다.
학교에 다니는 우리 어린이들과 청소년들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지요.
양적인 경쟁은 줄었지만 그 반대로 질적인 경쟁이 더 심화되었지요.
(영어, 실용음악)
청년 세대, 건국 이래 가장 비참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장년층 역시 노후 문제로 늘 불안하지요.
‘자식이 부모를 모신다.’
이제는 기대도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니 즐거울 일 없지요.
노년층은 어떻습니까?
양적인 수명은 엄청 늘었습니다.
60대 70대 얼짱 할머니 몸짱 할아버지가 나올 정도로 상당히 건강해졌습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어르신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구일 것 같으냐고 묻는 다면 여러분은 누구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우리나라는 빌 게이츠가 일등이었습니다.
왜 빌 게이츠일까요?
그것은 행복의 제일 조건으로 돈 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부자’라는 말과 ‘잘 산다’는 말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찌되었든 돈이 행복의 조건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 믿는 이들의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말, 그리스도인에게도 돈이(물질) 행복의 조건인가?
사도 바울의 말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행복의 절대 조건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성경 속에만 나오는 이야기인가?
이런 고민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복을 받는 것입니까요 아니면 누리는 것입니까?
소유하는 것일까요? 존재하는 것일까요?
어떻습니까?
받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입니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이지요.
바로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가 이런 고백을 한 것입니다.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할까요?
하나님 안에서 복을 누릴 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박국은 제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이 가능한 것입니다.
시편 23에 나타난 다윗의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죽음의 골짜기에 처한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불후의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삶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어둠이 없는, 불행이 없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주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로?
빛으로, 행복으로 거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370장의 상태이지요.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 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두 번째,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착한행실을 행하는 것이지요.
그럴 때 우리의 살믕 행복하게 하는 열매 3가지가 맺게 되는 것입니다.
5:9 빛의 열매는 ①모든 착함과 ②의로움과 ③진실함에 있느니라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하는 말마다 하는 행실 마다 모든 선함이 나타나고 모든 의로움이 나타나고 모든 진실함이 나타난다면 이 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왜 우리가 불행하다고 여겨집니까?
베풀고 사랑해도 선함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의로움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도 그 진정성을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행한 거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행하는 것마다 모든 선함이 나타나고 모든 의로움이 나타나고 모든 진실함이 나타난다면 이 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행복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름도 없고 빛도 없지만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리스도는 아시고 우리를 그 어둠에서 빛으로 드러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마지막에 이렇게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5: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분별해 보고)
착한행실에 있어 절대 주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다고 여기면, 이것이 빛이라면 뚝심을 가지고 그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행하는 것마다 모든 선함이 나타나고 모든 의로움이 나타나고 모든 진실함이 나타나는 참 행복의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그리 오랜 된 인생은 아니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행복할 줄 모르는 사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말 남 부러워할 만큼 많은 복을 받고도 그것을 누릴 줄 모르는 사람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배려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중심이지요.
그래서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징징거리는 것입니다.
베풀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함도 불구하고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징징거립니다.
비극이지요.
하지만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우리가 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이다.
둘째, 우리가 빛인 만큼 빛의 자녀답게 살자
그리고 셋째,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해 보고 좀 더 베풀고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섬겨보고 좀 더 나눠보자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우리가 행하는 것마다 모든 선함이 나타나고 모든 의로움이 나타나고 모든 진실함이 나타나는 참 행복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