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다
요한계시록 21:1-4 2018/12/09 강림절 2주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다림 초 두 번째가 밝혀진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지난주에는 대림절 찬양으로 98장을 우리 주님께 드렸습니다.
오늘은 대림절을 대표하는 찬양, 101장을 우리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원곡의 제목은 ‘장미꽃 피었네.’입니다.
이사야 11장 1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에 근거해서 지은 대림절 찬양입니다.
15세기경에 만들어진 이 찬양의 원곡은 독일어 찬양으로 루터교 목사가 지은 것을 미국의 복음주의자 베이커가 영어로 번역해서 널리 보급한 대림절 찬양입니다.
처음 이 곡이 실린 것은 개신교가 아닌 독일 가톨릭 성가집이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개신교 목사가 지은 것을 독일 가톨릭이 받아들인 것이지요.
그것이 다시 미국찬송가에 그것이 다시 한국 찬송가에 연이어서 실리면서 에큐메니칼 정신을 대표하는 찬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에서 거의 알려지지도 않고 불러지지 않은 대표적인 찬양이기도 합니다.
우선 가사를 소리 내서 읽어보고 그 다음 곡을 한 번 들어 본 후 목소리로 찬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이새의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
옛 선지 노래대로 장미꽃 피었다(사11:1)
한 추운 겨울 밤 주 탄생하신 이 날 거룩한 날이여
2)이사야 예언대로 어리신 우리 주
동정녀 마리아의 몸 빌려 나셨다
탄생한 아기는 영원한 구세주라 참 기쁜 날이여
3)그 부드러운 향기 온 하늘 채우고
그 영광 찬란한 빛 어둠을 쫓았다
참 신과 참 사람 우리를 구하셨다 영광의 날이여
이 대림절 찬송가는 우리나라 가톨릭 성가집 제98번에도 동일하게 실려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번역된 가사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과 4절까지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1) 이사야 말씀하신 그 나무 등걸에 새 가지 돋아났네.
이새의 지파에 꽃송이 피었네 엄동의 한밤중에 눈 속에 피었네2) 예언자 말씀같이 장미의 고운 순. 티 없이 순결하신 동정마리아께
천주의 뜻대로 거룩한 예수 아기 탄생하셨도다.3) 비천한 외양간에 탄생한 구세주. 어머니 품에 안겨 평안히 쉬도다.
우리 형제들아 탄생한 천상아기 어서 경배하세.4) 천사가 알린 말씀 목동이 듣고서 베들레헴 구유 위에 구세주 뵈었네.
목동의 믿음을 우리도 본을 받아 주님을 뵈옵자.
유토피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 지상낙원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로 치면 천국이지요.
유토피아의 어원은 이렇습니다.
'유'(u)라는 단어와 '토피아'라는 단어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유'(u)는 없다는 뜻입니다.
'토피아'는 장소를 뜻합니다.
이 둘이 합치면 ‘없는 곳’이 됩니다.
무엇이 ‘없는 곳’일까요?
오늘본문 계시록 21장 4절입니다.
여기에 보면 사도 요한은 네 가지가 없는 곳을 진정한 유토피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①사망(죽음)이 없고
②애통하는 것(슬픔)이나
③곡하는 것(울부짖음)이나
④아픈 것(고통)이 다시 있지 않는 상태가 바로 유토피아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dystopia)입니다.
‘디스’ 있다는 뜻입니다.
없어야할 네 가지가 다 있는 세상이지요.
①사망(죽음)이 있습니다.
②애통과 슬픔이 있습니다.
③억울한 이들의 울부짖음이 가득하지요.
④아픔과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 모든 것이 다 있는 ‘디스토피아’가 현실입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신 분이 계십니다.
'디스토피아'
사망이 있고, 애통함이 있고, 울부짖는 억울함이 있고, 아픔과 고통이 있는 자를 ‘복이 있다’라고 아주 과감하게 선포하신 분이 계십니다.
누구입니까?
(메시야)그리스도로 강림하신 예수님입니다.
마태복음 5장 2절입니다.
새 번역으로 읽어드립니다.
5:2 예수께서 입을 열어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5: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5:4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5:5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5:7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5: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5:9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5:11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이처럼 복이 있는 자가 받게 되는 박해와 모욕과 터무니없는 비난.
그 시대에 쓰여 진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사도 요한이 유배지 밧모 섬에서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그리스도인의 상황은 아주 암담했고 처절했습니다.
절망과 두려움 그 자체였지요.
칼리굴라 황제, 네로황제,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거치면서 황제 숭배가 대대적으로 강요되었기 때문에 황제 숭배를 대 놓고 거부했던 이들 특히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대가는 아주 처참했고 아주 비참했습니다.
그리고 그 박해는 앞서 설명 드린 것처럼 네 가지 즉 ①죽음과 ②슬픔과 ③울부짖음과 ④고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때 사도 요한을 통해 쓴 성령의 위로가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죽음과 슬픔과 울부짖음과 고통,
디스토피아의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우리가 짐승의 시간 절망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기죽지 말고 두려워 말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찬송가 508장입니다.
1.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머잖아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끝까지 힘써 일하세2 주 예수 말씀이 온 세상 만민들 흉악한 죄에서 떠나라 하시니 이 말씀 듣고서 새 생명 얻으라 이 기쁜 소식 전하세3 영생의 복락과 천국에 갈길을 만백성 알도록 나가서 전하세 주 예수 말씀이 이 복음 전하라 우리게 부탁하셨네
이러한 말씀으로 위로와 소망
그리고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담은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계시’를 헬라어로 '아포칼뤼프시스'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덮개를 벗겨 드러나게 하다' 또는 '숨은 것을 드러내 보이다'가 됩니다.
그동안 감추어졌던 것이 밝히 드러나게 된 것, 그것이 바로 '아포칼뤼프시스' 계시입니다.
놀랍고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의 '아포칼뤼프시스', 하나님의 계시가 박해의 시대, 절망의 시간과 짐승의 시간을 살아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들어났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밝히 보이게 들어났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700년전 이사야의 예언을 그대로 인용 하면서 이 전과 다른 새로운 시대를 선포합니다.
황제가 다스렸던 낡은 하늘과 헌 세상은 이제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다수의 불행으로 소수가 행복해 지는 반칙의 세상은 이제 심판받았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세상의 질서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이전과 다른 새로운 통치자의 새 하늘과 새 땅의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65장 17절입니다.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사도 요한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요한계시록의 결론인 21장과 22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이사야서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주어입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던 ‘새 하늘과 새 땅을 내가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박해와 모욕 가운데 놓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사도 요한의 희망 메시지였습니다.
"나는 보았다."
무엇을?
하나님이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했던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누가?
내가 보았다는 것입니다.
‘보았다’
‘보는 사람’ 그가 바로 참된 예언자이고 참된 묵시가 이지요.
‘볼 수 없는 가운데 보는 사람’
그가 바로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겠지요.
히브리서 11장 1절의 말씀처럼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가진 사람.
그가 바로 믿음의 사람이고 박해와 모욕 가운데 살아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겠지요.
사도 요한이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말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두 가지로 정의합니다.
첫째,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보는 사람
둘째, 보이지 않은 것들의 증거를 가진 사람
이것이 진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록한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1-4절까지 새 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21:1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21:2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21:3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21: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이 없고, 다시는 울부짖음이 없고, 다시는 고통도 없는 진정한 유토피아의 세상이, 새 하늘과 새 땅이 드디어 우리 눈앞에 열렸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 ‘애통하는 이들이’ ‘온유한 이들이’ ‘의에 주리고 목마를 이들이’ ‘자비를 베푸는 이들이’ ‘마음이 깨끗한 이들이’ ‘평화를 이루는 이들이’ ‘우리 주님 때문에 핍박과 모욕을 당하고 억울하게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복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드디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파루시아,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요.
이때 등장하는 강력한 신앙이 그리스도의 재림 ‘파루시아’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서 3번 등장합니다.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그러자 사도 요한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 유명한 아람어 ‘마라나타’이지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말씀을 마칩니다.
시인 윤동주가 남긴 ‘쉽게 씌어진 시’가 있습니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수고와 땀내 가득한 학비.
그 학비 봉투를 받은 청년 동주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부끄럽지요.
인생 살기 정말 힘들다고 하는데, 먹고 살기 정말 힘들다고 다들 아우성인데, 이렇게 쉽게 목회를 한다는 것, 이렇게 쉽게 설교를 한다는 것, 늘 부끄럽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림절 둘째 주일인 오늘 여러분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21:1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21:2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21:3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21: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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