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들으셨다
사무엘상 1장 20절 찬송가 190장 2016/03/11(금)
1: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사무엘이 태어날 쯤 이스라엘의 상황은 아주 복잡하고 혼탁했습니다.
사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왕정 시대가 열리는 중간기였기 때문에 아주 상황이 복잡했습니다.
그 때 마지막 사사요, 선지자요, 제사장이었던 사무엘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어떻게 이끌고 구원했는지에 대해 서술한 책이 사무엘서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을 다루면서 제일 먼저 언급한 인물이 누구인가 하면 그의 아버지가 아닌 그의 어머니 ‘한나’입니다.
‘한나’라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으로 사무엘서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나’의 비중이 사무엘서 뿐만 아니라 사무엘서가 담고 있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도 매우 크다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서는 왜 이렇게 ‘한나’라는 한 여인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한나의 기도 생활 때문입니다.
기도가 단절되었던 시대, 한나의 기도 생활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영화로웠던 다윗과 솔로몬 왕국은 이 한나의 기도 생활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 사무엘 역사서가 말하는 주요 요지입니다.
그렇다면 한 나라의 시대를 열었던 한나의 기도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3가지입니다.
이것을 사무엘상 1장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째,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 즉 구원의 역사를 여는 애통하는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한 시대를 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역사적인 인물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진 이들의 애통하는 기도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절까지 봅니다.
1: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1: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여기에 보면 두 여인이 등장합니다.
한나라는 여인과 브닌나라는 여인입니다.
둘 다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의 아내들입니다.
부럽나요?
"한나", 영어로는 ‘안나’라고 발음합니다.
'풍성한 은혜, 큰 자비'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나’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 드릴까요?
오직 아들만을 학수고대하던 어떤 천주교 신자 부부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첫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딸아이가 나온 것입니다.
화가 난 아버지가 그 아이의 세례명을 뭐라고 지은 줄 아십니까?
‘안나’라고 지었습니다.
다시는 딸을 낳지 않겠다는 뜻으로 ‘안나’라고 지은 것입니다.
둘째 아이도 딸이었는데 저체중 미숙아라 인큐베이터 (유리로 된 보육기) 속에 들어갔다 해서 "유리안나" 라고 지었습니다.
셋째 딸은 싹싹 빌어서 낳았다고 "비비안나"
넷째 딸은 ‘요번에도 안나네’ 그래서 "요안나"
다섯째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고 해서 "마리안나"
여섯째는 이제 마지막이다 다시는 안나 그래서 "다시안나" 로 지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교회에서 사랑 받는 이름이 ‘안나’ ‘한나’입니다.
여선교회의 꽃이지요.
반면 "브닌나"는 '홍보석'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더 남편의 사랑을 받았을까요?
‘한나’였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풍성한 은혜'라고 이름값도 못하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없는 것입니다.
약속의 씨앗인 자식이 없으니 얼마나 고민이 되겠습니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남편 엘가나의 애정입니다.
1: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1: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남편 엘가나가 자식이 없는 한나에게 갑절의 재물을 주었다는 것은 그만큼 남편 엘가나가 한나를 더 귀하게 여기고 사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무엇 하겠습니까?
‘위로’는 되지만 ‘은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설상가상 ‘브닌나’까지 나서서 한나를 무시합니다.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이 때 한나가 유일하게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말 그대로 기기 막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자신의 괴로움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나아가 기도합니다.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했다
이것이 한나의 힘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서를 시작하면서 한나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한나가 기도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한나는 기도의 자리가 아닌 점치는 자를 찾아 갔을 것이고 남편이 누운 침상 속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래야 아이를 기대하지요.
그런데 한나는 남편 엘가나의 침상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을 찾습니다.
왜요?
왜 엘가나의 침상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입니까?
우리의 원통함과 기도를 들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나가 남편 엘가나의 침상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 곧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 것입니다.
한나의 기도, 아주 간결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한나의 진심과 믿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그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나를 기억하시고
그리고 고통 가운데 있는 주의 여종을 잊지 말아 달라는 애통하는 기도입니다.
애통하는 기도.
이것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여는 기도.
그 기도의 시작은 나의 진정성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의 사정을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입니다.
더하거나 감할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사실 그대로 진실하게 아뢰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우리를 생각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구체적으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여는 구원의 기도입니다.
두 번째로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를 열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통하는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교제의 기도입니다.
1: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교제의 기도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한나처럼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아뢰는 것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이 부분을 ‘자기 마음을 주님 앞에 쏟아 놓았다’고 번역해 놓았는데 그렇습니다.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는 것이 하나님과 통하는 교제의 기도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나가 드린 기도의 특징은 약속의 성취를 믿는 응답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여는 기도도 중요하고 또 하나님과 통하는 기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응답 받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왜 기도합니까?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확실하게 믿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기도하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을 두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도의 목적, 그것은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드디어 한나의 기도가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지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사무엘입니다.
그 뜻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셨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이시다', '그의 이름에 권능이 있다' '하나님에게 간구하였다'
한 마리로 압축하면,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오늘 이 밤에 드리는 기도가 바로 이 기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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