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서신
빌립보서 1장1-2절 2014/ 1/ 15(수)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빌립보서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보스의 이름을 딴 빌립보는 사도 바울이 유럽의 세운 첫 번째 교회이기도 하지만 당시 퇴역한 로마의 장군들이 모여서 산 휴양의 도시로도 아주 유명한 곳입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정략적인 신도시이지요. 그래서 유대인들이 머물거나 정착할 수 없는 부자들만의 신도시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바울이 2차전도 여행 중에 자주색 옷감 장사 루디아를 만나 교회를 세우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빌립보 교회입니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1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이것만을 읽어보면 복음 전도자인 바울과 디모데가 빌립보교회에 보낸 목회서신 정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막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그냥 일반적인 교회의 안부를 묻는 편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의 처지는 14절에 있는 말씀처럼 옥중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빌립보서를 우리가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옥중에서 보낸 목회서신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빌립보서가 가지고 있는 첫 번째 별명입니다.
두 번째로 빌립보서는 또 하나의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쁨의 서신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사울이 쓴 편지 중에서 ‘기쁨’이라고 하는 단어가 가장 많이 자주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4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편지이지만 기뻐하라는 말이 무려 열 번 이상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빌립보서를 옥중서신이라고 부르면서 동시에 기쁨의 서신이라고도 부릅니다.
옥중 서신과 기쁨의 서신
어떻습니까?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이미지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두 이미지가 묘하게 서로 어울립니다.
이는 바울이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사용한 단어 그리스도 예수의 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와 종
사실 이 두 단어는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종, 역설적이지만 놀랍게도 서로 어울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역설입니다.
빌립보서의 두 별명인 옥중서신과 기쁨의 서신
좀 어딘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사이인 것 같지만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보여준 삶이였고 이것이 바로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보여준 진정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빌립보서를 참 좋아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제 모교회의 원로 장로님도 이 빌립보서의 말씀으로 죽음을 이기신 분입니다.
이 분이 죽음 앞에서도 늘 듣기 원했던 말씀이 빌립보서 4장 4-7절입니다.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비록 육신은 죽음 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되겠지만 영혼의 기쁨만큼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그분의 결연의 의지를 보면서 얼마나 은혜가 된 줄 모릅니다.
이처럼 자신의 처한 지금의 현실이 비록 감옥 속에 갇혀 있는 처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기쁨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는 자. 그가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입니다.
절대기쁨. 이것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감옥 안에서 바울과 실라가 무엇합니까?
기도하고 하나님을 높여 찬송합니다.
사도행전 16장 24-25절입니다.
16: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빌립보 감옥에 갇힌 그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바울과 실라는 거기서 기도하고 거기서 기쁨으로 찬송했다는 것입니다.
25절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것은 기쁨으로 찬송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타령이 아니라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찬송소리를 누가 듣는가하면 옥 안에 있던 죄인들이 듣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하나님을 찬송하는 바울과 실라의 찬양을 죄인들이 듣게 됩니다.
그 때 함께 갇혀있는 죄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기쁘게 찬양하는 바울과 실라를 보면서 아마 의아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이 옥에 갇힌 처지에서도 저렇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결국 이러한 궁금증이 복음 전도의 계기가 되었고 빌립보에 교회를 세우는 계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절대기쁨의 근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감옥으로도 가둘 수 없는 기쁨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 기록된 바울의 인사말 속에서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2절입니다.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그리고 평강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 그 기쁨의 뿌리에는 첫째 주님이 주시는 은혜 안에 있고, 둘째 주님이 주시는 평강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첫 번째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죄 사함의 은혜입니다. 바로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이 말하는 것처럼 죄에서 우리를 건지심으로 의인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의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짓을 한 적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의인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옛 약속인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죄의 용서는 반드시 그 죄를 심판하는 증표로서 피를 흘려야합니다. 대속의 피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수많은 죄 사함의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번제에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번제를 드려도 인간의 죄, 본질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언약으로 주신 대속의 제물이 바로 예수님 자신의 몸입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핏 값으로 우리의 죄가 영원히 용서함을 받은 것입니다.
은혜지요.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특징이 기쁨입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그냥 기쁩니다.
사람들이 볼 때 기뻐할 만한 것이 없는 되도 그냥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은혜의 기쁨입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 때 예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기적의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이는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많은 문제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325장은 이렇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다음은 주님의 평강입니다.
두 번째 기쁨의 뿌리는 평강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우리 맘을 지배하는 평안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입니다.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근심과 두려움으로 사로잡혀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 주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입니까?
여러분의 눈을 하늘로 두십시오.
그러면 평안입니다.
그런데요. 참 이상하지요.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우리가 우리의 눈을 세상에 두는 순간 그 때부터 근심과 두려움입니다. 그러니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십시오.
어려울수록, 고통스러울수록, 하늘을 봐라보십시오.
그러면 하늘로부터 평안이 임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바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은 믿음의 대가였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을까요?
저는 기도와 찬송에 있다고 봅니다.
그의 몸이 기도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의 몸이 찬송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의 근육과 찬송의 근육이 붙은 사람입니다.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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