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 빈민운동 김흠겸씨 10주기
[한겨레 2007-02-13 0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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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달동네 꼭대기에는 ‘낙골 교회’가 있었다. 97년 1월 서른여섯 나이에 위암으로 스러진 빈민운동가 고 김흥겸씨가 몸 담았던 곳이다. 13일 저녁 연세대학교 신학과에는 그를 사랑하는 친우 100여명이 모였다. 81학번이었던 그의 10주기 추모식인데, 친구들이 지난해부터 행사를 준비했다. <낙골연가>라는 그의 유고집은 이번에 <아주 특별한 배웅>이라는 이름으로 재출간되기도 했다. 교정에 모여든 친구, 낙골 주민, 철거민협의회 사람들이 하나둘 그에 대한 기억을 털어놨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된 대학 동기는 <김흥겸, 김해철>이란 제목으로 짧은 영화를 상영했다. 김해철은 그가 쓰던 가명인데 ‘철거민 해방’이란 뜻이다.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짤린 하나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먹은 하나님…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죽어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있을까…가엾은 하나님” 가수 안치환씨가 불렀던 노래 <민중의 아버지>는 그가 대학 시절 만든 노래다. 민중신학을 공부했던 그는 졸업 뒤 낙골교회로 갔다. 노동현장에도 뛰어들었고, 서울시철거민협의회에서 주로 일했다. 농산물 직거래 등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그는 95년 서른 네살에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이듬해 11월 살아있을 때 장례식을 하고 싶다는 뜻에 따라 사랑하는 친구, 지인들이 모여 이별의식을 치른 뒤 97년 1월말 눈을 감았다. 이날 추모식에는 대학 시절 후배이자 그의 아내인 한지원(42)씨와 고등학생이 되는 딸 김봄(16)양이 참석했다. 한씨는 방송작가인데, 신입생 때부터 난곡의 낙골교회에 드나들었다. 딸의 이름인 ‘봄’은 80년대 학생회 활동 때 한씨가 쓰던 가명이다. 한씨 역시 난곡을 잊지 않았다. 그는 철거되는 달동네를 기록하기 위해 2001년 ‘KBS 일요스페셜’에서 방영된 ‘난곡의 사계’를 기획했다. “남편의 기일이 돌아올 때면 ‘이 사람이 참 잘 살다가 갔구나’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지인과 친구들 20여명이 충남 한산의 남편 묘소를 늘 찾아줬어요. ‘보이지 않는다고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지요. 남편을 생각할 때도, 달동네 난곡을 생각할 때도 떠올리는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