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데사로니가전서 1:1-10 교회를 살리는 힘, 말씀

心貧者 2015. 10. 18. 15:06

교회를 살리는 힘,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1:1-102015/10/18(주일)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1: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의 첫 대목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라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

이 도시는 오늘날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로부터 북쪽으로 320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리스 제2의 도시입니다.

직물과 패션으로 유명한 산업 도시입니다.

 

바울이 선교할 당시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 지방의 수도로서 2차 전도여행 때 처음으로 방문하게 됩니다.

유럽의 첫 선교지인 빌립보를 거쳐 간 두 번째 도시가 데살로니가입니다.

대략 주후 50-51년경으로 추정됩니다.

늘 그러하듯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유대인 회당을 찾아가서 성경을 가지고 토론을 벌였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 지방의 수도이면서 로마 총독이 주재하는 대도시였습니다.

교통과 상업과 군사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유대교 회당 역시 굉장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친유대적인 그리스 사람과 그의 귀부인들이 다닐 정도로 데살로니가 유대교 회당은 굉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과 논쟁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논쟁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여기서 말한 성경은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구약성경 즉 율법서와 예언서가 증거 한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그가 바로 나사렛 사람 예수라는 것이 바울의 주장이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은 이러한 성경해석과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계속해서 성경을 근거로 왜 나사렛 사람 예수가 메시야인지를 계속해서 증명하게 됩니다.

예언서, 특히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처럼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하고, 둘째,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셔야 하는데, 그 일을 나사렛 사람 예수가 부활의 몸으로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사렛 사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라는 것이 사도 바울과 유대인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기록에 따르면 참 다행스럽고 기쁜 것은 그 회당 공동체에 속한 몇몇 사람이 바울의 전한 하나님의 복음에 승복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171-3절입니다.

17: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17: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17: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데살로니가 유대교 회당에 있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복음을 거부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174절입니다.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일이 데살로니가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생계의 큰 위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지역의 유력한 헬라인과 귀부인들로부터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교적으로 보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데살로니가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가만히 있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을 넘어 자신의 생계가 달린 문제였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신들의 삶의 자리가 위협 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 위식을 가지게 되자 동네 불량배를 사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의 전도를 방해하고 소란을 일으킵니다.

심지어 바울이 머물고 있던 야손의 집을 습격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다행히 바울은 몸을 피하지요.

하지만 바울을 따르는 신도 몇 사람은 그들에게 붙잡혀 로마 총독에 속한 관원들에게 끌려갔습니다.

 

유대인들로부터 사주 받은 불량배들이 바울과 그를 따르는 신도들을 고발하는 죄목은 이렇습니다.

사도행전 176-7절입니다.

17: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17: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

이것이 당시 사회가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불편한 시선이었습니다.

기존의 사회 질서를 뒤 엎는 자

이것이 세상이 바라보는 불편한 시각이었습니다.

그러니 데살로니가에서 계속 머무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엇습니다.

결국 전도의 일을 매듭지지 못하고 데살로니가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데살로니가 교회로부터 소식 하나가 전달되게 됩니다.

복음전도의 일을 매듭지지 못한 그 여린 교회에 잘못된 가르침을 전파하는 이들이 들어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재림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이고 둘째는 잘못된 재림과 연결된 그릇된 금욕주의입니다.

여기에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쓴 편지가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바울은 편지를 시작하면서 발신자의 이름에 자신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이름을 더 언급합니다.

누구입니까?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바울이 이처럼 편지의 발신자로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함께 언급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동역자에 대한 깊은 존중입니다.

하나님의 사역 속에는 독불장군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분이 더 중요한 이유인데 지금 이 편지 곧 데살로니가전서를 통하여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개인의 소견이 아니라 공동체적 견해임을 밝히기 위합니다.

사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편지의 수신인 누구입니까?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

여기서 중요한 구절은 '그리스도 안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늘 같은 인사말입니다.

무엇이라고 인사합니까?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은혜와 평화'입니다.

이것은 바울 신앙의 핵심이고 바울이 가지고 있는 신학과 사상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그리고 은혜와 평강

 

데살로니가 교인들

그들은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늘 보고 싶은 존재였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그들이 베푼 친절과 사랑은 바울이 전도자로서 살아가야하는 이유가 되었고 힘이었습니다.

그런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생각하며 바울은 아낌없는 칭찬을 보냅니다.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신실하게 살려고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첫째, 믿음의 역사입니다.

새 번역은 이것을 믿음의 행위라고 번역했고, 공동번역은 이것을 믿음의 활동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의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마음속 고백으로 갇힌 믿음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운동하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의 말처럼 행위가 없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행위, 그 활동을 통한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활믿음이지요.

믿음생활은 곧 생활믿음입니다.

 

둘째, 사랑의 수고입니다.

애씀이지요.

애쓰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고백'''으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그렇습니다.

사랑역시 으로 으로 노력으로 애씀으로 번역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칭찬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특히 믿음의 삼덕인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소망을 강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앞에서 말했듯이 재림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칭찬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환란 가운데서 시험이 걸린 것이 아니라 그래서 교회를 등진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교회를 더욱 새롭게 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쁨으로 받는 말씀.

언제요?

환란 가운데서입니다.

환란 속에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받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교회가 해결해야할 가장 큰 과제입니다.

 

바울의 칭찬을 계속됩니다.

다시 6절입니다.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주님을 본받는 사람

이것이 바울이 기억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9-10절까지 보겠습니다.

1: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여기에 보시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어떤 신앙생활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들이 나옵니다.

바울은 아주 함축적인 언어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도들을 영접함입니다.

둘째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일입니다.

셋째는 오직 참되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일입니다.

넷째는 하늘로부터 강림하신 것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어떻습니까?

여기에 여러분이 해당하는 항목이 있는지요?

첫째, 사도들 곧 하나님의 복음을 영접했습니까?

둘째, 우상을 버렸다는 것은 관습화된 삶의 방식을 과감하게 탈피했다는 말인데 정말 그러셨습니까?

셋째 정말 오직 참되신 하나님만을 섬기고 있습니까?

혹 돈을 모시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마지막 넷째,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주님의 강림을 얼마나 고대하십니까?

썩어져 가는 구습을 버리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시고 그리스도 안에그리고 은혜와 평강 안에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