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강해 4:13-17 자랑을 거두고 선을 행하라
자랑을 거두고 선을 행하라
야고보서 4장13-17절 2016/10/12(수)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4: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4: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가 목회 하던 시절 교회는 두 가지의 못된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욕심, 곧 정욕에서 출발하는 이기심입니다.
자기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는 것을 이기심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자기중심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지요.
유대출신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따른 전통을 고집하지요.
이방인 특히 헬라출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경험과 철학과 지위를 고집합니다.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분을 고집했고
그리고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을 고집했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한 몸 공동체로 출발한 교회는 늘 분란에 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끼리끼리 모여서 서로 시기하고 서로 무시하고 서로 미워하는 것이 일상이 된 것입니다.
교회를 치리하는 지도자가 볼 때 참 남감한 상황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것도 아니고 신앙의 기준이 될 만한 신약성경이 쓰여 진 것도 아니고 보통 남감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여 진 것이 복음서이고 서신서입니다.
복음서가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는 가르침(교리)에 핵심을 두고 있다면 서신서는 당시 교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법(장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복음서를 주목해야합니다.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진리의 내용 곧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하면,
여기에 대한 분명하고도 공통된 증거를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 가지고 있을 때 교회의 문제를 바르게 진단하고 그에 따른 올바른 해법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해야 할 행동은 회의가 아닙니다.
복음의 원리, 복음의 핵심이 담겨진 복음서를 집어 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해서 효과를 본 경우가 있지요.
언제입니까?
제자들이 사도가 되어서 원시교회를 목회할 때입니다.
사도행전 6장입니다.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공귀스모스: 나지막하게 이야기하다. 우리말로 하면 궁시렁거린다)
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6: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여기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로 구성된 사도들이 두 가지로 원시교회가 당면한 문제 해결을 시도합니다.
첫 번째 방법, 무엇이지요?
4절입니다.
6: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복음의 가치 복음의 핵심을 붙잡는 것이지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는 그리스도다’
두 번째 방법입니다.
사도들은 원시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에 합당한 사람들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믿고 기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일군이 ‘디아코노스’ 집사들입니다.
봉사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①스데반과 또 ②빌립과 ③브로고로와 ④니가노르와 ⑤디몬과 ⑥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⑦니골라를 택하여
일곱 집사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유대식 이름이 아닌 헬라식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가 히브리파 곧 예수님처럼 아람말을 하는 정통 유대사람이면 사도와 교회가 세운 일곱 집사는 헬라파 유대인이라는 점입니다.
헬라말에는 능숙하지만 자기 조국의 언어인 히브리말 곧 아람말에 익숙하지 않은 디아스초라 출신 유대인을 말합니다.
이때부터 교회공동체는 다양성 속에 통일성을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하나님은 교회의 부흥으로 응답하십니다.
사도행전 6장 7절입니다.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전혀 꺾이지 않을 것 같은)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이러한 부흥의 역사는 1903년 1907년 그리고 1910년 한국교회에서도 그대로 재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역시 교회공동체가 다양성 속에 통일성을 추구할 때였습니다.
양반과 상놈, 남자와 여자 그리고 조선인 교회지도자와 선교사들 그리고 감리교 장로교선교사들이 함께 했을 때 그 때 한국교회가 대부흥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지요.
이처럼 중요한 것이 공동체의 다양성과 통일성, 통일성과 다양성입니다.
이러한 사도들의 전통과 해법을 그대로 이어간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지요.
바울의 해법입니다.
지나친 편 가름 곧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지나친 편 가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에베소 교회를 향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다른 것은 차지게 두고 우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자는 것입니다.
다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 신(信)이지요.
둘째,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 앙(仰)입니다.
즉 신앙에 있어서 하나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 안에 들어오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을 향해서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다투고 싸우고 분열하는가?
사도 야고보의 진단입니다.
세상과 벗하는 곧 자기 의만 생각하는 욕심, 이기심 때문입니다.
지난 주 말씀을 복습하는 의미로 4장 1절부터 새번역으로 읽어드립니다.
4:1 무엇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 싸움이나 분쟁이 일어납니까? 여러분의 지체들 안에서 싸우고 있는 육신의 욕심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4:2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탐내어도 가지지 못하면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공동체를 위한 옳은 것)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4:3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공동체의 덕이 아닌) 자기가 쾌락(자기 의)을 누리는 데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4:4 간음하는 사람들이여, 세상과 벗함이 하나님과 등지는 일임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4:5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그 영을 질투하실 정도로 그리워하신다"라는 성경 말씀을 여러분은 헛된 것으로 생각합니까?
(구약에 구절로 등장하지 않음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속성을 종합하여 말함)
4: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이르기를(잠 3:34 칠십인역)"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고 말합니다.
4:7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고, 악마를 물리치십시오. 그리하면 악마는 달아날 것입니다.
4:8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여, 마음을 순결하게 하십시오.
4:9 여러분은 괴로워하십시오. 슬퍼하십시오. 우십시오. 여러분의 웃음을 슬픔으로 바꾸십시오.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십시오.
4:10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리하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높여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개인의 욕심, 자기 의로 말미암은 교회의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순복
곧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자기 의를 죽이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 당시 교회가 가지고 있는 못된 질병 중에 하나가 자기 존재의 드러남, 자기 자랑입니다.
사도 야보고는 그것을 4장 16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허탄한 자랑’
실체가 없는 자랑이라는 것이지요.
싶게 말해 허풍이지요.
허풍이 아주 센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자기 말만하고 남의 이야기는 들으려하지 않지요.
그런 이들을 향해 사도 야고보가 좀 강력하게 말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입니다.
4:13 들으라
허탄한 자랑 곧 허풍 그만 떨고 좀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장사꾼이 떠는 허풍에 대한 비유 하나를 듭니다.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장사꾼이나 떠는 허풍을 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장사치나 할 일이지 교회에서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1-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보면 야고보 사도가 이런 권면을 합니다.
4: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남을 향한 비방에는 항상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자기 자랑을 밑에 깔고 비방하지요.
남을 비방해야 자기가 드러나는 것 아닙니까?
이처럼 비방과 자랑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말합니다.(새번역)
4:15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4:16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우쭐대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주의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허탄한 자랑을 인해 교회를 어렵게 하는 이들의 정체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누구입니까?
비방 앞에 무력한 가난한 자들이 아닙니다.
비방 앞에 무력한 배우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다.
5장 1절에서 드디어 등장하는 바로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주로 교회 안에서 선생 된 위치에 있는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지금 이것을 밑에 깔고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4:13 들으라 너희 중에(?)
5:1 부한 자들아
지중해 연안에 세워진 교회마다 가지고 있는 지리적 이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의 왕래가 많은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또한 많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 중에는 장사를 통해 많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된 사람도 심심치 않게 있었습니다.
장사를 해서 이윤을 남기고 부자가 되는 것. 사실 이것은 별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부자가 되는 것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문제는 그런 그리스도인의 돈 자랑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부자라는 존재가 아니라 허탄한 돈 자랑이 문제입니다.
외국의 기업이나 경제학자들이 한국의 기업과 한국의 부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돈 자랑, 자식자랑이 너무 심하다는 것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기업이 없다는 것이 한국경제의 약점이지요.
이는 당시 교회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장사가 성행하면서 교회 안에는 부자 교인과 가난한 교인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 같이 없어서 어렵고 힘들 때는 서로 의지하고 하나가 되는 데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돈 자랑하는 부자 그리스도인이 생기면서 교회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질서가 아니라 세속의 질서가 교회에 자립 잡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당시 유행어가 13절입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까짓것 우리도 돈 벌러 가자는 것입니다.
아니꼽고 치사하다 하지 말고 타지로 나가 돈 벌어서 우리도 대접받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공동체가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 야고보가 따끔한 충고를 합니다.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안개와 같은 허탄한 자랑에 마음 둘 것 없다.’
‘오직 생명이다.’
말씀을 마칩니다.
교회를 위협하는 두 가지 문제 이기심과 자기자랑,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17절입니다.(새번역)
4:17 그러므로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아는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분량대로 하면 됩니다.
비방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지요.
자기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믿음의 분량에 따라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아는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교회가 건강하고 사랑으로 가득한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