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 밤 마음에 잠겨
요한계시록21:1-4절 2016/3/6(주일)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일 전입니다.
일제강점기시절인 1919년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에서 펼쳐진 대한독립만세 운동을 기념하는 날을 보냈습니다.
그 날이 언제입니까?
삼일절입니다.
우리나라가 특별히 국경일로 지정하고 기념할 만큼 우리 민족 근현대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날이 삼일절입니다.
오늘은 삼일절이 지난 첫 주이면서 사순절 제 4주가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좀 특별한 말씀을 나눌까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만들고 노래한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얼이 담긴 우리의 찬송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까합니다.
옛날 찬송가로 261장,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로 582장인 '어둔 밤 마음에 잠겨'입니다.
찬송가 제목 바로 밑에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을 보시기 바랍니다.
왼쪽 끝은 작사자의 이름이 그리고 오른쪽 끝은 작곡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 누구로 되어 있습니까?
"작사 김재준, 작곡 이동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두 3절로 되어 있는데, 한 번 천천히 작사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사의 뜻을 새기면서 읽어보겠습니다.
1. 어둔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빛 속에 새롭다
이 빛 삶속에 얽혀 이 땅에 생명 탑 놓아간다.
2. 옥토에 뿌리는 깊어 하늘로 줄기가지 솟을 때
가지 잎 억만을 헤어 그 열매 만민이 산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일꾼을 부른다
하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리.
3. 맑은샘 줄기 용 솟아 거치른 땅을 흘러적실 때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앞에 활짝트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 하늘 새 땅아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횃불되어 타거라.
어떻습니까?
가사의 내용만을 볼 때 찬송가 같습니까?
아니면 일송정처럼 애국을 고취하는 가곡으로 보입니까?
가사의 내용만을 볼 때 의외로 찬송가로 보지 않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실제로 한국교회 안에는 이 곡에 쓰여 진 가사를 놓고 시비를 거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특히,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나 목회자나 성도는 이 곡을 기피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가사가 성경적이지 않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가사의 내용, 그 어디를 봐도 찬송가다운 가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도 없고 십자가도 없고 보혈도 없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입니다.
정말 성경적이지 않을까?
이 부분은 좀 나중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1절의 가사 ‘계명성’에 대한 해석 차이 때문입니다.
계명성, 히브리어 '헤렐'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샛별, 새벽별, 금성'이 됩니다.
동쪽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밝게 뜨는 별을 뜻합니다.
그런데 일부, 아주 일부이지만 이사야서를 인용해서 이 계명성을 타락한 천사인 루시퍼로 해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하지만 이것은 본문의 문맥이나 역사적 배경이나 저자의 의도가 아닌 문자적으로만 해석한 오류입니다.
사실 이사야가 말한 ‘계명성’은 자칭 계명성이라고 여기며 우쭐되었던 바벨론 왕의 타락과 멸망을 비꼬는 예언적 표현입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당시 계명성이라는 단어는 권세와 통지자의 표시로 사용된 상징어로 바벨론 왕이 참 계명성이 아님을 비꼬는 예언적 표현입니다.
그런데도 킹 제임스 성경이 이 계명성을 루시퍼로 번역해 놓으면서 오늘날까지 많은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 계명성이 누구인가?
이 땅을 다스리시는 참된 권세자 참된 통치자는 누구인가?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킵니다.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계명성)이라 하시더라
이처럼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주로 두 가지의 그릇된 이유 때문에 찬송가로 582장, '어둔 밤 마음에 잠겨‘를 기피하는 경향이 한국교회에 깔려있습니다.
과연 이 찬송가가 그런 대접을 받아야할 ‘새 노래’인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특별히 준비한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에는 582장이 3절로 되어 있지만 원곡은 1절과 2절만 나옵니다.
1983년 통일찬송가가 편찬되면서 추가로 3절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1~2절과 3절은 느낌과 내용이 좀 다릅니다.
가사를 다시 살피겠습니다.
1절입니다.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
언제일까요?
아마 일제강점기겠지요.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이 왔다.’
아마도 계명성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우리 민족에게 광복의 빛을 주셔서 조국의 대한 독립을 맞이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물론 우리나라입니다.
"빛 속에 새롭다. 이 빛 삶속에 얽혀 이 땅에 생명 탑 놓아 간다“
계명성 곧 이 땅을 통치하시는 권세 자 즉 그리스도 예수가 주신 은총의 역사인 조국의 해방을 잊지 말고, 그 광복(해방)의 빛을 우리 삶 속에 그리고 우리 조국강산에 실현하여 생명 탑을 놓아 생명의 역사 생명의 열매를 맺자는 다짐입니다.
2절입니다.
2절에 보면 그 다짐이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2. 옥토에 뿌리는 깊어 하늘로 줄기가지 솟을 때
가지 잎 억만을 헤어 그 열매 만민이 산다
왜 우리가 이 땅과 조국 강산에 생명 탑을 놓고 생명의 역사 생명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가?
김재준 목사님의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인 만민이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일을 누가 해야 하는가? 입니다.
누가 이 땅과 이 조국 강산에 생명 탑을 놓고 생명의 역사 생명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인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먼저 입은 우리들입니다.
대한의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이 땅과 조국강산에 하늘 씨앗이 되어 헌신함으로 인해 생명 탑을 놓고 생명의 열매를 맺는 역사를 계속해서 이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구원의 역사 속에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일꾼을 부른다
하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리.
어떻습니까?
찬송가 582장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찬송가 맞지요?
우리 민족이 꼭 노래해야할 새 노래 중에 새 노래 찬송가가 맞습니다.
3절의 가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 땅 곧 대한민국을 넘어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그 역사의 지향점이 좀 다르지만 이 역시 매우 성경적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요한계시록 21장 1절이 언급하고 있는 "새 하늘 새 땅"을 간절히, 아주 간절히 소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이러한 뜻을 품고 있는 가사가 3절입니다.
맑은샘 줄기 용 솟아 거치른 땅을 흘러적실 때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앞에 활짝트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 하늘 새 땅아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햇불되어 타거라
이처럼 원곡의 가사인 1-2절과 그리고 후에 추가 된 3절 사이에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그 흐름은 같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1-2절 가사와 그리고 후에 추가 된 3절 가사 속에는 한국근현대사라는 역사의 질고가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1절과 2절의 가사를 쓰신 분은 김재준 목사님입니다.
후에 첨가 된 3절은 그의 제자이자 후배인 문익환 목사님이 섰습니다.
우리 찬송가에는 작사자를 김재준으로만 기록하고 있지만 실은 김재준 1-2절, 문익환 3절입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1936년 김재준 목사님은 교목이자 성경 교사로 용정 해란강이 흐르는 은진중학교에 부임하게 됩니다.
일본을 거쳐 미국까지 유학을 다녀온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 지금의 서울인 경성이 아닌 북간도의 시골마을 중학교에 부임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문익환 목사의 아버지인 문재린 목사님의 힘이 켰지요.
문익환 목사님이 은진중학교를 졸업 한 후에 부임했기 때문에 김재준 목사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신앙의 스승과 선배로서 아주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훗날 한신대학교의 두 기둥이 됩니다.
자료에 따르면 김재준 목사님이 이 찬송가의 가사를 쓴 것은 1966년입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으니 20년이 지난 좀 오래 된 시점에 이 가사를 쓰게 됩니다.
이 가사를 쓴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행동하는 신앙인 즉 한국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고취하기 위해 섰다고 합니다.
둘째, 좀 지평을 넓혀 세계 속에서 한국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고취하기 위해서 섰다고 합니다.
이처럼 선교 찬송용으로 김재준 목사님이 이 찬송가의 가사를 쓴 것입니다.
반면 그의 제자인 문인환 목사가 쓴 3절은 이렇게 탄생하게 됩니다.
1976년 명동 3·1 구국 선언 사건이 배경이 됩니다.
일명 ‘명동사건’이라고도 부르는데 민청학련 사건과 더불어 70년대에 일어난 최대의 반유신 운동이었습니다.
여기에 동참 한 분들이 윤보선, 김대중, 함석헌, 정일형, 이태영, 천주교 신부님들로 함세웅, 윤반웅, 김승훈, 그리고 개신교 목사님들로 문익환, 문동환, 안병무, 서남동 등이 대거 참여하게 됩니다.
그 때 가장 중심에선 분이 문익환 목사님입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문익환 목사님이 옥중에 갇혀 재판을 받게 됩니다.
당시 문익환 목사님의 담당 변호사가 홍성우 변호사님이었습니다.
드디어 아주 어렵게 면회 시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문익환 목사님이 홍 변호사에게 부탁을 합니다.
"내가 한 소절을 불러 줄 테니까 잘 기억하라“
그렇게 홍변호사가 암송한 구절을 문 목사님 가족에게 전달한 것이 바로 찬송가의 3절입니다.
3. 맑은샘 줄기 용 솟아 거치른 땅을 흘러적실 때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앞에 활짝트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 하늘 새 땅아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횃불 되어 타거라
이렇게 찬송가 582장은 스승 김재준이 1~2절을 그리고 그의 제자 문익환 목사가 옥중에서 나머지 3절을 완성한 것입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 하늘 새 땅아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횃불 되어 타거라
비록 자신은 옥에 갇혀 있고 날마다 고문 속에서 육체는 새하여 가고 있지만 내 나라 내 조국만큼은 요한계시록 21장 1-4절의 말씀처럼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되기를 바라는 문익환 목사님의 ‘비전’ 속에서 이 노랫말이 탄생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4절 문익환 목사님이 직접 번역한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1:1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21:2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21:3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21: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말씀을 마칩니다.
문익환 목사님의 고향은 북간도 용정의 명동촌입니다.
명동촌에 가면 우리는 잊을 수 없는 한 일물을 만나게 됩니다.
동주라고 불렸던 문익환 목사님의 친구 윤동주입니다.
문익환의 집과 윤동주의 집은 저녁연기를 서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었습니다. 동갑내기 익환과 동주는 갓난아기 때 문익환의 어머니 젖을 같이 빨고 자랐습니다. 명동소학교 같은 반이었고, 은진중학교도 같이 다녔습니다.
평양숭실학교에도 같이 다녔고, 신사참배에 반대하고 자퇴하여 고향에 돌아와 다시 용정 광명학원 중학교에 편입한 것도 같습니다.
물론 둘 다 공부도 아주 잘 했습니다.
문익환의 친구, 그 동주 이야기가 ‘동주’라는 영화제목으로 지금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 주 금요일에 종영될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윤동주 시에 나타난 기독교 사상’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가 남긴 많은 시가 있지만 오늘은 이 시를 읽는 것으로 찬송가 582장, '어둔 밤 마음에 잠겨'에 관한 설교의 갈무리로 삼겠습니다.
‘서시’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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