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6: 15-19 삼손의 머리털 일곱 가닥
삼손의 머리털 일곱 가닥
사사기 16:15~19절 2016/7/15(금)
16: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16:16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16: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16:18 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6: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것과 구별되는 삶, 바로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입니다.
레위기 19장 1-2절입니다.
19: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왜냐하면)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그의 자녀인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모습을 담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하나님의 어떤 모습(면)을 닮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거룩함입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그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룩함’이라고 했을 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사실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다행인 것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 속에서 거룩함이 무엇인지 그리고 거룩한 행실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소개할까합니다.
에베소서 4장입니다.
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두 가지의 상태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첫째는 성숙을 통한 성도의 온전함입니다.
12절입니다.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이것을 다시 풀어 설명한 것이 13절입니다.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사랑의 행위를 포함)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처럼 ‘성도의 온전함’이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완전한) 데까지 이르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것이 바울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거룩함’입니다.
즉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온전한 사람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완전한) 데까지 이르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이해한 레위기 19장 2절 ‘하나님의 거룩함’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이 이해 한 하나님의 거룩함이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12절입니다.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남을 위한 일 곧 봉사의 일을 통하여 내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15절 곧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이루는 것입니다.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좀 풀어 설명하면,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우리의 연약한 삶이 다다를 수 있도록 하는 바로 바울이 이해 한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 곧 성도는 14절을 조심해야 합니다.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벗어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은 아주 막강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삼손처럼 들릴라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입니다.
‘나실’인이란 하나님의 거룩함을 위해 성별되고 구별된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의 빠져 이방인의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비극이지요.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6: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들릴라가 삼손을 설득합니다.
‘당신은 마음을 내게 털어놓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까?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증표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여인 사이에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그렇게 곱게만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아하브’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아하브’ ‘사랑한다’라는 뜻의 동사입니다.
이 말은 지, 정, 의가 동반한 전인격적인 사랑을 말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주로 신명기 6:4-5절의 말씀처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들릴라가 삼손에게 무엇을 요청하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을 향한 사랑, 그 구별된 사랑 ‘아하브’를 나에게도 돌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만 그 사랑을 주지 말고 나에게도 돌리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 빼고 우리들 끼리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 해 보자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빼고 우리들끼리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힘 곧 거룩함을 삼손처럼 힘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원주의 인본주의 문화주의를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 빼고 말하자는 정신이나 주의를 조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지닌 본연의 힘 곧 거룩함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절입니다.
16: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는 마침내 거룩함의 상징인 삼손의 머리털, 곧 나실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어버립니다.
그러자 그 즉시 삼손의 힘이 사라지게 됩니다.
안타까운 비극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일곱 가닥으로 땋은 삼손의 머리털입니다.
‘일곱’ 히브리어로는 ‘쉐바’입니다.
히브리어 ‘쉐바’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처럼 일곱이라는 뜻도 있지만, 이것이 동사형으로 사용될 때는 ‘맹세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삼손의 머리털은 단순한 일곱 가닥이 아닙니다.
삼손의 머리털은 하나님과의 맹세 곧 거룩함의 약속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과의 맹세, 거룩함의 약속을 세상에 내어주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까요?
한 가지입니다.
삼손의 머리카락이 자라나듯 하나님과의 맹세 곧 거룩함의 약속을 우리 안에 다시 자라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배 생활을 통해서 그리고 기도 생활을 통해서 그리고 말씀 묵상과 금식, 봉사와 구제 등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맹세, 그 거룩함의 증표를 다시 자라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의 머리를 한 번 만져보시지요?
거룩함의 약속, 머리 털 일곱 가닥이 온전히 남아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의 빠져 민머리가 되었습니까?
삼손처럼 조롱거리가 되지 말고 있을 때 지키십시오.
기도로 말씀으로 성경묵상으로 금식으로 봉사로 구제함으로 지키십시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셔서 하나님과 맹세 곧 거룩함의 약속을 꼭 지켜내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